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2014년 04월 16일 05시 54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06월 16일 14시 12분 KST

하나였기에 전부였던, 역사 속 디자인 학교들

"바우하우스는 학교가 아니라 하나의 이념이었다." 한스 마리아 빙글러가 쓴 <바우하우스>의 첫 머리에 나오는 이 말을 읽는 내 가슴은 떨렸다. 대학 1학년 때 일이다. 하지만 대학 다니는 동안 그 이념을 알 길은 없었다. 내가 바우하우스의 이념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 것은 한참 지나서였다. 오늘날 디자인 교육은 바우하우스라는 하나의 샘물로부터 솟아나온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우하우스 / wikipedia

하나의 이념이었던 학교

"바우하우스는 학교가 아니라 하나의 이념이었다."

한스 마리아 빙글러가 쓴 <바우하우스>의 첫 머리에 나오는 이 말을 읽는 내 가슴은 떨렸다. 대학 1학년 때 일이다. 하지만 대학 다니는 동안 그 이념을 알 길은 없었다. 내가 바우하우스의 이념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 것은 한참 지나서였다. 바우하우스가 현대디자인 교육의 이념과 방향을 제시한 학교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오늘날 디자인 교육은 바우하우스라는 하나의 샘물로부터 솟아나온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 하나의 디자인 학교만 있어야 한다면

19세기 영국은 후발 산업국가와의 무역경쟁을 경험했다. 특히 프랑스 섬유제품의 수준은 영국 제품을 압도했다. 영국은 의회 차원에서 대책을 논의하였고 마침내 디자인 진흥정책을 추진하기로 했다. 디자인 진흥정책의 해법은 교육이었다. 그들은 디자인 교육을 대중 교육과 전문가 교육으로 구분했다. 대중 교육을 위해서는 박물관을 세웠고 전문가 교육을 위해서는 디자인 학교를 만들었다. 현재 런던에 있는 빅토리아 앨버트 뮤지엄(설립 당시의 명칭은 사우스 켄싱턴 뮤지엄)이 그 때 만들어진 대중 교육을 위한 기관이었다.

전문가 교육을 위해 세운 학교는 세계 최초의 디자인 학교로서 '디자인 사범학교(Normal School of Design)'였다. 이것이 지금 영국 왕립미술학교(RCA; Royal College of Art)의 전신이다. 영국 정부가 디자인 전문가 교육을 위해 세운 학교는 디자이너 학교가 아니라 디자인 사범학교였다. "교사를 먼저 교육해야 한다"라는 칼 마르크스의 주장이 영국의 디자인 교육에서 실현된 것이다.

영국은 세계 최초로 국가 차원의 디자인 진흥정책을 추진한 나라로서, 우리나라 디자인 진흥정책의 모델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나라 디자인 진흥정책의 모습이 영국과 같은 것은 아니다.

한 사람의 양심을 기리기 위하여

1943년 나치 치하의 뮌헨대학 교정에 반나치 유인물이 뿌려졌다. 게슈타포가 즉시 조사에 나섰고 마침내 뮌헨대학생 한스 숄(Hans Scholl)과 조피 숄(Sophie Scholl) 남매가 범인으로 체포되었다. 그들은 반나치조직인 '백장미단'의 일원이었다. 재판에서 반역죄를 선고받은 남매는 동료들과 함께 곧바로 처형되었다.

2차대전이 끝난 뒤 한스 숄과 조피 숄의 누나이자 언니였던 잉에 숄(Inge Scholl)은 동생들의 뜻을 기리기 위해 '숄남매재단'을 설립했다. 재단은 숄 남매의 자유정신을 기리기 위해 학교를 설립하기로 했다. 어떤 성격의 학교를 세울 것인가 모색하던 중에 마침 잉에 숄의 남편이었던 오틀 아이혀(Otl Aicher)가 디자인 학교를 제안했다. 오틀 아이혀는 나중에 뮌헨올림픽의 픽토그램을 디자인한 독일을 대표하는 그래픽 디자이너이다. 그리하여 '울름조형대학(Hochschulle für Gestaltung Ulm)'이 탄생했다.

울름조형대학은 바우하우스를 계승하여 뉴바우하우스라고 불리며 2차대전 이후 디자인 교육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울름조형대학의 초대학장은 바우하우스 출신인 스위스 조각가 막스 빌(Max Bill)이 맡았다. 개교 당시에 다섯 개의 학과가 있었는데, 이중에서 시각 커뮤니케이션학과와 공업조형학과는 각기 오늘날 시각디자인학과, 공업디자인학과의 원형이 되었다. 울름조형대학은 68혁명의 와중에 문을 닫았다. 여러 가지의 정치적, 사회적 소용돌이에 휘말린 것이다. 바우하우스와 비슷하게 불과 10여 년 간 존속했던 디자인 학교이지만 울름조형대학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고 기억되고 있다.

짧게는 10여 년 간, 길어도 몇 십 년 밖에는 존재하지 못했지만 그들은 모두 디자인 역사에서 단 하나밖에 없던 학교들이었다. 우리는 그들을 여럿 중의 하나가 아니라, 단 하나의 디자인 학교로 기억한다. 그들은 짧은 불꽃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의 가슴 속에 살아 있는 불꽃이다.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 뉴스레터 <파티 1>,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