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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4월 02일 09시 57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6월 02일 14시 12분 KST

은 양복 광고였을까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멋진 사람은 뭘 해도 멋있으므로 패션의 완성은 (옷을 입은)사람이다. 멋있는 사람에게 옷을 걸쳐주는 건 이쪽 세계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롤렉스와 로저 페더러, 패션쇼에 초청되는 지 드래곤, 모두 사람의 이미지를 물건에 접붙이려는 노력이다. 흥행에 성공한 <킹스맨>역시 멋진 캐릭터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 다음엔? 뭘 하긴, 팔아야지.

<킹스맨>의 감독 매튜 본은 멋있는 사람과 패션의 관계를 알고 있음이 틀림없다. 이 영화는 서구 문화의 온갖 상징을 믹서에 넣고 갈아냈다. 패션이라는 상징도 노골적으로 사용된다. 명문가의 자제와 경쟁 면접을 치르는 차브 소년, 백인 영국 신사와 흑인 미국 IT 갑부, 이들을 설명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적절한 옷차림이다.

<킹스맨>은 스파이영화의 필수요소인 선악구도 역시 옷차림으로 표현한다. 영웅은 영국 정장을, 악당은 미국 캐주얼을 입는다. 킹스맨이 선이 되는 이유는 신사도가 더 옳기 때문이다. 좋은 말투보다 중요한 건 남을 편안하게 해주는 태도, 신사의 조건은 귀족의 혈통이 아니라 어제의 나보다 고귀해지는 거라는 세계관, 기독교 정신을 오용하는 신자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용기야말로 <킹스맨>의 사상적 척추 같은 것이다. 그 정신을 감싼 것이 콜린 퍼스의 남색 줄무늬 정장이다. 영국식 정장이 신사도 정신의 유니폼이 되는 순간이다.

안팎으로 멋진 그 옷을 실제로도 판다. 영국 인터넷 쇼핑몰 '미스터 포터'는 킹스맨 라인을 단독 출시했다. 실사영화 기반 캐릭터상품 개념인데 꽤 진지하다. 킹스맨의 옷은 현실 세계에서도 최고 수준의 사치품이다. 킹스맨 로고를 새긴 포켓 스퀘어가 드레이크스, '브로그 없는 옥스포드'가 조지 클레버리, 총알을 막아주는 우산이 스웨인 애드니 브리그, 셔츠는 턴불 앤 아서 같은 식이다. 21세기의 금언을 말하던 미중년의 정체는 사실 인간 광고판이었던 것이다.

반전이라고 해야 할까, 이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매튜 본 본인이다. 그는 보다 발전된 상업적 프로젝트를 생각하다가 영화 속 스파이의 옷장을 진짜로 만들기 위해 미스터 포터의 창립자 나탈리 매스넷에게 접촉했다. 둘은 잘 통했던 모양이다. 영화의 의상 제작을 총괄한 아리앤 필립스는 미스터 포터의 구매총괄 토비 배이트맨과 조율하며 영화의상을 실제 상품으로 만들어냈다. 여기서 발생한 수익은 매튜 본과 미스터 포터가 나눠 가지고 아리앤 필립스도 디자인 비용을 받는다. <블룸버그> 에디터 크리스 로브자르가 2015년 2월 13일에 소개한 내용이다.

영국은 신사의 나라이기 이전에 상인의 나라였다. 이들은 무역적자를 메꾸기 위해 중국에 아편을 팔아치우다가 거절당하자 항구에 대포를 쏜 '전통'이 있다. 피가 케첩처럼 튀는 액션영화의 시퀀스 사이에서 우아한 윤리를 말하는 남자가 정장 모델이었다니, 21세기의 금언을 전하던 미중년의 정체가 인간 광고판이었다니. 의미 없는 질문이겠지만 뭐가 먼저일까 싶어지기도 한다. 상업적 메시지를 널리 알리기 위해 현대의 윤리를 빌려온 걸까? 아니면 꼭 퍼져야 하는 교훈을 전하기 위해 상업 요소를 차용한 걸까? 마지막 사실 하나 더, <킹스맨> 속편 제작 여부와 상관없이 옷은 계속 출시된다.

* 잡지 <루엘>에 실린 원고를 일부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