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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4월 15일 11시 17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6월 15일 14시 12분 KST

우리동네 위인전 | 플로리스트 정애씨

관절염으로 플로리스트 일을 멈춘 사이 호텔에서 침구 정리 알바를 했다. 집과 일터를 종종걸음으로 다녔다. 여고 시절부터 명동성당을 다녔던 정애씨. 결혼생활 중 성당을 다닐 시간을 얻지 못해 집에서 할 수 있는 기도와 명상을 시작했다. 세상으로부터 고립됐지만 자신의 상황에 대해 불평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명상 도중 문득 '현모양처'의 틀에 갇혀있는 자기 자신을 봤다. 자신을 묶어 놓고 있는 건 바로 자기 자신이었던 것. 완벽한 아내로서 엄마로서 며느리로서 행복하고 싶었던 욕망이 오히려 자신의 행복할 권리, 자유로울 권리를 방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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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영종도 구읍뱃터, 어시장에서 산 우럭과 광어로 회를 떠 위층 식당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고 난 후의 산책길이다. 50대 후반 정애씨가 수줍게 고백한다. "이렇게 친구들과 멀리 놀러 나온 건 난생 처음이에요."

헉! 진짜? 우리의 놀란 표정에 가만히 웃으며 그녀가 말한다. "저는 정말 바보처럼 살았어요." 모두들 말을 잃는다. 그녀의 이력을 웬만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전직 플로리스트인 정애씨는 내 친구들 중 드물게 솜씨, 맵시, 마음씨, 3박자를 두루 갖춘 여성. 심지어 미인이다. 장아찌를 비롯한 요리 솜씨가 뛰어나 우리가 함께 했던 공동체의 셰프로도 일했다. 소스의 배합이나 향신료 사용에 특별한 관심과 재능이 있다. 예사롭지 않은 바느질 솜씨로 블라우스나 스커트, 조끼나 봉제완구를 만들어 선물하기를 좋아한다. 말소리는 나직하고 다정하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빠져들 수밖에 없는 그녀, 한 마디로 '레이디'다.

정애씨는 10여 년 전 결혼생활을 떠났다. 한때 열렬한 구혼자였던 남편과는 아들 둘을 낳아 키웠다.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지만 이른 결혼과 시댁에서의 결혼생활로 직장을 갖지 못했다. 시댁 형편은 넉넉했고 남편은 성실한 직장인이었다. 그러나 정애씨는 쪼들렸다. 생활비와 용돈을 거의 주지 않는 시부모와 남편 때문이었다. 학교 다니는 아이들에게 줄 용돈뿐 아니라 장보기에도 돈은 늘 모자랐다. 돈 달라는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소심한 성격도 원인이었을까. 가끔 친정부모에게 손을 벌려야 했다.

생각다 못해 시작한 알바가 플로리스트 일이었다. 꽃을 좋아해 따로 꽃꽂이를 배우지 않아도 될 정도의 눈썰미와 구성 능력을 갖춘 덕분. 성당이나 웨딩홀 등의 일을 맡았다. 새벽 3시 고속터미널 꽃시장에 갔다. 그날 일을 맡은 공간의 성격과 행사 내용에 맞춰 장미를 비롯해 온갖 꽃을 여러 다발 사왔다. 집에 돌아오면 새벽 4시. 시어른들이 일어나시는 오전 5시 아침밥을 준비해 차려드렸다. 남편과 아이들의 출근과 등교를 돕고 집을 나서 일하러 갔다.

주말에는 거의 잠을 자지 못할 정도로 플로리스트 일이 밀렸다. 언제나 시간에 쫓겼다. 장미나 국화 다발을 통째로 자르지 않으면 시간을 맞출 수 없었다. 무거운 꽃다발을 몇 개씩 안고 지하철로 나르다 보니 어깨가 결렸다. 가위질을 하는 오른 손목과 팔목도 아팠다. 꽃을 기르는데 쓰인 농약 성분 때문에 꽃 만지는 손과 팔은 항상 벌겋게 부어올랐다. 가위질을 하는 오른손 두 번째, 세 번째와 네 번째 손가락의 변형이 시작됐다. 통증을 견디다 못해 병원에 갔더니 '소모성 관절염'이라고 했다. 처방은 단순했다. 오른 손을 쓰지 말 것. 파라핀 액 용기를 사서 뜨거운 파라핀 액에 손을 담그는 자가 치료 외에 방법이 없었다.

관절염으로 플로리스트 일을 멈춘 사이 호텔에서 침구 정리 알바를 했다. 집과 일터를 종종걸음으로 다녔다. 여고 시절부터 명동성당을 다녔던 정애씨. 결혼생활 중 성당을 다닐 시간을 얻지 못해 집에서 할 수 있는 기도와 명상을 시작했다. 세상으로부터 고립됐지만 자신의 상황에 대해 불평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관상 명상을 비롯해 다양한 기법을 독학했다. 위파사나 등 호흡법도 책을 보며 익혔다. 어느 날 명상 도중 문득 '현모양처'의 틀에 갇혀있는 자기 자신을 봤다. 자신을 묶어 놓고 있는 건 바로 자기 자신이었던 것. 완벽한 아내로서 엄마로서 며느리로서 행복하고 싶었던 욕망이 오히려 자신의 행복할 권리, 자유로울 권리를 방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남편과의 사이는 회복이 불가능해졌다. 남편의 외도가 결정적 이유였다. 남편에게 이혼을 선언했다. 남편은 당황했다. 세상에서 가장 참을성 많은 여성이었던 정애씨의 변화가 남편에게는 거의 '돌변'으로 받아들여졌을 터. 그러나 "너무 오랫동안 행복한 결혼에 연연했기에 오히려 한순간에 그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지루한 공방 끝에 정애씨는 결혼생활을 떠났다. 두 아들은 엄마를 따라왔다. 친정의 도움으로 종로통 작은 오피스텔을 얻어 독립했다. 한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게으르게 살았다. 명상에 관심 많은 이들과 작은 모임을 꾸리고 이끌었다. 명상 지도사의 꿈을 키우며 여러 단체의 지도자 과정을 이수했다.

그리고 정애씨는 충남 홍성으로 이주했다. 군 제대한 작은 아들이 그곳 풀무학교에 입학한 것이 계기였다. 세든 통나무집에 딸린 텃밭에 배추와 온갖 채소를 심고 가꿨다. 평소 유기농 식자재에 관심이 많았던 정애씨, 텃밭 농민이 된 것이다.

요즘 정애씨의 직업은 명상 강사. 직장인 연수 프로그램이나 중·고등학교 명상 수업을 지도하느라 전국구로 뛴다. 아들들은 홍성 홍동 마을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녹색농업 연구직과 유기농 인증, 유통 관련 일을 맡고 있다.

정애씨는 언제나 태연하다. 그녀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하고 웃고 말한다. 앞날에 대한 걱정은 별로 없다. 가끔 결혼생활을 되돌아보며 말한다. 그 혹독한 경험에서 자신이 배워야 할 게 있었기 때문이라고. 그러므로 그 결혼은 '조금 빡센 교과 과정'이었노라고. 그럴 때 그녀는 '구루(Guru)'다.

사람들은 정애씨에게 묻는다. 어떻게 하면 행복해 지는 지에 대해서. 그녀는 웃으며 말한다.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자"고. 결핍을 인정하고 지금 내 손안에 가진 것을 기뻐하라고. 지금 갖지 못한 것을 얻으려 발버둥 치면서 행복을 찾아 헤매는 걸 멈출 때 문득 자유로워질 것 이라고. "행복을 기다리지 말라"고 말할 때 그녀의 말과 삶의 싱크로율은 100%다. 이제 그녀의 황금시대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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