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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5월 31일 07시 18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5월 31일 14시 12분 KST

블라터 피파 회장의 어휘를 통해 본 세계 인식

오랫동안 블라터 회장을 지켜보면서 그의 입에서 가장 많이 나왔던 단어가 '패밀리'(family·가족)가 아닌가 합니다. 그는 피파와 관련된 모든 행사에서 축구인이나, 결정 사항 공개, 중계·후원 파트너 등을 거론할 때 패밀리를 씁니다. 그런데 패밀리라는 뜻이 참 중언적입니다. 피붙이로 이뤄진 가족을 떠올릴 때 우리는 사랑과 평화를 떠올립니다. 또 관용과 자애, 효심 같은 것도 연상이 됩니다. 패밀리라는 말은 동족이나 민족까지 확장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블라터 회장이 패밀리를 말할 때 저는 항상 '마피아식 패밀리'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2010년 피파 집행위에서 2018 러시아, 2022 카타르 월드컵 개최지를 결정하고, 그것을 공개하는 기자회견에서 블라터 회장이 "우리는 패밀리"라고 말한 장면이 기억납니다.

ASSOCIATED PRESS

제프 블라터(79)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은 언어를 잘 구사합니다. 단순히 적절한 단어를 쓰는 것이 아니라 집요한 질문이나 공격에 대해 어찌 반박해볼 도리가 없도록 맥락을 바꾸면서 빠져나가는 데 천재입니다. 우리 나이로 여든 살의 혈색 좋은 블라터의 얼굴엔 기자들과의 산전수전에 영민하게 대응하면서 남긴 주름이 훈장처럼 가득합니다. 독일어,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를 할 줄 아는 배경이 그의 화법을 예술(?)의 수준까지 높인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블라터 회장을 지켜보면서 그의 입에서 가장 많이 나왔던 단어가 '패밀리'(family·가족)가 아닌가 합니다. 그는 피파와 관련된 모든 행사에서 축구인이나, 결정 사항 공개, 중계·후원 파트너 등을 거론할 때 패밀리를 씁니다. 그런데 패밀리라는 뜻이 참 중언적입니다. 피붙이로 이뤄진 가족을 떠올릴 때 우리는 사랑과 평화를 떠올립니다. 또 관용과 자애, 효심 같은 것도 연상이 됩니다. 패밀리라는 말은 동족이나 민족까지 확장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블라터 회장이 패밀리를 말할 때 저는 항상 '마피아식 패밀리'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2010년 피파 집행위에서 2018 러시아, 2022 카타르 월드컵 개최지를 결정하고, 그것을 공개하는 기자회견에서 블라터 회장이 "우리는 패밀리"라고 말한 장면이 기억납니다.

당시 영국이나 미국을 포함해 경쟁에서 탈락한 나라들은 한여름 기온이 45도를 웃도는 카타르에서 월드컵이 이뤄진다는 결정이 나오자 충격을 받았습니다. 도저히 상상하기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집행위원 일부가 카타르의 금력에 표를 판 것이 아니냐는 추측부터 블라터 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작품이라는 의심까지 나왔습니다. 블라터 회장은 발표장에서 특유의 부드러운 미소를 띄며 패밀리라는 말을 사용했는데, '모든 것은 이미 결정됐다. 한 가족 내에서 더 이상 왈가왈부 이론은 있을 수 없다'는 의미를 강조하는 듯 보였습니다.

사실 집행위원회를 구성하는 24명이 피파의 중요한 결정을 하는데, 모든 결정에는 블라터 회장의 영향력이 작용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블라터 회장은 흔히 뇌물이나 불법적인 돈거래에 직접 연루된 적은 없습니다. 외신에서는 이를 두고, "블라터와 부패 사이에는 항상 다른 사람이 끼어 있다"라고 묘사했습니다. 직접적으로 불법행위에 잘 노출되지 않는다는 뉘앙스지만, 실제 사법적으로 문제가 될만한 일을 아예 벌이지 않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블라터 회장이 월드컵 개최지 선정을 둘러싼 매표 행위나 텔레비전 중계권 배분 때의 이권 등에 집행위원들이 개입해 불법적인 거래를 하는 것을 모르지는 않습니다. 2011년 트리니다드토바고 출신의 잭 워너 북중미축구연맹 회장과 모하메드 빈 함맘 아시아축구연맹 회장이 카타르의 2022 월드컵 개최지 선정 과정에서 돈을 주고받은 게 드러나 집행위원 그룹에서 영구 축출된 적이 있습니다. 이후 피파 주도로 두 개최지 선정과정에서의 비리 의혹 조사가 이뤄져 지난해 '가르시아 보고서'가 나온 적도 있습니다. 블라터 회장은 이 보고서의 축약본만 발표한 뒤 "문제가 없다"라고 결론을 낸 바 있습니다. 피파에 대한 부패 추문이 있더라도 자신과는 상관이 없기 때문에 구태여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싶어 하지 않는 생존법으로 읽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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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피파 회장으로 취임한 이래 그 어떠한 공격에 대해서도 블라터 회장은 "깨끗하다"며 발끈했습니다. 축구용어인 페어플레이(fair play·정정당당한 경기)를 블라터 회장이 잘 쓰는 이유입니다. 혹시 기자들이 심기를 건드리는 불편한 질문을 하면 '리스펙트'(respect·존중)를 사용하면서 예의를 촉구하기도 합니다. 디시플린(disciplne·규율)이나 레이시즘(racism·인종차별) 반대, 책임(responsibility)도 블라터 회장이 자주 사용하는 어휘 목록입니다.

블라터 회장이 강조하는 또 다른 단어로는 디벨로프먼트(develpment·개발)가 있습니다. 원래 비즈니스 마인드가 뛰어난 블라터 회장은 월드컵 참가국 확장을 바탕으로 한 텔레비전 중계권 수익 극대화, 피파의 상업적 권리 확대 등을 통해 피파를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스포츠연맹으로 만들었습니다. 4년 주기로 열리는 월드컵 사업으로 재정을 확충하면서 제3세계 축구나 여자축구, 청소년 축구를 위한 골(GOAL) 프로그램 투자액만도 10여년간 수십억달러를 넘습니다. 유럽이나 남미 중심에서 벗어나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도 월드컵을 개최하도록 했고, 이젠 중동 국가에까지 월드컵 개최권을 주었습니다. 가장 유럽적인 사람이 축구의 시장성을 비유럽에서 찾은 혜안으로 비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긍정과 부정의 양면적 인물인 블라터 회장의 앞길은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5월27일 스위스와 미국의 사법공조로 북중미축구연맹 회장, 남미축구연맹 회장, 전 북중미축구연맹 회장, 코스타리카축구협회 회장 등 전현직 집행위원이 스위스의 호텔에서 체포됐습니다. 지금까지는 스위스 당국은 피파 안팎에서 벌어지는 잡음에도 인신을 체포하는 방식으로 접근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전 세계 부패와도 일전을 벼르고 있는 미국의 압박으로 피파 본부를 압수수색하기도 했습니다. 피파가 스위스를 알리는 대표적인 스포츠단체라 하더라도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눈감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현했습니다.

블라터 회장은 그동안 영국을 중심으로 한 유럽축구연맹 내 반 블라터 전선의 압박에 꿋꿋이 버텨왔습니다. 영국 언론은 "악취가 진동하는 쓰레기 더미의 꼭대기에서 블라터는 혼자 '장미 냄새가 난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블라터 회장을 비꼽니다. 하지만 블라터 회장은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오히려 축구의 발전을 위해서는 자기가 한번 더 해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였습니다.

블라터 회장이 부패와 관련이 없다고 하더라도 도덕적 책임을 지고 내려와야 한다는 주장이 확산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위기 의식은 블라터 회장의 언어에도 드러났습니다. 총회 전 "이번 사건은 창피하고 부끄러운 일"이라고 운을 뗀 것입니다. <비비시>는 "그동안 블라터 회장의 어휘 창고에 들어있지 않은 말"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블라터 회장은 "내가 개인들을 일일이 조사해볼 수도 없는 일"이라며 발뺌하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29일 피파 총회에서 5선에 성공한 블라터 회장은 "나도 완벽하지 않고, 모두가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리는 함께 일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채울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또 "내가 피파의 위기를 헤쳐나갈 적임자로 인정받았다"며 정당한 방법을 통해 회장에 재선됐음을 강조했습니다.

영국을 중심으로 한 유럽 언론은 앞으로 블라터 회장에 대한 공격을 더 거세게 펼칠 것으로 보입니다. 무엇보다 미국 법무부가 피파 부패 문제에 대한 2차 기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블라터 회장이 사법적 처리의 포위망을 피해간다 하더라도 피파의 최고 책임자로서의 권위의 실추는 더 가속화할 것입니다. "나는 산양처럼 (불굴의 의지로) 전진만 한다"는 블라터 회장은 더 이상 갈 수 없는 절대 암벽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피파 회장 5선 당선이 그땐 노욕이라는 판정을 받을 것이 확실합니다. 그의 현란한 말은 신뢰를 잃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