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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8월 28일 11시 12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8월 28일 14시 12분 KST

가족여행 중의 한나절

gettyimagesbank

8월 중순, 일본 홋카이도 중심 도시 삿뽀로의 어느 공원. 지하철 마루야마 공원역 1번 출구에서 5분 거리, 홋카이도 신궁을 품고 있는 마루야마 공원이다. 비 내린 후 서울보다 10도는 서늘한 날씨 덕분에 햇볕이 따뜻하게 느껴진다. 낯선 도시를 여행할 때 오래된 공원 벤치에 앉거나 여차하면 누워 햇빛과 바람을 느끼는 건 내 여행 습관이다. 수 천 년을 그 도시에 흘렀을 구름과 바람과 빗줄기를 생각해 보는 호사를 누리는 거랄까.

가벼운 옷차림의 사람들이 한가롭게 산책하는 풍경 속, 야구 글러브를 낀 젊은 아빠가 예닐곱 살 딸들과 야구공을 주고받으며 교습하는 모습이 보인다. 아기를 그네에 태우며 다정하게 이야기하는 할머니, 유모차에 아기를 태우고 걷는 엄마 둘, 조금 부자유한 몸으로 혼자서 걷기 훈련 중인 할배. 줄에 맨 강아지가 똥 누는 곁에서 비닐봉지를 들고 대기 중인 40대 여성까지 공원 풍경은 어디나 엇비슷하게 평화롭다.

삼나무일까? 쭉쭉 뻗은 나무들이 숲을 이룬 곳은 제법 어둑하다. 평소의 존경심을 담아 나무들에게 거수경례를 한다. 요즘 부쩍 나무들에게 외경심을 갖게 된다. 나이 들수록 아름다워지며 위엄을 갖춰가는 나무를 향해 나이 들수록 아름다워지기 힘든 인간이 열등감을 갖게 되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겠지.

어느새 해님의 위치가 바뀌었나. 내 벤치가 추워졌다. 느릿느릿 일어나 햇빛 속에 놓인 의자로 자리를 옮긴다. 30분은 이 벤치에서 더 버틸 참이다. 이번 여행은 남편과, 딸, 아들이 함께 하는 3박4일 가족 여행이다. 일정의 대부분을 함께 했지만 사흘째인 오늘 오후 한나절은 자유일정으로 흩어졌다. 별보기를 좋아하는 남편은 홋카이도 대학과 시민천문대를 찾아 떠났다. 딸과 아들은 디저트 카페 순례로, 친구들에게 줄 선물을 쇼핑하러 도심에 머무를 모양이다. 나는 신궁을 둘러본 다음 근처 쇼핑몰의 식품부를 구경할 생각이다.

딸, 아들과 함께 하는 여행은 참 오랜만이다. 딸이 중학을 다니던 무렵 이후 처음이니 17년 만인가. 동갑인 남편과 나의 회갑 자축행사이기도 하고 인도 뭄바이에서 '재난 관리'를 전공하고 귀국한 딸을 환영하는 의미도 있다. 이번 여행의 특징이라면 단연 판세의 역전이다. 이제 주도권은 완전히 딸과 아들에게 넘어갔다. 비행기 표 티케팅과 호텔 선정뿐 아니라 일정 짜기까지 모든 세부사항을 그들이 챙긴다. 이렇게 편할 수가. 남편과 나는 그저 노부모 역할을 하면 된다. 심지어 딸의 잔소리 선물까지 받는다. 당뇨 증세인 남편이 덥썩 치즈케익 한 조각을 먹으려 하자 "공복에 치즈케익은 혈당을 급격히 높이기 때문에 위험해요. 차라리 우동을 드세요."라는 식이다. 민망해 하는 남편의 표정이 가관이어서 나는 웃음을 참느라 혼났다.

삼시 세끼 밥을 온 가족이 함께 먹는 것도 신선하다. 남편이 지방에서 일하는 데다 아들이 지방 대학에 다니는 관계로 자주 얼굴 보기가 어려워진 까닭이다. 점심이나 저녁 메뉴를 고심하는 일부터 노보리베츠 온천행 교통편과 동선을 의논하느라 거의 가족 MT를 방불케 하는 상황. 우리의 '7순 여행'에도 딸과 아들을 섭외해볼까? 수퍼 프레쉬한 생선을 얹은 초밥에 맥주를 들이키며 은근히 로비를 일삼는다. 남편과 나의 속셈을 아는지 모르는지, 딸과 아들은 명랑하게 건배를 외친다.

우리 부부의 경우, 물론 아이들을 귀하게 여겼지만 특별히 신경 써서 키웠다고 내세울 만하지는 않다. 사교육비를 쓰긴 했지만 우리 기준의 적정선을 넘지 않는 정도. 차리라 태평농법에 가까울 정도의 방목이었다. 지금에 와서 보면, 딸과의 30년, 아들과의 25년은 남편과 나에게 고강도 교육 과정이었다. 아기가 태어나면 엄마와 아빠가 태어난다고 했던가. 첫딸이 태어나자 우리는 사전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한 부모 되기 훈련에 돌입했다. 육아 책에 적혀있는 대로 아기가 행동하고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됐다. 모든 아기들은 각자 고유한 인격을 지닌 인간 개체임을 실감하는 한편 상황에 따라 다른 관점에서 사고하는 법도 익혔다.

딸과 아들이 성장하는 과정 속, 그들을 도우며 엄마와 아빠도 성장하지 않았을까. 누군가의 안위를 내 자신의 안위보다 기쁘게 우선시할 수 있는 자세를 갖게 된 것도 엄마 노릇의 소득이다. 아이들과의 자잘한 갈등과 의견 대립을 절충하고 타협하는 협상력이 커진 것도 그 일부. 화가 나서 고약한 말을 던진 경우, 잘못을 인정하고 아이들에게 사과하는 법도 익혔다. 아이들을 낳고 키우는 사이 내가 사람과 세상을 조금 더 이해하는 인간이 됐다고 감히 자평한다. 딸과 아들을 키웠다고 생각했는데, 그들이 엄마와 아빠를 성장시킨 셈인가. 확실히 자식 키우기는 남는 장사다.

지금 딸은 취업준비 중이고 아들은 학생이다. 양육은 끝났지만 경제적 독립은 못한 상태. 어쨌든 이제부터는 부모 자식 간이라기보다 인간관계의 보편적 규칙을 적용할 시기다. 그 첫 번째 원칙은 일정거리 유지가 될 터. 서로 강요하지 않기, 각자의 취향을 존중하기 연습도 필요한 훈련이다. 습관성 훈계를 자제하려 노력한다. 자식 인생에 최소 개입의 원칙을 지켜 조언은 요청받을 때만 하기로 한다. 아프리카 사막의 유목민들은 "서로 더 가깝게 지내기 위해 각자의 텐트 간격을 더 멀리 한다."고 한다. 오래 사랑하고 싶은 사람들 사이에 새겨들을 말이다.

언젠가 딸과 아들은 집을 떠날 것이다. 또 언젠가 영영 이별의 날도 올 것이다. 그날이 오면 남편과 나는 그들과 기분 좋게 헤어지고 싶다. 남편과 나에게 아빠와 엄마라는 특별한 직함을 부여해준 그들에게 감사하면서. 그러고 보니 엄마로서의 내 목표는 무사히 달성될 것 같은 예감이다. 그건 딸과 아들이 이번 생애를 멋들어진 한판으로 살다 가는 거다. 지구여행자에게 허락된 온갖 쓴맛과 단맛, 예컨대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실연의 아픔에 급기야 변비로 끙끙대는 고통까지를 포함해서 말이다. 그 빡세고 즐거운 수행의 여정을 풀코스로 살아내는 것, 그것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