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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7월 07일 11시 59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7월 07일 14시 12분 KST

가족울력MT

gettyimagesbank

올해 첫 장맛비가 지나간 6월 마지막 주말, 친정 식구들과 일박이일 MT로 모였다. 장소는 충남 부여군 내산면에 있는 막내 여동생의 작은 집. 주말 농막 스타일로 3년 전에 지은 11평짜리 목조 주택이다. 친정 5남매 중 남동생 내외와 나까지 3남매가 왔다. 참석자는 모두 7명.

제일 신이 난 분은 나이 90이 내일 모레인 친정엄마다. 2시간 넘게 차를 타고도 피곤한 기색 없이 당장 고구마 밭으로 가신다. 전날 내린 비로 흙이 촉촉해져 풀 뽑기에 딱 좋다는 한 마디. 눈앞에 보이는 아삭이 고추와 깻잎, 상추를 딴다. 깻잎 향에 코끝이 아찔. 서둘러 이른 점심상을 차린다. 새벽 5시에 일어나 팥을 듬뿍 넣고 고슬고슬하게 지어오신 친정엄마표 찰밥이다. 나이 60이 넘어서도 친정엄마가 해준 밥을 먹을 수 있는 내 팔자가 대박. 절로 웃음이 난다. 막내 여동생이 서울집에서 준비해온 장조림과 오징어 도라지 초무침, 내가 가져간 배추 겉절이까지, 알록달록한 상차림. "식구가 반찬이다"는 친정엄마의 명언이 딱 들어맞는다. 볼이 미어지게 상추쌈을 입으로 넣는다.

이번 가족울력 MT의 일감은 뭘까. 2주나 3주에 한 번씩 부여집에 내려오는 막내 여동생 부부는 봄부터 가을까지 '풀과의 전쟁'을 치른다. 고구마와 옥수수가 있는 밭에 돋아난 풀은 친정엄마가 뽑기로 한다. 내 딸과 나도 합세. 고구마를 제외한 텃밭 농사의 규모는 소박하다. 토마토와 참외, 가지 몇 그루씩, 거기에다 쪽파 몇 주를 심어놓았다. 동그랗게 만들어진 부추밭에는 부추가 10 센티 정도로 돋아났다. 뭐든 모종을 더 많이 심을 수는 있지만 주말 농업 능력상 감당할 수 있는 규모를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보리수 열매로 쨈 만들기'는 이번 울력 MT의 하이라이트. 듣도 보도 못한 보리수 열매 쨈이라니. 이 작은 집에는 뜻밖에 수련이 핀 연못이 있다. 예전 집 주인이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가둬 농사에 쓸 목적으로 파놓았다는 거다. 이제는 연못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차 마시는 즐거움을 늘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연못가에 빙 둘러진 보리수나무들에 요즘 빨간 열매가 주렁주렁하다. 따먹는 것에는 한도가 있고 버리기엔 아깝다 보니 쨈 만들 궁리를 하게 된 것. 농익은 열매는 작지만 달콤새콤해 거의 앵두 맛이다.

막내 여동생의 지휘로 홈 메이드 보리수쨈 제조 공정의 분업에 들어간다. 우선 뙤약볕 아래 선글라스와 모자로 무장하고 보리수 열매를 따온다. 깨끗이 씻어 햇볕에 말린 뒤 넓은 '다라이'에 넣고 두 손으로 마구 비벼 씨앗과 액즙을 분리한다. 체로 거른 액즙과 설탕을 6:4 비율로 솥에 넣고 끓인다. 바닥이 눋지 않게 주걱으로 40 분 이상 저어줘야 한다나. 솥 세 개를 집 바깥에 놓고 함께 앉아 시누이 올케 간에, 자매간에, 처남 매부 간에 이야기판이 벌어진다.

드디어 완성. 식혀서 유리병에 나눠 담고 5남매가 사이좋게 나눠 먹기로 한다. 시중에서 절대로 구할 수 없는 귀한 보리수쨈이니 빵에 발라 먹을 때마다 부여집을 떠올릴 것이다.

모기들이 달려들기 전에 바비큐 저녁밥을 먹을 참이다. 남자들은 숯불을 피우고 석쇠를 올려 고기를 굽는다. 텃밭의 채소와 쌈장, 마늘 장아찌에 곁들여 먹는 삼겹살과 소갈비살 맛이라니. 모두들 맥주로 건배. 엄마는 맥주에 사이다를 섞어 드시며 우리들에게 자꾸 "고맙다"고 하신다. "건강하게 살아줘서, 많이 웃어줘서 고맙다"는 말씀이다. 우리는 답례로 "만수무강"을 삼창한다. 엄마가 가족의 구심점임을 새삼 확인하는 순간이다.

설거지를 마친 후 동네 산책에 나선다. 동네 터줏대감인 느티나무 아래 놓인 모정에도 잠깐 앉아본다. 3년 째 주말 주민 노릇을 해온 막내 여동생 내외에게 동네 사람들이 인사를 건넨다. 외지인들을 조금씩 받아들이고 인정해 주는 것 같은 느낌. 안심된다.

나름 빡센 하루를 보낸 데다 TV도 없으니 친정엄마가 좋아하는 연속극을 함께 볼 방법이 없다. 밤 10시가 되기 전 모두들 잠자리를 편다. 원룸형이라 7명이 자기엔 조금 좁은 듯. 집주인 내외는 데크에 텐트를 치더니 침낭을 들고 나간다. 사다리를 펼치면 올라갈 수 있는 다락은 남동생 내외의 몫.

아침은 어제 저녁처럼 고인돌 사이즈의 편평한 돌이 놓인 마당에서 먹기로 한다. 해는 이제 막 떠오르고 연못 옆 뒷산 풍경엔 안개마저 살짝 끼어 분위기가 촉촉하다. 김치찌개 하나로도 아침 밥상은 하하 호호. 후식은 수박, 밀크 티에 믹스 커피다.

아침상을 물리자마자 이게 웬일? 돔부콩을 꼭 심어야겠다는 친정엄마와 남동생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진다. 문제는 돔부콩을 한 곳에 심으라는 남동생의 말을 아랑곳 하지 않고 여기저기 심으려는 엄마의 영농 스타일이다. 연못가에도 심고, 꽃밭에도 심고, 부추밭 옆에도 심고, 그야말로 내 맘대로 돔부콩을 심어댄다. 자칫 잘못하면 예초기에 돔부콩 줄기가 모두 날아가 버릴 수 있으니 한곳에 모둠으로 심어놓는 게 안전하다는 남동생의 말에 일리가 있다. 그러나 이미 아들의 눈을 피해 돔부콩들을 살포해 놓은 엄마. 막상 집주인 내외는 이 광경에 웃음을 참느라 바쁘다.

보리수 쨈에다 이웃에서 가져온 오디 한 상자씩을 나눠싣고 출발 준비를 한다. 다음 가족울력 MT는 고구마 캐기. 10월 말 쯤으로 예상된다. 가능한 한 조카들을 여럿 꼬여내 데려오는 게 목표다. 직장과 학교 때문에 잘 오지 않는 조카들을 주말 울력에 끌어들여 사촌 간 우애를 다지는 '사촌 MT'로 활용하자는 취지. 그러려면 각자 머리를 쥐어짜야 한다. 손주들과 할머니가 함께 일하는 '3대 가족 울력 MT'의 풍경, 괜찮을 것 같다. 가을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