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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8월 25일 12시 10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8월 25일 14시 12분 KST

된장 기행

연합뉴스

이렇게 될 줄 몰랐다. 2달 동안 매주 목요일 강의를 들으러 다녔던 '된장학교'를 졸업한 5월 초 이후 본격 된장 투어가 시작될 줄이야. 명품 된장을 맛보러 윤씨네 종갓집으로, 밀라노 세계음식축제에 출품된 된장을 찾아 논산으로, 우리는 함께 떠났다. 된장 클래스메이트들이 그대로 '된장남녀' 여행단이다.

오늘은 경기도 고양시 원당역 부근의 한 생선구이집에 모였다. 졸업생의 절반가량인 12명 참석. 된장학교 선배 졸업생이자 식당의 사장인 고선생님이 옹기 강의를 해주기로 했다. 된장을 공부하다 옹기에 빠져들어 급기야 <옹기 이야기>란 책을 펴낸 분. 백년 된 옹기를 모아 놓은 마당과 옥상에서 "왜 옹기여야 하는가?"를 주제로 된장 발효와 숙성의 신비를 말한다. 좋은 항아리는 좋은 콩, 좋은 소금, 좋은 물과 함께 된장 맛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소다. 숨 쉬는 그릇인 옹기가 된장뿐 아니라 다른 발효음식의 발효 과정에 어떻게 개입하는지, 고 선생님의 '돈 안 되는 연구' 결과 발표가 흥미진진하다.

이면수, 고등어, 갈치에 남극에서 온 메로 한 점까지, 바삭한 생선구이 밥상 위에 된장을 이용한 드레싱과 된장 베이스 국물이 소개된다. 된장학교 교장선생님이 만든 '된장 베이스 국물 9'은 멸치와 다시마, 표고 등 9가지 재료로 만들었다고 한다. 요즘 '요리 대세'로 등극한 백종원 요리 연구가의 된장 베이스 국물에 자극을 받았다는 고백. 무를 먼저 40분 정도 끓여 국물이 우러난 후 다른 재료들을 넣고 20분 더 끓인 국물이다. 된장은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유명 상표 된장을 사용했다. 시원하고 부드럽게 재료들이 어우러진 국물 맛에 절로 감탄이 나온다.

된장학교 선배로 환자 음식을 공부하고 있다는 권 선생님은 청국장 드레싱을 얹은 샐러드를 내놓는다. 청국장과 배, 무와 캐슈넛을 1대 1대 1대 1의 비율로 100 그램씩 갈아 넣어 만든 드레싱이다. 청국장 냄새를 중화시키기 위해 오렌지 반쪽을 함께 갈았다고 한다. 입맛 짧은 환자들에게 건강과 맛을 야무지게 챙기는 샐러드가 될 것 같다.

40대 승희씨는 우리들 중 가장 진지한 된장녀다. 그녀가 지난 3월 초에 직접 담근 보리 막장 한 병을 내놓는다. 씻어 불린 보리쌀 8 kg을 방앗간에서 거칠게 빻아 물과 섞어 찜통에 찐다. 스테인레스 용기에 담아 1주일 동안 따뜻한 전기장판 위에 둔다. 중간에 한 번 휘저어 주고 메줏가루 1 kg, 매운 고춧가루 4 kg, 고추씨 2 kg을 섞어 색깔을 입힌다. 고추장에 가까운 막장으로 엿기름을 넣지 않은 게 특징이다. 젊고 실험정신이 강한 승희씨에게 기대가 크다. 가족들에게 건강한 음식을 먹이려는 승희씨의 자세는 단연 동급 최강! 치밀하게 준비해 나간다면 그녀야 말로 된장농원 프로젝트를 실현해낼 인물로 꼽히고 있다.

된장에 관심 있는 이들 중 퇴직 후 된장농원을 이루려는 이들이 꽤 있다. 하지만 "돈을 벌기 위해 된장농원을 차렸다가는 백전백패 한다"는 게 된장과 옹기 연구가인 고 선생님의 결론. 최소 1년 내지 2년 이상의 발효 숙성을 거쳐야 하는 된장처럼 된장 농원도 최소 몇 년의 준비기간이 필요하다는 거다. 숱한 실험과 시행착오는 필수. 이미 된장·간장·고추장을 담글 줄 알더라도 혼자서 해보는 과정 속 실패를 통해 조금씩 기술력이 쌓이게 된다는 설명. 모두들 고개를 끄덕인다.

좋은 옹기 항아리 확보를 위해 오래 묵은 항아리들을 사는 것도 한 방법이다. 물론 새 항아리들도 필요하다. 항아리의 제조 과정이나 원료에 따라 메주곰팡이인 고초균 (Bacillus Subtilis)의 활동을 촉진하기도 하고 가로막기도 하는 마법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된장을 만들어 팔려면 무엇보다 인적 자산을 먼저 확보하라는 조언이 참신하다. 자신이 된장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널리 홍보하기. 좋은 재료로 좋은 된장을 만들기 위해 분투하고 있음을 주변 인맥이 목격하게 하라는 뜻이다. 그들 모두가 잠재고객이다. 된장 만드는 사람의 장인 정신에 대한 그들의 신뢰와 된장 맛에 대한 인정이야말로 된장 마케팅의 근간이다. 한편 투자 자본 및 에너지 대비 소득 기대수준을 턱 없이 낮춰야 한다고 한다. 결국 자본주의적 관점으로는 된장농원을 꿈도 꾸지 말라는 거다.

배우고 또 배워도 끝이 없을 것 같은 된장의 세계. 알면 알수록 매력이 있다. 그러니 된장남녀들의 된장 놀이는 쭉 계속될 것 같은 예감이다. 급기야 두 달 간격으로 모임을 정례화하자는 의견이 많다. 회비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1만원에서 2만원 남짓. 다음 된장 투어는 경기도 연천의 한 보리비빔밥집으로 정해졌다. 또 다른 된장학교 졸업생이 운영하는 식당인데 직접 담근 된장을 선보이고 평가를 받겠다는 거다. 기대 만빵!

앞으로 더 배울 게 어디 된장뿐이겠는가? 정말이지 세상은 넓고 모르는 것 투성이. 배우고 또 배워야 할 수밖에. 그래서 재미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