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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24일 05시 52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1월 24일 14시 12분 KST

우리 아이는 문제없어요

안녕하세요. 오은영 선생님. 저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활동하는 진석이라고 합니다. 'SBS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방송을 통해 선생님의 아이들을 대하는 모습을 보며 그 탁월함에 매번 감탄을 하곤 했었습니다. 얼마 전 우연히 '건강한 사회를 위한 국민연대'라는 성소수자들을 폄훼하는 단체의 블로그에 올라온 게시물을 보았는데요. 2011년 11월 8일에 방영된 "여자가 되고 싶은 아들"이란 제목의 303화의 내용 중에서 성 정체성과 관련된 부분들을 캡처해서 올린 글이었습니다. 그래서 한 번 방송을 찾아보았는데 내용 중에 몇몇 부분들에서 우려가 되는 점들이 발견되어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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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SBS 우리아이가 달라졌어요. 2011년 11월 8일 방송 캡쳐분

우선 성별 고정관념에 관한 부분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건강한 성 정체성"이란 말씀을 하셨는데 방송을 본 느낌으로는 남성은 남성적이어야 하고 여성은 여성적이어야 한다는 성별 이분법적 사고방식을 강조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건강한 성 정체성이란 자신이 타고난 고유의 성 정체성을 잘 발현시키는 것입니다. 만일 성별 고정관념으로 성 정체성을 '건강한' 것과 '건강하지 못한' 것으로 구분하고 섣불리 치료나 교정을 시도하게 되면, 태어날 때 지정된 성별에 따르지 않는 성별비순응(Gender-nonconformity)을 보이는 아동들의 경우 자라면서 우울증을 앓고 자살 경향성이 높아지는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많은 연구결과들이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트랜스젠더 성 정체성을 가지고 있던 소녀가 자살을 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10년을 넘게 인정받지 못하고 혼란을 겪으며 살았을 그 소녀에게 성 정체성을 인정해주는 부모님이 계셨다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은 "성소수자의 성적 지향을 바꾸려고 하는 치료는 어떤 것이든 중단돼야 한다"고 밝혔고 백악관 성명에서도 "이 같은 '개조' 치료가 청소년에게 행해지는 것은 의학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합당하지 않으며, 상당한 악영향까지 초래될 수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유엔아동권리협약 제19조 1항에 따르면 "당사국은 아동이 부모나 법정후견인, 다른 보호자로부터 양육되는 동안 모든 형태의 신체적·정신적 폭력, 상해나 학대, 유기, 부당한 대우, 성적인 학대를 비롯한 착취로부터 아동을 보호하기 위해 모든 적절한 입법적·행정적·사회적·교육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성 정체성을 개조하고자 하는 시도는 아동에게 심각한 정신적 폭력이 될 수 있고, 아동이 자신의 성 정체성을 탐색할 권리를 침해하는 일입니다. 아동의 성별비순응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탐색을 가로 막고 혼란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dad wears skirt with son

출처: 허핑턴 포스트 기사 'Around The World in a Dress and a Skirt'

자신의 사랑하는 어린 아들이 치마를 입고 다니기를 좋아하자 아이를 나무라기보다는 아이의 인격을 존중해 함께 치마 입기를 시작한 독일의 한 아버지의 사례에서 사람들은 많은 감동을 받고 있습니다. 또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헐리우드 배우인 브래드피트와 안젤리나 졸리 커플의 첫 자녀 존의 경우도 어린 자녀의 성 정체성을 존중해 준 훌륭한 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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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시대에 그려진 아기 예수 그림

분홍색을 좋아하는 것을 두고 지나치게 여성 편향적인 취향을 가졌다는 말씀을 하시는 부분이 있더군요. 원래 분홍색은 강렬한 색상이라 남아에게 더 적합하고 오히려 파란색이 우아하고 섬세한 색이라 여아에게 적합하다고 생각하던 때도 있었다고 합니다. 색깔로 성별을 나누는 개념이 생기기 시작한 건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부터라는 설도 있습니다. 색으로 성별이 나뉘어야 할 어떤 생물학적 근거라도 있는 걸까요? 아무런 근거가 없다면 남자 아이가 분홍색을 좋아한다고 해서 문제가 될 만한 어떤 이유도 없을 것입니다.

국제인권법에 기초해서 성적 소수자가 어떤 권리를 가지며 국가는 어떤 의무가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려는 의도로 총 29가지의 원칙으로 만들어진 '요그야카르타 원칙'의 제19원칙, 의견과 표현의 자유에의 권리에 의하면

"모든 사람은 성적지향이나 성별정체성에 상관없이 의견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여기에는 국경에 관계없이 어떤 매체를 통해서라도 인권,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에 관한 것 등을 포함해 모든 종류의 정보와 사상을 추구하고 얻으며 전달할 자유뿐만 아니라, 발언이나 행동, 복장, 신체 특성, 이름 선택, 또는 그 밖의 수단을 통해 정체성과 개성을 표현하는 것이 포함된다."

출처: 국제인권소식 "통" ( http://www.tongcenter.org/nondiscrim/sogi/yogyakarta#top)

고 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요즘 추세는 장난감에도 성별 구분을 없애고, 고정적 성 역할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자 하는 것인데 오히려 편견을 심어주는 그런 내용이 방송에 나오는 것은 성별 고정관념을 더욱 공고히 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두 번째로 아버지의 부재로 건강한 남성상 형성 시기를 놓친 것이 문제라고 하신 부분이었습니다. 이것은 남성 동성애자들을 공격하는 논리로도 자주 쓰이고 있는 소재입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편모가정, 보육원, 기러기 아빠 등등 아버지의 부재를 겪는 남아들은 모두 건강한 남성상을 형성하지 못해서 성 정체성에 혼란을 겪게 될 것입니다. 물론 성소수자들 중에는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사람들이 매우 많고, 아버지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역으로도 논리가 성립하지 못합니다.

화목한 가정이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맞지만, 아버지의 부재나 어머니의 부재가 문제를 일으킨다는 편견은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되고, 더군다나 성 정체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건 아직 과학적으로 밝혀진 근거가 없는 오해일 뿐입니다. 위에서도 언급했던 '요그야카르타 원칙'에서는 "대중매체는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과 관련된 고정관념을 활용하지 않아야 하며, 인간의 다양한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에 대한 관용과 수용을 증진시키고, 이러한 쟁점을 둘러싼 인식을 제고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영향력이 큰, 게다가 많은 부모님들이 애청하시는 방송에 이런 내용이 나온 것만 해도 매우 우려할 만한 일인데, 방영된 내용 중에서 원하는 부분만 교묘하게 발췌해 악용하는 사람들이 있어 더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4년이 지난 지금도 같은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지위나 명예가 높을수록 그 말에는 무게가 실리고 책임이 더 커집니다. 선생님의 말씀 한 마디에 누군가의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는 것이죠. 선생님의 아동에 대한 사랑과 아동을 위한 연구에 대해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표합니다. 성별비순응을 보이는 아동들 또한 건강하고 밝게 자랄 수 있도록 선생님과 같은 전문가께서 오해와 편견의 관점이 아닌, 학자로서의 양심과 책임감을 갖고 발언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이만 글 마치겠습니다.

글: 진석

* 본문 셋째 단락 '소년'을 '소녀'로 수정했습니다. (2015년 11월 30일 15시4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