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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2월 26일 11시 11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2월 26일 14시 12분 KST

여행에서 자아를 찾을 수 있을까?

부모님과 공항에서 작별 인사를 하고 라운지에 앉아 차가운 샌드위치와 맥주를 마시며 탑승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매달 공항에 오니 이제 면세점에서 살 것도 없군.'하고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데, 옆에 앉은 남녀의 대화를 우연찮게 듣게 되었다. 둘은 여기서 처음 만나는 사이인 것 같았는데, 남자는 긴 여행을 여자는 짧은 휴가를 떠나는 모양이었다.

남자가 말했다. '한국 사람들은 일하기만 하고 자아가 없어요. 다 똑같이 살아. 난 그렇게 살기 싫어서 세계를 떠돌아다니는데 외국은 참 사람 사는 곳 같아요.'

한국의 노동시간이 OECD 국가 가운데 매년 1위 아니면 2위를 찍으며 세계적으로 악명을 떨치는 건 우리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리고 나 역시 20살에는 누가 들었음 직한 대학에 가고 27살쯤에 취업을 하고 연봉은 얼마 정도가 되어야 하며 30살이 넘으면 결혼을 해 몇 평 정도의 신혼집을 마련해야 한다는, 모두가 줄자 위를 걸으며 내가 어디 정도인지 끊임없이 주변을 둘러봐야 하는 그 분위기에 질식할 것 같아 한국을 떠나온 것도 있다.

하지만 여행을 많이 하면 인생을 더 잘 아는 걸까? 그리고 자아를 찾을 수 있을까?

내 10년 여권에는 10여 개국 정도의 도장이 찍혀있다. 그중 2군데 정도는 여행이 아닌 '생활'을 했다.

여행은 소위 말하자면 일탈이다. 내가 사는 터전을 벗어나 다른 나라에 가서 유명한 곳을 보고 맛있는 것을 먹고 외부인을 위해 마련된 숙소에서 돈을 내고 잔다.

그러니 여행은 필연적으로 '생활'과 정반대의 방향이다. 그 나라가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것을 보고 또 외국인을 기꺼워하는 사람과 대화를 하다 오기 때문이다. 거기서 돈을 벌고 현지인과 부대끼지 않는 한 여행은 아무리 오래 해도 여행일 뿐이다. 나 역시 여행의 그런 속성 때문에 가끔 일상에서 매너리즘을 느낄 때 비행기를 타고 낯선 이국으로 날아가 야시장을 보고 웅장한 건물에 감탄하고 호텔에서 룸서비스를 시켜 먹는다. 그리고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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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CK UP

여행자로 사는 삶은 일상이 매일 이벤트일 것이다. 여행은 여행일 뿐 그 자체가 삶이 될 수는 없지 않을까.

먹고사니즘이란 지루하고 고단하고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이다. 지구 반대편이라고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제냐 수트를 입고 왼손으로 샌드위치를 씹으며 오른손으로 문자를 보내며 걷거나 혹은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과일을 팔며 손을 저어 손님을 부르는 것 모두 그들에게는 현실이다.

나는 언젠가 잠깐 머물 갠지스강이나 페어뱅크스에 내 자아가 숨겨져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생활은 단단한 땅을 딛고 있다. 나는 일상성이 반복되는 찌든 책상과 그 위에 놓인 맥북 화면 속에서 가장 나다운 나를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