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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07일 12시 48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0월 07일 14시 12분 KST

인도 딸 '입양기'

엘레노어가 왔다. 내 딸의 인도 친구로 방년 24세. 현재는 두바이에 산다. 내 딸이 인도 뭄바이에서 2년간 '재난 관리' 석사과정을 밟을 때 아파트를 셰어한 하우스 메이트. 올해 초 뭄바이에 딸 보러 갔다가 처음 만난 엘레노어의 밝은 성격에 나는 그만 반하고 말았다. 오는 날이 장날인가. 얼마 전 간신히 취직한 내 딸은 엘레노어가 서울 오는 날에 네팔 출장 중이었다. 우리 모녀 사이엔 각자의 친구에게 잘해주기라는 묵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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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노어가 왔다. 내 딸의 인도 친구로 방년 24세. 현재는 두바이에 산다. 내 딸이 인도 뭄바이에서 2년간 '재난 관리' 석사과정을 밟을 때 아파트를 셰어한 하우스 메이트. 올해 초 뭄바이에 딸 보러 갔다가 처음 만난 엘레노어의 밝은 성격에 나는 그만 반하고 말았다.

오는 날이 장날인가. 얼마 전 간신히 취직한 내 딸은 엘레노어가 서울 오는 날에 네팔 출장 중이었다. 우리 모녀 사이엔 각자의 친구에게 잘해주기라는 묵계가 있다. 서로 이득이기 때문이다. 딸 대신 붉은 장미 한 송이를 들고 인천공항 마중을 나갔다. 지하철 교통 카드 사용법을 알려주고 서울 구경 도우미를 자처했다. 광장시장 빈대떡을 맛 보이고, 해가 지길 기다려 낙산공원의 서울성곽길 야경으로 이끌었다. 대학로에 상주하는 인도 시인 타고르 흉상 앞에서 기념 촬영 후 혜화동성당 미사도 일부 참석했다. 저녁밥은 포장마차 떡볶이. 엘레노어는 처음 만나는 서울의 모든 풍경과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녀의 전공은 미디어. 요즘 두바이의 어느 대학으로부터 초빙 강사 섭외를 받고 있다. 서울에 대한 기록은 그녀의 교재가 될 모양이다. 원래 부산국제영화제 인턴십을 희망했지만 여의치 않아 단순관광객이 된 터. 대신 여행 일정을 섬세하게 촬영하고 편집하기로 했다나.

그녀가 온 후 우리 집은 날마다 파티장이 됐다. 뭄바이에 다니러 갔다가 이미 엘레노어와 친구가 된, 내 딸의 서울 친구들이 몰려왔다. 퇴근 후 달려온 그녀들로 우리 집은 밤늦도록 잠 안 자고 떠드는 여학생 기숙사로 변했다. 나와 함께 뭄바이에 갔던 내 친구들도 엘레노어를 만나러 왔다. 대구 친구는 엘레노어를 대구로 불러 약전골목, 서문시장, 동화사 구경을 시켜줬다. 팔공산에서 그녀는 난생 처음 '단풍'을 만났다. 전주 친구는 엘레노어를 한옥마을과 남부시장으로 끌고 갔다. 엘레노어는 가톨릭이라 힌두 전통 문화인 카스트에 해당 사항이 없다. 아무 음식이나 잘 먹는다. 게다가 넘치는 호기심으로 피순대, 낙지볶음 같은 하드 코어 한국 음식까지, 맛의 신세계를 종횡무진 답사했다.

추석이 왔다. 엘레노어는 추석 차례 음식 준비에 팔을 걷었다. 함께 육전을 부치고 갈비찜 양념법을 받아 적었다. 추석 차례상 앞에서 송씨 조상들에게 술을 올리고 함께 음복. 내 친정집 가족들과의 점심에도 인도 전통의상을 곱게 차려 입고 따라왔다. 어여쁜 외국인의 등장에 흥분한 그 나이 또래 내 조카들의 야단법석은 인도식 인사와 인도 배우기로 이어졌다.

내 남편이 엘레노어를 위해 마련한 선물은 망원경으로 보름달 보여주기. 양재천에 망원경을 끌고 나가 수퍼문을 보여주고 내친 김에 허리 띠 두른 토성까지 보여줬다나. 난생 처음 망원경을 들여다본 엘레노어가 가만있을 리 없다. 답례품은 인도 영화. 뭄바이는 인도 발리우드 영화의 본산인 봄베이의 요즘 이름이다. 1995년 첫 상영된 이후 롱런 중인 영화 '딜왈레 둘하니아 르 자엥게' DVD를 틀어놓더니 인도식 홍차, 차이를 직접 끓여 대접하는 특급 서비스 제공에 나섰다. 이 발리우드 영화의 주연은 샤룩 칸. 영어 제목은 'The Brave Heart Will Take the Bride.' 용감한 자가 미인을 얻는다는, 꽤나 상투적인 로맨스지만 뜸금 없는 춤과 노래 덕분에 결코 지루하지 않다.

엘레노어가 우리 집에 머문 2주일 동안 우리 집 식탁엔 인도 음식과 한국 음식이 평화롭게 공존했다. 엘레노어는 인도 음식 몇 가지를 선보였다. 콩 요리인 달과 탄두리 치킨 양념 맛살라를 듬뿍 넣은 닭요리도 그 중 일부다. 탄두리 화덕이 없어 후라이팬에 굽기는 했지만 스파이스 향이 강렬한 인도식 치킨을 밥에 곁들여 먹는 정통 방식. 쌀도 두바이에서 직접 가져와 인도식 요리 본연의 맛을 살려냈다. 이런 호강을 나 혼자만 할 수는 없는 일. 친구들을 불러 모으니 '인도의 밤' 행사가 됐다.

뭄바이 셰어하우스 시절, 한국식 잡채는 인기 메뉴였단다. 엘레노어의 엄마도 잡채 만드는 법을 익혀 이젠 두바이의 집 식탁도 자주 오른다나. 두바이로 돌아가는 가방 속에도 당면 몇 봉지가 의젓하게 들어앉아 있었음은 물론이다.

아침마다 1 대 1 비율의 우유와 물에 몽글몽글한 인도 차 파우더와 맛살라를 듬뿍 넣고 끓인 차이 맛에 빠진 나를 위해 엘레노어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차를 끓여줬다. 딸이 출근하고 없는 아침 식탁에서 엘레노어와의 수다가 날마다 늘어났다. 주로 어제의 일정에 대한 평가와 코멘트, 오늘의 관광과 쇼핑 팁에 관해서였다. 교황의 미 의회 연설에 관한 우리 언론의 보도 내용에 대해서나 사형제 폐지에 관한 의견 교환까지 수다의 영역은 실로 방대해졌다. 처음엔 난감했던 엘레노어의 인도식 영어 억양에 적응될 무렵, 그녀의 출국 날이 왔다. 아침마다 졸린 눈을 부비며 '굿 모닝!'을 외치는 엘레노어를 이젠 볼 수 없는 건가. 이렇게 섭섭할 수가!

우리는 손을 맞잡고 마지막 아침 밥상에 앉았다. 시도 때도 없이 '오마니'를 불러대는 엘레노어가 이젠 진짜 딸로 느껴졌다. 엘레노어의 깊고 검은 눈에도 떠나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그 날, 결국 우리는 서울엄마와 두바이 딸로 서로를 '입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