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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16일 12시 11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2월 16일 14시 12분 KST

나의 유쾌한 돌싱 친구들

gettyimagesbank

내 주변에 싱글 여성들이 꽤 있다. 그 중엔 돌싱도 여럿이다. 최근 돌싱 그룹에 합류한 친구가 또래 몇 명을 시래기 국밥집으로 불렀다. 이혼 자축 파티였다. 3년 4개월에 걸친 60대 이혼 소송사건이라니. 친구의 전 남편은 무려 대법원까지 소송을 끌고 갔다. 결과는 기각. 고등법원 판결이 확정되며 35년에 걸친 결혼은 소멸했다. 아직 법원 판결에 의한 재산 정리 집행을 둘러싼 신경전이 남아있지만 친구는 자유의 몸이 됐다.

우리는 막걸리로 건배했다. "나이 60이 넘어 이혼한 기분이 어때?" 40대에 이혼한 돌싱 선배가 물었다. 조금 착잡할 것 같은 반응을 기대했는데 대답은 의외였다. "약간 코믹해. 이혼 소송이라는 게 상대방에 대한 연민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싹 없애 주거든. 뭐랄까. 완전 드라이해져 버려. 느낌이 아예 없어."

전 남편의 끊임없는 외도와 폭행에도 불구하고 친구는 세 아이와 함께 버텼다. 더 이상 매 맞는 여자로 살지 않겠다는 결심을 한 건 갱년기라는 길고 우울한 강을 건너면서였다. 그때야 알았다. 회사원 남편이 고액 연봉자 아내의 재산관리 명분 아래 거의 모든 재산을 자신의 명의로 해놓았다는 사실을. 남편과의 합의는 불가능했다. 소송은 지루한 소모전이었지만 딸들과 아들의 지지로 친구는 견뎌냈다.

그 사이 변한 것은 하나 더 있었다. 막내딸의 커밍아웃. 이혼 소송의 와중에 덮친 쓰나미급 충격이었다. 그녀는 현실을 받아들였다. 다른 선택이 없었기 때문이다. 막내딸은 미국으로 갔다. 레즈비언이란 성 정체성으로 살기에 이곳보다는 큰 바다 건너가 더 쾌적할 것 같아서였다.

이제 친구의 관심사는 노후 기획이다. 아파트를 떠나 마당이 있는 작은 집에서 살고 싶단다.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시골에 있는 집을 사서 고칠지 아예 새로 지을지 궁리하는 게 제일 재미난 취미생활이라나. 집 마련의 최우선 고려사항은 안전. 구조도 튼튼해야 하지만 마을에서 외따로 떨어진 집이어서도 안 된다.

40대에 이혼한 후 돌싱녀의 라이프스타일을 확고하게 다져온 50대 후반의 친구는 전 남편과 가끔 '우정 있는 만남'을 갖고 있단다. 그 친구의 전 남편은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져 이혼을 요구했다. 캠퍼스 커플로 만났고 딸과 아들을 하나씩 낳은 사이.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졌다고 당당히 고백하는 남편에게 엄청 당황했다. 그렇지만 이미 마음이 떠난 남자를 결혼계약 따위로 묶어놓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이혼의 충격으로 그녀는 아이들을 데리고 떠났다. 먼 나라에서 배운 요가로 마음과 몸의 상처를 자가 치료한 후 돌아와 요가 강사가 됐다. 전 남편은 아버지로서 요즘도 딸과 아들을 만난다. 그녀가 아프거나 다치면 병문안을 오기도 한다. 자식들을 사이에 둔 부모로서의 파트너십이 건강하게 작동 중이라는 건 나쁘지 않아 보인다. 우리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다행히 아이들은 잘 자랐고 각각 경제적으로 독립했다. 내년 봄, 친구는 외할머니가 된다. 딸이 낳을 아기를 돌봐줘야 할지 고민을 늘어놓는 그녀의 얼굴엔 함박웃음꽃이 핀다.

언제 봐도 두 돌싱 친구들은 유쾌하다. 그리고 씩씩하다. 무슨 일이 닥쳐도 그녀들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것 같지 않다. 평범한 결혼생활 31년 차인 나는 살짝 열등감을 느낀다. 비바람을 굳세게 버텨낸 들꽃들의 아름다움 앞에 온실 속 화초가 기가 죽는 건 당연하지. 정말이지 그녀들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그중 가장 멋진 건 고난의 행군이었던 각자의 결혼과 이혼에서 배우고 깨우쳐야 할 무언가가 있었던 모양이라고 담담하게 말할 때다. 결혼과 이혼은 그녀들에게 빡센 인생 학교 교과과정이었던 셈인가. 오랜 고민 끝에 스스로 선택한 이혼이든, 벼락처럼 닥친 이혼이든 그 과정을 헤쳐 나오며 그녀들은 달라졌다. 아픔만큼 모든 인간이 성숙하지는 않지만 그녀들은 성장했다. 경제적 독립을 위해 공부하고 연구하고 주말에도 자주 일했다. 그리고 두 발로 섰다. 심리적 독립은 더 어려웠다. 이혼녀라는 사실 때문에 자신이 일종의 '사회적 장애인'처럼 느껴졌던 이혼 첫해의 좌절감은 아직도 희미한 그림자로 남아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은 "결혼은 많이 남는 장사"라고 말한다. 그녀들에게 아이들의 엄마라는, 빛나는 직함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그것은 전 남편들의 선물이기도 하다. 이혼을 후회하지 않는 만큼 결혼을 후회하지도 않는 이유다.

중년 로맨스? 두 사람의 생각은 엇갈린다. 한 친구는 "이제 두 번 다시 사랑 같은 것에 눈멀지 않기로 했다." 다른 한 친구는 "계획 없이 어떤 상대에게 마음이 끌린다면 그건 그때 생각해 보겠다"며 유보적 태도. 하지만 지금 당장은 연애보다 제주도의 푸른 바다를 자주 보는 게 더 다급하다나.

건강과 상황이 허락한다면 70까지 일하고 싶다는 그녀들. 그 뒤의 일은 아무도 모른다. 확실한 사실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그녀들이 태연하게 대처해내리라는 것. 남들과 조금 다른 자신들의 길에 대한 자신감이 그 태연함의 바탕이리라. 엄마로서, 일하는 여성으로서,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으로서, 유쾌 상쾌한 그녀들이 간다. 정말 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