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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9월 07일 09시 59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9월 07일 14시 12분 KST

피하지 말고 훈련하자

gettyimagesbank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자주 듣지만 솔직히 짜증이 나는 문장이기도 합니다. 문장이 가진 의미 자체는 포기하지 말고 도전하라는 의미라고 하더라도 대개 이 말을 입에서 꺼내는 화자와 듣는 청자의 입장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입니다. 특히 권력이나 돈을 아주 많이 갖고 있는 사람들이 이런 말을 꺼낼 땐 화가 나기까지합니다. 아니 자기가 갖고 있는 것을 조금만 나누어 주면 모두 해결될 일인데 어떻게 저런 이야기를 쉽게 꺼내지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도 합니다. 맞습니다. 감히 말하건대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은 틀린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렵고 힘든 상황'은 예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겁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시간, 재능, 돈이 풍족했던 때가 있었나요? 뭔가 부족한 부분이 있을 때 짜증과 좌절로 덮어버리고 넘어가면 되는 것일까요.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저는 요즘 한 달에 많게는 20번 가까이 강연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 사람들 앞에서 강연을 한 것은 12년 전이었는데 그때는 인터넷 방송의 기술적인 부분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몇 해 전 단행본을 출간하면서 강연 요청이 많아졌고 '세상을 바꾸는 시간', '강연 100도씨'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제법 인기 있는 강사가 되었습니다.그런데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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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이 아니라 '현역'입니다만 종종 착각을 하시더군요

강연은 야구로 치자면 선발로 나와서 중간계투나 마무리 없이 끝까지 완투를 하는 투수와 같습니다. 관객은 타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타자에 따라서 다른 구질을 연마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긴 호흡으로 경기를 이끌어갈 체력을 가져야 합니다. 투수는 실수 한방으로 모든 것이 끝날 수 있습니다. 강사가 그러합니다. 연단에 올라갔을 때 느끼는 압박감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저도 처음에 강연을 나갔을 때는 그 압박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압박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 문제는 바로 발음이었습니다. 프로레슬링 시합을 하다가 윗니를 부러뜨려먹은 적이 있습니다. 상대선수를 코너에 몰아넣고 제가 뛰어가 점프하며 덮치는 기술인데 상대방과 싸인(!)이 맞지 않아 저 혼자 링 철제기둥에 얼굴을 들이박고 말았던 것이죠. 와작 소리와 함께 저는 반대방향으로 방향을 바꿔 날라갔고 겨우 시합을 끝내고 인근 병원 응급실로 실려갔습니다. 경기전 '밖에 있는 앰뷸런스 보여? 니가 타고 갈 거야!'라고 마이크웍을 했는데 제가 타고 갔습니다. 다음날 저는 티타늄 볼트를 제 윗잇몸에 박았고 그런데 어느 정도 치료가 끝났을 무렵에 인공치아까지 씌워서 마무리를 했습니다. 그런데 급한 마음에 전 다시 경기에 나갔고 상대 선수의 주먹에 맞아 인공 치아가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치과 의사 선생님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노발대발 하시더군요. 그 황당해 하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작심하심듯 인공치아 두께를 아주 두껍고 단단하게 만들어서 다시 장착해주셨습니다. 덕분에 꽤 오랫동안 문제 없이 생활할 수 있었는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두툼하니 튼실한 것은 좋았는데 두께가 있다 보니 혀가 계속 치아와 닿아서 혀 짧은 소리가 나는 상태가 되었지요. 일상 생활에선 큰 문제가 없었지만 강연장에서 발음이 부정확하다는 것은 매우 치명적인 단점이었습니다. 저는 이걸 고치기 위해서 혀의 기본위치를 정중앙이 아니라 왼쪽 입천장쪽으로 약간 비틀어서 말하는 연습을 꾸준히 했습니다. 신문 사설처럼 한자어가 많이 섞인 글들을 읽었고 TV를 보면서 밥을 먹다가 드라마 대사, 뉴스 앵커가 하는 말을 그대로 따라 하곤 했습니다. 시간을 들이자 결과가 나오더군요. 전문 아나운서처럼 아주 좋지는 않지만 제가 하고자 하는 말들을 또렷하게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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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 부러졌을 때의 사진으로 아직은 천진난만한 삼십 대 초반

두 번째 문제는 바로 '긴장' 이었습니다. 방송국 카메라앞에서도 경기장 관중앞에서도 긴장을 하는 법이 별로 없었는데 이상하게도 강연장 객석의 시선에는 긴장을 하게 되더군요. 애써 교정한 발음이 새거나 중언부언 두서 없는 말을 하거나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모 대형서점이 운영하는 문화공간에서 강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은 지하철 역사 내에 있는 곳인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저자들이 정말 강연하기 싫어하는 곳이라고 하더군요. 두 면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 밖에서 안이 훤히 다 들여다 보이고 출입에 아무런 제한이 없어서 극도로 산만한 곳이었습니다. 저도 그곳에서 아주 황당한 경험을 했습니다. 유리벽 너머로는 퇴근길 수천 명이 해일처럼 이쪽 저쪽으로 너울치는 것이 계속 보이고 그나마 제 앞에 앉아있던 대여섯 명도 저에게 전혀 집중하지 않더군요. 카톡과 게임 효과음은 어찌나 선명하게 잘 들리는지 강사에겐 있어서 그야말로 무간지옥, 시타델 같은 곳이었습니다. 어찌저찌 강연을 끝내고 집에 가면서 이런 저런 생각이 들더군요.

"여긴 정말 강사 입장에선 정말 최악이다. 사람들도 별로 없고 그나마 집중도 안 해주고... 그런데 그런데 말야. 여기서 강연 연습을 하면 내 실력이 늘지 않을까? 다른 곳에서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서점 측 담당자에게 제안 메일을 보냈습니다. 앞으로 3개월간 매주 수요일 저녁 7시부터 1시간씩 무료강연을 하겠다고 말이죠. 담당자는 바로 전화를 제게 걸어 정말이냐고 그러더군요. 강연장소에서 질색하고 투덜거리며 떠났던 저자들이 많았기 때문이죠. 저는 한 번 열심히 해보겠다고 했습니다. 돈은 안 줘도 되니 일정만 잡아달라고 했죠.

3개월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강사들은 강연장에 청중이 얼마만큼 왔는지 일단 그것에 굉장히 민감해 합니다. 손님이 적으면 장사하는 입장에선 역시 기운이 빠지죠. 그런데 이곳은 많아봐야 열댓 명 그 중에서도 저한테 집중하는 사람을 한두 명 될까 말까 하니 오히려 매출(?)에 초연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역시 계속 같은 장소에서 강연하다 보니 이곳에 오는 사람들의 어떤 사람들인지 성향을 분석하게 되었지요. 딱히 이곳을 일부러 찾아왔다기보단 약속 때문에 나왔다가 잠깐 책 한 권 보러 들어오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이런 분들을 대상으론 빠른 템포로 기승전결을 보여주고 프레젠테이션 역시 동영상을 최대한 이용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판단했습니다. 파워포인트 자료에서 최대한 텍스트는 배제하고 이미지와 영상을 많이 넣었습니다. 말투도 좀 더 친근하게 바꾸었지요. 점차 제 앞에 앉아 계신 분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어떻게 전하는 것이 좋은지 감을 잡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공감을 전하고 호응을 얻는 방법을 익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3개월이 지났습니다. 서점 측 담당자는 고맙다며 제게 돈까스를 사주더군요. 아니 오히려 고마운 것은 바로 저였습니다. 이곳에서의 3개월 하드트레이닝 후 저는 어떤 강연장에서도 흔들림 없이 저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 기술과 맷집을 갖게 되었습니다. 어느 반도체 공장에 강연을 갔을 때는 주최 측이 일정고지를 잘못하는 바람에 천여명 객석에 단 12명이 온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분들을 위해서 흔들림 없이 최선을 다했고 웃으면서 기념사진까지 찍을 수 있었습니다. 강연 중에 자료화면이 갑자기 먹통이 되거나 마이크가 고장 나서 육성으로 진행을 해도 심지어 중2 600명을 상대로 강연을 해도 전 패닉에 빠지지 않습니다. 앞서 말한 강연공간에서 3개월간 전투력을 쌓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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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바다로 나아가기 위해선 단단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라는 말은 다시 말하지만 참 나쁜 말입니다. 돈, 권력, 시간, 자유가 부족한 이에게 희생을 강요하다 못해 즐기면서 받아들이라고 하다니요. 금수저와 은수저, 한쪽으로만 결과물이 쏠리는 부당한 시스템은 분명 지적하고 바꿔야 합니다. 그러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분발하며 자신만의 경험을 축적하는 것 또한 거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합니다. 스스로 그 호랑이굴로 들어가 보세요. 인생은 훈련장입니다. 자신만의 하드 트레이닝 센터를 만드세요. 그곳에서 지옥훈련을 거쳐서 더 강해지는 겁니다. 그걸 바탕으로 원하는 것을 정당하게 얻는 것이죠.

확 땡기지 않나요?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아니 피하지 말고 훈련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