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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13일 05시 20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12월 14일 14시 12분 KST

청문회 질의와 명예감정

연합뉴스

지난주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1, 2차 청문회에서 국회의원들이 잘했다고 말하는 사람을 주변에서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칭찬은커녕 욕을 하는데 그 수준이 장난이 아니었다. 거기에 비하면 언론은 물론, 에스엔에스(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실린 청문회에 대한 비난까지도 훨씬 순했다. 왜? 대통령 탄핵 투표가 코앞에 있었기 때문일 거다. 탄핵 가결을 바라는 마음에 국회에 대한 비난을 자제했을 거다. 이번주부터는 다를 것 같다.

청문회 의원들에 대한 비난은 크게 보면 하나다. 언론 보도나 검찰 수사로 이미 알려진 것 외에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지 못한다는 거다. 과격한 표현이나 모욕적 언사가 도마에 오르기도 했지만, 그런 말들이 치밀한 준비와 계산 아래 나와서 증인의 입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끌어냈다면 비난받지 않았을 거다. 인터넷의 댓글들을 보면 확실히 시대가 바뀌었다. 성과 없이 증인에게 모욕 주고 고함만 치는 걸 반기는 국민은 드문 것 같다. 명예감정을 자극하는 것과 명예감정을 밟는 건 전혀 다른 일이다.

'어 퓨 굿 맨'(1992년, 롭 라이너 감독)이라는 영화 속 법정에서, 증인의 명예감정을 절묘하게 자극해 증인 스스로 자기 죄를 발설하게 만드는 대목이 나온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증인으로 나온 2차 청문회 뒤의 술자리에서, 옛날 영화임에도 이 영화를 말하는 이들이 여럿 있었다. 쿠바의 관타나모 미군기지 안에서 벌어진 실화에 픽션을 보태 만든 영화다. 기지 안에서 미군 사병이 다른 사병의 구타로 숨졌다. 폭행한 사병들의 재판을 맡은 군법무관(톰 크루즈)은, 이들의 폭행이 비인간적일 정도의 군기를 강요해온 부대장(잭 니컬슨)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는 심증을 얻지만 물증이 부족하다.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어 애타는 건 이번 청문회의 국회의원들과 마찬가지일 거다. 영화 속 군법무관은 부대장의 캐릭터를 연구한다. '최전방에서 고생하는 나로 인해 편안히 이불 덮고 자는 놈들이 감히...' 하는 식으로 말하는, 옳든 그르든 자기 확신에 찬 인물. 그라면 다를 거다! 군법무관은 부대장을 증인으로 부르고, 부대장에게 불리한 증언을 할 공군 사병도 증인으로 부른다. 부대장은 법정에 나와 공군 사병을 보고 긴장한다. 하지만 군법무관이 미리 파악한 공군 사병의 답변은 "기억나지 않는다"였다. 군법무관은 시치미 뚝 떼고 부대장을 신문하고 서로 싸우듯 몰아붙여 가혹행위를 지시했다는 자백을 받아낸다.

군법무관이 물증도 없이 모험을 감행하는 건 물론 영화적 설정이지만, 영화라고 봐도 군법무관은 최소한 공군 사병을 출두시키고 그를 이용해 어떻게 부대장을 신문할지 주도면밀하게 준비했다. 명예감정을 자극하는 것과 밟는 것의 차이? 그런 준비를 하느냐 아니냐일 거다. 준비 없이 다 아는 사실로 증인을 호통치는 건 명예감정을 밟는 일밖에 되지 못한다. 청문회 증인의 상당수는 공무원이거나 준공무원이다. 조금이라도 자긍심이 있거나 있었을 거다. 질문법이 달라야 한다. '호통만 친다 = 준비한 게 없다'는 등식은 이제 삼척동자도 아는 청문회 시청법이 됐을 거다.

이번 국정조사는 국가 시스템이 어떻게 이렇게 망가질 수 있는지 철저히 파헤치는 자리여야 한다. 그를 통해 어떻게 복원하고 예방할지 단서를 찾는 자리여야 한다. 국회도 국가 시스템의 한 부분이다. 사람들은 국회가 시스템이 망가진 원인과 복원하고 예방할 단서를 찾아낼 능력이 있는지 눈여겨볼 거다. 이 국회는 믿을 만한지 확인하는 일을, 박근혜 정부의 실정에 분노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게 여길 거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