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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12일 12시 41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1월 12일 14시 12분 KST

스포츠 정책의 힘, 미래를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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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경남 창녕에서 열린 2015 전국학교스포츠클럽 탁구대회 풍경

최근에 경남 창녕에 다녀왔습니다. 전국학교스포츠클럽 탁구대회가 열렸기 때문입니다. 이 대회에는 17개 시·도의 초중고 학생 대표들이 참가했습니다. 이들은 우리가 흔히 보던 전문 운동 선수들이 아닙니다. 공부 뒤에 체육 선생님 지도 아래 클럽(동아리) 활동을 하다가 나온 아이들입니다. 그러니까 운동만 죽어라고 하는 선수가 아니라, 공부를 주로 하다가 틈틈히 운동했던 선수들이 나온 것입니다. 당연히 실력은 세지 않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의 진지한 눈빛이나 집중력, 승부욕은 대단했습니다. 무엇보다 티 없이 밝은 표정이 보기 좋았습니다.

스포츠 기자 생활을 오래하다보면 못볼 꼴을 많이 봅니다. 초등학교 축구부 아이들이 하프타임 때 감독한테 얼굴을 꼬집히는 경우도 보고, 성인이 된 실업팀 선수들이 따귀를 맞는 장면도 본 적이 있습니다. 학원 스포츠 폭력에 진절머리가 나 기사도 많이 쓰고, 그래서 지금은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런 과거의 기억에 비쳐보면, 전국학교스포츠클럽 탁구대회는 정말 훈훈하고 따뜻한 풍경의 연속이었습니다.

아이들이 게임에 지면 의외로 많이 웁니다. 그러면 코치 선생님(주로 체육교사)이 따뜻하게 안아줍니다. 아이들이 못해도 화를 내는 경우는 없습니다. 쌍소리는 상상할 수도 없구요. 광주에서 남자 중학교 팀을 이끌고 온 체육교사는 자기 팀이 상대방에게 졌을 때, 상대편의 잘하는 선수를 일부로 불러서, "야, 너 참 잘한다!"라며 등을 두드려 주었습니다. 학교의 전문 운동부 감독들이 경기 하나에 일희일비하고, 선수들은 게임에서 지면 세상이 끝난 것처럼 느끼는 것과는 천양지차입니다.

운동을 하면 아이들이 해맑아지는 것은 왜일까요? 그것은 몸을 부닥치면서 얻는 희열 때문입니다. 입시 지옥에서 공부에 몰린 학생들은 스포츠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경험합니다. 머리가 아니라 몸이 느끼는 순수한 세계, 언어로 표현할 수 없지만 몸이 알아채고 소통하는 세계, 그 경험 속에서 몸이 행복을 느끼면 마음마저 상쾌해집니다. 그것이 그대로 얼굴에 드러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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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경남 창녕에서 열린 탁구대회에서 팀 관계자가 우는 선수를 위로하고 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스포츠 클럽 활동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10년이 채 안됐습니다. 2008년도부터 정부가 나섰습니다. 학교에 갇힌 아이들이 점점 스트레스 압박을 많이 받고, 때로는 왕따 문화나 폭력 등으로 불거지면서 이대로는 안된다고 어른들이 반성을 한 것이죠. 그래서 정부는 '공부하는 선수, 운동하는 학생' 식으로 그동안 메달을 따기 위한 전문선수 훈육기관으로 있던 학교의 패러다임을 바꾸었습니다. 다시 말해 일반 학생들도 스포츠 활동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장을 열었던 것입니다. 거기에 2012년에는 학교체육진흥법이 만들어져서, 학교의 교장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스포츠 활동 기회를 의무적으로 만들도록 명시했습니다. 과거 이명박 정부 시절의 이주호 교육부장관과 현재 국회의원인 안민석 의원이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저는 대한민국 정부가 해방 이후 한 일 가운데 '학교스포츠클럽 활성화'가 최고의 정책 톱10에 들어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행복할 때 미래가 행복하고, 아이들이 건강할 때 미래가 건강해지기 때문입니다. 올해만 해도 각 시도 대표로 나와 전국대회(주로 11월 각 주말에 열림)에 참가하는 학교스포츠클럽 학생들은 2만명에 이릅니다. 축구, 배구, 농구, 탁구, 배드민턴 등 23개 종목에서 시대회와 도대회를 거쳐 전국대회에 진출한 선수만 2만여명입니다. 그렇다면 도대회, 시대회까지 나온 선수들은 얼마일까요? 교육부 관계자는 지난해 초중고 학교스포츠클럽에 등록돼 선수로 나온 학생은 42만명이라고 했습니다. 적어도 42만명은 공부 시간 이외에 틈틈히 스포츠 활동에 참가했다는 얘기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얘기입니다.

저는 군대에서 축구를 많이 접했고, 그 뒤로 팬이 됐습니다. 한편으로는 학창시절 이렇게 재미있는 축구를 많이 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 아쉬움을 많이 느꼈습니다. 공부만 소중한 것이 아니라, 몸이 소중하고, 그 몸은 스포츠 활동을 통해 강해진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교육부는 학교스포츠클럽이 이제 뿌리를 내렸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할일은 많이 있습니다. 예산도 더 따내야 하고, 학교스포츠 클럽 활동도 더 확대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초중고 체육교사 분들이 많이 희생했습니다. 법에는 교사들에 대해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고 하지만 거의 자원 봉사가 많았습니다. 예산 부족 때문이죠. 아이들이 시대회나 도대회, 전국대회라도 나가게 되면 토요일, 일요일을 희생해야 합니다. 대회에 나가게 되면 정부가 지원해 유니폼 비용을 맞추도록 하지만, 밥값이나 수송에 따른 비용 등은 자체적으로 마련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도 체육교사들의 사명감이 이 정도까지 학교스포츠클럽 활성화를 이끌어왔다고 보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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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경남 창원에서 열린 2015 전국학교스포츠클럽 탁구대회 학부모 응원 풍경

교육부는 초등학교 선수들이 주로 고학년 위주로 나오기 때문에, 초등학교의 경우 저학년, 고학년부로 나눠 출전하도록 하는 방법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러자면 경기가 늘어나고 비용도 커질 것입니다. 또 대한체육회와 생활체육회의 지원도 더 받아야 합니다. 학교스포츠클럽 활동이 생활기록부에는 남지만, 입시에는 반영이 안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학교스포츠클럽 활동이 상급 학교의 입학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연구중입니다. 다행히 초중고 교장선생님의 생각도 많이 바뀌고 있고, 일부 학교에서는 스포츠클럽 활성화가 공부에도 도움이 된다는 통계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점심시간이나, 야간 자율학습 전에 운동을 하는 게 공부에도 효과적이라는 것이죠.

사회는 변합니다. 기술발전은 변화의 주요 원동력입니다. 그런데 정책이나 아이디어, 제도도 사회를 변화시킵니다. 이 경우 정책 담당자가 어떤 철학을 갖고 있는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저는 스포츠의 가치를 뒤늦게라도 현장에 전파시킨 교육 당국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아이들의 숨통을 조이는 입시제도를 혁명적으로 바꿀 수 없는 구조에서, 학교 스포츠 클럽 활동은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알뜰한 메신저 구실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허현미 경인여자대학교 교수(레저스포츠)는 "요즘 아이들은 지면 낙오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스포츠는 지는 경험을 일상화시킨다. 삶의 과정에서 실패하더라도 오뚝이처럼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주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부모님들도 아이들이 스포츠클럽 활동으로 부상을 당하고, 공부는 안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몸이 강해지면 정신도 강해지고, 공부도 잘하게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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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경남 창녕에서 열린 2015 전국학교스포츠클럽 탁구대회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