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2015년 01월 08일 05시 42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3월 10일 14시 12분 KST

좌와 우, 어디로 가야 하나?

진보가 승리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 중의 하나가 중도노선이다. 이 노선은 양당제의 효과 때문에 불가피하다고 주장되기도 한다. 양당제하에서는 정당이 다수를 얻기 위해 중도로 수렴된다는 것이다. 중도노선을 주장하는 분들이 자주 거론하는 실례가 바로 클린턴과 블레어다. 그런데 클린턴과 블레어의 사례는 특정한 역사 시기의 특수한 사례일 뿐이다. 클린턴과 블레어가 집권한 시기는 이른바 신자유주의가 맹위를 떨치던 시기였다.

AndreasWeber

진보가 승리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 중의 하나가 중도노선이다. 이 노선은 양당제의 효과 때문에 불가피하다고 주장되기도 한다. 흔히 뒤베르제의 법칙으로 일컬어지는 게 있다. 단순다수제는 양당제를 낳기 쉽다는 얘기다. 양당제라고 해서 정당이 달랑 2개만 있는 건 아니다. 일상정치든 선거정치든 거대한 두 개의 정당이 경쟁의 주행위자라는 의미다. 관련해서 앤서니 다운스가 제기한 수렴명제도 있다. 양당제하에서는 정당이 다수를 얻기 위해 중도로 수렴된다는 것이다. 뒤베르제-다운스의 지적에 따르면 중도노선이 맞는 것처럼 보인다.

중도노선을 주장하는 분들이 자주 거론하는 실례가 바로 클린턴과 블레어다. 클린턴과 블레어는 각각 신민주당, 신노동당 노선으로 집권에 성공했다. 중도를 표방한 미국 민주당의 당내 서클 디엘시(DLC·Democratic Leadership Council)는 1985년에 설립돼 내부 노선투쟁 끝에 1992년 클린턴을 통해 집권에 성공했다. 영국 노동당의 중도파(현대화파)도 1983년부터 치열한 내부 논쟁 끝에 대세를 장악하고, 1997년 블레어를 내세워 18년간의 야당생활을 청산할 수 있었다. 이 두 사례는 중도론자들이 입에 달고 사는 대표적 사례다.

그런데 클린턴과 블레어의 사례는 특정한 역사 시기의 특수한 사례일 뿐이다. 클린턴과 블레어가 집권한 시기는 이른바 신자유주의가 맹위를 떨치던 시기였다. 담론 경쟁과 여론 지형에서 신자유주의가 득세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존의 복지국가 노선을 답습해선 이기기 어렵다는 현실을 고려한 우클릭이었다. 시야를 넓혀보면, 보수가 좌클릭한 사례도 있다. 2차 세계대전 후 고성장과 완전고용 속에서 경제가 호시절을 구가하면서 복지국가 노선이 대세를 장악했다. 영국의 경우, 1945년 애틀리의 노동당이 전쟁 영웅 처칠의 보수당을 물리치고 단독집권하면서 복지 드라이브를 펼쳤다. 미국은 전쟁 전부터 루스벨트가 추진한 뉴딜정책으로 인해 평등한 민주주의로 나아갔다. 이 시대를 영국에선 합의정치(politics of consensus), 미국은 진보적 합의(liberal consensus)라 부르곤 한다.

합의정치 때 영국의 보수세력은 노동당이 추진한 복지정책을 수용했다. 복지에 대한 대중적 열망을 외면하고선 집권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내 논쟁이 있었지만 결국 복지노선 수용으로 정리됐다. 진보적 합의 때 미국의 보수세력은 뉴딜정책의 골간을 받아들였다. 예컨대 뉴딜체제 속에 집권한 공화당의 아이젠하워나 닉슨 대통령 모두 뉴딜체제와 맞서기보다는 계승하는 선택을 했다. 영국의 보수당이나 미국의 공화당이 이즈음 좌클릭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복지와 뉴딜이 거역할 수 없는 시대 흐름이기 때문이다. 결국 시대 흐름에 따라 진보든 보수든 우로 또는 좌로 포지셔닝을 이동할 수밖에 없다.

지금은 어떤 시대인가? 콜린 크라우치 교수의 책 제목처럼 신자유주의는 2008년부터의 대침체를 겪고서도 '이상하게' 죽지 않고 잘 버티고 있다. "금융위기가 거대 기업, 특히 거대 금융기업들이 현대사회에서 하는 역할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계기가 되기는커녕, 그들의 권력을 강화하는 데만 기여했다." 그럼에도 신자유주의는 사멸하고 있다. 지금은 신자유주의가 대세인 시대가 아니라 새 시대를 모색하는 전환기다. 문제는 대안, 대안세력이다. 대안이 분명하고, 대안세력이 튼실하다면 신자유주의는 역사의 무대에서 더 일찍 퇴장할 것이다. 이때에는 1970년대의 전환기 때 보수가 그랬듯이 새로운 노선, 시대담론을 과감하게 제시하고, 담대하게 맞설 때다. 이건 우클릭은 더더욱 아니고, 좌클릭이라 하기도 어렵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