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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1월 19일 06시 32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1월 19일 06시 32분 KST

1987년 이후, 선거가 망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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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에 나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고약한 최루탄 냄새는 중학교 때부터 익숙했다. 학교 근처에서 종종 시위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최루탄이 터지면 눈물 콧물을 다 쏟아야 했지만 그런 날은 일찍 하교하는 날이라 좋기도 했다. 고등학교에선 운동장에 대학생들이 '삐라'를 뿌리고 도망쳤다. 그러면 선생님들은 전교생에게 창문 여는 것도 금지했다. 어느 날, 지리 과목 선생님은 수업 시간에 들어와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늘은 의미있는 날이니까 자습해라." 우리는 한 시간을 놀 수 있어 좋았고 선생님은 내내 창밖을 바라보셨다. 그땐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다만 평소엔 장난스레 수업을 하던 선생님이 갑자기 진지해질 만큼의 일이란 건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나중에야 그날, 노태우가 대통령 직선제를 선언했음을 알았다. 역사는 이를 '민주화 항쟁'이라고 부른다는 것도 뒤늦게 알았다.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뽑는 것은 좋은 일이다. 군인들의 총칼이 아니라 국민들의 표가 모여서 선출된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하지만 전두환과 노태우는 시대의 흐름에 밀린 것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을 타는 전략을 짰다. 직선제를 한다고 해도 노태우가 당선된다면 정권 유지라는 큰 그림은 변함없기 때문이다. 투표는 다수결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민주적이지만 누구든 단 한 표만 더 나와도 당선이 되고 권력을 독점한다는 점에서는 전혀 민주적이지 않다. 후보 입장에서 선거란, 국민 모두들의 지지를 모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지지할 표를 모으는 게임이다. 이제 거래가 가능해졌다. 그렇다면 짧은 선거 기간 동안 누구와 거래하는 것이 가장 좋을까? 답은 의외이기도 하고 한편 뻔하기도 하다.

화제의 영화 <1987>을 보면 종교인들의 활약이 민주화에 큰 기여를 한다. 종교가 강자의 횡포와 억압에 맞서고 약자를 보듬고자 할 때는 바로 그런 모습이다. 하지만 투쟁의 성취 이후 열린 1987년 12월의 대선은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이라는 강력한 3자 대립 구도였고 공교롭게도 각 후보의 종교가 달랐다. 노태우는 불교, 김영삼은 개신교, 김대중은 천주교였다. 하릴없이 대선은 종교전이 되었다.

다급했던 노태우는 한국의 대선 역사에서 종교계 공약이란 걸 처음 만들기도 했다. 불교방송국 건립을 약속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다음 1992년 대선에서 개신교가 김영삼 대통령 만들기에 전력을 기울인 것도 별스러울 게 없다. 지금은 모든 후보가 종교계 공약을 발표할 뿐 아니라, 종교계는 아예 공식적으로 자신들의 이익에 맞춘 정책 요구안을 발표한 뒤 각 후보들에게 수용하지 않으면 낙선 운동을 펼치겠다고 한다.

물론 1987년 이전에도 정치와 종교는 가까웠지만 그때는 독재자들이 종교를 적절히 활용하고 종교는 권력의 편에서 이익을 탐하거나 민중의 편에서 저항하는 두 갈래가 선명했다. 그러나 1987년 이후 대통령부터 지방의원, 자치단체장, 교육감 선출까지 선거가 늘어나면서 덩달아 잘 조직된 유권자 모임으로서 표 거래 시장에서 종교의 입지가 더 높아졌다. 특히 작은 지역 단위로 갈수록 영향력이 강했다. 대형 교회나 사찰 등 종교 기관이 있는 지역구에서 정치인들은 신도 등록부터 하고 얼굴을 들이밀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곳이 되었다. 국회의원부터 시장, 구청장, 도의원, 시의원 가릴 것 없다. 지난 몇년 동안 이런 높은 분들에게 정책 건의를 하기 위해 몇번이나 면담 신청을 해서 겨우 10분이라도 시간을 얻어 만나보면 늘어놓는 변명이 놀랍게도 비슷했다. "아이고, 우리 교회 목사님이 전화해서 어찌나 뭐라고 하시는지 저도 힘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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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무엇이 힘든 것일까. 목숨을 걸고 지키려고 했고, 바꾸려 했고, 얻어내려고 했던 역사들은 쌓였는데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 것일까? 지난 15일 충남도의회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자신들이 6년 전에 만든 '충남인권조례'를 폐지하겠다고 나섰다. 지역의 교회들이 인권조례가 동성애와 이슬람을 용인할 우려가 있다며 반대하니 도의원들이 눈치를 본 결과다. 6월로 다가온 선거 때문일 터이고 표를 향한 거래가 이미 시작된 셈이다.

성직자는 신 가까이에 있지 않고, 정치인은 시민 가까이에 있지 않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아직 우리 곁에 오지 않았다.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이 아니라 정교유착의 꽃으로 피고 또 피는 한은 그러할 것이다.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