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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03일 11시 24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2월 03일 14시 12분 KST

분노의 취향 | 매드맥스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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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렇게 부를 수 있다면) 미감(美感)과 분노감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것에 아름다움을 느끼고 어떤 것에 분노하는지- 요컨대 이것은 어떻게 세계를 인지하고 살아가는지에 대한 태도의 문제다. 어떤 사람은 설현의 몸매에 아름다움을 느끼겠지만 설현의 몸매를 감상하는 것보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골목길 풍경이나 바이칼 호수의 물빛을 보는 쪽을 더 선호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전자는 후자를 끝끝내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우리 모두는 다른 버튼을 가지고 있다.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분노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여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나 맷 데이먼 같은 사람은 환경오염과 기후변화에 꽂히는 것이고, 안젤리나 졸리는 난민을 위해 행동한다. 우리가 만약 온실가스 배출에 무감각하고 이자스민 의원을 쉽게 모욕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앞서 언급한 스타들의 연인이 되기는 힘들 것이다. (어차피 틀렸으니 마음껏 하자고 하는 사람은 없길 바란다)

300명이 넘는 사람이 탄 배가 물에 가라앉는 것이 생중계 되는 가운데에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시스템을 보고 분노하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고. 내 경우의 예를 들면 자국민을 대량학살하고서도 말년까지 호의호식하고 있는 독재자나 동물을 학대하는 사람을 보면 버튼이 눌린다. 하지만 어떤 일에 절대 분노하지 않는 사람들도 세상엔 엄청 많은 것이다. 물론 모두가 같은 주제에 대해 버튼이 눌릴 필요는 없다. 누구는 야구팀의 실패한 FA영입에 분노를 하는 것이고, 누군가 말없이 몰래 빼먹은 냉장고 속 음료수에 대해 격한 분노를 느낄 수도 있다. 어쨌든 요점은 다시 한 번, 분노에 대하여 우리 모두는 다른 버튼을 가지고 있다는 것.

비극은 이 버튼이 전혀 다르게 눌리는 데에서 시작된다. 놀랍게도, 어떤 사람은 중국집에서 탕수육을 먹다가 간장 종지 요청을 거부 당했을 때 마치 70년 전 독일의 아우슈비츠의 유대인이라도 된듯한 격렬한 감정이입과 함께 분노감을 느꼈다고 한다. 시공간을 뛰어넘은 공감능력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사람은 여자친구가 전화를 잠결에 성의 없게 받았다고 했을 때 분노감이 폭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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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도 '조선'일보와 '조선'대라는 우연 아닌 우연이 과연 '헬조선'스럽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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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은 시위자가 테러리스트처럼 복면을 쓴 것을 보고 분노한다. 그 테러리스트들이 테러하겠다고 위협한 나라에 한국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 사람이 분노한 것은 테러리스트들이 아니라 '테러리스트처럼 복면 쓴 시위자'였다.

그리고 분노한 사람들은 모두 그 분노를 직접적인 행동으로 폭발시켜 영향력을 행사했다.

각각 최대부수 일간지에 / 4시간 30분에 걸쳐서 / 국무회의에서 /

2011년, 프랑스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34쪽의 소책자 <분노하라>를 지은 당시 93세의 노인은 2차 세계대전 당시에 나치에 맞섰던 레지스탕스였다. 그는 젊은이들이 현실에 분노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사회 양극화에, 이민자에 대한 차별에,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천박한 돈의 힘에, 저항하고 분노하라고. 분노하지 않는 무관심이야말로 최악이니,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 힘을 보태라고.

누군가는 항상 화가 나 있는 것 같은 이 나라에서, 분노의 취향에 대해 생각한다. 취향이 나쁜 사람들일수록 왜 타인의 취향을 적극적으로 침해하려 드는지는 의문이다. 아 물론 저는, 판사님의 취향이 나쁘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이 나라에 전반적으로 그런 기운이 느껴진다는 얘기입니다.

*** 스테판 에셀 <분노하라> (돌베개) 부분은 알라딘 책소개 페이지에서 참고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