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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5월 17일 06시 07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5월 17일 14시 12분 KST

간? 간!

한국의 레스또랑들이 고급화되면서 푸아그라 요리도 부쩍 늘었다. 푸아그라가 고급요리의 상징처럼 되어 있는 까닭이다. 푸아그라를 얻기 위해 비윤리적인 사육방법을 동원한다는 논란이 일면서 서양에서는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토론도 꽤 벌어지고 있다. 나는 그 논쟁에 깊숙이 개입할 능력은 없다. 다만 프랑스든 이딸리아든 헝가리든 푸아그라를 위해 오리나 거위를 기르는 동네에 직접 가서 보시라는 말은 해주고 싶다. 푸아그라는 보통 600그램에서 1킬로그램까지 나간다. 거위나 오리 간이 본디 제법 크겠거니 믿었던 나는 보통의 '건강한' 간을 보고 크게 놀랐다. 아기 손바닥보다 작고 가벼워서 한입거리밖에 되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작은 간을 키워서 푸아그라를 만드는 인간이란 얼마나 집요한 족속인가.

ASSOCIATED PRESS

조금 그로테스크하지만 그 시절의 나른한 그림은 이렇게 시작된다. 청자 담배를 쭉쭉 빨며 한무리의 아저씨들이 누렁이를 물가로 끌고 왔다. "애들은 가라" 그 와중에도 나무 뒤에 숨어 그 끔찍한 회식의 현장을 보는 아이들이 있었는데, 나도 그중의 하나였다. 제법 머리가 굵은 애들은 갈빗대라도 하나 얻어먹을 요량으로 아예 개를 그슬릴 나무를 구해다 바치기도 했지만, 나는 그것을 먹을 요량이 없었다. 그저 그 시절의 흔한 구경거리로 살해의 현장에 참석했던 것 같다.

어쨌든 개가 사후경직된 단단한 몸통으로 털까지 홀랑 잃고 나면, 무리의 대장쯤 되는 아저씨가 미리 마신 막소주에 불콰해진 얼굴로 식칼을 들었다. 그러고 배를 쭈욱 갈라 무언가 뜨끈한 것을 꺼냈다. 그러면 무리는 일제히 군침을 삼키며 몰려들었다. 대장은 뜨끈한 김이 무럭무럭 나고 피가 뚝뚝 떨어지는 그것을 도마 위에 올려 썰었다. 막소금을 뿌려 살점을 한점씩 돌리는 그는 마치 샤먼이나 제사장 같은 표정으로 위엄을 보였다. 사자가 영양을 공격해서 제일 먼저 입가에 피를 묻히며 먹는 붉은 내장. 그러니까 그건 간이었다. 모든 영양이 농축되고 저장되는 장기. 토끼의 간과 용왕님의 커넥션은 간이 중세인들에게도 매우 의미있는 신체기관이었음을 잘 말해준다고 할 것이다. 사실 나는 토끼의 간을 무수하게 본 사람이다. 이딸리아에서는 토끼를 많이 먹는다. 푸줏간에 가면 토끼가 진열되어 있는데 귀에 고리를 걸어 냉장고에 주렁주렁 매달아놓았다. 특이한 것은 그 나라의 도축 관례상 반드시 머리와 내장 일부를 고기에 끼워 같이 판다는 점이다. 그 덕에 식당에 배달되어 온 토끼의 머리를 자르고 콩팥과 간을 추려내는 건 견습 요리사인 내 몫이었다. 토끼 머리는 잘 삶아 육수로 쓰고--소머리곰탕도 잘 드시는 분들이 이 대목에선 울컥들 하시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간은 다른 요리재료로 썼다. 간은 그 세포에 들어 있는 독특한 효소 때문인지 쓴맛이 난다. 그래서 오히려 입맛을 살려주곤 한다. 시장 순대골목에서 한접시의 순대를 시킬 때 간이 빠지면 안되는 것도 그런 이유다. 오랫동안 김을 쐬어 퍽퍽해진 간이지만, 그걸 두어점 먹어야 순대를 잘 먹은 것 같기 때문이다. 고춧가루소금을 슬쩍 묻혀서 말이다.

이딸리아에서 토끼 간을 요리하는 법은 용궁과는 다르다. 간을 숭덩숭덩 썰어 버터와 마늘, 양파를 두른 팬에 볶는다. 올리브유를 뿌려서 맛이 배게 한 다음 후추와 소금으로 간하고 믹서에 돌려 곱게 간다. 이걸 뜨거운 채로 빵에 바르거나 차갑게 식혀서 토끼고기 으깬 것과 섞어서 먹는다. 값싸고 영양 많은 서민의 요리이기도 하다. 이딸리아에서는 토끼 간 요리가 남자들에게 특별히 좋다고 하는데, 한국에서 토끼와 관련된 시중의 속설과는 정반대니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사실 유난히 짧은 토끼의 교미 순간은 그 상황에서조차 포식자를 피해야 하는 초식동물들의 공통된 비애니 토끼만의 유전자도 아닐 터.

한국의 레스또랑들이 고급화되면서 푸아그라 요리도 부쩍 늘었다. 푸아그라가 고급요리의 상징처럼 되어 있는 까닭이다. 푸아그라를 얻기 위해 비윤리적인 사육방법을 동원한다는 논란이 일면서 서양에서는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토론도 꽤 벌어지고 있다. 푸아그라는 문자 그대로 '살진 간'이라는 뜻이다. 오리든 거위든 소든 살진 간은 모두 푸아그라다. 일반적으로는 거위의 간, 그것도 특별한 사육법으로 비대해진 간을 뜻한다. 그렇지만 시중에 더 흔한 건 오리 간이다. 오리가 거위보다 사료를 덜 먹고, 더 빨리 비대한 간을 인간에게 내어주기 때문이다. 맛은 큰 차이가 없고, 거위 간이 더 기름지게 느껴지는 정도다.

푸아그라 요리를 아주 잘 만드는 프랑스의 미슐랭 원스타급 셰프를 만난 적이 있다. 그에게 푸아그라 논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라틴계 특유의 성격대로 금세 얼굴이 붉어지면서 열변을 토했다. 그의 요지는 이미 로마시대부터 먹던 푸아그라가 갑자기 무슨 죄가 있다고 그러느냐, 원시인들은 모두 모피를 입었는데 그렇다면 그들이 동물 학대자냐, 뭐 그런 얘기였다.

나는 그 논쟁에 깊숙이 개입할 능력은 없다. 다만 프랑스든 이딸리아든 헝가리든 푸아그라를 위해 오리나 거위를 기르는 동네에 직접 가서 보시라는 말은 해주고 싶다. 자동화된 씨스템으로 깔때기를 입에 물리고 사료를 주기적으로 마구 퍼넣는 장면을 보면, 그렇게 흔쾌할 것 같지는 않다. 어떤 이는 제법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이유를 들어 푸아그라를 반대한다. 사람이 지방간이 되면 '질병'으로 보는데, 굳이 질병에 걸리게 만든 오리나 거위를 먹을 필요가 있느냐는 주장이다.

푸아그라는 보통 600그램에서 1킬로그램까지 나간다. 거위나 오리 간이 본디 제법 크겠거니 믿었던 나는 보통의 '건강한' 간을 보고 크게 놀랐다. 아기 손바닥보다 작고 가벼워서 한입거리밖에 되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작은 간을 키워서 푸아그라를 만드는 인간이란 얼마나 집요한 족속인가.

친구 A는 동물의 간도 좋아하지만 생선 간이라면 사족을 못썼다. 그는 심지어 동네 횟집에서 오징어 간을 구해다 먹을 정도의 마니아였다. 살아 있는 오징어의 간은 고소하고 진하다. 그는 그걸 구해다 삶아서 술안주로 했다. 초간장에 찍으면 푸아그라 못지않은 훌륭한 안주가 됐다. 그러면서 그 귀한 걸 버리는 횟집 주인의 안목을 비웃었다.

"오징어 영양이 발로 가겠어, 몸통으로 가겠어? 몽땅 간에 들어 있다니까."

오징어는 엄청난 포식자다. 어마어마한 식성으로 새우와 조개, 게 같은 맛있는 먹이를 마구 먹는다. 그 알찬 영양이 다 간으로 간다--일단 간으로 가지 않으면 어디로 가겠느냐만. 그걸 먹으니 오징어의 진짜 영양을 빨아들이는 셈이다. 그것도 공짜로,라고 녀석은 주장했다.

울진군 죽변면의 어부들은 오징어가 산더미처럼 잡힐 때 특별한 안주를 만들어 먹는다. 산 오징어를 통째로 냉동고에 넣는다. 잘 얼면 그대로 꺼내서 얇게 잘라 와사비간장이나 초장을 찍어 술안주로 한다. 오징어 살은 녹으면서 이에 달라붙고, 얼었던 간도 차갑게 녹으면서 구수한 맛을 내준다.

한때 A는 수산시장을 돌며 아귀 간만 수집하기도 했다. 아귀 간은 바다의 푸아그라라고 할 만큼 고소하고 진한 맛이 일품이다. 일본에서는 '안끼모(あん肝)'라고 하여 이 간을 좋아한다. 그래서 산지에서는 아귀를 해체해서 말릴 때 간은 일본으로 수출했다고 한다. 요새는 아귀를 손질해 파는 상인도 간은 슬쩍슬쩍 따로 모아 팔지만, 옛날에는 말만 잘하면 거저 얻었다. 서울의 고급 일식집에서 아귀 간을 먹는 풍습이 없던 때는 구하기 어렵지 않았다. 아귀탕에 간이 빠져도 뭐라 하는 이가 없던 시절도 있었던 것이다. 요즘도 가끔 그런 경우가 있다. 한마디로 식당 주인이 당신을 호구로 봤거나 냉동 아귀를 써서 간이 따로 없는 때문이다.

A는 아귀 간을 모아오면 우선 엷은 소금물에 살살 흔들어 씻었다. 간의 특성상 열을 가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아주 부드러워서 금세 조직이 깨질 위험이 있는 까닭이다. 그러고 체에 밭쳐 물기를 뺀다. 찜통에 먹다 남은 소주나 청주를 붓고 물을 팔팔 끓인다. 여기에 대파 남은 것과 양파 따위를 넣기도 한다. 녀석은 그걸 '냄새 잡는다'고 표현했다. 아, 냄새는 없애는 게 아니라 잡는 거라는 것도 그때 알았다. 쪄낸 아귀 간은 뭐랄까, 이런 표현이 가능하다면, 따뜻한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 같았다. 부드럽게 녹으면서 마법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짜고 고소한 뒷맛을 혀에 남겼다. 오래도록 그 맛의 여운을 씻어내기 싫어서 소주잔도 기울이기 저어할 정도였다. 녀석은 먹다 남은 아귀 간에 삶은 두부를 으깨 넣고 찬밥을 말았다. 그것 또한 별미였으니, 아귀 간으로 코스요리를 만들어도 될 것 같았다.

A가 늘 아귀 간을 구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넉넉한 주머닛돈으로 푸아그라를 살 수 있었으면 그리했겠지만, 사정은 달랐다. 그때는 단골 대구탕집으로 갔다. 나도 몇번 그를 따라가서 대구탕 먹는 법을 배웠다. 그는 신참을 길들여서 대구탕의 심오한 세계를 과시했다. 대구탕이 갓 나오면 그는 신참에게 얼른 한술 뜨라고 권한다. 그러면 사정을 모르는 신참은 한숟갈 그득 양재기 위에 뜬 국물을 먼저 퍼넣는다. 으악, 하는 순간 입천장이 홀랑 벗겨지는 건 물론이다. 대구 간의 기름이 워낙 많아 그것이 양재기 위로 뜨게 마련이고, 기름은 뜨겁지만 김이 나지 않으니 신참이 알 턱이 없다. 그렇게 살갗이 벗겨져야 비로소 대구탕에 입문하는 것이었으니, 요새 얼치기 대구탕집에서 간도 뭣도 없이 맵기만 한 탕을 내놓는 걸 보면 입천장이 벗겨지더라도 그 고소한 대구 간이 그리워진다. 그 간을 숟가락 가득 퍼넣고 입가에 기름을 번들거리며 웃던 A도 그리워진다.

어렸을 때 간유구라는, 희한한 냄새가 나는 말랑말랑한 캡슐 약을 먹었다. 눈에 좋다는 것이었다. 듣기로, 일제시대에 일본은 우리 남해에서 대구가 잡히면 간을 징발했다고 한다. 기름으로 쓰기도 하고 그것을 농축해 카미까제 조종사들에게 먹였는데, 적 비행기나 적선을 잘 발견하게끔 시력을 좋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다. 군대 시절, 내 입맛이 일찍이 도드라지기는 했다. 그때는 희한한 생선요리가 많이 나왔다. 청어찌개, 정어리찌개, 가자미튀김에다가 대구탕도 자주 나왔다. 원양어업으로 대구 값이 아주 쌀 때였다. 대구가 들어오면 취사병들은 도끼 같은 칼로 내리쳐 손질해서 탕을 끓였다. 어린 병사들이 대구 간 맛을 알 리 없었다. 대구 간이 국솥에 둥둥 뜨는데, 다 걷어내고 살만 먹었다. 물론 그 간은 내 차지였다. 그때 간을 한가득 퍼주면서 씽긋 웃던 취사반 병장이 생각난다. '야, 너랑 나만 아는 진미지?' 하는 눈빛.

* 이 글은 필자의 저서 <뜨거운 한 입>(창비, 2014) 내용 중 일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