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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30일 10시 29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0월 30일 14시 12분 KST

플라티니와 유럽의 축구 패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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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플라티니 유럽축구연맹 회장 위키피디아

부패 스캔들로 소용돌이에 빠진 국제축구연맹(FIFA)이 10월 29일(한국시각) 차기 회장 선거에 출마한 후보 7명을 확정해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미셸 플라티니 유럽축구연맹(UEFA) 회장도 버젓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플라티니 회장은 2011년 초 제프 블라터 피파 회장으로부터 200만스위스프랑(24억원)을 받은 것이 알려져 최근 스위스 검찰의 형사 조사를 받는 등 이미지가 실추했습니다. 1998~2002년 플라티니가 블라터 회장의 자문역을 맡으면서 받기로 했던 체불임금을 뒤늦게 받았다고 해명했지만 부정한 돈 거래라는 의혹도 있습니다. 피파 회장 선거에 출마하기로 했던 플라티니 회장은 2011년 돈을 받은 뒤 출마을 포기했기 때문에 더욱 그런 의심이 커졌습니다. 피파 윤리위원회는 돈을 준 블라터 회장과 플라티니 회장 모두에게 각각 90일씩의 자격정지 징계를 내렸습니다.

블라터 회장이 임명한 윤리위원회가 주인(?)에게 재갈을 물린다는 것을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피파의 절대 권력자에 대한 불충은 곧 죽음입니다. 그런데도 일종의 징계 조처를 취한 것을 보면, 피파 투명성에 대한 국제 사회의 압박이 그만큼 커졌다는 것과 블라터 회장의 절대권력도 거의 임종을 앞뒀다는 것을 알리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90일 자격정지 징계로 플라티니와 블라터 회장이 실질적으로 타격을 받는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내년 1월이면 징계가 끝나 블라터는 회장으로, 플라티니는 차기 회장 선거 후보자로 원상복구가 가능합니다. 플라티니 회장의 경우 징계 탓으로 선거 등록이 안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오산이었습니다. 참 절묘한 90일 징계입니다.

피파의 관성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습니다. 철저히 유럽 중심이고, 기득권 배려입니다. 피파 선거관리위원회와 후보자의 자격 심사를 맡은 윤리위원회가 플라티니의 회장 선거 후보 등록을 인정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선관위는 "플라티니 회장의 입후보 서류는 자격 정지 이전에 제출된 것이기 때문에 하자가 없다. 후보자들에 대한 '자격 심사'(integrity check)를 징계 중인 플라티니 회장에게는 적용하지 않는다. 내년 2월26일 투표일 이전에 플라티니 회장에 대한 징계가 끝난다면 선거에 나서는 데는 문제가 없다"고 했습니다.

피파는 회장 입후보자들의 자격을 심사합니다. 5개 회원국의 추천을 받았는지, 회장 후보로 나설 때 결격 사유는 없는지 등을 점검합니다. 범죄 행위가 드러난다면 당연히 자격이 박탈되겠죠. 그런데 선거관리위원회는 스위스 사법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는 플라티니 회장의 후보자 등록을 인정했습니다. 플라티니가 돌발 악재로 낙마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이번 선거는 어느 때보다 많은 후보들이 등록했습니다. 아시아권에서는 알리 빈 알 후세인 요르단 왕자, 셰이크 살만 빈 에브라힘 알 칼리파 아시아축구연맹 회장 2명이 입후보했고, 아프리카에서도 무사 빌리티 라이베리아 축구협회 회장, 토쿄 세콸레 남아공 광산 사업가 2명이 나왔습니다. 유럽에서는 과거 피파에서 근무했던 제롬 샹파뉴와 현재 유럽축구연맹 사무총장인 지아니 인판티노가 출마했습니다. 그런데 플라티니가 버젓이 버티고 있어 이들이 과연 대권을 차지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만약 플라티니 회장에 대한 스위스 사법당국의 조사가 성과 없이 끝난다면, 차기 피파 회장은 플라티니가 가장 유력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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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 블라터 피파 회장 위키피디아

위기의 플라티니 회장 부활의 배경을 두고 유럽축구의 패권주의를 느끼면 지나친 것일까요. 피파 부패가 미국 사법당국이나 유럽연합 의회에서까지 성토되고 있는 상황에서 200만 스위스프랑을 받은 플라티니 회장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 정상적인가요? 피파 회장 선거에 아예 등록도 하지 못한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의 처지와 비교하면 대조적입니다. 정 회장이 피파 회장 선거 출마 노력이 한국 내 정치와 연관이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피파 개혁과 부패 척결을 주장하고, 일부 피파의 잘못된 행태를 노골적으로 비판한 것 때문에 6년 자격정지를 때린 것은 지나친 감이 있습니다. 더욱이 정 회장에 대한 징계는 정 회장의 행위가 부정해서가 아니라, 피파 윤리위원회의 출석 요구 거부 등 조사 불응에 대한 피파 내규 위반이어서 '징계를 위한 징계'라는 인상을 줍니다. 플라티니와 블라터 회장의 돈 거래가 보기에 따라서는 더 큰 문제가 될 수도 있지만 실질적으로 타격은 정 회장만 받게 됐습니다.

유럽축구연맹 사무총장인 인판티노가 출마한 배경에 대해서도 말이 나옵니다. 유럽 언론은 "만약 플라티니 회장이 특별한 하자 없이 복권되고 정상적으로 선거운동을 하게 될 경우 인판티노는 중도 사퇴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만약에 대비해 플라티니 회장을 위한 표를 모으고, 정상적으로 선거 운동에 복귀할 때까지 플라티니 표를 관리할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209개 회원국의 투표로 이뤄지는 회장 선거에서는 아프리카(54표), 유럽(53표), 아시아(46표), 남미(10표), 북중미(35표), 오세아니아(11표) 대륙연맹 대표들이 참석합니다. 플라티니로서는 유럽표를 기반으로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공략해야 합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는 현 블라터 회장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블라터 회장은 자체적으로 축구협회를 운영할 수 없는 여러 나라의 협회에 대해 오랜 기간 재정 지원을 해왔습니다. 이런 식으로 블라터 회장은 전체 회원국의 3분의 2 이상의 협회에 영향력을 행사해왔습니다. 아프리카나 아시아, 남미, 북중미 일부 국가들이 그 영향권에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블라터 회장은 플라티니와 매우 고약한 관계입니다. 블라터 회장은 "200만스위스프랑의 사후 임금정산은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이다. 나는 약속을 지켰을 뿐"이라며 플라티니 회장의 해명과 100% 일치하는 발언을 했습니다. 범죄행위도 아니고 부정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외의 사안에 대해서는 매우 적대적입니다. 최근 러시아의 <타스통신>과의 인터뷰에서는 "2022년 월드컵은 미국으로 가기로 돼 있었지만, 플라티니가 프랑스 정부의 (경제 군사적 이익을) 위해 카타르 쪽으로 표를 던지도록 유럽 집행위원 4명의 표를 미국에서 카타르쪽으로 돌렸다"고 밝혔습니다. 2010년 차기 개최지 선정 과정에서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 대한 집행위원회 투표 결과는 14-8로 카타르가 미국을 이겼는데, 애초 계획대로 진행됐다면 12-10으로 미국이 이겼을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블라터 회장이 플라티니의 이미지에 먹칠을 하려고 작정을 한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식의 플라티니 공격은 블라터 회장한테도 나쁠 것은 없을 것 같습니다. 플라티니가 차기 회장으로 당선되기 위해서는 사멸하는 태양이기는 하지만 블라터의 지지기반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블라터로서는 자기가 쥔 카드를 최대한 활용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블라터가 5월 선거에서 자신과 맞섰던 요르단의 알리 왕자나 바레인 출신의 알 칼리파 아시아축구연맹 회장을 밀 것으로 보이지도 않습니다. 한때 피파 사무 부총장으로 블라터 회장의 충복이라 불렸던 제롬 샹파뉴가 플라티니와는 대척점에 서서 입후보한 것에는 블라터의 영향도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일단 피파 윤리위 검증의 족쇄를 푼 플라티니 후보는 최근 영국의 <데일리 텔레그라프> 인터뷰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을 방어했습니다. 그는 "나를 아무리 낮추어 말하더라도, 내가 세계 축구를 가장 잘 운영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본다. 지금 당장 선거운동을 할 수 없지만, 내가 후보라는 것을 확신한다"고 했습니다. 200만스위스프랑에 대해서는 "내가 근로를 제공했나요? 예. 구두 계약도 스위스에서는 법적 효력이 있나요? 예. 9년이 지난 뒤라도 내 임금채권을 주장할 권리가 있나요? 예. 피파가 요구한 임금요구서 내역을 제출했나요? 예. 세금 신고는 했나요? 예"라는 자문자답식으로 해명했습니다. 또 "임금채권을 주장하지 않은 채 5년이 지나면 피파가 내게 돈을 지급할 의무는 없다. 하지마 피파는 완벽하게 이뤄진 계약을 준수하기로 결정했다"라며 깨끗함을 주장했습니다. 불필요하게 통 크게 돈을 지출한 블라터 회장은 졸지에 멋쟁이가 됐습니다.

블라터 회장은 타스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축구는 사람들을 연결시키고, 평화의 다리가 된다. 축구는 규율과 존중으로 인생의 학교가 되고 감흥과 희망을 안겨준다. 내 후임자들은 피파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기구라는 것을 잊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말에는 진실이 담겨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나의 부덕"이라는 동양적 반성이나 책임감은 없어 보입니다. 플라티니의 입후보 자격 인정 뒤 유럽연맹 회원국에서조차 이의를 제기하는 목소리는 거의 없습니다. 웬지 축구의 유럽 패권주의라는 공동의 이익 앞에 말을 현란하게 꾸미고, 공격하고, 때로는 모두 침묵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