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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4월 28일 12시 01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6월 28일 14시 12분 KST

B급 영어 과외선생의 탄생

먼저 TED 강연을 함께 본다. 초짜 영어 과외선생인 내가 강조하는 건 첫째, 잘 읽기. 그것도 소리 내어 읽기다. 옛날 서당 학생들처럼 돌아가면서 소리 내어 텍스트를 읽게 한다. 가능하면 날마다 집에서 읽는 게 숙제다. 우리나라 영어공부는 소리 내서 읽는 게 아니라 눈으로 읽는 걸 기본으로 한다. 그 때문에 토익, 토플 성적이 높아도 입이 열리지 않는다는 치명적 결함을 안고 있는 게 아닌가. 게다가 영어라는 언어가 지닌 음악성과 리듬을 자연스레 체득할 기회마저 원천 봉쇄된다.

pixabay

적당한 알바 일감을 찾던 중 뜻밖에 '재능 기부'를 요청받았다. 재능이라고는 잘 노는 것밖에 없는 터. 나를 불러낸 분은 한때 나의 유일한 장사 밑천이었던 영어를 지목했다. 주한 어느 나라 대사관을 포함해 영어권 직장생활을 30년 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간 영어와는 거의 의절한 상태. 조금 망설이다 "Yes"를 외쳤다.

학생들은 어느 단체의 국제협력팀 소속 20대, 30대, 40대 여성 각 한 명씩이다. 이 단체는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회원으로 등록돼 있어 가끔 국제회의에 실무진을 파견한다.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 근처에 직업훈련원 사업을 진행 중이기도 하다. 그녀들은 이미 관련 업무를 맡고 있거나 연계돼 있어 남부럽지 않은 영어 능력을 갖춘 상태. 대한민국 정규 교과과정을 무사히 통과해 낸 만큼 독해 등 문법 실력도 짱짱하다. 그러나 다른 모든 공부가 그러하듯 영어 또한 갈수록 더 높은 수준과 품격에 대한 갈증이 있는 법. 나 역시 직장 시절 영어로 하는 브레인스토밍이나 일대일 입씨름에서 번번이 좌절했던 과거가 있다. 그래서 돕고 싶었다.

학생들과 의논해 고른 공짜 학습 교재는 TED 동영상 자료. 한국에도 잘 알려진 강연들이 수두룩하고 영어 자막이 있다는 게 강점이다. 17분 내외 분량의 내용 전문을 다운로드할 수 있어 영어 공부에 유용하다. 스티브 잡스가 2005년 미국 스탠포드대 졸업식에서 한 멋진 연설 등 유튜브 동영상도 교재로 쓴다. 수업은 일주일 한 번, 2시간이다.

먼저 TED 강연을 함께 본다. 초짜 영어 과외선생인 내가 강조하는 건 첫째, 잘 읽기. 그것도 소리 내어 읽기다. 옛날 서당 학생들처럼 돌아가면서 소리 내어 텍스트를 읽게 한다. 가능하면 날마다 집에서 읽는 게 숙제다. 우리나라 영어공부는 소리 내서 읽는 게 아니라 눈으로 읽는 걸 기본으로 한다. 그 때문에 토익, 토플 성적이 높아도 입이 열리지 않는다는 치명적 결함을 안고 있는 게 아닌가. 게다가 영어라는 언어가 지닌 음악성과 리듬을 자연스레 체득할 기회마저 원천 봉쇄된다.

다음은 텍스트 독해다. 자주 많이 쓰이는 표현을 익히고 외우는 훈련도 한다. 그리곤 TED 동영상을 다시 한 번 본다. 텍스트 읽기 훈련 중에 강연자처럼 말하는 미미킹 (Mimicking)을 해보기도 한다. 이 과정 단 한 번으로 강연을 통째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뜻을 잘 알기 어려운 복잡한 문장은 여러 번 읽는 게 공부의 기본이다.

이제 질의·응답 순서. 동영상 내용에 대한 질문을 10개씩 만들어 서로 영어로 질문하고 답변하게 한다. 내용 파악이 안 되면 질문을 작성할 수도, 대답을 할 수도 없다. 텍스트에 집중하게 하는 효과가 크다. There's no stupid question. 어떤 질문이든 오케이다. 강연자에게 가상의 질문서 이메일을 써오라는 숙제도 낸다. 짧은 강연 시간 제약 때문에 강연자가 미처 담아내지 못한 부분에 대한 추가 질문을 빌어 강연자의 행동 배경이나 세계관을 묻는 형식이다.

말하기에서는 잘 듣기가 우선이다. 상대방의 말에 집중해야만 내가 잘 말할 수 있다. 건성으로 들으면서 다음에 무슨 말을 할까만 궁리하다 보면 소통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상대방의 말을 듣고 그 내용에 대해 질문하기 훈련을 많이 해볼 예정이다. 문장 받아쓰기도 여기에 포함된다.

막연히 알거나 들었을 뿐 정확히 몰랐던 사안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는 것도 TED와 YouTube 동영상 공부의 재미다. 구글 엔지니어인 Chade-Meng Tan의 'Everyday Compassion at Google'이란 주제의 강연도 그중 하나. 구글 내부에서 일어나는 공감과 연민의 자발적 화학작용이 어떻게 조직화되며 실질적 변화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준 사례 발표는 질투 섞인 부러움을 자아낸다.

어쩌다 보니 영어공부 학생이 하나 더 생겼다. 이번엔 평소 알고 지내던 내 또래다. 올 여름 유럽 어느 도시에 가서 몇 달 지내며 청소년 복지 등 관심 분야 자료 조사와 공부를 할 생각이라나. 평균을 휠씬 넘는 영문법 지식과 독해능력에도 붎구하고 영미권에 가면 번번이 과묵해지는 증세를 치료하려니 석 달 집중학습을 하잔다. 매주 두 번, 클라이언트 맞춤 과외니만큼 'Globish' 학습서가 교재다.

Be동사부터 시작이다. 무조건 입을 열고 떠들게 한다. 끊임없는 반복이 당장은 최선이다. 소리 내어 읽게 하고 발음 연습과 교정을 한다. 이미 자기 안에 있지만 속절없이 묵혀진 영어를 끄집어내서 활발발 살아내게 할 수 있을까? 일단 가보는 거다.

재능기부라는 명분으로 시작한 만큼 보수는 저렴 기조로 나갈 생각이다. 스스로 평가하건 데 내 영어는 B급 정도. 그럼에도 내가 뭔가 남에게 줄 수 있다는 사실, 참 기분 좋다. 녹슬기 시작한 내 영어를 꺼내 먼지 털고 기름 치고 광내는 기쁨까지 덤이다. 다시 CNN을 보고 영어 소설책을 읽는다. 평생 동지를 내팽개쳐두고 나 몰라라 하다가 관계를 복원한 느낌.

학생들은 잘 따라온다. 명색이 내가 선생인데 학생들이 선생보다 훨씬 똑똑하다는 게 이 수업의 특징이랄까. 그녀들이 스스로 부여한 동기를 유지하도록 돕고 적당한 자극을 주는 게 내 역할이겠지. 수업 방식에 대한 아이디어도 만발이다. 노래방 가서 영어 노래만 두 시간 부르기, 영드나 미드를 교재로 쓰는 방안도 그들의 제안이다. 그들에게 이건 스펙을 쌓거나 취업을 위한 공부가 아니다. 그러니 이제부터 진짜로 재미있지 않으면 공부가 아니다. 오래 걷기로 한 길일수록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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