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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07일 11시 38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2월 07일 14시 12분 KST

12월의 사교계

gettyimagesbank

12월에 접어드니 외출이 잦아진다. 사교계를 떠난 지 오랜 데도 송년모임 알림이 온다. 뜸하던 친구들까지 만나자는 연락을 보내온다. 왜들 갑자기 정답게 구는 거지?

지난달에 아버지 장례식을 치른 한 선배의 집으로 뒤늦게 조문을 갔다. 인사말을 마치자마자 선배는 불쑥 서류를 내밀었다. '사전의료의향서'였다. 죽음이 임박했고 회생 불가능할 경우, 불필요한 연명치료를 하지 말아달라는 요청서다. 93세 아버지가 열하루 동안 큰 병원 중환자실에서 의식불명 상태에 계시다 돌아가신 충격의 결과임이 분명했다. 기계장치를 주렁주렁 매달고 누워 있던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에 몸서리를 쳤다는 선배. 아버지가 자연사할 권리를 방해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고 한다. 장례식에서 돌아오자마자 자신의 사전의료의향서를 작성했다. 그 서식에는 증인이 필요하다. 내 이름과 생년월일, 그리고 주소와 휴대전화 번호를 적었다. 서명과 지장까지 찍었다.

60대 후반인 선배는 '죽음학'을 이야기했다. 그동안 애써 모른 척했던 죽음에 대한 공부가 내년의 탐구생활 우선순위에 오를 모양. 좋은 현상이다. 나는 적극 지지를 표명했다. 죽음을 예습하는 건 오늘의 삶을 더 활기차고 명랑한 것으로 만들 것이기에.

매달 첫 번째 수요일에 만나는 일수회 저녁 모임. 공직에 있던 분의 회고록을 내가 대필했던 인연이 몇 년째 이어지고 있다. 그 분의 꿈은 북한에 나무 심기. 한번도의 남쪽처럼 북쪽의 산들을 온통 푸른 숲으로 바꾸는 것이다. 민둥산에 나무를 심고 가꿔 어렵사리 숲을 이뤄낸 남쪽의 기술력을 북쪽에 이식할 수 있다는 그의 믿음은 굳건하다. 문제는 좀체 풀리지 않는 남북관계.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는다. 더구나 그는 혼자가 아니다. 북한에 나무심기를 준비해 온 단체들의 연대를 촘촘히 다져 왔다. 북한의 식생과 지질, 지역별 기후 연구에 박차를 가한다. 작은 규모이긴 하지만 이미 황해북도 사리원 일대에 임농복합 시범단지를 조성했다. 양묘장에는 상수리나무와 낙엽송들이 자라고 있다. 비료와 경운기 지원도 한다. 때로 남쪽 기술진이 점검하고 자문한다.

언제쯤 본격적으로 북한에 나무를 심을 수 있으려나. 나도 가슴을 졸인다. 백수의 본분을 망각하고 후원금을 꼬박꼬박 내는 것도 온통 푸르른 한반도의 꿈을 지지하기 때문이다. 남쪽 사람들이 큰 나무 한 그루씩을 북쪽에 심는다는 마음으로 새해 첫날에 조금씩 돈을 낸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껏 푸르른 북쪽과 남쪽의 숲들을 상상해 본다. 기분이 좋다. 푸른 산들이야말로 우리가 한반도에서 태어난 모든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전화선 너머 친구의 들뜬 목소리가 들린다. 손녀가 곧 일박이일로 집에 온다는 소식이다. 태어난 지 두 돌이 지난 손녀와 상견례라니. 친구의 아들은 이혼했다. 소송은 지루했고 큰 상처를 남겼다. 아들은 2주일에 한 번, 4시간씩 어린 딸을 만났다. 아기는 어느덧 아빠를 알아보고 좋아한단다. 며칠 후 손녀를 품에 안아볼 수 있게 된 내 친구. 떨리고 흥분돼 이 귀한 손님을 어떻게 맞아야 할지, 뭘 준비해야할지 감이 안 잡힌다나. 손잡고 놀이터에 가고 싶고 잠들기 전에 동화책을 읽어주고 싶고, 베이비 마사지도 해주고 싶단다. 밝은 원색의 옷을 입고, 많이 웃고, 함께 노래 부르기를 권했다. 할머니가 될 권리를 마침내 쟁취한 그녀를 맘껏 축복한다.

옛 직장동료들과 짜장면 송년회 날짜를 잡았다. 지하철 3호선과 4호선이 환승하는 충무로역 부근이 우리들의 단골 모임 장소. 친구들에게 줄 것들을 챙겨본다. 선물로 받았지만 안 쓰는 화장품들이다. 미스트, 토너, 립글로스에다 핸드크림과 머플러 몇 장. 얼마 전에 얻은 유기농 오미자 발효액도 작은 병 몇 개에 나눠 담아 놓는다. 대단한 건 아니지만, 이걸 받고 좋아할 친구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올해 사귄 친구들인 '된장 가족'과는 종각 부근의 세미나 카페에서 만나기로 한다. 어느 인문학습원의 된장학교에서 만난 사이. 교장선생님은 콩과 된장연구가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학생들 중엔 은퇴 후 된장농원을 열어 발효의 달인이 될 꿈을 가진 이들도 있다. 아파트에 살면서도 된장을 담가 먹는 된장 마니아들인 만큼 각자 집 된장 숙성 상태에 대한 보고와 의견 교환이 오간다. 교장선생님은 얼마 전 열린 슬로푸드 축제에서 이태리 음식 전문가들에게 된장, 고추장, 간장 등 발효 음식 삼총사를 소개했다는 이야기를 한다. 된장클럽은 내년에도 된장 공부를 이어가기로 한다. 이름난 된장 농원을 방문해 한 수 배우는 답사 여행도 계속할 예정. 제대로 된 된장찌개를 끓이는 집을 발굴해 알리는 것도 된장학교 동창들의 즐거운 임무다.

89세 친정엄마의 생신 무렵, 네 딸들이 모였다. 교사직을 은퇴한 후 외손녀 베이비시터로 거듭난 언니가 외손녀의 첫돌에 육아일기를 펴냈다. 자비 출판이다. 자매들의 칭송에 살짝 부끄러워한다. 막내 여동생은 취준생 아들을 일본 도쿄의 한 IT회사에 연수생 신분으로 보냈다. 3개월 연수 뒤에 취업 여부가 결정된다니 긴장을 늦추지 못한다. 막내네 딸은 재수생. 그 수능성적이 기대보다 낮아, 진로에 대한 고민이 심각하다. 걱정을 늘어놓는 막내딸에게 친정엄마가 불쑥 한 마디를 던진다. "좋은 때다!" 모두들 와하하 웃어댄다. 엄마가 맞다. 근심 걱정이 끊이지 않는 지금 여기가 바로 '좋은 때'다. 쓴맛 없이 어찌 인생의 단맛을 이야기하겠나. 아니, 쓴맛마저 단맛으로 받아들이는 90세의 관점! 세상과 사람을 보는 눈이 이렇게 명랑하다니. 딸들은 엄마를 닮는다지. 우리 네 자매의 노후가 엄청 기대된다.

한 해가 간다. 좋았던 일도, 나를 아프게 했던 일도 이제 역사다.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퇴직을 했어도 우리는 모두 현역. 삶이라는 무대의 주연 배우들이다. "살아있는 모든 날이 생일"이라던 친구의 말이 떠오른다. 그래, 그렇게 살아야지. 한 해 동안 웃는 얼굴로 나를 만나준 모든 이에게 축복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