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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9일 07시 04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12월 19일 08시 53분 KST

포인트, 쓸까 포기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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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을 바꾼 게 발단이었다. 가맹점에서 네 달 동안 보조금을 줄 테니 비싼 요금제를 쓰라고 했다. 요금제를 바꾸니 '브이아이피(VIP) 고객'이라며 서비스 안내문이 왔다. 신용카드 쓸 때, 자동차 기름 넣을 때 마일리지나 보너스를 챙겨보다가 별 이득이 없다 싶어 신경 안 쓴 지 오래됐다. 이전에도 핸드폰 '브이아이피 고객'이 된 적이 있는데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번에 보니 혜택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특히 기존의 포인트 10만점에, 10만점을 더 준다고 했다. 그러면 1년에 20만점, 20만원인데 이건 서비스라고 하기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거 아닌가 싶었다.

20만원쯤 되니 생각이 달라졌다. 안 쓰면 아깝잖아. 아니 손해잖아. 어차피 나 포함한 고객들이 지불한 돈으로 주는 걸 텐데. 그런데 이걸 올해 안에 어떻게 다 써? 빵이나 피자를 얼마나 먹으라고. 결국 만만한 게 15%까지 할인해준다는 편의점이다. 편의점에서 1000~2000원어치 사면서 포인트를 쓰기도 그렇고, 또 포인트를 하루 한번밖에 못 쓴다고 하니 한번 갈 때 물건을 많이 사는 버릇이 생겼다. 내가 좋아하는 술은 할인이 안 된다고 하고, 그래서 라면, 햇반, 잘 안 먹던 청량음료와 과자 같은 게 집에 쌓였다.

포인트로 영화를 보려니 절차가 전보다 까다로웠다. 전에는 멤버십카드를 매표소에 보여주면 됐는데, 이젠 멤버십카드 사이트에서 영화를 예매해야 한다. 거기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뭐였더라.... 전에 그 사이트에서 오래된 비밀번호 안 바꾸면 안 된다고 해서 뭘로 바꿨더라.... 핸드폰 바꾸고 공인인증서 깔았나.... 신용카드 앱의 비밀번호는 뭐더라....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실직 노인 다니엘 블레이크가 인터넷으로 실업급여 신청한다고 쩔쩔매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 노인은 인터넷뿐 아니라 신자유주의 관료제 속에 고생하다가 죽는데, 이 글이 그렇게 갈 얘기는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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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서비스라도 그 금액이 제품 가격의 20%에 이르면 제품의 일부로 보는 게 맞을 거다. 제품의 일부로 보는 게 맞는다면 쉽게 다 쓰게끔 해줘야 한다.(올해에도 통신사 멤버십 포인트의 59.3%가 사용되지 못한 채 소멸될 거라고 한다.) 또 그 서비스를 쓰는 데 인터넷 가입, 결제 같은 절차를 요구하는 건 노령화시대의 소비자 차별일 수 있다. 더 근본적으로는 서비스 마케팅이 제품의 일부로 인식될 정도로 규모가 커지면, 서비스 아닌 제품의 가격 인하로 이어지도록 유도하는 게 맞지 않을까. 마트에서 고기나 가전제품 살 때도, 신용카드에 따라 약간의 가격 차이를 둘 수는 있어도 그 차이가 제품가의 10~20%가 되면 본말이 전도된 것 아닌가. 이 물건 사는 가격을 저 물건 살 때 주고, 이 물건 사면서 내가 쓰지도 못하는 저 물건을 함께 받는 게 지나치게 일상화되고 있는 것 같다.

아무튼 난 올해가 다 간 지금, 멤버십 포인트를 5000점 남겨 놓고 다 썼다. 열심히 써서라기보다 가맹점의 보조금 제공이 끝나 이전의 요금제로 돌아갔더니 통신사에서 포인트 10만점을 고스란히 도로 빼갔다. '네 달 동안 브이아이피였으니 그만큼의 포인트는 남겨놔야 하는 거 아니냐'며 다퉈보려다가 말았다. 그 시간과 신경 씀을 다른 데로 돌리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포인트 열심히 챙겨 써서 라면과 과자만 쌓이지 않았나. 소비자인 내가 포인트에 대해 선택할 건 '스트레스 감내하면서 적은 돈이라도 챙길 거냐, 포기하고 속편함을 얻을 거냐' 둘 중 하나일 거다. 내 친구들? 챙기는 이가 가뭄에 콩 나듯 했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