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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9월 02일 11시 59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9월 02일 14시 12분 KST

'아저씨'가 모터사이클을 타는 이유

ASSOCIATED PRESS

키박스에 키를 넣어 돌리고 점화버튼을 누른다. 부르릉. 머플러에서 나오는 소리와 함께 강철로 만든 프레임이 덜덜덜 떨리는 것을 보며 괜한 미소가 떠오른다. 엔진 온도가 올라감에 따라 라이더의 자긍심도 올라간다. 이른 새벽의 냉기를 머금었던 가죽 시트에 엉덩이를 걸쳐놓고 오른손으로 스로틀을 열면 수 백킬로그램의 철마가 앞으로 돌진하다. 철커덩 쉬프트 페달을 조작하며 기계적 마찰음을 들으며 기어변속을 하다 보면 속도계 속 바늘은 춤을 추듯 올라간다. 세상의 주인이 된 것 같다. 반경 5킬로 미터 안에선 내가 제일 눈에 띄고 제일 쎈 놈이다. 그래 솔직히 말하자면 흔히 말하는 허세다. 모터사이클은 헤드라이트, 핸들, 엔진 부터 시작해 볼트 하나까지 모두 해체해서 죽 늘어놓으면 저 끝 어디 쯤인가에 망상과 허세와 맞닿아 있다.

혹시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가? 내가 운명의 장난 때문에 뒤바뀐 인생을 살고 있는 거라면? 사실 난 이렇게 평범하고 지루한 삶을 살아갈 사람이 아니었는데 어떤 거대한 사건이나 사고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라면? 주말드라마에 흔히 나오는 신분이 바뀐 재벌 3세가 바로 나라면? 하지만 양친은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카드 결제일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일하기 위해서 사는 것인지 살기 위해서 일하는 것인지 모호한 상황. 그래서 체념을 하고 다시 체념을 한다. 여기에 모터사이클의 존재가치가 있다. 모터사이클은 좋게 말하자면 내가 내 삶의 주인공인양 이 '나와바리'에서 가장 강한 수컷인양 일종의 가상현실을 제공한다.

롯데월드로 놀러 가면서 모험이란 단어를 쓰진 않는다. 시설은 돈을 받는 대신 안전한 오락을 제공한다. 하지만 이 땅에서 모터사이클을 탄다는 것은, 아니 그것을 꿈꾸는 것 자체가 모험이다. 여기서 모험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100 마력이 넘는 엔진을 자유 자재로 구사하며 연속으로 이어진 코너를 돌기 위해선 훈련이 필요하다. 엔진 속 피스톤 회전과 내 몸의 중심을 맞춰가며 좌우로 몸을 돌리되 시선은 항상 코너의 출구를 향한다. 타는 것도 모험이지만 사는 것도 모험이다. 남자는 할리를 꿈꾼다. 카와사키 닌자를 꿈꾸고 혼다 CBR을 꿈꾼다. 그런데 남자는 모험을 꿈꾸지만 돈이 없다. 출생의 비밀이 없는 평범한 젊은 남자가 천만원을 훌쩍 넘는 자동차도 아닌 모터사이클에 쏟아부을 돈이 있을 리가 만무하다.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오토바이를 산다'고 하면 온 집안 사람이 말릴 것이다. 인터넷 카페 회원들이 말릴 것이고 트위터와 페이스북 친구들이 멘션, 댓글, 쪽지로 말릴 것이다. 카톡이 쉴 새 없이 울릴 것이다. 너 미쳤냐고.

배 나온 라이더를 보면 마음 한 켠이 애잔하기까지하다. 겨우 겨우 청춘에 대한 보상으로 모터사이클을 선택한 것이다. 평생 교복을 입으며 살아왔다. 학교를 졸업했지만 군복을 입었고 검정 양복에 넥타이란 교복을 또 입고 살았다.

삶이란 프로레슬링 로프반동처럼 덧없다. 로프로 상대방을 보냈는데 왜 돌아오냐고 묻는다. 하지만 안 돌아오면 시합이 계속되지를 않는다. 회사라는 생업의 장소에 가면 고단함이 있는 것을 알지만 아저씨들은 로프반동 당한 프로레슬러처럼 돌아갈 수밖에 없다. 격렬한 전투를 끝낸 후에 딱 집에 돌아갈 수 있을 정도의 에너지만 남긴 이들이 간신히 지하철에 몸을 맡긴다. 삼겹살에 소주 냄새 풍기며 지하철에 찌그러져 있는 노병들을 보고 젊은 훈련병들은 비웃는다. 하지만 전장의 화약냄새를 맡아보지 못한 이들은 이들이 어떻게 싸우는지 모른다. 오늘도 노병들은 주말에 모터사이클을 탄다. 풀 페이스 헬멧과 짙은 선탠이 들어간 쉴드로 주름진 얼굴을 가리고 여름이지만 가죽 자켓으로 튀어나온 배를 두른다.

그 아저씨 원래 터프가이다. 그 아저씨 주인공이다. 그는 모터사이클 라이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