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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5월 06일 13시 30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07월 05일 14시 12분 KST

그 섬을 보고 왔다

처음에 따로 따로 혼자 걷던 이들은 이내 얼굴을 익히고 손을 잡고 서로를 위로합니다. 그들은 욕심을 냅니다. 제발 내 아이가 물에 홀딱 젖은 채로 개구진 얼굴로 '엄마. 짱 짱 진짜 장난아니야' 너스레를 떨며 이곳에 나타나기를. 생존자용 선착장을 몇날며칠을 거닐던 이들은 이내 어떤 결론은 내리고 다시 욕심을 냅니다. 제발 내 아이가 부모가 알아볼 정도로 사지가 멀쩡한 상태로 돌아오기를 그러나 시간은 흘러가고 다시 마음을 다 잡습니다. 유전자 검사와 치열로 확인하면 되니까 제발 그냥 돌아오기를.

진도에 대한 기억

저에게 진도라는 섬은 몇 가지 기억을 제공하는 곳입니다. 그 중 가장 강렬한 것을 소개해드리자면 프로레슬링 시합에 대한 기억입니다. 진도 실내 체육관에서 일본 인디단체 선수를 상대로 시합을 했고 바로 다음 날 서울에서 2차전을 하고 다음날 아침에는 방송해설까지 했던 지옥의 3연전이 시작됐던 곳이기도 합니다. 몸 안에 모든 포도당이 몸과 머리를 움직이기 마지막 한 방울까지 모두 소진되는 진귀한 경험을 했지요.

그 격렬했던 기억의 시발점인 진도는 지금 매우 슬픈 곳입니다. 300여명의 생명이 꺼져 들어가는 것을 전국민이 라이브로 지켜 봤습니다. 언론을 통해서 연일 매시각마다 새로운 정보들이 올라왔고 인터넷에는 그것을 부정하거나 음모론까지 곁들인 여러 소식들이 제 머릿속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래서 직접 가서 보고 싶었습니다. 대체 어떤 일이 일어났고 진행 중이며 어떤 결과를 만들 것인지.

먼저 사과의 말씀을 올리고 싶습니다. 저는 전문적인 글쓰기를 교육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더욱이 청해진 해운 세월호 침몰 처럼 그 규모와 사회적 여파가 가늠하기 힘들며 시간이 지날수록 폭발적으로 정보가 증가하는 이런 사건에 제가 감히 펜을 드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스스로 의구심을 갖고 있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졸필 잡문이라도 제 나름의 시선으로 현 상황에 대해서 정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부분 양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진도에서 만난 세 곳의 장소, 세 가지 거리, 세 명의 인물에 대해서 말씀드릴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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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실내체육관으로 가는 길. 진도 곳곳에 이런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첫 번째 장소 : 진도 실내체육관

진도군청 인근으로 진도 중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유족및 실종자 가족들이 대기하고 있는 곳입니다. 처음 겉에서 봤을 때 그리 커보이지 않았지만 안쪽으로 들어가니 꽤 큰 규모의 체육관이었습니다. 1층에는 가족들이 돗자리,이불,매트를 펼치고 모여 앉아 있었고 대형 스크린에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마침 오바마 대통령이 방한한 때라 대부분의 주요뉴스는 오바마 방한을 메인으로 잡고 있었고, JTBC만 세월호 침몰을 특집으로 다루고 있었기에 실내와 실외에 있는 대형 스크린은 JTBC 화면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1층 옆 통로를 이용하면 2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데 여기에 있는 객석과 좁은 복도를 이용해 자원봉사자들이나 기자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운 좋게 누군가 라면박스로 펼쳐놓고 나간 자리가 있길래 잠시 앉아서 숨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숨을 가라앉히고 1층을 내려다보니 듬성듬성 매트가 빠진 곳이 보이더군요. 시신을 찾아서 안산으로 올라가 장례를 치른 가족들일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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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평온한 듯 보이다가 점점 숙이 막혀 오는 곳. 진도 실내체육관.

이 곳 진도 실내체육관은 예전에 제가 경기를 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그랬던 곳이 이런 비극의 장소로 바뀌어있다는 것이 새삼 놀랍더군요. 시간이 조금 지나 차가운 시멘트 바닥 때문에 엉덩이가 살짝 시려질 때 쯤 제가 자각한 것이 있습니다. 그 자각은 제가 기대했던 것과 다른 풍경에 대한 자각이었습니다. 텔레비젼 화면을 통해서 봤던 대성통곡을 하며 실신하는 가족들, 혹시나 그런 상황이 일어나는 것은 아닌가 조심스러웠는데 굉장히 놀라울 정도의 일상성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매트 위에서 삼삼오오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고 뉴스를 시청하며 매트 위에 배를 대고 누워서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는 모습은 한강 둔치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으로 제가 상상했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살짝 얼굴을 내민 자만이 느끼는 하나의 착시였던 겁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힘 없이 사지를 늘어뜨린채 자원봉사자의 부축을 받으며 오가는 할머니의 모습이 보였고 의료진의 진료를 받는 중년 아주머니가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아주 살짝 평범해 보였지만 기실 이들은 사랑하는 가족이 물에 잠겨있다는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어떻게든 일상성을 유지하려고 필사의 노력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전원구조'라는 소식을 듣고 안산에서 내려올 때 아이가 갈아입을 옷가지까지 챙겨왔던 부모들 하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갈팡질팡하던 정부당국와 무례한 언론 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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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관 2층 객석 뒷편 통로에서 취재진들이 휴식을 취합니다.

저는 '체육관의 열기'에 익숙합니다. 시합을 합두고 훈련을 반복하는 체육관에는 지루함의 열기가 가득합니다. 훈련은 최대한 지루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승리에 대한 열망을 더 강하게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합이 열리는 체육관에는 비릿한 열기가 있습니다. 피냄새와 땀냄새가 범벅이 된 열기. 진도 실내체육관에도 어떤 열기가 있었습니다. 그건 희망과 절망, 좌절과 극복, 고통과 염원으로 만들어진 굵디 굵은 동앗줄이었고 다시 꽈리를 틀고 매듭을 만들면서 실내체육관 천정을 부서져라 치고 있었습니다. 안산에서도 그러했을 삶의 궤도를 유지하려는 필사적인 노력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들의 일상성이 무너지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건 물에서 나온 가족을 만났을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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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실내 체육관에서 팽목항까지 꽤 먼거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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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등도 없는 왕복 2차선 도로


첫 번째 거리 : 진도 실내 체육관에서 팽목항까지. 24 km

세월호가 침몰했습니다. 그안에 있던 300여개의 우주도 같이 침몰했습니다. 물 속에 담겨있던 우주를 잠수사들이 뭍으로 꺼내오면 인상착의에 대한 정보가 일단 실내 체육관 대형 스크린과 게시판을 통해서 전해집니다. 그걸 보고 자기 가족이라는 생각이 든 이들은 셔틀버스를 타고 팽목항으로 갑니다. 24킬로미터. 정말 멉니다. 홍대입구역에서 잠실역까지 24 km니까 정말 먼 거리입니다. 섬 안에 있는 가로등과 신호등도 없는 지방국도를 달려야 합니다. 진도 내에서 대중교통으로 간다면 마을버스를 이용해서 2시간이 걸리니 결국 자가용과 셔틀이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제가 갔을 때 인양된 실종자 번호가 180번대였으니 어떤 부모는 이 도로를 수도 없이 달렸겠지요. 도로 사진을 찍기 위해서 잠시 멈춰섰는데 팽목항쪽으로 셔틀버스가 달려갔고 잠시 후 이번에는 앰뷸런스와 비상등을 킨 자가용이 실내체육관쪽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드디어 상봉을 이룬 이들이겠지요.

두 번째 장소 : 팽목항

실내 체육관을 나와 18번 국도를 따라 가다 봉상리를 지나 우회전을 하면 조금 직진을 하면 오른편에 팽목항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보입니다. 꽤 큰 넓이의 주차장에 바이크를 세우고 주변을 둘러보는데 사건이 사건이다보니 꽤 많은 언론사들 차량이 보입니다. 경찰 버스도 보이고 상조회사 차량들도 있더군요. 이 주차장에서 팽목항 접안시설까지는 도보로 움직여야 합니다. 이 진입로는 기본적으로 응급차량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200여미터의 진입로를 따라 들어가니 갑자기 오른편에 대형텐트들이 가득 보였습니다. 여기엔 의료진들과 경찰, 시신안치소가 있습니다. 마치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재난영화에서 본 것만 같은 임시대피소의 분위기가 나더군요. 묘한 긴장감을 느끼며 안쪽으로 더 들어가니 언론사들 텐트와 중계차가 주욱 늘어서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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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용 선착장에서 바라본 항구. 오른편 안쪽에 가족지원 상황실이 있습니다.

팽목항에는 두 군데의 선착장이 있습니다. 아까 제가 지나온 경찰과 시신안치소가 있던 곳은 사망자용 선착장입니다. 맹골수도로 나간 배가 시신을 인양했을 경우 바로 아까 선착장으로 접안을 합니다. 만약에 생존자를 구출했을 경우에는 좀 더 안쪽에 있는 생존자용 선착장에 배를 댑니다. 엄마들은 아빠들은 가족들은 모두 이 생존자용 선착장을 하염없이 거닙니다. 처음에 따로 따로 혼자 걷던 이들은 이내 얼굴을 익히고 손을 잡고 서로를 위로합니다. 그들은 욕심을 냅니다. 제발 내 아이가 물에 홀딱 젖은 채로 개구진 얼굴로 '엄마. 짱 짱 진짜 장난아니야' 너스레를 떨며 이곳에 나타나기를. 생존자용 선착장을 몇날며칠을 거닐던 이들은 이내 어떤 결론은 내리고 다시 욕심을 냅니다. 제발 내 아이가 부모가 알아볼 정도로 사지가 멀쩡한 상태로 돌아오기를 그러나 시간은 흘러가고 다시 마음을 다 잡습니다. 유전자 검사와 치열로 확인하면 되니까 제발 그냥 돌아오기를.

팽목항은 화려함은 없지만 바닷가 풍경이 꽤나 운치있는 곳입니다. 어둠이 내려앉지만 바닷가 특유의 풍류를 전혀 만끽할 수 없습니다. 한 여름날의 아스팔트 콜타르처럼 진득한 침묵이 눅진눅진 내려앉았습니다. 제 옆에 있던 중국기자가 갤럭시로 중국 드라마를 보다가 소리가 너무 크게 나자 볼륨을 나즈막히 줄입니다. 그 중국어가 그날 밤 제가 들었던 가장 활기찬 소리였습니다.


두 번째 거리 : 팽목항 생존자용 선착장에서 시신안치소까지 400미터

생존자용 선착장 끄트머리에서 오른편을 보면 현지안내소와 가족들을 위한 천막과 자원봉사자들이 보입니다. 현지안내소는 팽목항 대합실을 임시로 쓰고 있는 것으로 2층짜리 아주 시골 터미널 같은 곳입니다. 그 맞은편에 커다란 게시판에 있고 여기에 수시로 인양된 시신에 대한 정보가 A4 용지 한 장에 인쇄되어 차곡차곡 정리됩니다.

157번. 키 165센치. 귀밑머리. 티니위니셔츠. 빨강색 운동화

178번. 키 174센치. 나이키셔츠. 캔버스 운동화

180번. 키 160센치. 검정색 셔츠. 뱅뱅 청바지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서 위 내용은 제가 윤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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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 미터. 누군가에겐 너무나 힘들고 먼 거리. 그러나 가야만 하는 거리.

이 게시판 앞에서 어느 아버지가 통화를 합니다. "우리 애가 머리가 길었나? 자기도 ***번 봤지? 우리 애 맞나? 아닌가?" 놀라울 정도로 대화의 톤이 일정합니다. 마트에서 한 봉지에 5천원하는 사과를 살지 6천원 하는 토마토를 살것인지를 두고 부부가 대화를 나누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초연의 경지에 올라오기까지 부모들은 피를 끓고 창자가 끊어졌겠지요. 어둑해졌을 무렵 드디어 시신을 인양한 배가 들어왔습니다. 그러자 엄마들이 아빠들이 뛰기 시작합니다. 생존자용 선착장에 있던 부모들이 사망자용 선착장으로 시신 안치소가 있는 곳으로 400미터를 달려갑니다.

세 번째 장소 : 진도군청

대책본부가 있는 진도군청은 사실 저같은 외부인에게 별 볼일이 있는 곳은 아닙니다. 정부가 내놓은 현장대처가 그러했던 것처럼 대책본부는 그저 이름뿐인 곳이었으니까요. 게다가 모든 뉴스는 실내체육관과 팽목항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진도군청 앞은 썰렁하기까지 했습니다.

다시 팽목항으로 돌아갈까 하다가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민간 잠수사'였습니다. 꽤 많은 민간 잠수사가 진도로 왔는데 이들은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팽목항이나 실내 체육관은 이미 특유의 분위기 때문에 그들이 편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근처에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군청 인근의 카페를 돌아다니다가 뭔가 '느낌'이 오는 카페가 있어서 들어갔습니다. 다른 카페는 너무 팬시한 분위기라 아저씨들이 모여 있기 쉽지 않아 보였는데 뭔가 어둑해 보이는 분위기가 잘 맞을 것 같았습니다. 제 예상이 맞았습니다. 카페 문을 열자 화장실 반대편 구석진 곳에 대여섯명의 건장한 남자들이 앉아있었습니다. 냉동 만두처럼 다부진 몸, 까무잡잡한 피부, 화려한 패턴의 셔츠. 민간 잠수사들이었습니다. 저는 그 옆에 조용히 앉아 아이스커피를 마시며 귀를 쫑긋거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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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멘붕올뻔 했다.' 당시 대화 내용을 다이어리에 적은 것. 원래 악필인데다 경기 중 손이 부서진 적이 있어서 글씨가 엉망입니다.

그들은 관에 대한 불만이 많은 듯 했습니다. 정부가 언론을 통해 발표했던 것처럼 민관군의 유기적인 합동수색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듯 했습니다. 조금 심한 표현을 할 땐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목소리를 낮추기도 했습니다. 라이딩웨어에 헬멧을 들고 있던 저는 아무리 봐도 '관계자'로 보이지 않았나 봅니다. 전혀 효율적이지 않고 전문적이지 않은 일처리에 그들은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라는 말을 하기도 했고, 여기에 며칠 있지도 않았는데 멘탈붕괴에 빠질 것같다며 내일 돌아간다고 한탄을 하기도 했습니다. 사건초기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세 번째 거리 : 시신안치소에서 자녀까지 0미터

드디어 가족이 재회를 하는 순간입니다. 주검이 된 채 누워있는 자녀를 한 눈에 알아본 대부분의 엄마는 꺼이꺼이 소리내어 울다가 기절을 합니다. 아빠가 달래보려고 하지만 본인이 이미 무너지고 있는 상태라 어쩔 방법이 없습니다. 이제 드디어 가족이 함께 움직입니다. 그 모습을 보며 다른 엄마들은 내심 부러워합니다. 드디어 찾았으니까 만났으니까. 심지어 '축하한다'라는 말을 건네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이와 함께 안산으로 돌아가게 된 엄마도 실내 체육관에 팽목항에 남아있을 다른 엄마들 생각에 맘이 편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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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개의 우주를 집어삼킨 바다는 오늘도 말이 없습니다.

진도에서 만난 세 명의 사람들

의사 ㅎ씨. 진도에는 아마 진도라는 명칭이 붙은 이래로 가장 많은 외지인들이 찾아 왔을 겁니다. 진도 내에 있는 숙소는 모두 동이 났고, 좀 편안한 수면을 취하려면 꽤 먼 곳까지 나가야만 합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으니 불편할 수밖에 없고, 게다가 좋은 일로 모인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대한의사협회 소속으로 의료자원봉사를 나온 ㅎ씨도 그런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한 사람이었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는 자신이 갖고 있는 전문지식을 총동원해서 진도실내체육관에 있는 가족들을 돕고 있었습니다. 그의 마음가짐이 어떤 지는 그의 카카오톡 프로필 문구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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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에서 의료 봉사중인 의사 ㅎ씨의 카카오톡 프로필.

기자 이상호. 이번 청해진 해운 세월호 침몰 사건에서 그는 여러 논쟁의 중심에 섰습니다. 이슈를 전달해야 할 기자가 이슈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그를 의인이라 치켜 세우고 어떤 이들은 선동꾼이라고 평가절하합니다. 그는 올해 초 경미한 뇌경색으로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의사로부터 다음 번은 행운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경고를 듣고 고발뉴스 앵커자리에서 스스로 내려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거의 20일째 진도 현장을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만약 손석희,최승호,이상호 이런 언론인들이 없었다면 우린 이 사건에 대해서 조금 다른 시각을 갖게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무리한 과적으로 배가 침몰했는데 사이코패스 선장이 승객들을 돌보지 않았 많은 피해가 났으나 민관군이 힘을 합친 끝에 악천후속에서 고군분투한 결과 80여명이나 구출하는 대성공'을 거뒀다고 말입니다. 물론 이상호 기자 그에 대해 엄중한 평가를 내리시는 분들도 계실겁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가 더 좋은 방송을 할 수 있도록 많은 조언과 날카로운 비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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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목항에서 방송을 준비중인 이상호 기자

자원봉사자 이랑씨. 이랑씨를 처음 보면 긴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날카로운 눈매와 스킨헤드 그리고 온 몸을 휘감은 타투. 그는 타투이스트로 강원도를 무전 도보여행을 하다가 사건을 접하고 초기에 진도로 내려가 자원봉사를 했습니다. 여기저기 산처럼 쌓여있는 구호물품을 갖고 도망가는 좀도둑들을 제지하기도 했고 쓰레기를 치우고 음식을 날랐습니다.

성난 가족들이 청와대로 가겠다며 길을 나섰을 때 같이 하기도 했습니다. 도로가 막혀 산을 타고 넘어가려던 가족들을 경찰과 함께 막아선 정홍원 총리에게 '차라리 가족들에게 정부가 버스를 제공하고 청와대로 모셔가는게 어떠냐'라고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이 열혈 사나이의 일갈에 정총리는 단칼에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시고.."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만약 이랑씨의 제안대로 정부가 실종자 가족들을 품어주는 모양새를 취했다면 대통령 지지율이 이처럼 곤두박질을 쳤을까요. 괜한 상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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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했던 타투이스트 이랑

돌아오는 길

계획했던 일정을 끝내고 마지막으로 팽목항에 다시 가봤습니다. 삼삼오오 검정색 상복을 입은 분들이 보입니다. 이분들은 소식을 듣고 외지에서 내려온 친척들입니다. 현장에 있던 직계 가족들은 경황이 없기 때문에 트레이닝복에 등산자켓을 입은 상태입니다. 언뜻 친척들이 상주처럼 보입니다. 그분들을 쳐다 보다가 몇몇 사람과 인사를 나누고 팽목항을 떠납니다. 어두컴컴한 저녁, 이곳을 떠나는 차들은 다 사연이 있는 차들입니다. 맨 앞에 승용차가 두 대 있고 그 뒤로 택시가 있고 바이크를 탄 제가 그 대열의 마지막에 있습니다. 속도를 내지 않습니다. 맨 앞차가 겨우 40 50로 달리고 다른 차들도 그대로 쫓아갑니다. 성질 급한 택시 아저씨도 빵빵거리거나 추월하지 않습니다. 저 차안에 있는 사람들이 누구고 지금 어떤 상태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조등을 끄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시골도로를 천천히 흐느껴 울듯이 좌우로 살짝 흔들거리며 맨 앞차가 대열을 리드하고 저도 그대로 따라갔습니다.

서울에서

참 난감했습니다. 글을 쓰려고 자리를 잡고 앉으면 항상 무언가 새로운 사실들이 터졌습니다. 마치 한 여름날 쓰레기 소각장에서 에프킬라통이 터지듯이 계속 터졌고 그 이슈들을 따라가기도 벅찼습니다. 게다가 비가 오고 조류는 거세졌고 수색작업 속도는 더디기만 했습니다.

진도에 계신 분들 생각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여기에 정치인들의 막말이 터지면서 실종자 가족들을 더 아프게 했습니다. 단원고 학생 부모들의 경우 대부분 중년계층으로 카카오톡 단체방이나 라인등으로 자신들만의 네트워크를 이루고 정보교환을 하는 분들입니다. 간단한 인터넷 검색만으로 자신들이 외부에서 어떤 모양새로 비춰지는지 잘 알고 있는 분들이었습니다. 다만 지금은 자식을 잃은 엄청난 슬픔에 다른 것을 억누르고 계셨던 것 뿐이지요. 이 분들이 삶의 일상성을 회복하고 난 후 이런 사실들을 체감했을 때 받을 충격이 걱정되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 사태에서 가장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던 것은 실종자 가족들이었습니다. 고위 관료들은 현지를 방문하여 어떤 짓을 했는 지 잘 아실 겁니다. 죽은 아이의 시신이라도 만나보겠다고 인양된 주검의 인상착의가 적혀있는 곳에서, 애끓는 심정으로 배회하는 팽목항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려고 했습니다. 절망과 한숨이 가득 찬 실내체육관에서 의료용 테이블을 치우고 라면을 먹었습니다. 대통령은 '당도 높은 사과'로 가족들의 마음을 더 절절하게 만들었습니다. 언론사 '직원들'은 기본적인 취재윤리와 개인적 도덕까지 망각한 채 가족들의 마음에 생채기를 냈습니다. 제가 도착했을 때도 모 언론사 남자 직원이 실종자 어머니가 통화 하는 것을 녹취하려고 여자 화장실까지 몰래 들어갔다가 쫓겨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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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이 싫어합니다!

사건이 일어난지 시간이 꽤 지났습니다. 페이스북에 올라온 지인들의 포스팅을 보니 실내체육관에는 이제 50여명 정도의 가족들만 남아있다고 합니다. 숫자는 줄었지만 상처는 오히려 더 커졌고 불안은 증폭되기만 합니다. 분노와 슬픔의 2호선 순환열차에 전국민이 올라탔습니다. 언제 내려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TV에서 틀어주는 특집다큐를 보며 한번 제대로 눈물 쏟고 분향소에 나가 헌화를 하고 자본주의 체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행인 성금모금에 참가하는 것으로 '내 할 일 다 했다'며, 스스로 면죄부를 주는 것이 이번에도 타당한 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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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엔 희망이 없어.'라는 말을 내뱉으려다가 입술을 빱니다. 안산에서 400 km 떨어진 팽목항에서 만난 베스트 드라이버.

나라면 어떤 행동을 취했을까

제가 이번 일에 빠져들었던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세월호'를 '그날'에 탈 뻔 했기 때문입니다. 올해 초 제주도 모처에서 강연요청이 있었는데 날짜가 4,5월 어느 수요일이었습니다. 기존 일정과 겹치는 것을 제외하니 네 개 정도의 날짜가 나왔고 4월 16일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따뜻한 봄 날에 제주도를 갈 생각에 바이크를 갖고 가려고 했고 화요일 밤에 출발해서 수요일 12시쯤 도착하는 세월호를 탈려고 했던 것이죠. 1/4 즉 식빵을 네 조각으로 나눴을 때 하나 집어먹었을때의 확률. 이 확률은 강연 요청한 곳의 사정으로 하반기로 연기되긴 했지만 제 아이폰 일정에는 4개 후보일정 중의 하나로 4월 16일이 아직도 기재되어 있습니다.

만약 제가 그 배에 있었다면 저는 어떤 행동을 취했을까요? 가만히 있으라 라는 말을 믿고 계속 선실에 있었을까요? 아니면 갑판을 향해서 나아갔을까요? 생존에 대한 저의 시도는 성공했고 SNS에 경험담을 올려 '알티'와 '좋아요'가 만 개씩 터졌을까요? 아니면 A4 용지 한 장의 정보로 축약되어 팽목항 게시판에 붙어있게 됐을까요? 또는 이 모 선장처럼 가장 먼저 경비정에 올라탔을까요? 아니면 고 박지영씨처럼 학생들의 목숨을 구하겠다며 남았을까요? 저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악몽

진도를 다녀온 뒤로 아주 제 인생에 정말 드물게 악몽을 꾸었습니다. 그것도 하룻밤 동안 자다 깨다를 반복하면서 계속 말입니다. 어떤 꿈에서 저는 멋 모르고 찾아온 자원봉사자가 되어 시신안치소에서 주검을 닦다가 도망가기도 했고 담당 공무원이 되어 실종자 가족들에게 멱살을 잡히기도 했습니다. 연달아 꾼 꿈 중에는 제가 잠수사가 되어 차가운 선체를 손으로 더듬거리며 물속을 헤매기도 했지요. 그러나 기울어진 배에서 죽음을 예감하며 엄마를 애타게 부르거나 항구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발을 동동 구르는 부모의 입장이 되어보진 못했습니다. '당사자'가 되는 꿈을 꾸진 않았다는 점에서 진짜 '악몽'은 아니었던 겁니다.

이 악몽을 현실 속에서 현재진행형으로 고통받고 있는 희생자 가족들을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조만간 제 생각을 정리해서 다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