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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08일 08시 43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0월 08일 14시 12분 KST

'쉬운 해고'와 소수자

'쉬운 해고'의 문제는 소수자들에게 더 두드러진다. 편견과 혐오의 대상인 소수자는 이 내쳐야 하는 사람의 목록에 쉽게 편입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수자에 대한 차별행위로서의 해고는 위법하기 때문에 이 '쉬운 해고'는 차별행위를 위한 우회로가 된다. 당신이 성소수자, 장애인, HIV 감염인, 특정지역 출신, 이주민 등 소수자라면 이 '쉬운 해고'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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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필라델피아> 포스터, 출처:네이버영화

대형로펌에서 일하는 잘 나가는 변호사가 있다. 그는 회사에 자신이 동성애자이고 HIV 감염인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있다. 어느 날 동성애혐오적이었던 사용자들은 그 변호사의 정체성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가 맡고 있는 중요한 사건의 서면을 숨겨버린 후 그 분실을 이유로 해고해 버린다. 톰 행크스 주연의 영화 <필라델피아>의 줄거리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이에 대한 감동적인 법정투쟁으로 기억한다. 여기에 짚어보아야 할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이 이야기의 출발이 되는, 해고가 쉬운 고용구조이다.

한국에서 해고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이지만, 적어도 제도적으로는 미국보다 어렵다. 크게 해고는 정리해고, 즉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로서 회사 측의 사정 때문에 이루어지는 해고, 그리고 노동자의 일신상의 사유 또는 잘못한 행위 때문에 이루어지는 해고로 나뉜다. 근로기준법상 노동자 측의 문제로 이루어지는 해고에는 정당한 사유가 있어야 하는데, 이 '정당한 사유'를 법원은 "사회통념상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근로자에게 책임 있는 사유"라고 해석하면서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노동자는 기업에 대해서 약자일 수밖에 없고, 사회안전망도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해고는 노동자의 생존권을 곧바로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정부가 밀어붙이는 노동구조개편의 핵심 중 하나는 이런 해고의 기준을 완화하자는 것이다. '저성과자', '근무태도불량자' 역시도 해고할 수 있도록 하는 '일반해고'를 도입해서 그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근로기준법도 개정하자는 취지이다. 문제는 '저성과자', '근무태도불량자'는 회사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근무평정을 낮게 내리고, 성과를 내지 못하게 하고, 근무태도가 불량하다고 트집 잡는 방법은 지금도 무궁무진하게 있다. 그냥 그 노동자가 싫으면, 내칠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 지금의 노동구조개편은 이렇게 '싫은 사람'을 내보낼 수 있는 길을 더욱 쉽게 터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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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3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노사정위 본위원회에서 김대환(오른쪽 두 번째) 위원장과 김동만(왼쪽 두 번째) 한국노총 위원장, 김영배(가운데) 한국경총 회장 직무대행, 최경환(왼쪽)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이 노동시장 구조개편에 대한 기본합의문에 서명한뒤 손을 맞잡고 있다. 출처 : 연합뉴스

이런 '쉬운 해고'의 문제는 소수자들에게 더 두드러진다. 편견과 혐오의 대상인 소수자는 이 내쳐야 하는 사람의 목록에 쉽게 편입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수자에 대한 차별행위로서의 해고는 위법하기 때문에 이 '쉬운 해고'는 차별행위를 위한 우회로가 된다.

당신이 성소수자, 장애인, HIV 감염인, 특정지역 출신, 이주민 등 소수자라면 이 '쉬운 해고'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비혼상태로 있거나, 나이가 들거나, 장애가 있거나, 주기적으로 약을 복용하거나, 여성이 머리를 짧게 하고 치마를 입지 않거나 하는 것들은 근무태도불량이나 성과를 내기 어려운 것으로 쉽게 전환될 수 있다. '다르다'라는 이유로 관계맺음과 성과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은 또 무능력함과 등치된다.

이렇게 해고의 사유를 만들고 나면, 그가 소수자라는 이유로 해고되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영화 <필라델피아>에서 톰 행크스와 그의 변호사 댄젤 워싱턴은 갖은 고난 끝에 이를 해내지만, 현실세계에서 그 결과를 내는 것은 쉽지 않다. 차별금지법이 있다면 나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한국에는 이것이 없다. 또 톰 행크스는 징벌적 손해배상(악의적 불법행위에 대해 실제의 손해배상액을 넘어 벌금 성격의 금액을 배상하도록 하는 것)을 받아내지만, 한국에는 차별행위에 대한 이런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소수자에 대한 차별행위로서의 해고'를 당하더라도 싸움에 나서기는 어렵다. "잊어버려", "너만 손해"라는 말만 되돌아올 뿐이다.

물론 기존에 벌어지던 해고에서도 소수자가 불리한 것이 사실이다. 정리해고 대상자의 선정에서도 기혼여성, 비혼남성 등은 우선순위가 되곤 한다. 그러나 이 차별행위를 하기 위한 우회로가 하나 더 생긴다는 것은 중대한 문제이다. 고용의 불안정성이 높아지는 것의 위험은 소수자들에게 더욱 크게 몰려온다. 지금 '노동개혁'을 외치며 추진하는 정부의 노동구조재편이 소수자에게도 심각한 '노동개악'인 이유다.

글 | 한가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