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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1월 01일 09시 33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1월 01일 14시 12분 KST

문명과 야만

올해는 한국이 근대화의 길로 접어든 지 140년 되는 해이다. 1876년 강화도조약을 기점으로 한국은 근대문명과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편입되었다. 한국의 근대는 63빌딩, 자동차, 휴대폰, K-2 전차를 만들어낸 것보다도 더 결정적으로 그것이 만들어낸 인간의 품질에 의해 평가되어야 한다. 문명의 품질은 인간의 품질이다. 근대 한국인은 어떤 인간인가? 전근대의 한국인과 어떻게 다르고 얼마만큼 문명적이거나 또는 야만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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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한국이 근대화의 길로 접어든 지 140년 되는 해이다. 1876년 강화도조약을 기점으로 한국은 근대문명과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편입되었다.

"한국은 자주국으로서 일본과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강화도조약 제1조)

강화도조약 제1조는 말그대로 조선이 그동안의 중국 중심 질서에서 벗어나 일본이 주도하는 아시아판 근대 세계 체제에로 미끌어져 들어갔음을 명료하게 보여준다. 이후 역사는 우리가 알다시피 조선의 멸망, 식민지, 분단, 전쟁과 군사독재, 자본주의 발전으로 이어져왔다.

근대화는 일종의 문명화 과정이다. 그것은 통상 중세 봉건체제를 벗어난 자유와 해방의 과정으로 이야기된다. 하지만 이것은 서구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고, 서구에 의해 정복과 지배의 대상이 된 비서구 지역에게는 오히려 피지배와 종속의 과정이기도 했다. 이처럼 근대화는 자유와 해방 또는 피지배와 종속이라는 두 개의 상반된 서사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면 근대화를 주도하지 못하고 식민지를 통해 경험한 우리의 근대 서사는 후자인 것일까? 물론 현실은 이 두 서사 사이 어딘쯤인가에 위치할 것이며, 그 중간에서 진동할 것이다.

"문명의 기록치고 야만의 기록이 아닌 것이 없다"는 발터 벤야민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문명과 야만의 관계는 단순하지 않다. 문명은 야만의 반대말이지만, 사실 어떠한 문명도 그 안에 야만을 포함하지 않는 경우는 없다. 서구 근대문명도 마찬가지이다. 근대문명은 문명이자 동시에 야만이기도 하다. 다만 우리의 근대는 그중에서 어느 부분을 더 많이 포함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문명과 역사라는 것이 결국 인간 극장이라고 보면, 우리가 그에 대해서 물어야 할 것도 역시 인간이다. 그러니까 어떠한 문명과 역사에 대한 우리의 최종적인 심문은 그 문명과 역사가 어떠한 인간을 만들어내었는가 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물음을 우리 자신에게 적용하면, 한국의 근대는 어떠한 인간을 만들어내었는가 하는 것이 되겠다. 한국 근대에 대한 평가도 최종적으로는 이것이 될 수밖에 없다.

한국의 근대는 63빌딩, 자동차, 휴대폰, K-2 전차를 만들어낸 것보다도 더 결정적으로 그것이 만들어낸 인간의 품질에 의해 평가되어야 한다. 문명의 품질은 인간의 품질이다. 근대 한국인은 어떤 인간인가? 전근대의 한국인과 어떻게 다르고 얼마만큼 문명적이거나 또는 야만적인가. 지금 우리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나는 어떠한 문명과 역사에 대한 평가에서, 그것이 만들어낸 인간에 대한 평가 이상의 기준을 알지 못한다. 근대화 140년만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문명의 문명화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