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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3월 27일 07시 32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05월 27일 14시 12분 KST

'여대생 공기총 청부 살인사건' 故 하지혜씨 오빠를 만나다

"저는... 저희는 그나마 한을 푼 사람들이라는 거예요. 우린 그나마 베스트 케이스라고요. 저한테 전화나 메일 주시는 분들이 많으세요. 강력범죄 피해자 분들인데 도대체 어떻게 해면 좋겠냐고 조언을 구하시는 거죠. 그분들 보기엔 방송에서 세 번이나 다뤄졌고 가해자들도 처벌 받았으니까 제가 그야말로 '베스트 케이스'인 거예요." 세상에나 여동생이 죽고 12년이나 고통이 지속됐는데도... 베스트 케이스라니...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오는데 하씨가 했던 말이 귓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피해자가 돈도 쓰고 빽도 써야 하는 건가요. 거기다 운도 있어야 하는 건가요? 그래야만 정의가 실현되는 건가요?"

 

"여대생 공기총 청부살인사건 피해자 고 하지혜의 오빠입니다. 억울함을 풀어주세요."

작년 봄 페이스북으로 이런 메시지를 받았다.

SNS는 프로레슬링의 로얄럼블 같은 곳이다. 하나의 링에 수많은 레슬러가 들어가 각자의 정의를 위해서 싸운다. '알티 부탁드립니다', '공유를 부탁드립니다' 라는 멘션과 디엠은 숱하게 많이 받았지만 '당사자'의 요청은 거의 처음이었다. 게다가 '여대생 공기총 청부 살인사건'이라니. 일본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 같은 제목은 대체 뭔가 했다. 그가 보낸 디엠을 천천히 읽어보면서 어떤 작은 기억 한 조각이 떠올랐다. 아마 2000년대 초반 내가 경기도 송탄에서 서울에 있는 인터넷 콘텐츠 회사로 통근을 할 때 버스터미널에서 항상 사보던 '일요신문'이란 주간지가 있었다. 표지에서 서너 페이지 넘기면 가장 쎈 내용이 배치되는 편집이었는데 그때 기사 제목이 아마도 저랬다. '여대생 공기총 살인사건'. 작은 기억 한 조각은 점차 커졌고 또렷해졌다. 일단 그가 공유를 부탁한 내용을 내 페이스북 담벼락에 올리고 그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마침 내가 연재하던 매체에 인터뷰를 싣고 싶다고 했지만 아직 사건이 진행 중이라서 어렵다고 했다. 올해 2월 7일 재판에서 허위로 진단서를 발급한 박모 교수와 돈을 건넨 영남제분 회장에게 모두 유죄 판결이 떨어졌다. 이 소식을 접하고 다시 인터뷰를 부탁했고 그는 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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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하지혜씨. 사건 당시 22세.

너무나 착한 딸 너무나 착한 여동생

2014년 3월 19일. 약속장소인 카페에서 인터뷰 준비를 하고 있는데 그가 카페 안으로 불쑥 들어왔다.

저녁 7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나도 그렇고 그 또한 한 시간 일찍 도착했던 것. 바로 인사를 나누고 노트북을 열었다.

앉아있는 자세에서 강건함이 느껴졌다.

"음. 그러니까요. 음."

여대생 공기총 청부살인사건. 일본 서스펜스 소설 제목 같은 이 말을 꺼내려고 하는데 성대 바로 밑에서 멈춰서 올라오질 않는다. 피해자의 오라버니 즉 사건의 당사자에 해당되는 사람 앞에서 이 흉악한 단어를 말하려고 하니 쉽지가 않았다.

"저어기. 지혜씨, 하지혜씨는 어떤 동생이었나요?"

안경너머의 시선이 나를 똑바로 쳐다본다.

"정말 착한 아이였죠. 정말로. 제가 공부를 안하고 방황하던 시기가 있었어요. 그런 저를 보면서 부모님이 힘들어하는걸 아니까 자기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 그렇게 마음 먹은 동생이었죠. 원래부터 법률가에 대한 꿈도 있었구요."

"정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저한테도 그랬고 부모님한테는 더욱 그랬겠죠."

부모님 마음도 헤어릴 줄 알며 공부에도 뜻한 바 있어 명문 여대 법학과를 다니며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딸. 남 배려를 잘 하며 착한 아이. 집 안에서 어떤 딸이었을지 머릿속에서 상상을 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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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진영씨. 하지혜씨의 오빠로 세 살 터울이다.

주범 윤길자와의 첫 만남

"지혜의 사촌오빠였던 K의 장모가 어떤 사람인지는 이제 아시죠?"

"네, TV를 통해서나마 봤습니다."

지혜씨의 이종사촌 오빠였던 K는 현직 판사이자 윤길자의 사위 그런데 K의 장모 윤길자는 의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윤 씨는 자신이 살고 있는 빌라 바로 맞은 편에 사위의 집을 얻어주었다. 사위를 감시하기 위해서였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사위 방에 도청장치는 물론이고 컴퓨터에 해킹 프로그램을 심었고 빌라 인근에 CCTV까지 설치한 사람이었다. 이렇듯 비정상적 행동을 일삼던 윤씨는 자신의 사위와 하씨의 관계를 의심하게 되고 심지어 사람을 풀어 뒷조사를 시키면서 두 사람이 같은 건물에 들어가는 사진에 상금을 걸기도 한다. 본인 생각이 맞는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 자신의 조카부터 시작해 심부름센터 직원에 현직 경찰까지 매수해서 불륜의 증거를 찾으려고 했으나 찾지 못하자 살인이라는 방법까지 생각하게 된다.

"이런 의심을 받는다는 걸 알고 어떻게 하셨나요?"

"찾아갔어요. 윤씨의 집으로"

하지혜씨와 오빠인 하진영씨 그리고 부모님까지 네 식구가 모두 윤씨의 집으로 찾아가서 담판을 지으려고 했다고 한다. 뭔가 잘못된 내용이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그러니까 '오해'니까 만나서 이야기를 하면 쉽게 풀 수 있는 문제일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데... 정말 말이 통하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주먹을 쥔다. 폈다가 다시 쥔다.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주먹에서 어떤 감정이 느껴졌다.

"아버지가 K에게 말했어요. 이런 의심을 받고 있는데 여기 지혜도 있고 니 처도 있으니 어서 빨리 당신 장모 앞에서 아니라고 이야기 하라고"

언성을 살짝 높인 그는 옆 테이블에 있던 여학생을 살짝 쳐다보더니 "그런데... 그런데.. 아무 말도 안 하는 거예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나도 이해가 안 돼 다시 물어봤다.

"니가 지금 사촌 여동생이랑... 불... 불륜으로 의심받고 있으니 이 자리에서 확실히 아니라고 말 하라고 했더니 그냥 입을 다물고 있는 거예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기운이 빠져나간다라는 말은 이때 쓰는 것인가 보다.

"12년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K는 전술적 판단을 한 것 같아요. 자기 장모가 말이 통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이 자리에서 아니라고 말하면 자신에 대한 의심이 더 세질 것이고, 네라고 하면 그야말로 사단이 일어날 테니까."

"아니 그건 법정에서 묵비권 행사하는 거잖아요. 아니... 이게 그럴 상황이 아닌데."

"판사잖아요. 똑똑한 사람이잖아요. 그러니까 그렇게 판단 내린 거예요. 그런데 저랑 K는 어렸을 때 친했다구요. 정말 친했어요. 정말. 정말. 친척 형이니까, 공부 잘하니까. 그런데... 그런데..."

하씨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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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사건 보도 화면

그리고 사건 당일

도저히 말이 안 통하던 하씨 가족은 윤씨를 상대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를 해서 승소했고 접근금지 명령까지 얻어냈다.

그런데 윤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더 과감해졌다. 미행이 생겼다.

짙은 선탠을 한 검정색 에쿠스가 이대 정문 앞에 서 있다가 지혜씨를 주시하다 사라졌고 지하철에서 모르는 남자가 쫓아오기도 했다고 한다. 한번은 집으로 중년 여성이 전화를 해 지혜씨의 친구라며 바꿔달라는 수상한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리고 2002년 3월 6일 새벽 5시 반, 윤길자의 조카 윤씨와 그의 고등학교 동창 김씨가 집에서 수영장으로 가던 지혜씨를 납치했다. 범인들은 차 안에서 그녀를 마구 때리고 하남시 검단산 산기슭으로 이동하여 공기총으로 얼굴과 머리에 6발의 총알을 쏘아 살해했다.

"음. 사건 당일. 연락이 끊겼을 때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아픈 기억을 다시 쿡쿡 찌르는 것 같아서 정말 미안했다.

"직감했어요."

"직감?"

"네, 뭔가 일이 생겼구나 하는 직감"

시선이 불안정해지고 목소리의 여운이 짙어진다. 그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2002년 3월 6일 새벽에 수영장을 갔는데 돌아오지 않고... 음. 쩝... 하... 음."

돌아오지 않고. 돌아오지 않고. 이 문장이 내 머릿속에서도 공명했다.

"그럴 아이가 아니었거든요. 집에 항상 전화하는 아이였으니까. 수영장에 가보니까 출입카드가 아예 찍혀있지도 않았고 독서실에도 안 왔더라구요. 그때 소름이 쫙 돋으면서..."

나도 소름이 쫙 돋았다. 인터뷰를 잠깐 멈추는 게 어떨까 하다가 그냥 진행하기로 마음 먹었다.

"바로 경찰에 신고를 했는데 열흘 뒤였죠. 경기도 하남시 검단산에서 사체가 발견됐다고 광주경찰서에서 연락이 온 거죠."

하 씨는 12년이 지났지만 사건이 일어난 날짜, 경위, 지명, 지역 경찰서명, 법원명, 등장인물과 진술된 내용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대체 어느 정도의 상처였길래 그걸 다 기억하고 기록하고 다시 꺼내고 있었을까. 하씨의 머릿속에 조각칼로 음각된 고통을 손가락으로 더듬으며 나아가는 것 같아 너무나 미안했다.

"그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는... 발견된 사체를 보니 공기총으로 머리를 쐈고...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거예요. "

아스팔트 콜타르처럼 정말 무거운 침묵이 카페 안을 가득 채웠다. 건너편 테이블에 있던 일본인 관광객들의 호들갑도 들리지 않는 듯했다.

"정말 괴로우셨겠어요."

"저는 당연히 그랬지만 어머니 같은 경우에는 음. 음... 보시고 나서 자살기도를 두 번이나 하실 정도였으니까요."

내 가슴 속 심장 저 편에서 쿵 쿵 쿵 하는 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내 머리가 흔들릴 정도가 되었다.

이 단락부터 그는 범인들을 지칭할 때 그놈, 그년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매우 합당한 단어 선정이라 생각되나 독자들을 위해서 앞서 표기한대로 기술하도록 하겠다. 경찰은 휴대폰 통화내역 등을 통해서 범인들에 대한 수사망을 좁혀갔고 윤씨의 조카와 김씨를 용의자로 지목했으나 그들은 이미 홍콩과 베트남으로 출국한 이후였다. 모든 증거들이 윤길자를 지목하고 있으나 수사가 어려운 상황.

"그때 정말 힘들었어요. 공권력은 아무래도 미온적인 부분도 있고 한계도 있고..."

하씨의 아버지는 직접 사건 관련 자료를 모으고 범인들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아버지가 이때 모았던 자료들은 사람 키만큼으로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이 승합차로 실어갈 만큼의 분량이었다고 한다.

"범인들이 베트남 모처에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직접 잡으러 가셨는데 바로 직전에 정보가 새나가서 다시 오리무중에 빠지고 만 거예요."

당연히 하씨의 아버지는 자신의 사업을 모두 포기하고 사력을 다하고 있는 상황.

"중국 쪽에 있다는 정보를 접하고 중국 교포사회에 현상금을 걸었죠. 얼마 후 중국공안이 제보를 바탕으로 이들을 체포해서 한국으로 넘기게 됐는데..."

"됐는데요 ?"

"정말 신기한 일이었어요. 범인들은 이미 성형수술을 한 상태였어요. 수배 포스터와 다른 얼굴이었는데도 어떤 분이 알아채시고 제보를 했고 그게 들어맞았던 거죠. 하늘이 도운 거에요. 하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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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하게 세상을 떠나야만 했던 고 하지혜씨.

험난했던 재판과정

"재판도 쉽지는 않았죠?"

내 말을 들은 하씨의 어깨가 축 처진다. 고단함이 다리를 타고 내려와 내 발목까지 찰랑찰랑거렸다.

"일단 그쪽이 돈이 많잖아요. 대형 법무법인을 앞세워서 변호사만 십수명이 윤길자를 보호하는데 아버지 혼자서 온갖 자료를 다 준비하고 힘들게 싸우셨던 거죠."

하씨의 눈에서 가해자들에 대한 분노와 아버지에 대한 처연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거긴 일단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변호사에 영남제분 직원에 그리고 정체 모를 사람들에... 법정 앞에서 아버지를 노려 보거나 일부러 툭 치고 가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아버지에겐 그 현장이 지옥이었겠네요."

"그랬겠죠. 맞아요. 맞아. 말 그대로. 지옥"

하씨는 눈을 아래로 내리 깔더니 여러가지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그의 침묵을 지켜주면서 나도 커피 한 모금을 마셨다.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여학생 스마트폰에서 '렛잇고'가 흘러나왔다.

"사건이 워낙 충격적이니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2002년 6월이었어요."

"월드컵!"

나도 그때 강남역 타워레코드 앞에 정차돼 있던 시내버스 위에 올라가 신호등을 붙잡고 매달렸던 추억이 있다.

"월드컵 열풍 때문에 아무도 관심이 없더라구요. 아무도. 이제 범인들을 단죄해야 하는데"

하씨의 머리가 한쪽으로 기울여졌다가 타원형을 그리면서 천천히 돌기를 반복했다. 몸 안에 쌓인 분노를 분출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모두 똘똘 뭉쳐서 윤길자를 보호하려고 했지만 1심에서 20년을 구형 받아서 항소를 했는데 오히려 2심에서 무기징역을 받은 거예요."

인터뷰한 이래로 처음으로 목소리가 밝아졌다.

"이제서라도 정의를... 그리고 동생의 한을 풀겠구나."

하씨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천천히 내쉬고 좌우를 살피더니 중요한 이야기라는 눈짓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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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도 딸을 사랑했던 아버지.

아버지와 쇠젓가락

"사실 웃지 못할 이야긴데요. 아버지는 쇠젓가락 던지는 연습을 하셨어요."

"쇠... 쇠젓가락이요?"

"혹시나 범인들에게 겨우 5년 정도 나오거나 무죄가 나오면..."

"직접 처리하시려고..."

내 숨이 턱 막히는 듯했다.

"법정에서 움직이는 동선도 파악했고 매일 가족도 모르게 연습을 하셨죠. 나중에 보니까 실제로 젓가락이 나무에 꽂히더라구요."

몸에 박힌 공기총 6발과 팔이 부러진 채 처참하게 발견된 딸, 그 딸의 한을 풀기 위해서 포기한 자신의 삶과 꿈, 지구 전체의 무게보다 더 했을 무거움을 진 하씨의 아버지가 마주했을 절망과 공포가 나한테도 그대로 전해졌다. 아이폰의 녹음기능을 잠시 끄고 쉬다가 가자고 했다. 아니 내가 쉬고 싶었다. 하씨는 밖에서 담배 한 대를 피우고 오겠다고 했다. 잠시 후 내 앞에 다시 앉아 양 손으로 얼굴을 쓸어 내렸다.

"그런데요. 혹시. 혹시 말인데요."

무슨 말을 할 건지 알 것 같았다.

"흠.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기면 어떡할 거냐구요?"

만약 너한테 또는 니 가족에게 이런 일이 생기면 어떡할 거냐는 말은 명제나 담론이라기 보단 저주에 가깝다.

흔히 성폭행 사건에 대해서 미온적인 판결을 내린 판사에게 '니 딸이...'라는 댓글이 달리곤 하는데 '성폭행'을 징벌을 위한 하나의 도구로 인정하며 전혀 책임이 없는 가족 특히 여성이 그 죄를 뒤집어 쓰는 폭력을 다시 범하곤 한다.

그러나 '당사자'가 묻는다면 그건 좀 다르다. 그는 나에게 감정적 동의를 구하고 싶은 거다.

"저라면, 글쎄요. 일단 강남역에서 자동차에 거꾸로 매단 다음에 천안까지 끌고 내려갈 것 같아요. 톨게이트 지나서 천안 삼거리 근처까지 간 다음 맥주 한 잔 하고 생각 좀 해보려구요."

나는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봤던 고대 로마와 중세 유럽의 고문기술을 정확히 복원해서 시전할 것이라고 차근 차근 이야기했고 그는 아이처럼 웃으며 좋아했다.

"뭐. 그냥 속이 좀 풀리네요. 크크크"

다시 시작된 고통

"그런데 2007년에 직접 실행에 옮겼던 일당들이 말을 바꾼 겁니다. 윤길자의 지시가 없었고 자신들이 위증을 한 거라고요."

"네?"

"윤씨를 교도소에 빼내려고 자기들이 더 죄를 뒤집어 쓰겠다고 한 거죠.어차피 이미 무기징역이니까."

2004년에 일단락되었던 가족들의 고통은 2007년부터 다시 시작되었다.

"혹시라도 감형되거나 풀려나면 어떡하나 너무 힘들었죠."

"왜 그런 거죠?"

"일단 윤길자가 무죄로 풀려나면 영남제분이 워낙 돈이 많으니까 그 돈으로 자기들을 나중에라도 빼내줄 수 있겠다고 생각한 모양이에요."

인간의 욕심. 반성 없는 행동. 소름이 돋으면서 한숨이 푹푹 나왔다.

"재판이 청주지원에서 열린 거예요. 또 시작된 거죠. 가족들의 고통이. 그리고 워낙 돈도 많고 빽도 좋으니까 걱정이 많았죠. 그런데 다행히 법정에서 위증에 대해서 무죄를 선고. 그대로 판결이 유지될 수 있었어요."

또 하늘이 도왔구나. 그는 이런 말을 계속 사용했다.

하씨는 이때 실감 그리고 통감했다고 한다. 이런 일을 모두 마주했을 아버지가 얼마나 힘들었을지를. 다시 시간이 흘렀고 남아있던 가족들은 삶의 일상을 회복하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소망은 이뤄지지 않았다.

"2013년 2월이었을 거예요. 제 아이 돌잔치 때 아버지랑 즐겁게 시간을 보냈는데 한달 뒤에 아버지가 제보를 받으신 거에요. 주범 윤길자가 형집행정지로 호화병실에서 편히 지낸다는 사실을..."

무기징역을 받고 교도소에 있어야 할 주범 윤길자가 신촌 연세 세브란스 호화병실에서 질병치료를 이유로 외출까지 하며 편하게 지내고 있던 것.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가 관련 자료를 준비하고 MBC에 연락하셨던 거죠."

2002년 그리고 2007년 다시 2013년. 5년, 6년 단위로 이 가족의 고통은 계속 재연됐다.

"저는 처음에 방송이 나간 것도 몰랐는데 아는 형한테 월요일 아침에 전화가 온 거예요. 그래서 다시 보기로 봤죠."

고개를 좌우로 살짝 흔들면서 숨을 내쉰다. 분노가 느껴졌다.

"아 말도 안돼. 말도 안돼." 감정을 가라앉히려는 듯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2월 7일 손자 돌잔치 끝내고 한 달간 아버지는 MBC 임소정 기자랑 또 한 달 간 쌩고생을 하신 거죠."

아... 아버지.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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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형집행정지를 세상에 알린 MBC 2580 임소정 기자.

"이번에는 아버지 혼자 싸우시게 할 수 없었죠. 저도 애가 있다 보니까 아버지의 심정을 이해하겠더라구요. 그래서 아고라에 글도 올리고"

"저한테 페이스북 메시지도 보내고"

"네 그때 트위터 페이스북에 계속 글을 올리고 공유해달라고 진짜로 아무한테나 보냈어요. 그래서 스팸 계정으로 정지 먹기도 하고."

하씨는 '하지혜' '윤길자' '영남제분' 등으로 검색해서 나온 게시물마다 사건의 실체는 이렇다 관심 좀 가져달라는 댓글을 달고 메시지를 보냈다. 죽은 여동생의 이름을 검색 창에 넣을 때마다 어떤 느낌이 들었을까.

"2002년에는 너무 힘들었어요. 정작 범인들이 체포됐을 때는 월드컵 기간이라서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는 이들이 없었죠.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어요. MBC 2580을 통해서 범인들에 대한 공분이 대단했었고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두 번이나 방송을 해줬으니까요."

윤길자에게 허위진단서를 발급해줬던 박 교수와 금품을 제공한 영남제분 회장에게 2월 7일 유죄가 확정됐다. 그리고 영남제분 측은 MBC 임소정 기자를 의료법, 주거침입,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고소했다. 이 사건은 현재 진행 중이다.

베스트 케이스

"그런데요. 정말 힘든 게 뭔지 아세요?" 하씨는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한 번 쓸고는 허공에서 주먹을 살짝 쥐었다.

"저는... 저희는 그나마 한을 푼 사람들이라는 거예요. 우린 그나마 베스트 케이스라고요."

"억울한 사람들이 너무 많죠?"

"많죠. 저한테 전화나 메일 주시는 분들이 많으세요. 강력범죄 피해자 분들인데 도대체 어떻게 해면 좋겠냐고 조언을 구하시는 거죠. 그분들 보기엔 방송에서 세 번이나 다뤄졌고 가해자들도 처벌 받았으니까 제가 그야말로 '베스트 케이스'인 거예요."

세상에나 여동생이 죽고 12년이나 고통이 지속됐는데도... 베스트 케이스라니...

"이 상황이 부럽다니..."

"그러게요. 이 상황이 부럽다니요..."

그는 인터뷰 내내 하늘이 도왔다라는 말을 했다. 성형수술을 한 범인들을 중국에서 잡을 수 있었던 것도 방송에서 세 번이라 다뤄졌던 것도, 위증죄가 무죄로 판결 났던 것도 모두 하늘이 도운 것이라고. 아버지가 엄청난 집념과 이성을 갖고 있었던 것도. 그런데 그 하늘은 너무 무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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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진영 씨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진 이들에게 일일이 고마움을 표했다.

용서를 강권하는 사람들

주범 윤길자의 위장입원이 언론을 통해 드러난 뒤에도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하씨는 아버지를 대신해 재판에 모두 참석 12번 동안 그들의 얼굴을 천천히 들여다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아버지가 정말 힘드셨겠구나. 그땐 언론도 없었고 여론도 없었으니까요."

하씨도 힘들었다. 1년동안 무려 16킬로 살이 빠졌다. 그만큼 마음 고생이 심했던 거다.

"혹시 용서라는 단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뜬금없이 물어봤다.

"전혀요. 사촌 K부터 시작해서 청부살인을 했던 범인들 그리고 영남제분 회장에 윤길자까지. 단 한 명도 저희 가족에게 사죄를 한 적이 없습니다. 내가 왜 그들을 용서해야 하죠."

그는 미리 써 놓은 것을 읽듯이 격한 내용을 담담하게 말했다.

"종종 페이스북 댓글을 보면 용서하고 마음의 위안을 얻으라는 말을 써주시는 분들이 있었어요. 용서? 왜요? 왜 제가 그들을 용서해야 하죠. 주로 종교를 믿는 분들이 그러시던데 왜요?"

가해자 그리고 피해자. 이 두 사람을 제외한다면 신이 설령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 또한 제 3자일수밖에 없다. 어째서 제3자의 이름으로 용서를 강권하는 것인가.

"당신이 만약 똑같은 일 당해보세요. 그럼 용서라는 말이 나올까요 라는 댓글을 확 달고 싶어도 차마 그러지 못하겠는 거예요."

"아니까, 그 고통을 아니까..."

"맞아요. 이게 얼마나 괴로운 건지 아니까, 그러니까 차마 말은 못하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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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검찰은 박 교수와 유 회장을 구속 수사했다.

이제 다른 이에게도 관심을 갖겠다

이 사건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2013년 12월 17일 법무부는 형집행정지에 따른 임시 출소자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자유형 등에 관한 검찰집행사무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에는 형집행정지의 악용을 막을 수 있는 조항이 신설됐다. 개정안에 따르면 검찰은 형집행정지 허가 시에 의료기관 등으로 주거를 제한하거나 의료기관에서의 외출•외박을 금지하는 조건을 추가할 수 있으며 의료기관 이용 시에도 치료에 필요한 범위를 벗어나는 시설 및 용역을 제공받지 않도록 제한할 수 있도록 했다.

하씨 또한 이런 움직임을 고무적으로 봤다고 했다.

"이 12년 동안 가장 많은 고통을 겪은 건 역시 어머니셨어요. 그래서 제가 엄마를 위로해 드렸어요. 엄마 딸 하지혜는 그렇게 죽었지만 이제 세상사람들이 12년 전에 죽은 아이 이름을 다 알고 마음 아파해주고 그리고 법조인이 되고 싶었는데 법률까지 개정됐다잖아요. 이제 한을 풀었을 거예요. 어머니도 이제 기운 내세요."

하 씨는 다른 강력 사건 피해자의 아픔도 들여다 보게 되었다고 한다.

"제가 신촌 연세 세브란스 병원 앞에서 항의 시위를 하고 있었을 때였어요. 어떤 중년 아주머니가 오셔서 제가 갖고 있던 전단지를 막 나눠주시는 거예요.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하씨의 눈이 동그래졌다.

"이런 전단지는 택시기사한테 나눠줘야 효과가 있다고."

"구전이 되니까"

"네. 택시기사들이 알아야 승객들한테 이야기도 해준다면서 신호대기 때마다 굽신굽신 거리면서 택시기사에게 전단지를 나눠주시는데 알고 보니까. "

"알고 보니까? "

"그 분 역시 몇 해전에 딸이 성폭행 당하고 살해당했던 분이셨어요. 자기가 아니까."

"그 맘 아니까..."

"그래서 여기 와서 도와주고 계셨던 거죠. 그 분 붙잡고 펑펑 울었어요. 펑펑"

그는 다른 강력 사건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정리해서 페이스북에 올리거나 직접 공판에 직접 참석해서 후기를 올리기도 한다.

"제가 뭐 할 일이 있겠어요. 그냥 손 잡고 같이 울어드리고 힘 내시라고. 고인의 되신 분들의 마음 생각 해봐라. 이렇게 용기 드리는 거죠. 세상을 떠난 고인이 엄마 아빠가 죽거나 생업을 포기하시길 바라겠냐. 더 잘 살자고. 그렇게 위로해 드리는 거죠."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떡끄떡거렸다.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끝나지 않은 싸움

난 하룻동안에 세 번 시합을 한 적도 있다. 마스크맨으로 시합하고 맨 얼굴로 그리고 로얄럼블. 온몸에 있는 포도당이 모두 소진된 상태에서 젖산이 가득 들어찼고 그야말로 죽는 것과 사는 것과의 경계가 모호한 상태에서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인터뷰를 마치자 그 때에 버금가는 탈력현상이 일어났다. 하씨는 사건 관련해서 코멘트를 달아줬던 신촌의 칵테일바 틸트 사장에게 인사라도 하고 싶다며 그곳에 가보자고 했고 나도 그러자고 했다. 공교롭게도 사장은 자리에 없었고 우리끼리 맥주 한 병씩 마시고 근처 고깃집으로 이동을 했다. 그곳에서 하씨는 오프 더 레코드를 전제로 '차마 이야기 하지 못했던 것들'을 꺼내주었다. 분노와 연민이 홈쇼핑에서 파는 강판에 갈린 무처럼 슥슥 갈려서 내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소주를 네 병이나 마셨지만 취하지도 않고 깨지도 않았다. 심히 기분 나쁠 때 술 먹으면 일어나는 현상이다.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오는데 하씨가 했던 말이 귓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피해자가 돈도 쓰고 빽도 써야 하는 건가요. 거기다 운도 있어야 하는 건가요? 그래야만 정의가 실현되는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