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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2월 16일 07시 28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2월 16일 14시 12분 KST

나이 드는 데도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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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놓고 말해보자. 한국에서 나이를 먹으면 인자하거나 현명하거나 지혜로워지긴커녕 대부분 점점 이상해진다. 나쁜 쪽으로 말이다. 50대 이상의 중년이 말하는 거 들어보면 내가 어리니까 참고 들어준다 싶은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안 배운 사람은 안 배운 대로 배운 사람은 배운 대로 못 들어주겠다 싶은 말을 한다. 그들의 '유모아'는 가끔 불쾌함을 넘어서 녹음한 것을 갖고 법원에 갈 수 있을 정도다.

70대 이상의 노인은 교육을 못 받고 먹고살기 바빠서 이렇구나 생각하지만 부모님 세대 혹은 그 이하가 그런 식으로 나를 앉혀두고 자기 연설을 하기 시작하면 내 머릿속에는 '빨리 여기를 도망쳐야겠어.' 말고는 생각나는 게 없다. 이건 뭐 재미도 없고 교훈도 없으니까요.

나이가 들면 말의 길이를 통해 자기의 존재에 대해서 확인을 받고 싶어 하는 것일까. 그리고 왜 우리는 나이를 먹었다는 이유만으로 노인을 공경해야 하며 그들에게 배울 것이 있다는 것을 늘 전제로 깔고 살아야 할까. 투표 결과를 봐도 아니 그냥 지하철만 타도 나이 드는 것이 지혜와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말이다.

내가 서울에 올라와 머물렀던 오피스텔과 원룸의 주인은 다 노인들이었다. 그들처럼 1억에 사둔 건물이 지금 10억이 되어 한 달에 꼬박꼬박 월세가 들어오는 그런 노후는 우리에게 없을 것이다. 손에 굳은살이 밴 청년이 170만 원을 버는 게 소원이라고 말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어쩌다 형편이 좀 더 나아지면 우리는 등산을 하거나 골프를 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 중년의 취미 선택 범위가 다양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이가 좀 더 들면 나도 젊은이를 앉혀놓고 내가 너만 할 때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야기할 것이다. 눈으로는 사치품을 알고 머릿속은 외제 브랜드로 빠삭하지만, 어릴 적부터 IMF로 시작해 언제나 뉴스는 경제 위기를 이야기하고, 캄캄한 터널 속을 걸으며 '그래도 저 끝에는 빛이 있을 거야.'라고 믿었던 시대를 말이다. 마무리는 '그러니까 노력을 해!'라고 하겠지.

그런 노인이 되기는 싫고 그렇다고 노인이 되기 전에 죽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멋진 노인이 되기는 더더욱 어렵다. 안재욱 결혼식에 못 간 조세호처럼 말해보자면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되라는 거예요!'

어릴 적에 떡국을 두 그릇 먹으며 '난 두 그릇 먹었으니까 두 살 더 먹었다!'하고 사촌동생들과 웃던 설날이 기억난다. 그에 반해 31살인 지금은 저녁에 세수하고 마치 종교 의식처럼 경건한 자세로 7단계의 스킨케어를 하며 조금이라도 늙어 보이지 않으려 애쓴다.

한 살 한 살 먹어갈수록 사는 것은 좀 더 나아지고 있지만 나이에 책임을 지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노인이 되었을 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지금부터 노력해야 한다. 멋진 노인의 롤모델이 없는 나라에서 곱게 늙기란 쉬운 일이 아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