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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09일 11시 31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12월 09일 14시 12분 KST

2015예산, 철학이 부재한 재정건전성 포기예산

창조경제, R&D 등의 예산도 서민경제보다는 재벌 대기업에게 혜택을 주는 예산으로 볼 수 있다. 가령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전기자동차 보조금 지원을 확대(800대→3000대)하고, 하이브리드차 보조금을 신규 도입(4만대, 대당 100만원)하겠다는 방안은 사실상 하나밖에 없는 자동차회사에 대한 지원이다. 차라리 그 예산으로 대중교통체계를 정비하는 게 대다수 국민에게 훨씬 효율적이다.

연합뉴스

사람들은 흔히 경제활동이라고 하면 주식이나 부동산 등 민간경제만을 생각한다. 하지만 정부의 규모가 작은 우리나라에서도 공공재정의 비중이 민간경제를 능가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예를 들면 2013년 명목 GDP는 1428조원인데, 공공재정은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 예산과 공기업 및 공공기관까지 하여 절반을 넘는다.

그런데 정부예산은 꾸준히 증가한다. 지하경제가 줄어들고 최근에는 국채발행까지 크게 늘리는 등 각종 정부 재정수입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출도 같이 증가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예산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있다. 그중의 하나가 신규예산이다. 매년 사업이 크게 증가하기 때문에 정부의 예산편성과 의회의 심의과정이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착각이다. 2014년 예산에서 신규예산은 전체의 0.6%인 2조원에 불과하다.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박근혜 예산'도 여기 포함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예산은 하던 사업을 계속하는 가운데 점증적으로 조금씩 증가하거나 변화하여 간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점증주의 예산편성이라고 하고, 이에 반하여 대폭적이고 체계적으로 예산의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총체주의 예산편성이라 한다. 따라서 예산은 총체주의를 지향하지만 현실은 점증적으로 변화한다고 할 수 있다. 총체주의 예산편성에서 이야기하는 제로베이스 예산편성이라는 것은 항상 이상에 불과하다는 푸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제로베이스 예산편성을 했던 사례는 군사정부 시절인 1985년밖에는 없다.

2015년 예산, 점증주의 부채증가 예산

정부는 총지출 376조원, 총수입 382조 7천억원으로 책정한 2015년도 예산안을 확정했다. 전체적으로는 5.7% 증가로 점증주의 예산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정부는 세입여건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경제활력 제고를 위해 최대한 확장적으로 편성됐다고 주장한다. 재정건전성 악화를 감수하고라도 경기부양에 힘을 쏟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빚내서 경기를 부양하는 방식은 과거 이명박정부의 전철을 밟는 것이다. 이명박정부는 일자리 창출을 명분으로 2009년부터 3년간 22조원이 투입되는 4대강사업을 진행했고, 경기부양책으로 13조원을 투자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결국 이명박정부 5년간 98조원의 재정적자와 경제양극화 심화 등의 폐해만을 남기게 되었다. 적자재정까지 감수한 이번 예산안은 국가부채 문제를 악화시켜 재정건전성에 심대한 위협을 주게 될 것으로 보인다. 2013년 국세수입 목표치는 210조 4000억원이었으나 실제치는 201조 9000억으로 8조 5000억원이 부족했으며, 올해도 8조원이 넘는 세수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또한 2013회계연도 국가결산보고서에 따르면 중앙과 지방 정부의 빚을 합친 국가채무는 482조 6000억원으로 국민 1인당 부담액은 1000만원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내용적으로 보면, 축소되어야 마땅한 토건 및 SOC 투자 부문 예산이 다시 증가했다. 2조원 가까이 줄여야 하지만 오히려 7천억원을 늘렸다. 세월호참사를 계기로 각종 안전시설에 대한 유지·보수를 위해 SOC 예산을 대폭 늘렸다고 정부는 주장한다. 하지만 일상적으로 집행해야 하는 SOC의 유지·보수관리 예산이 안전예산으로 분류되었다는 비판이 높다. 지자체의 소방헬기 구입을 위해 1천억원을 배정한 것이 그 예이다. 결국 이명박정부마저도 정권후반기에는 감소시켰던 토건예산이 다시 상승하기 시작했다. 예비타당성 조사대상을 500억원 이상 사업에서 1000억원 이상 사업으로 완화하겠다는 정부의 의도 또한 지난 개발연대 시절처럼 토목과 건설업 부양을 통해 단기적으로 경제성장을 도모하겠다는 발상이다.

여기에 창조경제, R&D 등의 예산도 서민경제보다는 재벌 대기업에게 혜택을 주는 예산으로 볼 수 있다. 가령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전기자동차 보조금 지원을 확대(800대→3000대)하고, 하이브리드차 보조금을 신규 도입(4만대, 대당 100만원)하겠다는 방안은 사실상 하나밖에 없는 자동차회사에 대한 지원이다. 차라리 그 예산으로 대중교통체계를 정비하는 게 대다수 국민에게 훨씬 효율적이다. 생활밀착형 예산이라는 이름으로 70개 사업을 따로 묶어 제시했지만 기업밀착형 예산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문제의 원인은 철학의 부재

결론적으로 이번 예산안은 점증적인 증가에도 불구하고 확장이라는 미명하에 재정균형을 포기한 적자예산이다. 전체적인 구모는 점증주의적이지만 실제 내용에서는 부채증가와 지출구조의 역진성이 보인다.

더 큰 문제는 뚜렷한 방향이 없다는 점이다. 복지도 늘리고 건설도 늘리고 그야말로 모든 것을 하겠다고 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예산이라는 점이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재정의 철학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비록 잘못되었지만 이명박정부는 토건이라고 하는 명백한 방향과 철학(?)이라도 있었다. 이에 반해 현 정부는 현상유지에 급급하여 정부의 정책이 무엇을 위해 가야 하는지를 예산편성에서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남은 것은 국회다.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는 근본적인 경제활성화 대책과 서민경제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방안을 담은 국회 예산심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표류하는 재정의 방향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물론 난망한 기대이기는 하다. 그나마 과거와는 달리 예산에 대해 언론과 시민단체들의 관심이 높아진 것이 실낱같은 희망이다.

* 이 글은 창비주간논평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