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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9월 25일 05시 41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11월 25일 14시 12분 KST

이대로 갈 수는 없다

선거에서 지거나 어떤 위기가 도래할 때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정해진 공식을 충실하게 따른다. 국회의원들끼리 논의하고, 수습의 방향을 결정한다. 이어 비대위가 출범하고, 그 안에서 전당대회 룰을 놓고 다투다 적당히 타협한다. 전당대회를 통해 새 지도부가 출범하면 '나 몰라라' 하며 지켜보다 다시 계기가 생기면 '나부터' 지도부를 공격해 무너뜨린다. 그러고는 다시 국회의원들이 모여 수습책을 논의한다. 이렇게 해서 지난 11년 동안 28명의 대표 또는 비대위원장이 거쳐갔다.

연합뉴스

정당의 구성원은 누구일까? 언론을 통해 접하게 되는 당 대표, 원내대표, 최고위원 또는 비상대책위원, 주요 당직자들이 당을 이끌어가는 주체이긴 하지만 당의 전부는 아니다. 국회의원을 비롯한 선출직 공직자와 원외 지역위원장, 원로, 당무위원, 중앙위원, 전당대회 대의원 등도 주요 구성원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당의 실체는 바로 당원이다. 국민이 없으면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가 없듯이, 당원이 없으면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는 있을 수 없다. 당원을 넘어 선거 때 표를 주는 지지자들도 넓게 보면 당의 구성원이다. 그런데 새정치민주연합을 보면 마치 국회의원들의 연합체와 같다. 당의 다른 그 어떤 구성원보다 국회의원들의 목소리가 중요하고, 심지어 그들의 목소리만이 득세하고 있다.

선거에서 지거나 어떤 위기가 도래할 때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정해진 공식을 충실하게 따른다. 국회의원들끼리 논의하고, 수습의 방향을 결정한다. 이어 비대위가 출범하고, 그 안에서 전당대회 룰을 놓고 다투다 적당히 타협한다. 전당대회를 통해 새 지도부가 출범하면 '나 몰라라' 하며 지켜보다 다시 계기가 생기면 '나부터' 지도부를 공격해 무너뜨린다. 그러고는 다시 국회의원들이 모여 수습책을 논의한다. 이렇게 해서 지난 11년 동안 28명의 대표 또는 비대위원장이 거쳐갔다. 이러다간 곧 대표나 최고위원, 비대위원장이나 비대위원 한번 못해본 국회의원을 찾기 더 어려울 정도가 될 지경이다. 결국 새정치민주연합은 국회의원만의, 국회의원만에 의한, 국회의원만을 위한 정당이다.

책임있는 정당정치가 절실한 때

넓게 보면 국회의원도 지도부의 일원이다. 당직을 맡든 안 맡든 국회의원 정도 되면 당의 의사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일반 당원의 관점에서 보면 당을 이끌어가는 지도부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선거에서 패배하거나 정치이슈를 둘러싸고 위기가 닥치면 의원은 마치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는 듯이 수습의 주체로 등장해 새로운 체제를 구성한다. 이건 정치적 월권이다. 국회의원도 패배와 위기에 책임이 있다. 그렇다면 마땅히 그 책임을 나눠 져야 한다. 국회의원들만이 모여서 앞으로 당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결정하는 건 과도한 의결독점이다. 원외 지역위원장,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 당무·중앙위원, 대의원들이 당의 운영을 둘러싼 논의에 적극 참여할 수 있게 해야 하고, 특히 당원들이 자신의 뜻을 분명하고 당당하게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당원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고, 그들의 판단에 따르고, 그들의 에너지를 동력으로 삼아 새롭게 변화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참여민주주의고, 대표-책임의 원리다. 대통령이 선거를 통해 이겼다고 해서 모든 것에 대한 결정권을 부여받았다고 하는 게 위임민주주의론(delegative democracy)이다. 기예르모 오도넬(Guillermo A. O'Donnell)이란 정치학자는, 투표에 의해 선출되어 통치를 위임받은 정부가 집권 후 유권자와 의회에 책임을 지지 않는 일방적·폐쇄적 통치현상을 위임민주주의로 정의한 바 있다. 여기에 비춰보면, 정당의 지도부도 마찬가지다. 당원들에게 책임을 진다면 끊임없이 그들의 의사를 묻고, 반영하고, 따라야 한다. 일종의 궁정 쿠데타 같은 방식으로 정당의 위기는 수습되지 않는다. 위기가 닥치면 국회의원을 비롯해 당의 상층부는 당원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쳐 밑에서부터 변화를 추동해야 한다. 지금 새정치민주연합에는 이런 상향식 소통과 여론수렴이 없다. 다시 말해 당원은 없고 국회의원만 있는 셈이다.

이런 정당에서 좋은 정치인이나 리더, 강한 후보가 배출될 수 없다.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 이후 이 당 안에서는 강한 후보가 길러지고 만들어지지 않았다. 2007년 대선 후보는 득표율 26%에 불과했고, 2012년엔 후보가 사실상 외부에서 영입되었다. 아무리 '기울어진 운동장'이라 보수정당 대 비보수정당 간 4:6의 구도로 선거가 치러진다고 해도, 비보수세력의 구심을 형성할 정당이 없으면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 한국리서치의 9월 정기조사에서 새누리당은 43.0%, 새정치민주연합은 15.1%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한국갤럽의 9월 셋째주 여론조사에서도 새누리당은 43%, 새정치민주연합은 20%로 나타났다. 이런 정도의 지지율, 시스템을 가진 정당으로선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에서 승리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대안이 필요하다.

위기에 처한 야권의 향방은?

그간 야권이 취해온 경쟁력 제고방안은 인적·정책적 쇄신보다는 덩치를 키우는 통합이었다. 그 통합의 끝이 바로 대선패배와 작금의 대혼돈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확장이나 총선승리가 진보세력의 강화로 이어지지 않고, 심지어 대선승리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19대 총선 이후 지금까지 분명하게 확인된 사실이다. 2011년 통합 후 새정치민주연합의 의석수는 늘었으나 되레 진보 어젠더는 사라졌고, 선거에서의 열세는 더욱 확연해졌다. 박근혜정부의 온갖 실정에도 진영논리만 부추겨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안정화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야권 후보를 지지한 48%의 유권자를 넘어서는 확장은커녕 그 48%의 결속도 흩트려버렸다. 우습게 보던 여권의 대권주자들은 조금씩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으나, 야권의 트로이카 체제는 거의 유명무실해지고 있다.

이대로는 야권이 이길 수 없다. 대안은 혁신이다. 그 혁신은 현실적으로 새정치민주연합을 깨는 것이다. 양당제에 따른 반대 독점의 혜택을 제도적으로 누리는 한 새정치민주연합이 스스로 혁신하기는 어렵다. 반대 독점의 구도를 혁파해야 한다. 제3당의 등장으로 새정치민주연합의 기득권이 위협당해야만 그들은 움직일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야권의 분열 또는 대안세력·인물에 의해 패배하거나 극복당할 수 있는 구도를 만들어야 한다. 대안정당의 존재로, 유권자의 선택에 의해 새정치민주연합의 인적 쇄신을 이뤄내는 게 중요하다. 이에 대해 새정치민주연합은 총·대선 승리를 명분으로 제3당의 성장을 압박할 것이고, 제2당 효과의 제도적 이점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움직일 것이다. 그럼에도 현재의 흐름은 그 어느 때보다 제3당이 출현하기에 좋다. 새정치민주연합과 기성정치에 대한 실망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누가, 어떻게 제3당을 건설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건 기획과 리더십의 문제다.

* 이 글은 창비주간논평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