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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1월 23일 12시 14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3월 25일 14시 12분 KST

갱년기 엄마를 돕고 싶다면

엄마가 딸과 아들의 꿈을 이루도록 힘껏 도왔듯이, 딸과 아들이 엄마의 로망을 이루도록 도울 차례가 왔다고 생각해도 좋다. 엄마에게도 꿈이 있고 장래희망이 있다. 딸과 아들에게 말하지 않았다고 꿈이 없는 것은 아니니까. 엄마를 뮤지컬 공연에 초대해 보라. 중년여성들의 명소로 떠오른 시네큐브의 영화 티켓을 예매해 함께 가는 것도 좋겠다. 돈 한 푼 안 들이고 돕는 방법도 많다. 엄마의 모험을 격려하고 장려하기다. 자꾸 망설이는 엄마의 용기를 북돋워주는 건 립 서비스를 넘어 긍정 에너지 선물이다.

Shutterstock / Mario Lopes

이건 40대와 50대 사이의 미묘한 경계선에 대한 이야기다. 젊다고도 할 수 없고 나이 들었다고도 할 수 없는 애매한 나이에 그분은 오신다. 갱년기라는 수상한 손님 말이다. 징조는 익히 알고 있는 대로다. 메말라가는 피부와 푸석해지는 머릿결, 순식간에 솟아오른 땀에 온 몸이 흠뻑 젖는 불쾌감. 나만 겪는 일은 아니니 그런대로 대처해 낸다.

내 경우, 문제는 참을 수 없는 어떤 불온함이었다. 몸 속 호르몬 분비 체계의 변화가 가져오는 심리적 난조라는 사전 지식으로 무장해봐도 별 소용이 없었다. 직장에서 그리고 남편과 자식들 사이에서 땀 흘려 이뤄낸 크고 작은 성취가 그만 시시해졌다. 30평 대 아파트 하나를 마련하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맸던 추억은 한 때 달콤했다. 이제는 그것을 목표로 아등바등 살아왔다는 사실 때문에 내 자신을 비웃을 지경이다. 한밤중에 들어와 삼겹살 냄새 배인 양복 재킷을 아무렇게나 옷걸이에 걸쳐 놓는 남편을 보면 왕 짜증이 났다. 사춘기 중이거나 통과한 아이들은 엄마한테 이미 관심이 없었다.

불면증까지 받쳐주니 밤마다 뒤척이며 물었다. 나는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 거야? 나는 어떻게 살고 싶었던 거지? 내게 도대체 꿈이란 게 있기나 했던 거야? 도무지 기억이 안 났다.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 답이 안 나왔다.

총체적 난국. 이것이 갱년기다. 앞만 보고 달려왔던 지금까지와 달리 앞으로는 어떤 새로움이나 설렘이 없을 거라는 전망. 매력 같은 것과는 영영 이별이고 남은 건 늙어갈 일 뿐이란 말인가? 왠지 억울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인류학자 마가렛 미드의 글 한 구절을 만났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창조력은 갱년기 여성의 열정에서 나온다. (The most creative force in the world is the menopausal woman with zest.)" 아니 이게 뭔 소리야?

그녀, 마가렛 미드에 의하면 갱년기 이후 여성은 임신, 출산, 양육이란 생명 재생산 프로그램으로부터 일단 놓여나면 새로운 관심사에 집중해 꽃을 다시 피울 수 있다는 거였다. 복음과도 같은 영감 어린 한 마디. 맞다. 우리는 새로워질 수 있다. 스스로 결심하고 행동하기만 한다면. 그런데 새로움이란 무엇이어야 할까? 잘 모르겠다. 그렇다면 에라, 지금까지와 조금 다르게 살아보기다. 약간의 모험도 불사해야지.

우선 뭔가 배우자. 좌뇌, 우뇌를 긴장시키는 학습이라면 치매예방활동을 겸할 수 있겠다. 오랜 꿈이었던 춤부터 시작했다. 디스코와 차차차, 자이브를 조금씩 익힌 뒤 한국무용으로 바꿨다. 무릎과 골반, 고관절에 대한 부하를 줄이기 위해서였다. 느닷없이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지금까지와 다르게 살기' 운동의 실천이었다. 큰 아이가 어릴 적 썼던 책상을 안방에 들이고 노트북을 장만했다. 내친 김에 필명까지 만들었다. 평범한 사람의 일상이 스토리텔링의 광맥이라는 사실을 발견한 것도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동갑내기 친구 하나는 신경 쇠약 일보 직전에서 은밀히 고백했다. '나 혼자만 시대에 뒤처지고 있는 느낌.' 그건 컴퓨터 키보드와 친하지 못해 맘대로 이메일과 온라인 쇼핑 등을 할 수 없는 열등감이었다. 친구들이 그녀를 떠밀어 구청 단위 '지역정보화교실'에 수강 신청을 했다. 결과는 대박. 컴퓨터 기초 과정을 넘어 파워포인트와 엑셀까지 익히더니 드뎌 디지털 시민권을 획득했다. 마치 80대 농촌 할머니가 뒤늦게 마을 한글학교를 졸업하고 문자의 세계에 입문한 듯 흥분한 그녀. 우리는 기립박수를 보냈다.

대개의 여성들은 나이 50 무렵 건너게 되는 큰 강, 갱년기를 혼자서 앓는다. 하지만 갱년기는 지구의 모든 여성과 남성들이 통과하는 관문이자 전환기다. 자신의 50여년 삶을 전면적으로 점검하고 중간 평가할 기회이기도 하다. 마땅히 주위에 자신의 갱년기를 홍보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게 좋다. 엄마가 갱년기 증후군으로 '나 홀로 집에' 끙끙 앓고 있는 걸 기뻐할 딸은 없을 터. 엄마의 일상을 뒤흔들 새로움과 만날 기회를 딸과 아들이 주선해 주는 건 어떨까? 엄마가 한때 또는 오래 꿈꿨지만 감히 도전하지 못했던 것들, 그것은 고전 발레일 수도 있고, 수채화나 수영일 수도 있고 피아노일 수도 있다. 용돈을 털어 수강증을 엄마 손에 쥐어줘 보라. 엄마는 새로운 세계를 만날 것이다.

엄마가 딸과 아들의 꿈을 이루도록 힘껏 도왔듯이, 딸과 아들이 엄마의 로망을 이루도록 도울 차례가 왔다고 생각해도 좋다. 엄마에게도 꿈이 있고 장래희망이 있다. 딸과 아들에게 말하지 않았다고 꿈이 없는 것은 아니니까. 엄마를 뮤지컬 공연에 초대해 보라. 중년여성들의 명소로 떠오른 시네큐브의 영화 티켓을 예매해 함께 가는 것도 좋겠다. 돈 한 푼 안 들이고 돕는 방법도 많다. 엄마의 모험을 격려하고 장려하기다. 자꾸 망설이는 엄마의 용기를 북돋워주는 건 립 서비스를 넘어 긍정 에너지 선물이다.

자신의 갱년기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능력은 100세 시대 후반전 삶의 질을 바꾼다. 가족과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요청하고 받아들이는 자세는 갱년기 대처 매뉴얼의 ABC다. 물론 생애 후반기 디자인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나 자신이다. 자신의 삶을 새롭게 하는 힘은 자기 내부로부터 나와야 한다. 스스로 자가발전소가 돼야 하는 이유다. 그리고 그 전제는 자신의 성취와 잠재력을 과소평가하지 않기. 나이 든 사람 하나하나가 도서관이자 박물관일 수 있음을 잊지 않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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