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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7월 14일 09시 57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7월 14일 14시 12분 KST

셰프와 음식광고

직업인으로서 셰프가 갖는 매력은 무엇보다 음식에 대한, 맛에 대한 엄밀함, 엄정함일 거다. 몇 해 전 셰프가 등장했던 드라마도 그런 모습으로 셰프의 매력을 연출했고, 지금 셰프의 전성시대도 그 이미지에 힘입은 바가 클 거다. 그 이미지대로라면 셰프는 음식이 맛없으면 그게 자기가 만든 것이든, 남이 만든 것이든 목에 칼 들이대고 '맛있다'고 말하라고 협박해도 안 들을 것 같다. '입맛 따라 다른 거지', '어차피 뱃속에 들어가면 다 똑같잖아' 같은 말을 그들은 용납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런 셰프가 남이 만든 음식을, 돈 받고 맛있다고 광고한다?

gettyimagesbank

셰프 전성시대다. '셰프'라는 말을 듣기 시작한 지 몇 해 안 되는 것 같은데 어느새 그 셰프들이 텔레비전을 점령했다. 요즘은 너무 자주 나와 식상할 정도다. 그래도 셰프라 부르든, 요리사라 부르든 나도 그들이 좋다. 간단한 말 한마디로 그들의 요리가 취미를 넘어 장인의 영역에 있음을 드러낼 때 정말 멋있다. 요리 실력에 더해 구사하는 언어와 웃는 표정도 매력적이어서 내가 팬이 돼버린 셰프도 있다. 그런데 불편할 때가 있다. 셰프가 음식 광고에 나오는 걸 보면, 뭔가 개운하지 않고 속이 얹힌 것 같다.

직업인으로서 셰프가 갖는 매력은 무엇보다 음식에 대한, 맛에 대한 엄밀함, 엄정함일 거다. 몇 해 전 셰프가 등장했던 드라마도 그런 모습으로 셰프의 매력을 연출했고, 지금 셰프의 전성시대도 그 이미지에 힘입은 바가 클 거다. 그 이미지대로라면 셰프는 음식이 맛없으면 그게 자기가 만든 것이든, 남이 만든 것이든 목에 칼 들이대고 '맛있다'고 말하라고 협박해도 안 들을 것 같다. '입맛 따라 다른 거지', '어차피 뱃속에 들어가면 다 똑같잖아' 같은 말을 그들은 용납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런 셰프가 남이 만든 음식을, 돈 받고 맛있다고 광고한다?

사람들은 광고 모델이 제품을 선전하는 말이 그의 양심이 아니라는 걸 안다. 거꾸로 모델의 양심과 무관하다는 전제 아래서 광고가 성립한다. 톱스타들이 국산 맥주 맛있다고 할 때, '너 그 말 진짜야?'라고 되묻지 않는다. '저놈 거짓말한다'라고 분노하지 않고, '저 맥주가 갑자기 맛있어졌나봐'라고 속지도 않는다. 그 배우가 광고 출연료 받고 그의 이미지를 팔든가, 혹은 빌려줬다고 생각한다. 어쩌다 그 이미지 때문에 한병 사 마실 수도 있다. 그뿐이다.

그런데 그가 하는 일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그의 노동이 생산해내는 것과 같은 유형과 층위의 제품을 광고한다면 그때도 그렇게 볼 수 있을까. 음식 만들어서 이름 날리는 사람이 '맛있다'고 할 땐, 그 앞에 '나도 음식 만들어봐서 아는데'라는 전제어가 깔린다. 그의 양심과 무관한 말로 들리기 힘들 거다. 그렇다면 그가 정직하게 맛있다고 말할 수 있는 음식만 골라서 광고하면 되지 않느냐고? 다른 이가 만든 음식이 정말 훌륭해서 감동받았을 때, 동종 업자로서 칭찬해줄 수 있다. 단, 돈 받지 않고 그럴 때만이 의미를 얻을 수 있다. 돈 받고 광고에 나가는 한, 그의 정직함은 무용지물이다.

텔레비전 토크쇼에 선후배 가수가 나와 한 말이 떠오른다. 후배 가수 왈, 오래전에 선배 가수가 광고 출연하지 말라고 했단다. 창작하는 사람이 상업광고에 나오는 거 아니라고. 거기엔 이런 의미가 있었을 거다. 광고주가 창작하는 사람에게서 사려는 이미지가 '창작자의 엄밀한 감성'일 텐데 그걸 팔아서는 안 된다고. 그랬던 선배가 시간이 지나 먼저 광고에 나갔다는 얘기를 후배가 했고 출연진 모두 우스개로 들으며 웃었다. 전과 달리, 가수의 광고 출연이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광고(출연)에 대한 저항감이 누그러졌다는 얘기다. 그만큼 광고의 시대에 산다. 어느 영역에서든 유명해지면 방송 나오고, 그 뒤엔 광고 출연하는 게 자본주의 시대 성공한 모습의 전형적인 패턴일 거다.

그렇게 생각해도 불편함이 남는다. 내가 만든 음식을 팔아 돈을 벌면서, 남이 만든 음식을 광고해서 또 돈을 번다? 그럴 수 있지만, 자기 음식에 몰두하는 쪽이 더 신뢰가 가지 않나. 최소한 그쪽이 더 직업적 자긍심이 있어 보이지 않나. 그가 광고하는 거대 식품산업은 어쩌면 그가 명예를 걸고 경쟁해야 할 골리앗 같은 상대일 수도 있을 텐데.... 시간이 더 지나면 이런 불편함도 누그러질까.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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