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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8월 02일 08시 30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8월 02일 14시 12분 KST

어린 짐승을 먹다

한겨레

아마도 한국인처럼 '어리고 연한 것'을 좋아하는 민족도 드물 것 같다. 닭은 고작 40일 정도 길러 세상에 내놓는다. 닭의 생애가 10년이라고 치면 불과 100분의 1 정도를 살고 삶을 마치는 것이다. 그래, 맞다. 10분의 1이 아니라 100분의 1이다. 그나마 그건 튀김용 닭에나 해당된다. 삼계탕에 넣는 영계는 그 절반의 삶으로 만족해야 한다. 40일이나 20일이나 별 차이가 없기는 하다. 오직 연하고 달고 은근한 무엇을 위해 생명이 필요해진다. 우리는 '닭'이라고 명명된 어떤 식품을 얻기 위해 컨베이어처럼 정확히 사료 공급--이걸 먹이 주기라고 하기도 뭣하다--과 급수를 하고, 적당한 온도의 사육장을 만든다. 여기에는 몇 럭스의 밝기와 몇 씨씨로 계산될 각종 약품이 포함될 것이다. 우리는 그걸 사서, 또는 요리된 형태로 먹는다. 그리고 온갖 수식어로 그 요리를 설명하기도 하고, 기념비적 기억을 불어넣기도 한다. 말하자면 돌아가신 아버지가 마지막 생신에 드셨던 닭볶음이나 발랄한 청춘의 끄트머리에서 친구와 즐겼던 양념통닭 같은 것들이다.

닭만 그런 건 아니다. '세고시'(背越し)라고 부르는 뼈째 썰어 내는 회에도 허다한 어린 생선이 필요하다. 생맥줏집의 안주 목록 맨 위에 오르는 노가리며, 조려 먹는 갈치 새끼인 풀치 같은 생선도 우리 입에 들어간다. 어린 생명은 절정에 다다른 맛은 없지만, 어리다는 이미지로 입맛에 봉사한다. 부드러워서 왠지 소화기관에 부담을 주지 않을 것 같고, 덜 성숙된 이미지는 '처녀'를 갈구하는 인간의 욕망에 소구한다. 어린 암소도 아니고 '처녀 소'라는 걸 광고하는 고깃집은 그래서 쓸쓸하다. 사람들은 여전히 달뿐만 아니라 새로운 처녀지에 발을 디디려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겨울에 만들어진 눈밭에 누구나 첫 발자국을 찍고 싶어하는 것과 같은 이치일까.

하지만 닭이나 생선 정도의 '하등한' 생명을 넘어서면 한국인은 급격하게 어린 생명에 거부감을 보인다. 돼지와 소 같은 '고등동물'은 어린 것을 먹는 경우가 아주 드물다.

고백하자면 30대의 몇년은 꽤나 음식을 찾아 돌아다녔다. (중략) 음식만큼은 잘 먹어야 한다는 단순한 신념에 사로잡혀 있을 때였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커다란 거울이 걸려 있는 외국의 한 식당에서 새끼돼지 통구이를 혼자 게걸스럽게 먹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 말았다. 그 탐욕스러운 모습에 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역겨움을 느꼈다.

--윤대녕 『이 모든 극적인 순간들』(푸르메 2010)에서

내 생각에는 윤대녕이 어린 돼지 대신 영계를 먹고 있었다면 그처럼 절망적인 자기혐오에 빠지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돼지와 닭 사이에 어떤 분명한 진화의 우열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은 아니다. 돼지가 영리한 짐승이기는 하지만, 닭의 지능도 결코 형편없지는 않은 까닭이다. 최재천 같은 학자는 지면에서 닭의 지능이 낮지 않다고 기록하고 있고, 내 개인 체험에 비추어봐도 닭이 개나 돼지보다 지능이 낮다고 인정할 수 없다. 아주 오래전의 일인데, 누이가 학교 앞에서 병아리 몇마리를 사왔다. 그중 한마리가 살아남았으니 녀석의 이름은 삐약이였다. 그러니까, 녀석은 이름이 있었다. 우리가 녀석에게 이름을 부여한 이후에 똑똑해진 것인지, 아니면 원래 지능이 탁월했던 것인지, 그도 아니면 원래 닭이란 존재가 높은 지능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름뿐만 아니라 녀석은 실제로도 우리 집의 막내다웠다. 놀랍게도 녀석은 식구들의 서열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어머, 우리 강아지 뽀삐가 아빠의 권위를 알아보네 하고 놀랄 필요는 없다. 닭도 충분히 그러니까. 애완견이 영리하다고 칭찬하려거든 적어도 은행 입출금을 시킬 수 있거나, 슈퍼에서 태양초 든 고추장과 안 든 고추장 정도는 구별해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삐약이는 식구들의 서열과 관심도에 따라 적절히 애정을 나누어주었다. 특히 아버지가 밤에 대취해서 들어오실 때마다 주인집이 깨지 않도록 적절하게 짖어서(?)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켜 주었다. 그의 일과는 매우 일정했다. 마당에서 아주 의젓하게 벌레를 잡고, 밤이면 주인집의 눈치를 피해 부엌의 소쿠리에 기어들어가 잤다.

문제는 녀석이 너무 똑똑했다는 것이다. 여섯 식구 가운데 다섯 식구가 외출할 때까지만 해도 마치 소 닭 보듯 마당에서 놀다가 마지막 여섯번째 식구가 문을 열고 나가려면 난리가 났다. 새벽이 아닌데도 닭 모가지 비트는 소리--표현이 미안하구나--를 내고 요란스럽게 활개를 치면서 대문을 막아섰다. 여섯번째 식구에게는 육탄돌격도 감행해서 제법 날카로운 발톱으로 손등을 할퀴기도 했다. 겨우겨우 삐약이를 떼어내고 대문을 닫고 나서면 골목 어귀까지 멱따는 소리가 들려서 나는 심통맞은 주인집 아낙이 진짜로 목을 비틀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고 몇번이고 집으로 되돌아가기까지 했다.

파브르 곤충기와 씨턴 동물기에 심취했던 내 친구는 제법 멋진 해석을 내렸는데, 삐약이가 자신을 사람으로 착각한다는 진단이었다. 그럴 만했다. 누가 뭐래도 녀석은 막내처럼 굴었다. 특히 막내인 여동생을 보면 고개를 옆으로 툭툭 꼬면서 비웃듯이 외면한다거나 여동생이 여섯번째 식구로 외출할 때는 형식적인 배웅행사를 치름으로써 서열에 대한 도전의욕을 내비치곤 했으니까.

삐약이가 털갈이를 다 해서 뻣뻣하면서도 기름기가 잔뜩 밴 의젓한 깃털이 수북하게 나올 무렵, 올 것이 오고 말았다. 주인집에서 마당의 닭똥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한 것이다. 덩달아 삐약이를 노리는 고양이패들이 집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것에 대해서도 심각한 걱정을 했다. "글쎄 재수없게 검정고양이까지 오잖수, 애기 엄마."

삐약이와 이별할 날이 왔다는 것을 알았다. 다행히도 닭목 잘 비트시던 아버지조차 집에서 기르던 짐승인지라 아무 말씀이 없으셔서 그간 생명을 부지할 수 있었다. 그 덕에 학교 갔다가 돌아와서 먹은 맛있는 고깃국이 워리나 메리의 살점이었더라는 식의 슬픈 동화는 생겨나지 않았다. 삐약이는 곱게 자기가 자던 소쿠리에 담겨 심심풀이로 닭을 여러마리 치던 경기도의 큰집으로 이민 갔다. 여담인데, 녀석은 참혹한 최후를 맞았다고 한다. 목격한 사촌 형에 의하면, 닭장에 넣자마자 녀석은 촌놈들 무리를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고, 이내 몇마리의 거친 수탉들의 부리 공세를 받고 허망하게 삶을 마감했다. 워리나 메리를 잃은 것과 같은 슬픔이 밀려왔던 기억이 난다.

삐약이의 생애 가운데 중요한 조연으로 등장했던 우리 아버지는 닭고기를 사랑하셨다. 돼지나 소도 좋아하셨겠지만 뭐, 그 시절 다들 주머니가 그랬으니까. 식구들의 뺨이 푸석해지고 고기 좀 먹어야 할 것 같은 시기가 오면 아버지는 내 손을 잡고 시장에 가셨다. 그때는 닭집과 얼음집, 기름집이 나란히 있는 게 서울 변두리 시장의 전형이었다. 아버지는 두어개가 경쟁하듯 붙은 닭집 가운데 인상 좋아 보이는 주인이 운영하는 곳을 즐겨 찾았다. 담배를 한대 물고 닭장에 들어서선 닭들을 슬슬 째려보셨다. 식구들의 얼굴에 핀 마른버짐을 완화해줄 적임자를 찾는 눈빛이었다. 아버지는 그때 프로 같았다. 위인이 순하고 모질지 못하다는 어머니의 평과는 사뭇 다른 사람이었다. 아버지의 손가락이 지목한 닭은 목이 날아가고 털 뽑는 기계로 던져졌다. 그러고는 커다란 나무 도마 위에서 배가 갈려 내장을 드러냈다. 나는 그때 해부학의 기초를 배웠다. 콩팥이 정말 콩이나 팥같이 생겼다는 것도 알았고, 모래집을 칼로 잘라 그 안에 든 노란 모래를 구경하기도 했다. 이런 과정이 아예 우리 집 부엌에서 이루어지기도 했다. 닭 잡는 몇푼의 '도축비'를 아끼려는 의도였는지, 아니면 더 싱싱한 닭을 식구들에게 먹이려는 욕심 때문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물을 뜨겁게 데우고 칼을 갈면서 아버지는 모처럼 남자다워 보였는데, 아마도 그런 의도로 집에서 손수 닭을 잡으셨던 것 같기도 하다. 닭백숙을 해서 식구들에게 마지막 살점까지 알뜰하게 나눠준 후 아버지는 닭모가지에 붙은 살점을 뜯었다. 어허! 이놈 참 실하네, 뭐 이러면서. 아버지는 모처럼 위엄이 있어 보였고, 아버지 옆에 앉은 어머니가 참 새색시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동물의 어린 것을 인간은 따로 이름 지어 불렀다. 가오리는 간재미, 열목어는 팽팽이, 명태는 노가리, 방어는 마래미다. 삼치는 고시이며, 청어의 새끼는 굴뚝청어다. 호랑이는 개호주이며, 꿩은 꺼병이이고 곰은 능소니이다. 어린 것은 이름만 다른 것이 아니라 맛도 그렇다. 그 지방과 고기에 충분히 맛이 깃들지 못한다. 풍만한 맛을 선사하는 지방은 아직 성숙하지 못해 겉돌고, 단백질에는 아미노산 구성이 엉성할 뿐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어린 것에 열광하곤 한다. 오직 혀에 닿는 공기 같은 질감, 씹으면 치아에 닿는 연한 조직감, 그리고 아마도 사람의 유전자에 있는 듯한 '부드러운' 것에 대한 열망을 사랑하기 때문인 것 같다. 어린 돼지의 배를 가르면 아직 맛이 충분히 올라오지 않은 엉성하고 가련한 삼겹살이 드러난다. 한번은 어린 돼지--물론 배 속에서 갓 꺼낸 것 같은 어린 녀석은 아니고, 3개월 정도 자란--를 사서 여러가지 육가공품을 만들었다. 등심과 갈비는 수직으로 잘라 뼈가 붙은 멋진 스테이크감을 마련했다. 혀에서 살살 녹았다. 안심은 연하다 못해 씹으면 스르륵 녹아 없어지며, '부드러운' 것의 절정을 보여줬다. 그러나 돼지에서 가장 인기있는 부위인 삼겹살은 형편없었다. 선명한 백색과 붉은색이 교차하는 그런 삼겹살이 아니라, 연분홍색이 희미한 고기 부위가 층을 이루려다 만 듯했을 뿐이었다. 이런 것은 굵은 천일염과 허브를 쳐서 숙성시켜봐야 맛있는 베이컨이 될 수 없다. 기름에 맛이 배어 있어야 좋은 베이컨이 된다. 어린 돼지는 기름과 고기의 밀도가 떨어져 감칠맛을 내지 못한다.

한국은 아직 대중적으로 어린 돼지나 소를 유통하지 않는다. 닭은 영계를 흔히 볼 수 있지만 말이다. 각별하고 개인적인 미식을 충족시키는 그런 동물을 공급하기에는 아직 우리는 미식의 단계에 와 있지 않은 것일까. 고기든 곡물이든 질보다 양인 세기를 건너온 지가 얼마 되지 않은 셈이다. 진안 지방의 명물로 애저탕이 있다. 어미 배 속에서 꺼낸, 그러니까 태중의 미숙아를 삶아서 먹는 이 놀라운 육식습관은 몇몇 지방에서 특산물이라는 이름으로 법적인 통제에서 벗어나 있다. '크게 키워서 식량 증산에 기여하라' 같은 교조적 통제 말이다. 어린 돼지를 먹는 문제에 걸린 윤리적 해석을 떠나 음식의 다양성만으로 보면, 애저탕은 우리 곁에 그냥 놓여 있어도 될 것 같다.

윤대녕이 절망했던 새끼돼지 요리는 어쩌면 인간의 카니발리즘적인 식습관의 다른 분출 같기도 하다. 카니발리즘에서는 대체로 다른 부족의 어린것을 먹는 것이 가장 수월했을 테니까. 스페인 쎄고비아 지방에서 성행하는 어린 돼지 요리 꼬치니요 아사도(cochinillo asado)는 문자 그대로 '새끼돼지 구이'란 뜻이다. 이 요리의 맛은 오직 바삭한 껍질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별하게 고안된 화덕에서 장작으로 구운 꼬치니요는 훈연향이 껍질에 고루 배고, 씹으면 마치 과자처럼 바삭하게 부서진다. 이에 닿는 촉감으로 맛의 등급을 표현할 때 쓰는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의 명제에 가장 충실한 요리다. 지구상의 수많은 제빵사들이 그런 빵을 구우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말이다. 껍질은 포크로 툭 치면 부서질 듯 갈라지고, 그 속살은 약간의 기름을 먹어 부드럽게 녹는다. 돼지고기가 연상시키는 그 어떤 냄새도 포함하고 있지 않다. 살은 마치 푹 삶은 닭백숙처럼 부드럽게 녹는다. 이 어린 돼지의 껍질은 초대받은 손님에게 가장 많은 몫을 내주는 게 관습이다. 왜냐고? 가장 맛있는 부위니까.

껍질을 바삭하게 굽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대목에서 묘한 감정의 동요가 인다. 그건 닭고기와 달걀의 조합으로 만드는 일본의 덮밥 오야꼬동을 연상시키는, 동족 동시 요리쯤 되는 인간의 요리법 때문이다. 오야꼬동(돈부리)은 한자로 '親子井(친자정)'이라고 쓴다. 일본의 거리 식당에서 이 한자 메뉴를 발견하면 나는 종종 흠칫 놀라게 된다. 이 소름 돋는 작명법 또한 일본인 특유의 정서로 읽힌다. 어쨌든 껍질을 바삭하게 굽기 위해서는 '어른돼지'의 비계가 필요하다. '친자'는 아닐지언정 동족의 기름을 뒤집어쓰고 바삭해지는 새끼돼지 껍질이 흔쾌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그 껍질의 '파삭한' 질감을 맛보게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혀처럼 간사한 존재가 어디 있으랴. 어른돼지 껍질로는 절대 그런 파삭한 과자의 질감을 만들 수 없으니 결국은 새끼돼지를 잡아야 하는 것인가--마포 껍데기집에서 볼 수 있는 그런 피부로는 파삭한 질감이 절대 안 나오니 시도도 하지 마시라.

그렇지만 새끼돼지 요리는 어쩌면 조금 더 자연과 생명에 대해 경건해지는 요리라고 강변할 수도 있다. 생각해보라. 새끼돼지는 부위별로 잘려 예쁘게 랩으로 포장한 멋진 '제품'과는 다른 원시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걸 징그럽다고 하는 건 그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거다. 어차피 먹는 것은 인류의 숙명, 게다가 육식 또한 원시적 습속인 바에는. 돼지가 어른으로 성장한다고 해도 결국은 자기 수명의 20분의 1쯤 살 뿐이라고 위안해보는 수밖에.

스페인의 전통적인 새끼돼지 요리는 크기가 5킬로그램 정도인 어린 돼지를 고른다. 재료라고는 앞서 말한 어른돼지의 기름과 월계수잎, 마늘과 소금이 고작이다. 도기에 월계수잎을 깔고 돼지를 올린 후 비계를 얹어 맛을 더한다. 마늘을 으깨어 돼지 피부에 문지른 후 화덕에 은근히 굽는다. 마지막으로 불을 더 낮춰 천천히 익히는데, 수분이 달아난 껍질이 누룽지처럼 바삭하게 익는다. 전통적으로 스페인에서는 이 요리를 시키면 노련한 웨이터장이 직접 써빙한다. 커다란 포크와 칼로 배를 가르고 손님 숫자에 맞춰 접시에 나눠 담은 후 껍질을 다시 분배해준다. 윤대녕의 접시에도 그 고기가 놓여 있었을 것이다.

이딸리아도 새끼돼지 통구이를 먹는다. 스페인의 그것보다 훨씬 커서 30~40킬로그램짜리가 주로 쓰인다. 보통 이틀에 걸쳐 요리하는데, 고기가 크므로 허브와 마늘을 으깨서 피부에 발라 맛을 들이고 숙성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원래는 포도나무 가지와 참나무를 때서 천천히 굽는데, 현대에서 이런 요리법은 약간의 낭만으로 포장한 장터에서나 볼 수 있다. 전통을 고수하는 걸 즐기는 이딸리아에서조차 이제는 그런 사례를 보기 힘들다.

이딸리아의 새끼돼지 쌘드위치는 장날에 모인 장꾼들의 정서를 한데 그러모으는 향수음식이다. 심지어 엄격하지 않은 채식주의자까지 기름이 뚝뚝 흐르는 그 쌘드위치를 들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그걸 먹는다는 건 공동체의 연대, 씨족 간의 혈연을 확인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쌘드위치 사이에는 어떤 쏘스도 없다. 그저 로즈메리 향이 고기에서 피어오르고, 그득한 기름이 쏘스 역할을 한다. 입가에 번들거리는 기름기를 빵 거죽으로 닦아내며 먹어야 제맛이다. 누군가 이딸리아의 빵은 최악이라고들 한다. 나는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빵이 맛있으면 요리가 죽는다던 어느 할머니의 말에 나는 동의한다. 요리의 맛--돼지 쌘드위치에서는 기름기 흐르는 돼지고기--을 살리기 위해 빵 따위는 죽어버리는 것이다. 멋을 위해 무엇이든 포기할 수 있는, 정녕 이딸리아다운 빵 아닌가.

새끼돼지를 먹는 건 우리 식생활에도 있다. 제주의 애저회가 그것이다. 토박이의 음식은 외부인의 시선으로 볼 때 엽기로 느껴질 때도 있다. 모든 문화는 상대적이다. 스테이크만 먹을 것 같은 이른바 문명국가의 선두라는 유럽에서 먹는 음식의 각색(各色)은 그 면면이 낭자하기도 하다. 유럽에서 광우병 사태가 벌어졌을 때 나는 하필 현지에서 일하고 있었다. 소고기를 저어하게 되자 말이 등장했다. 원래 말고기는 그들의 기호품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고기까진 좋았는데 뇌를 쓰는 것이었다. 원래 송아지 뇌는 유럽 요리에서 중요한 요리 재료다. 송아지 뇌가 두려우니 말을 동원한 것이다. 인간의 그것과 아마도 비슷한 크기와 모양의, 선명하고도 붉은 빛의 주름들, 회백색의 뚜렷한 조직들이 눈에 들어 조금은 괴로웠다고 해야겠다. 음식에 있어서 지구와 인간의 역사에서 부끄러운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먹어야 살도록 진화한 생명의 한 현상인 까닭이다. 그래서 나는 그 뇌를 익혀서 갈아 쏘스를 만든 요리를 천연스럽게 먹어치웠다. 인간은 희생물을 더 철저하게 먹어야 한다. 그래야 덜 죽이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소설가 한창훈의 낚시론이기도 하다. 일단 낚으면 알뜰하게 먹는다. 그럼으로써 덜 낚게 된다는. 어쨌든 제주 동문공설시장에서 만난 애저회도 딱 그 느낌에서 별로 벗어나지 않았다. 연한 글루탐산의 맛과 비릿한 어린 조직의 모자란 맛, 그리고 참기름과 매운 양념의 맛이 전부였다. 거기서 생명이 태동하는 맛이라든가 저 원시의 태반에서 헤엄치던 자유의 질감을 생각한다는 건 과잉일 테다. 술안주로 가오리무침과 자리물회를 잘하는 희정식당의 주인은 올해 일흔이 다 되어가는 박춘희 씨다. 전라도 고흥 녹동에서 시집와서 제주 사람으로 산 지 쉰해다. 이곳 시장에서 장사를 시작한 것은 30년 전이다. 익숙한 솜씨로 애저회를 만다.

"시장에서 가져와. 다 곱게 갈어서."

제주 말로 새우리라고 부르는 부추에 마늘, 후추, 풋고추와 생강, 식초와 참기름 등 갖은 양념으로 여러 맛을 더하고 달걀도 넣는다. 아마도 '영양'과 밀도를 내기 위한 것인 듯하다. 현대 한식당의 비밀무기인 사이다도 좀 넣고 휙, 젓는다.

"끝이야. 들어봐."

곱게 간 참치회에 양념 뿌려 먹는 맛이랄까. 지방의 맛이 더해져서 버터를 조금 넣은 것 같다. 혀뿌리에 은근한 비린 맛을 남기고 지나간다. 육것의 '회'니까 당연하다. 그 맛을 지우려고 온갖 양념을 넣는 것이다. 먹을 것 적고 영양물 모자라던 시대의 유산이란 것을 그대로 깨닫겠다. 당연히 요즘은 거의 먹지 않는다. 제주 향토음식이라면 명물일 것인데, 아마도 보존이랄까 그런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사라질 음식이다. 그다지 맛으로 호소하는 부분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혐오와 동정이라는 미묘하고도 무신경한 시선이 존재하는 탓이기도 하겠다.

"이것이 제주 해장음식이야. 제주는 바람도 씨고(세고) 맛도 까칠까칠해. 별미로 먹기도 했어. 남자들 음식이지."

정력에 좋다는 뜻이다. 어린 것을 통째로 먹는 건 모든 영양을 고스란히 받아들여 정(精)을 수렴하는 취식행위로 이어졌다. 그것은 남성중심 사회의 흔적이기도 하다. 이제 그런 역사는 사라지려는가. 제주에서도 애저회를 먹을 수 있는 곳은 드물다. 시장에서 애저를 대는 집을 찾았더니 달랑 하나고, 그나마 가져가는 집이 없어서 어쩌다가 판다고 한다. 애저는 전라도에선 태어난 지 몇달 안된 젖 안 뗀 새끼를 의미하지만 제주에선 태중의 것을 말한다. 돼지를 잡았는데 우연히 발견하게 된 어린 돼지다. 굽거나 삶기에는 부족한 것을 그대로 다져내어 먹는 풍습이 생겼을 것이다. 과거에 버릴 음식이 어디 있었겠나. 이 음식은 겨울에 많이 먹었다. 돼지는 아무래도 겨울에 잡는 가축이었기 때문이다. 탕을 하면 밥도 말고 그저 훌훌 마시기도 한다. 소주 안주로 좋다고 한다. 주인 박씨는 한마리를 1만 2천원에 받아다가 2만원을 받고 판다. 장사로 치면 남는 게 없다. 그래도 찾는 이들이 있으니 팔고 있을 뿐이다. 문에 메뉴를 써놓았는데, 그저 '새끼회'다. 애저란 말도 기실 민중의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닭이나 돼지만 어린 것을 즐기지는 않는다. 어린 양과 말, 소도 어김없이 사람들의 식탁에 오른다. 야들야들하고 한없이 부드러우며 씹자마자 녹아버리는 질감--풍미를 희생하면 질감을 얻는다--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한국에서도 어린 양과 송아지 고기를 먹을 수 있다. 물론 대개 수입 고기다. 닭이나 돼지와 달라서 소와 양은 어린 것을 먹는 이유가 조금 다른 각도로 보이기도 한다. 돼지나 닭은 젖을 사람에게 바치지 않는다. 그러나 소와 양은 젖을 내어주고, 그것은 서양인들이 아끼는 치즈가 된다. 그러나 운 나쁘게도, 그것이 자연의 섭리겠지만, 절반의 개체(수컷)는 젖을 만들 수 없다. 그런 소는 결국 고기로 팔리는 운명에 처한다. 다만 그것을 크게 길러 먹느냐, 어린 상태에서 먹느냐의 차이뿐이다. 우리는 '육우'라는 이름으로 젖소 수컷을 크게 길러 먹는다. 그러나 그 무엇도 그 소의 수명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불과 2년이면 도축장에서 전기충격기 세례를 받는다. 소의 수명이 얼마냐고? 「워낭소리」에 나온 소가 마흔살이 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라.

서양에서는 도축이 자유로워 송아지를 잡는다. 송아지는 아직 세포가 어려서 고기가 분홍빛을 띤다. 모든 것이 사람의 미각과 경제적 효율에 맞춰 움직이는 지구에서 송아지고기는 두가지를 충족시켜준다. 살살 녹는 연한 고기의 맛, 그리고 젖도 얻지 못할 존재는 일찍 마감시켜주는 경제적 효율 말이다.

사람들은 무자비해서 송아지고기 중에서도 아직 젖도 안 뗀 녀석들을 더 사랑한다. 감별을 마친 수평아리를 그대로 살처분하는 것보다는 나은 처사라고? 그럴지도 모른다. 어쨌든 오늘도 어린 생명이 식품이 되어 사람의 입에 들어간다.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 매한가지인가. 아니면 육식에도 어린이와 여자는 공격하지 않는다는 제네바협정 같은 인간의 윤리적 잣대가 있어야 하는 것일까.

* 이 글은 필자의 저서 <뜨거운 한 입>(창비, 2014) 내용 중 일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