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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20일 09시 41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12월 21일 14시 12분 KST

'꽃뱀'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Sergey Peterman via Getty Images

잘생긴 남자와는 말이 잘 통하지 않는다.

이십 대 초반에 나 혼자 이런 결론을 내린 적이 있었다. 잘생긴 남자뿐 아니라 예쁜 여자들의 경우도 비슷한데, 빼어난 미모를 가진 이들 중에는 남녀 불문하고 유독 '묘하게 말이 안 통하는' 느낌을 주는 이들이 많았다. 정확히 꼭 집어 표현하긴 어렵지만 0.1차원쯤 어긋난 시공간에서 대화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우연이라고 치부할 수준을 뛰어넘는 사례들을 겪고 보니, 정말 신은 공평한 것인가, 신이 그들에게 미모를 주고 눈치를 앗아간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해본 일도 있었다.

그것이 '신'의 영역이 아니라 '과학'의 영역임을, 이십 대 중반에 깨달았다. 잘난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던 '묘하게 말 안 통하는 느낌'의 비밀을 비로소 풀게 된 것이다.

어떤 이론이든지 '대전제'라는 게 있다. 모두가 옳다고 간주하는 것이어서 감히 시비할 이유도 딴죽 걸 이유도 없는 것. 인생살이에 있어서 그 대전제에 해당하는 건 '공짜는 없다'는 사실 아닐까.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진리는 태어난 순간부터 우리를 따라다니며 삶의 매 순간 귀에 속삭여진다. 그러니 이 당연한 진리에 시비 걸 사람도 없거니와, 성인이 되면 모두가 자연히 그 암묵적 법칙에 순응하며 산다. 리조트 이용권에 당첨됐다는 전화를 받으면 곧장 전화를 끊어버린다든지 모르는 사람이 친절한 제안을 하면 사기꾼이 아닐까 의심부터 한다든지. 이 모든 행동이 '공짜는 없다'는 대전제에 대한 동의로부터 나온다.

그런데 잘난 사람들 중에 이 대전제를 못 깨우친 이들이 있다. "공짜는 없다"고 말하면 "아닌데? 있던데?"라고 받아 칠 수 있는 '반례'를 숱하게 알고 있는 이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밥을 샀고 공연에 초대했으며 귀여운 선물들을 안겼다. 요컨대 그들은 인생에서 수많은 공짜를 누리며 살아온 것이다.

아름다움이 권력이 되는 세상에서 빼어난 미모를 가진 이들은, 여러 측면에서 평범한 이들과는 조금 다른 공기를 느끼며 살아 간다. 삶의 대전제에 대한 공감도가 다른 이들과의 대화에서 묘하게 시공간이 어긋나는 느낌을 받았던 건, 그러니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렇다면 "잘난 사람에겐 공짜도 있다"는 식의 예외는 성립 가능한 걸까?

그렇지 않다는 사실에서 문제는 시작된다. 어여쁜 외모 덕으로 누리는 타인의 호의에 익숙해지는 수준을 넘어 자신에게 주어지는 공짜 점심을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아는 사람들이 있는데, 바로 그 지점이 사달을 부르는 것이다. 남자연예인 관련 성추문 사건도 인터넷 등지에서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속칭 '꽃뱀 사건'도 종종 비슷한 원리로 발생한다.

우선 연예인들이 유흥 업소에서 돈을 잘 안 쓴다는 건 흔한 풍문. 남성 접대부가 나오는 호스트바에서는 제일 기피하는 손님이 여자 연예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나 ㅇㅇㅇ야, 이 몸이 행차해줬는데 돈은 무슨 돈?" 따위의 개념을 가진 연예인들이 꽤 많다는 것이다. 술집에서 일하는 이가 접대 상대가 연예인이라는 사실이 영광스러워 '화대'를 받지 않을 거란 생각은 코미디에 가까우나, 오직 해당 연예인만이 그 사실을 모른 채 '나 ㅇㅇㅇ이야' 하는 생각에 빠져 있다.

예쁜 여자에게 조건 없이 밥을 사거나 지속적인 호의를 베푸는 남자는, 그녀가 자신에게 살갑게 굴며 자신을 최소 '아는 옵빠'의 범주에 넣어주길 기대한다. 그러나 어떤 여자들은 '그저 나에게 밥을 사주는 것만으로도 상대는 행복하겠거니' 착각한다. 그러니 여자가 연락을 끊거나 냉랭하게 굴면 남자는 "저 년은 이득만 챙기고 얼굴색을 바꾸는 꽃뱀"이라고 떠들고 다니고, 여자는 억울하다며 방방 뛰는 촌극이 벌어진다.

본인이 자진해서 호구 노릇을 해놓고 꽃뱀 운운하는 남자 쪽이 한심한 건 말할 것도 없다. 여자 쪽에서야 상대가 베푼 호의를 거절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꽃뱀 소리를 듣는 게 퍽 억울한 일일 수도 있겠으나, 애초에 특별한 관계가 아닌 이에게 지나치게 공짜 밥을 얻어먹거나 공공연히 도움받으며 지낸 것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너도 잘한 거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으므로, 이런 일이 세상에 공개되면 양쪽 모두 좋은 소리를 못 듣게 된다. 한 쪽의 찌질함과 다른 쪽의 거지근성이 빚어낸 합작품쯤으로 여긴달까.

꽃뱀 사건의 주인공이 된 여자들은 '늬들은 모르는 나의 미모 프리미엄' 쯤이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그게 그렇게 잘 먹혔다면 본인이 시비에 휘말리고 있을 일은 애초에 없었을 거라는 걸 부디 얼른 깨달으셔야 한다.

예쁘고 잘난 이들에게는 온갖 호의들이 삶의 매 순간 쏟아진다. 그래서 자신들의 미모가 '창조 경제'를 이루어낼 수 있다고 착각하기도 그만큼 쉬운 것 같다. 거듭 말하지만 그 착각에서 한시라도 빨리 깨어나야 한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사실은 지구는 돈다는 사실만큼이나 수정 불가능한 형형한 진리다. 그리하여 한 명의 이탈자도 없이 모두가 이 대전제에 동의하는 아름다운 세상이 오길 기대해 본다. 영 쉽지 않을 것 같아 때때로 막막한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서도.

* 이 글은 필자의 브런치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