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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4월 10일 12시 05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06월 10일 14시 12분 KST

얼티밋 워리어를 추억하며

당신이 있었기에 난 어떤 것을 동경하게 되었고 꿈을 꾸었으며 한편으론 처절한 절망감도 맛봐야 했습니다. 프로레슬러 김남훈 아니 '김남훈'은 당신이 있기에 가능한 존재였습니다. 만약 언젠가 만나게 된다면 꼭 일합을 겨루어 보고 싶습니다. 지구마저 들어올릴 것 같은 당신의 고릴라 프레스를 온몸으로 직접 경험해 보고 싶습니다. 부디 평안하시길.

WWE

워리어의 사망

강연을 하기 위해서 용인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잠깐 휴게소에 들러 트위터를 열었더니 '워리어 사망'이라는 트윗이 보이는 겁니다. 이게 무슨 소리야 하고 타임라인을 정독하기 시작했고 프로레슬러 '얼티밋 워리어'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내용을 알게 되었습니다.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불과 3일 전에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고 하루 전날에는 RAW에도 모습을 드러냈던 이가 세상을 떠나다니요. 강연장에서 애써 태연한 모습으로 강연을 끝내고 서울로 돌아오는데 지구 중력이 몇 배나 더 강해진 듯 제 영혼까지 땅바닥으로 끌려들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얼티밋 워리어 그는 '프로레슬러 김남훈'의 시원이자 기원이기도 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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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E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온 얼티밋 워리어의 사망소식

WWF 키드

WWE가 WWF였던 80년대와 90년대 초반. 텔레비전 2번 채널로 AFKN을 볼 수 있었습니다. 주한미군을 위한 텔레비전 채널로 당시 KBS1, KBS2, MBC, EBS 이렇게 네 개밖에 채널 선택권이 없던 시절에 남의 나라 방송을 본다는 것은 진짜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특히 저는 부대찌개로 유명한 송탄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안테나를 좀 높게 다는 것만으로 선명하게 AFKN을 볼 수 있었지요. 가끔 낮시간에 틀어주는 뜬금없는 고질라 시리즈, 일요일 아침의 마크로스 시리즈 그리고 역시 백미는 WWF 프로레슬링이었습니다. 특히 저 시절에 헐크 호간이 등장하면서 프로레슬링이 미국을 비롯해 전세계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고 한국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모으게 됩니다.

제가 어디서 프로레슬링을 처음 접했는지는 종종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만 몇 개의 사건과 시간적 흐름을 추론해 본 결과 송신국민학교 앞에 있던 서울우유집 마루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어머니 친구분 집이었는데 종종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여서 고스톱을 치곤 하셨습니다. 아주머니들이 껌을 짝짝 씹으면서 화투패를 모포 위로 툭툭 던졌고 그 한 켠에 있던 14인치 텔레비전 안에서 WWF 프로레슬러들이 상대 선수들을 링 바닥으로 꽝꽝 내리 꽂고 있었습니다. 그게 처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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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KN WWF의 추억

워리어의 등장

얼티밋 워리어의 본명은 브라이언 제임스 헬위그입니다. 얼티밋 워리어는 아마추어 레슬링이나 격투기를 수련했던 적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원래 보디빌딩을 통해서 자신의 이름을 알렸습니다. 아마추어 보디빌딩대회에서 상위 입상을 한 그는 프로 보디빌더로 활동하며 물리치료사로 경제활동을 할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프로레슬러들과 알게 되면서 링의 세계로 진입하게 됩니다. 그리고 1990년 WWF 레슬매니아 6에서 당대 최강 헐크 호간을 꺾고 이 세계의 정점에 오르게 됩니다.

저는 이 시합을 보고 '프로레슬러'가 되겠다는 꿈을 직접적으로 갖게 됩니다. 링에서 싸우는 강철보다 단단한 육체, 그 육체가 때리고 던지고 조르면서 용광로처럼 붉게 달아오르며 하나의 정점을 향해서 나아갑니다. 그리고 생각하지도 못했던 결과, 환호하는 승자와 망연자실한 패자. 이 선명한 콘트라스트는 태어나서 처음 접해보는 것이었습니다. 나도 해보자, 나도 해보고 싶다. 교실 뒤에서 몸에 휴지를 묶고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진짜'가 되고 싶다. 만화 주간지 IQ점프에서 사은품으로 주는 헐크 호간, 마초맨, 얼티밋 워리어 브로마이드를 벽에 나란히 붙여놓고 그걸 보며 팔굽혀펴기를 했습니다. 나도 언젠간 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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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슬매니아6. 얼티밋 워리어 전설의 시작

포기 그리고 입문

지금도 프.로.레.슬.링.이란 단어를 키보드로 입력하는 것만으로 살짝 달뜬 느낌이 듭니다. 제 인생에 있어서 일종의 코드 같은 것이거든요. 초등학교 때 프로레슬링을 텔레비전으로 처음 접하곤 '강한 육체'에 엄청난 동경을 품게 되었고 동네 체육관을 다니기도 했고 아버지를 졸라 조립식 헬스기구를 집 안에 들여놓기도 했죠. 하지만 시골 고등학생이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고 곧 시청자의 자리로 돌아가 28살까지 그렇게 살았답니다.

그러다 우연히 제가 다니던 회사 옆에 프로레슬링 체육관이 있는 걸 알게 되었고 용기를 내어 입문을 시도하지요. 집에 가라는 소리를 두 번이나 들었지만 오기를 내고 버틴 끝에 1 년 뒤에는 데뷔를 합니다. 꿈에 그리던 프로레슬링 데뷔! 과천 경마장 특별 이벤트의 일환으로 말똥 냄새와 경마에 돈을 날린 2만여 관중의 탄성 속에서 빛나던 링. 그 링에 올라섰을 때 그 곳에서 상대 선수와 록업(서로 한쪽 팔과 뒷목을 맞잡는 것, 프로레슬링의 기초자세)을 했을 때 제가 느꼈던 것은 바로 '좌절감'이었습니다. 운동 한다고 토하고 내장이 뒤틀려서 기절할 뻔하고 무릎 관절이 나가고 인대가 늘어나도 억지로 참아가며 운동하고 또 운동했는데 전 너무나 약했던 겁니다. 원래부터 유전자가 다른 사람들, 타고난 힘이 너무나 좋은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운동까지 열심히 했으니 제가 상대가 될 리가 있나요.

전 원래 프로레슬링 입문할 때 일종의 '깍두기'였습니다. 아마추어 레슬링, 씨름, 권투, 태권도 같은 종목에서 눈부신 성적을 냈던 '에이스'들은 시작부터가 달랐습니다. 입단할 때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고 원룸까지 얻어주고 해외전지훈련까지 보내주더군요. 저는 그냥 혼자였습니다. 서울 시내에서 경기도 외곽의 체육관까지 직행버스와 시내버스를 몇 번 갈아타고 결국 근 십리길을 걸어가야만 했지요. 하지만 에이스들은 협회 높은 사람들과 자동차를 타고 체육관을 다니곤 했습니다. 가장 서러운 것은 회식 때였죠. 에이스들은 높은 사람들과 고기를 먹었고 저는 서비스로 나오는 된장찌개와 쌀밥을 먹었지요. 한 여름에 훈련을 하면 수분이 하도 많이 빠져서 체중이 훈련 전후로 5에서 7킬로씩 차이가 날 정도였는데 그렇게 허기가 진 상태에서 고기 냄새를 맡으면서 된장찌개만 먹는다고 생각해보세요. 어떤 마음이 들까. 그래도 참았습니다. 어쨌든 나도 레슬러가 될 거니까. 저 링에선 누구나 팔 두 개, 다리 두 개로 싸우니까. 그러니까 나도 강하니까 대등하니까 똑같은 레슬러니까.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겁니다. 팔과 다리 숫자는 같았지만 두께가 달랐어요. 힘이 달랐고 스피드가 달랐고 차원이 달랐습니다. 과천 경마장의 쨍한 조명 밑에서 저는 진짜 딱 1분 만에 알아챘습니다. 나의 한계를 느낄 수 있었고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절대로 헐크 호간처럼 안드레 더 자이언트를 바디슬램으로 매칠 수도 없으며 마초맨처럼 링 포스트에서 뛰어내리지 못할 것이며 얼티밋 워리어 같은 강철근육을 가질 수도 없다는 것을요. 힘들고 엄혹했던 시기에 그들만 생각하고 그들을 동경하며 힘을 냈는데 정작 링에 올라가니 그들은 나와 완전 다른 존재였고 오히려 밉기까지 한 겁니다. 난 절대로 그들처럼 될 수 없으니까.

데뷔전이 끝나고 락커룸에서 가장 괴로웠던 것은 온 몸을 휘감던 고통보다도 내 한계를 확인하는 그 처절함이었습니다. 동경의 아이콘이 절망의 아이콘으로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래도 좋았습니다. 나를 이 세계로 이끌어준 이들이 점차 기력이 쇠해지고 현역에서 멀어진다고 하더라도 저기 먼 곳이지만 아무튼 같은 세상에 살고 있다는 느낌이 참 좋았습니다. 나의 기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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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 때보다 질 때가 많지만 당신과 같은 영역에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했습니다.

WWE 명예의 전당 헌액 그리고 마지막 인사

얼티밋 워리어는 WWF 퇴단 이후 약 18년간 빈스 맥맨 가문과 불편한 관계로 지냅니다. 서로 너무 험악한 감정에 이른 나머지 WWE측은 '얼티밋 워리어의 파멸'이라는 '디스'로 가득 찬 DVD를 출시하기도 하지요. 하지만 이 서슬 퍼렇고 도저히 접점이 없을 것 같았던 원한 관계도 세월이 흐르고 감정선이 누그러지자 극적인 화해를 하게 됩니다. 이번 명예의 전당 헌액식에서 얼티밋 워리어를 소개한 인물이 빈스 맥맨의 부인 린다 맥맨이라는 것이 그걸 증명합니다. 그는 불편한 관계였던 헐크 호간과도 포옹을 나누었고 팬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잊지 않았습니다.

레슬 매니아 다음 날 펼쳐진 RAW에서는 오랜만에 링에 올라 마스크까지 쓴 채 진짜 레슬러가 무엇인지 열변을 토합니다. 그리고 마치 짜 맞춘 각본인양 그는 다음날 세상을 떠납니다. 그가 마지막 했던 말들은 트위터 친구인 @stereologuer님께서 번역을 해 주셨습니다. 링에서 포효를 하면서 열변을 토했던 분위기를 잘 살려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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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의 전당 헌액에서 오랜만에 '미소'를 보여주었던 얼티밋 워리어

WWE에서 그 아무리 잘난 놈이라도 혼자서 저절로 전설이 되진 않지.

모두들 언젠가는 심장이 멈추고, 언젠가는 마지막 숨을 거둔다.

그 사람이 평생 해온 일이 다른 사람의 심장에서 피를 끓게 한다면,

그래서, 더 많은 피를 흘리고 한 사람의 인생의 몫보다 큰 흔적을 남기게 한다면!

거기서, 그 사람의 존재! 그 사람의 정신! 그 모두가 불멸이 되는 것이다.

작가들과 팬들, 그를 잊지 않고 추모하며 그의 활약을 영원히 숨쉬게 하려는 모든 사람들이 그 전설을 세우지.

그러니, 너, 너, 너, 너, 너! 바로 너희가 얼티밋 워리어를 '전설'로 만들어 주는 거야.

내 뒤에, 앞으로 전설이 될 수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보인다.

워리어의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지. 그 사람들에게 똑같이 해주길 바란다.

그들의 열정적으로 충실하게 살았는지 너희가 결정해, 너희가 경험한 그들의 이야기를 퍼뜨리고 그들도 전설로 이끌어 줘.

나는 얼티밋 워리어다.

그대들은 얼티밋 워리어의 팬이고. 얼티밋 워리어의 정신은 영원히 남으리라!

세상을 떠나기 하루 전. 18년만에 WWE 링에 오른 얼티밋 워리어

링에 오르는 이들은 링 밖의 현실이 두렵거나 링 안의 박진의 삶에 영혼의 눈이 먼 사람들입니다. 저는 전자와 후자 모두에 속하는 사람입니다. 현실 속의 경쟁이 무서워 링 안을 선택했었고 아드레날린과 테스토스테론으로 가득찬 정사각형 안의 삶을 동경했습니다. 링 안의 삶이란 명제를 완성시킨 이들이 마초맨, 얼티밋 워리어, 헐크 호간이었고 이제 두 명이 가고 한 명만 남았습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자 제 삶을 구축했던 커다란 주춧돌 하나가 빠져나간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얼티밋 워리어. 정말 고맙습니다. 당신이 있었기에 난 어떤 것을 동경하게 되었고 꿈을 꾸었으며 한편으론 처절한 절망감도 맛봐야 했습니다. 프로레슬러 김남훈 아니 '김남훈'은 당신이 있기에 가능한 존재였습니다.

만약 언젠가 만나게 된다면 꼭 일합을 겨루어 보고 싶습니다.

지구마저 들어올릴 것 같은 당신의 고릴라 프레스를 온몸으로 직접 경험해 보고 싶습니다.

부디 평안하시길.

사랑했으며 사랑하고 있고 사랑할 겁니다.

당신의 영원한 팬 김남훈 올림

R.I.P. the Ultimate Warrior (1959 ~ 2014)

Ultimate Warrior Tribute from Bert's Shirts on Vimeo.

얼티밋 워리어 추모 비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