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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4월 21일 12시 03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4월 22일 14시 12분 KST

나는 왜 쓰는가

나는 지난 5년간 많은 글을 써 왔다. 나의 전공인 인권법 관련 글을 비롯해 그것을 넘어 다양한 내용의 대중적인 글을 썼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전공 글은 의무감에서 억지로 썼지만ㅡ명색이 교수니 연구업적이 없으면 생존키 힘들다ㅡ대중적인 글은 거기에서 해방되어 자유롭고 기쁜 맘으로 썼다. 그렇다 보니 후자의 글이 압도적으로 많아졌고, 그게 책으로 발전해 이미 5권의 교양서를 냈다.

나는 왜 이렇게 대중적 글을 쓰게 되었는가? 무슨 동기로 이 같은 글을 썼고, 무슨 목적으로 SNS를 이용해 글을 전파하고 있는가?

이런 생각을 하다가, 오늘 아침 20세기 최고의 소설 <1984>의 저자 조지 오웰의 짧은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1946년)를 읽었다. 밑줄을 쳐가며 아주 꼼꼼하게 읽었다. 번역이 이상하다 싶으면 다른 번역본을 내놓고 비교해 보면서 읽었다. 이렇게 읽다보니 99% 오웰이 왜 글을 썼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오웰은 글 쓰는 동기에 대해 우선 일반론을 이야기한다. 그가 말하는 글쓰기의 4가지 동기를 내가 이해하는 수준으로 옮겨본다.

첫째, 순전한 이기심. 어떤 사람은 똑똑해 보이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고 싶은, 사후에 기억되고 싶은, 어린 시절 자신을 푸대접한 어른들에게 앙갚음을 하고 싶은 등등의 욕구로 인해 글을 쓴다. 이런 동기는 정치인, 법조인, 군인, 성공한 사업가에게서 나타나는 성공의 심리나 크게 다를 바 없다. 인기 작가란 사람들이 대개 이런 부류에 속할 것이다.

둘째, 미학적 열정. 어떤 사람은 외부 세계의 아름다움, 낱말과 그것의 적절한 배열이 갖는 묘미, 어떤 소리가 다른 소리에 끼치는 영향, 훌륭한 산문의 견고함을 향한 열정이자 기쁨으로 인해 글을 쓴다. 글을 쓰지 않는 누구는 이런 것이 살아가는 데 쓸모가 없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글 쓰는 사람에겐 그런 평가는 상관이 없다. 글 자체가 갖는 그 미학적 요소는 글을 쓰게 하는 하나의 마력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셋째, 역사적 충동. 어떤 사람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을 알아내고, 후세를 위해 그것들을 보존해 두려는 욕망이 있기에 글을 쓴다. 매일같이 시시콜콜한 내용이라도 글을 써 일기를 쓰는 사람들이 바로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넷째, 정치적 목적. 어떤 사람은 세상을 특정한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어떤 사회를 지향하기 위해 남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욕구 때문에 글을 쓴다. 이런 사람은 어떤 책을 쓰더라도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진정 자유스러울 수 없다고 말한다. 만일 누가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그 말 자체가 정치적 태도라고 말할 것이다.

오웰은 이렇게 네 가지 글 쓰는 동기를 관찰한 다음 자신은 천성상, 평화로운 시기에 살았다면, 앞의 세 가지 동기가 네 번째 동기를 능가해 화려하거나 묘사에 치중하는 글을 썼을 것이라고 고백한다. 하지만 자신은 히틀러의 등장을 보면서, 스페인 내전을 경험하면서, 어느 시기부터 한 줄의 글을 쓰더라도, 그것은 직간접적으로 전체주의에 맞서고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글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오웰은 정치적인 글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의 내면에 있는 뿌리 깊은 호오의 동기(예컨대 위의 첫 번째 혹은 두 번째 동기?)를 정치적 목적과 화해시킨 결과이었다.

이제 오웰이 글 쓰는 이유를 알았으니 내게로 돌아와 보자. 내 글쓰기도 오웰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는가? 곰곰이 생각하면 나로선 그가 말하는 첫 번째와 네 번째 동기가 크게 와 닿는다. 솔직하게 말하면, 나도 글을 써서 뭔가 인정받고 싶은 심정이 강하다. 내 글이 남보다는 더 잘 썼다는 평가를 받고 싶고, 내가 쓴 글이 쉽게 무시되는 것을 참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더 잘 쓰고자 노력한다. 부끄럽지만 이게 내가 글을 쓰는 일차적 동기다.

첫 번째 동기가 글을 쓰는 내 심리적 배경일지라도 그게 내가 글을 쓰는 유일한 목적일 수는 없다. 그것은 분명 글을 쓰는 동력이기는 하지만 그 동기만 있었다면 지난 5년간 어떤 글도 발표는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글을 써 발표하는 것은 정치적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오해하지 말라, 내가 정치인이 되기 위해 사전 포석을 깔 목적으로 글을 쓴다는 게 아니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은 내 생각을 전파해 세상을 바꾸기 위함이다. 내 생각에 동조하는 사람들을 한 사람이라도 만들기 위함이다.

내가 원하는 세상이 무엇인가?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살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런 삶을 살기 위해서 최소한의 전제는 사회(국가)가 물질적 토대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복지국가다. 개인이 존중되면서, 개인과 개인이 연대하는 사회, 그게 바로 내가 지향하는 세상이다. 나는 이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내 미력을 보태기 위해 글을 쓴다.

나도 사실 조금만 더 능력이 있다면 오웰처럼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글을 쓰면서도. 그 글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키고 싶다. 그게 지금도 바랄 수 있는 꿈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반열에 오를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나는 오늘 내 글쓰기를 다시 한 번 돌아본다. 이기적 욕망의 소유자로서 남보다 잘 나고 싶은 그 인간의 욕구에서 나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고백하면서, 그렇지만 세상을 조금이라도 이롭게 하기 위한, 선한 목적의 글을 앞으로도 계속 쓸 것이라는 것을 다짐한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