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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7월 06일 11시 41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7월 06일 14시 12분 KST

광주유니버시아드 개막식과 집단지성

3일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 개막식 잔상이 남네요. 시간이 가도 떠오르니 성공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국제 스포츠 이벤트는 단순히 경기만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올림픽과 유니버시아드, 아시안게임 등 대규모 행사의 개막식은 나라, 도시의 문화역량을 과시하는 쇼 비즈니스이기도 합니다. 제 머릿속에 남은 강렬한 개막식의 하나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이었습니다. 중국이 국가자원을 총동원해 개막식에서 한자, 공자, 고전 등 중국 문화의 힘을 대형 공연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렸습니다. 지금도 고대식 복장에 머리를 묶은 수많은 참가자들이 장엄한 표정으로 옛날 책인 죽간을 들고 행진하던 모습이 선합니다. 2012년 런던올림픽, 2014년 러시아 소치동계올림픽도 문화강국의 이미지를 주제로 삼았는데, 아마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 개폐회식은 올림픽과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대회 규모가 작고, 전세계로 생중계되는 것도 아닙니다. 국가가 전략적으로 나서 기획하기보다는 중앙정부의 지원을 받은 지방자치단체가 주도를 합니다. 결국은 돈이 결정을 하는데, 아무래도 예산 규모가 작습니다. 광주의 경우 유니버시아드의 개폐회식 행사 비용으로 101억원을 책정했습니다. 지난해 인천아시안게임 개폐회식 총비용(316억원)의 3분의 1입니다.

그런데 아시안게임 때보다 반응은 훨씬 좋았습니다. 생방송 시청률이 6.6%(닐슨코리아 집계)로 나왔는데, 이 정도면 매우 높은 수준입니다. 개막식이 열린 광주월드컵경기장의 열기도 뜨거웠습니다. 유니버시아드 후원사에는 SK C&C, SK텔레콤, 기아자동차, 삼성전자, 아시아나항공 등 여럿인데, 초청받은 후원사의 귀빈들이 자리를 뜨지 않고 끝까지 개막식을 지켜봤다고 합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때의 굴렁쇠 소년 이후 국내에서 열린 여러 차례의 국제 스포츠 이벤트 개막식 행사에서 실망했던 많은 분들이 이번 개막식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봤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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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개막식에서 '태동의 기운'을 주제로 문화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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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개막식에서 개막 축포가 터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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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개막식에서 양학선이 성화를 들고 손을 흔들고 있다.

박명성 총 감독은 지난달 개폐회식 사전 설명회에서 "정말 돈을 적게 썼다. 그러나 알찬 내용을 선물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런데 개막식에 등장한 인물의 면면은 화려합니다. 사물놀이의 김덕수를 비롯해 가수 브라운아이드걸스, 블락비, 유노윤호, 배우 주원, 국악 스타 송소희 등이 그렇습니다. 이들의 출연료는 1회 공연에 수천만원을 넘습니다.

그런데 조직위원회는 지역 네트워크를 활용해 재능기부 형식으로 이들의 선의를 끌어내 교통비나 체재비 등 실비만 지출하는 방식으로 섭외를 했습니다. 이런 대형 공연에서는 사전 리허설도 하고, 시나리오도 읽어야 하는 등 할 일이 많다고 합니다. 그냥 반짝 나가서 공연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합니다. 유노윤호 등은 서울에서도 세 차례 녹음을 하고, 리허설과 실제 출연까지 5~6 차례 시간을 냈다고 합니다. 비용으로 따지면 엄청난 금액이지만 고향에서 열리는 대회에 재능을 기부한 셈입니다. 3년 전부터 유니버시아드 홍보대사를 맡았던 가수 겸 영화배우 수지는 초상권을 무료로 제공했습니다. 유니버시아드 시에프도 찍었지만 돈은 한 푼도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런 식으로 지역의 인물들을 섭외하고 협상하면서 집단적인 지혜를 발휘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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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개막식에서 국악인 송소희가 공연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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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개막식에서 송소희, 주원, 유노윤호, 인선이 축하공연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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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개막식에서 이탈리아 선수단의 한 선수가 태블릿 PC로 개막식 장면을 찍으며 입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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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개막식에서 화려한 불꽃쇼가 펼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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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개막식에서 축하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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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개막식에서 대한민국 선수단이 입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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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개막식에서 개막 축포가 터지고 있다.

개막식 시작 때 공군의 곡예비행단인 블랙이글스의 축하 비행이 있었습니다. 초음속 비행기가 광주월드컵경기장 지붕에 바짝 붙어 날아갈 때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어디선가 '쐐액~' 소리가 나 하늘을 보니 비행기가 남기고 간 연기구름만이 줄지어 있었습니다. 멋진 비행기가 초음속으로 날아가는 모습을 본 것 만으로 막힌 속이 확 뚫리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선명한 장면은 공군이 제공했습니다. 역시 돈이 들지 않았습니다.

젊음이 미래의 빛이라는 주제에 따라 무대 위로 동원된 사람들 가운데는 지역 군부대의 장병 300여명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세계의 젊음을 깨우기 위해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소품을 두들기며 춤추고, 빛의 날개를 들고 고싸움을 벌이듯 달려나가며, 빛과 어둠의 싸움에서 악마로 분장하기도 했습니다. 조선대 무용학과, 조선대 태권도학과, 광주시립무용단, 명지대 뮤지컬학과, 광주시립국극단, 한국응원연합, 한울림예술단의 도움을 받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에 국악인 왕기철씨와 소프라노 한경미가 참여했습니다. 미디어 아트로 세계적인 지명도를 갖고 있는 이이남 교수의 참여도 큰 힘이 됐습니다. 기아차 소울 등 20여대의 차량이 갑자기 무대로 역동적으로 들어오면서 펼쳐졌던 즉석 아트카 페인팅도 광주 지역의 미술가들이 만들어낸 볼거리였습니다.

그라운드 중앙에 작은 큐브들을 모아 구성한 공연 무대는 가장 과학적인 문자로 알려진 한글을 기호화한 형태로 장식했고, 전체적으로 넓게 확장하는 듯한 느낌을 주도록 했습니다. 그 위에서 주원과 송소희, 유노윤호 등이 세계의 젊음이들에게 사랑과 생명의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물론 많은 모티브는 2008 베이징올림픽, 2012 런던올림픽, 2014 소치올림픽에서 따온 듯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예술 세계에서도 홀로 독창적인 것은 없습니다. 런던이나 소치 올림픽이 베이징의 문명·문화 올림픽 개막식의 영향을 받았고, 베이징올림픽의 개막식 또한 많은 영화적인 기법 등 기존의 것들을 차용했습니다. 황태연 동국대 교수는 모든 문명의 발전은 서로 다른 천조각이 모여 작품을 만들어내듯이 문명간 서로 영향을 주는 패치워크 작업을 통해 이뤄진다고 했습니다.

남도의 민요나 사물놀이, 판소리가 곳곳에 들어가고 훈민정음을 활용한 미디어 아트가 동원됐음에도 한국적인 특색이 부족했다는 일부의 지적도 있습니다. 또 정통 연극의 입장에서 보면 뮤지컬적인 요소가 번잡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4만여 관중과 세계 140여국의 7000여 선수단은 매우 흥겨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개막식이 고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임팩트와 이미지, 재미를 주는 것이라면 최소한 관중이 지루함을 느낄 틈을 주지 않은 광주유니버시아드 개막식은 성공한 것으로 보입니다. 훨씬 규모가 커질 평창올림픽 개막식을 준비하는 분들이 바짝 긴장해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