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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15일 10시 33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12월 16일 14시 12분 KST

이번엔 정말 끝까지 함께

Kim Kyung Hoon / Reuters

편의점이나 마트에 가면 '1+1'(원 플러스 원) 표시가 있는, 하나 사면 하나를 덤으로 주는 이벤트 상품부터 눈여겨보곤 한다. 왠지 알뜰한 소비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들려오는 뉴스에 따르면 지난 대통령 선거가 이런 이벤트 행사 상품이었나 하는 착각마저 든다. 한 명의 대통령을 뽑았는데 최순실이라는 비공식적 대통령이 하나 더 따라왔다. 게다가 유통기한이 지났다고 생각했던 "김기춘표 유신 회귀"도 슬쩍 같이 포장되어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공짜를 좋아한다지만, 이런 끼워 넣기 이벤트를 청와대에 기대한 국민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와야 했다. 속았다고 해도 좀처럼 반품과 환불이 되지 않는 곳이 정치판인지라, 부조리한 이 거래들을 바로잡기 위해서 국민들은 촛불을 들고 광장에서 모여서 외쳐야만 했다.

10월 말부터 시작된 촛불집회가 가진 큰 의미 중의 하나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가졌던 오랜 '정치 혐오'를 스스로 떨쳐냈다는 점이다. 정치에 대한 환멸과 염증은 곧 무관심으로 변하고 결국 대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통로인 선거의 투표율 저하로 이어진다. 국민들의 정치 혐오가 높아질수록 정치인들은 더욱 제멋대로 정치를 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촛불을 드는 것은 그 자체로 가장 정치적인 실천이다. 선거가 아닌 때에, 직접적으로 민의를 받아들이라고 강하게 의견을 표명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탄핵까지 했으니 이제 법치 국가의 시민답게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침착하게 기다리자, 개헌부터 하자는 식의 주장도 나온다. 두 번 속지 말자. 다시 끼워팔기를 하려는 교묘한 말장난일 뿐.

전국에서 울려 퍼진 '박근혜 즉각 퇴진' 구호가 정말 대통령만 물러나라는 뜻이겠는가. 대통령은 면책 특권이 없는 상태에서 수사를 받으라는 뜻이며, 이어 대통령 주변에서 그 모든 공무를 개인적 이해관계로 만든 측근과 공직자들, 국민의 안전과 목숨보다 정권의 유지에만 골몰한 정치인들, 그 사이 자신들의 지갑부터 채웠던 기업인들까지 모두 처벌해야 한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세월호 7시간' 동안 대통령이 무얼 했는지가 아니라 해야 할 그 무엇을 안 했는지가 핵심이다. 무능한 청와대와 해경뿐만 아니라 이전 정권의 부패에서 이어져온 결과라는 것도 국민들은 알고 있다. 이 모든 것을 바꾸려는 것이다.

과거와 다른 미래를 준비하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우리 내부의 '이질성'이다. 광장에서 만나기 전에 우리는 같은 시민으로서 만났던가? 서로를 알고 있었던가? 이화여대 김은실 교수는 '더 많은 이질성이 살아 있는 것이 민주주의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서로 다르기에 낯설다. 낯섦은 자연스럽다. '단일한 대오'에 대한 환상을 버리자. 광장 내의 성추행, 여성과 장애인 등의 비하 발언에 대한 문제 제기를 일부의 예민함으로 다루려는 편협함도 버리자. 우리가 '단일'해야지만 이기는 건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힘은 "모든 국민은 아무도 똑같게 태어나지 않았고, 인간으로서 존엄하며, 법 앞에 평등하다"는 원칙에 대한 믿음이 아닌가. 그런 믿음이 없다면 생면부지의 수백만명이 어떻게 한자리에 모여서 같은 구호를 외칠 수 있을까.

곧 정치인들이 다시 '혐오의 정치'를 작동시킬 것이다. 선거를 앞두고 자신이 과거에 했던 말들을 뒤집고, 국민의 일부를 '비시민'으로 만들면서 표밭을 다지려고 할 것이다. 성적 소수자 인권을 부정하고, 여성을 비하하고, 장애인을 분리하고, 청소년을 소외시킬 것이다. 지지자들은 '당선'이란 대의를 내세우며 소수자를 향해 '입을 다물라'고 요구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촛불이 깨어질 것이라 예상하는 이들은 지금 유유히 선거를 준비한다.

'원 플러스 원'과 같은 동질함으로 묶지 말고 더 많은 이질성을 상상하자. 익숙한 관습적 차별을 없애고 평등의 실현을 위해 애쓰는 것을 포기할 수 없다. 몇몇 상징적 인물을 감옥에 보내고, 집권당 간판을 바꾸는 게 끝이 아니다. 공정한 선거가 시행되고, 정경유착과 정교유착도 끊어야 한다. 지금 타오르는 '촛불'이 '혁명'이 된다면 한국 근대사를 관통해온 권력과 부의 세습을 불태우는 것이리라. 분명 우리는 지난 몇 달 동안 서로의 존재에 감동을 받았다. 이번엔 끝까지 싸우자. 꼭 함께.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