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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18일 09시 26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2월 18일 14시 12분 KST

스크릴렉스의 깜짝 내한 파티는 어떻게 성사됐을까?

모든 것은 한 장의 사진에서 시작됐다. 12월 16일 오후 1시, 한국의 대표 언더그라운드 파티 크루 데드엔드(DEADEND)의 킹맥(KINGMCK)이 갑자기 SNS에 이런 사진 하나를 올렸다. "오늘 밤, 데드엔드 사고 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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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냥 파티에서 뭔가 비범한 일을 하려나보다 싶었다. '엄청 유명한 연예인이 오나?' 정도로 가볍게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다들 알겠지만 16일의 '사고'는 '사고'라는 말로 표현하기 부족한 사건이었다. '레전드'였다. 세계적인 슈퍼스타 스크릴렉스(Skrillex)의 깜짝 게릴라 파티였으니까 말이다.

소식을 듣자마자 홍대 클럽 헨즈로 달려갔다. 옥타곤이나 엘루이처럼 대형 클럽이 아니기 때문에 순식간에 인원이 꽉 찰 것이 확실했다. 아니나 다를까. 영하의 매서운 추위에도 오픈 전부터 바깥에 줄이 늘어섰다. 홍대 삼거리포차 앞을 지나가는 행인들이 '여기서 도대체 뭘 하길래?'라는 눈빛으로 오들오들 떨고 있는 스크릴렉스 팬들을 쳐다봤다. 나는 저녁 9시에 도착해 10시까지 기다렸는데 출입구에 들어설 즈음엔 발가락이 아플 정도로 발이 시렸다. '도대체 내가 여기서 뭐하는 건가?' 생각도 들었지만 이번 파티는 정말이지 놓치고 싶지 않았다. 큰 자본을 가진 기획자들이나 커다란 장소에 부를 수 있는 그를 친밀감 높은 작은 클럽에서 가깝게 즐길 수 있는 기회였다. 이건 한국에서 앞으로 없을 기회라는 예감이 들었다. 놓칠 수 없었다. 이를 악물고 추위를 버텼다.

킹맥에게 연락해 직접 들은 바에 의하면, 이번 파티는 스크릴렉스가 먼저 연락해 성사됐다고 한다. 음악 작업을 이유로 한국에 들를 예정이었던 스크릴렉스가 이미 친분이 있던 킹맥에게 연락해 데드엔드와 파티를 하고 싶다고 요청했다고 한다. 킹맥과 주고 받았던 대화 내용을 그대로 옮겨 본다.

"키스 에이프(Keith Ape)와 스크릴렉스가 매니지먼트가 같아요. 컨트롤 뮤직 그룹(Control Music Group)이라고. 이 안에는 허드슨 모호크(Hudson Mohawke), 스크릴렉스, 다다 라이프(Dada Life), 헨리 퐁(Henry Fong) 등 거물급 아티스트가 많아요. 이쪽에서 키스를 싸인하고 저랑도 일하고 싶어 해서 전부터 매니지먼트와는 교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아시아 투어를 하면서 한국에서 송 캠프를 진행할 겸 들른다고 연락이 먼저 왔고, 데드엔드와 파티를 하고 싶다고 연락이 와서 급하게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레전드'급 깜짝 게릴라 파티는 결국 스크릴렉스의 한국 사랑 못지 않게 해외 유력 매니저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데드엔드 크루의 힘이 컸던 것이다. 또한 이 파티는 메이저 기획사에서 해외 아티스트를 부킹하여 공연을 진행하는 형식과는 달리, 오슬라(OWSLA, 스크릴렉스의 레이블)와 데드엔드 크루간의 친분과 협업으로 이루어졌다.

현장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가마솥'이었다. 좁은 클럽에 대규모 인원이 일제히 들어가니 땀과 열기가 터질듯 뿜어져 나왔다. 심지어 그 베이스! 스크릴렉스는 유독 서브 베이스가 강한 음악을 틀기 때문에 소리가 울리는 쪽에 서 있으면 스마트폰 스크린이 진동할 정도로 '피부로' 소리가 느껴졌다. 록 페스티벌 펜스 앞에서나 볼법한 압사 직전의 브로맨스도 연출됐다. 여성 팬들은 버티다 못해 뒤로 빠졌고 땀에 흠뻑 젖은 거구의 남성 팬들이 드랍(하이라이트)이 나올 때마다 거칠게 흥분하며 스크릴렉스를 향해 울부짖었다. 'Bangarang'이 나올 때는 플로어 분위기가 슬램 직전까지 갔다. 나는 앞 사람 뒤통수에 입술을 여러 번 얻어맞아 잠시 뒤로 빠지기도 했다. 헨즈 클럽에서 그런 헤비 메탈 공연 같은 분위기가 연출되다니 정말 놀라웠다. 짐을 맡기는 캐비넷은 이미 꽉 차버려 미처 겉옷을 맡기지 못한 관객들이 패딩을 입고 땀에 절어 춤을 추는 광경이 연출됐다. 끝나고 밖으로 나오니 사우나를 한 것처럼 온몸이 땀에 젖었다. 그런 과격한 클럽 분위기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사고가 나지 않을까 조마조마했을 정도다.

스크릴렉스의 디제잉도 좋았다. 그는 사람들의 열기를 읽고는 (평소에도 그렇긴 하지만) '터지는' 곡들 위주로 틀었다. 미칠 듯한 베이스 드랍들을 쭉쭉 이어갔다. 그 헤비하고 짜릿한 사운드들이 수백 명의 부대낌 속에 장중하게 울려퍼졌다. 대형 페스티벌에서 듣는 것과 작은 클럽에서 듣는 것은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스타를 우러러보며 노는 느낌이 아니라 정말로 같이 부대끼며 더티하게 뒹구는 느낌이었다. 밀착한 공간에서의 파티가 왜 낭만적인지 제대로 체감할 수 있는 파티였다.

한국 클럽 씬에 환상적인 연말 선물을 선사한 스크릴렉스와 데드엔드 크루에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16일의 파티는 단지 스크릴렉스를 본다는 것 이상이었다. 시작 5시간 전에 깜짝 공지해 클럽 씬 전체를 발칵 뒤집은 서프라이즈 이벤트였다. 이날의 파티는 훗날 사진과 영상을 통해 널리 회자될 것이다. 하지만 그 기록들이 담아내지 못할 것은 처음 SNS 글을 발견했을 때의 흥분과 헨즈로 향하며 스크릴렉스를 듣던 설렘일 것이다. 어쩌면 우린 그 '기록되지 않는' 설렘을 가슴에 간직하기 위해 추위에 떨며 입장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인스타그램이 담아내지 못하는 감정의 기억을 위해 그 장소로 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역대급 사건에 '실제로' 함께 한다는 행복감. 그게 12월 16일의 관객들에겐 가장 중요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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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밤 헨즈에서 열린 게릴라 파티의 스크릴렉스(가운데)와 킹맥(오른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