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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8월 27일 11시 45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8월 27일 14시 12분 KST

돌도끼와 스마트폰

gettyimagesbank

구석기 사회에서 돌도끼는 오늘날 스마트폰과 유사한 만능 도구였다. 경기도 연천군 전곡리 구석기 유적지에서도 발굴된 아슐리안 주먹도끼는 날카롭게 다듬은 양날을 이용해 짐승 가죽을 벗기거나 뼈를 발라내는 데, 또 나무줄기를 자르고 뿌리를 파헤치는 데 요긴하게 쓰였다.

이르 요론트 부족은 오스트레일리아 북부에서 19세기까지 구석기식 삶과 문화를 유지해왔다. 로리스턴 샤프 미국 코넬대학 인류학 교수가 1952년 발표한 <석기시대 오스트레일리아인을 위한 쇠도끼>는 자급자족하며 고유문화를 유지해오던 부족이 도구 하나로 붕괴하는 과정을 세상에 알린 논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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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레일리아 북부 이르 요론트 부족의 거주지.

1915년 영국 성공회가 인근에 선교회를 세우고 돌도끼를 쓰는 이 부족에게 쇠도끼를 선물하면서 모든 게 달라졌다. 돌도끼는 부족에게 가장 요긴하고 귀한 도구로, 돌도끼 제작과 사용권한을 중심으로 사회 위계와 관습, 문화가 만들어져 있었다. 먼 곳의 상인들과 교역을 통해 돌을 구입하고 제작·관리하는 전 과정을 성인 남자들이 도맡았다. 돌도끼는 공동체가 기반한 권위의 상징이자 생활 필수도구였다. 돌도끼를 빌려주고 빌리는 절차에서 정교한 사회체계와 문화가 형성됐다. 선교사들로부터 쇠도끼가 공짜로 제공되어 여자와 아이들도 지닐 수 있게 되자, 큰 혼란이 생겨났다. 백인들은 쇠도끼 덕분에 삶이 개선되길 기대했지만, 원주민들의 삶과 사회는 아노미를 겪게 되었다. 쇠도끼나 새로운 물건을 얻기 위해 아내와 딸의 몸을 팔게 하거나 도둑질이 횡행하는 등 공동체를 지탱해온 질서와 문화가 무너졌다.

구석기인이 손에 쥐게 된 쇠도끼는 사용법과 그 영향을 잘 알지 못한 채 도구에 깊이 의존할 때의 위험성을 알려준다. 기술 발달이 가속화하면서 쉴 새 없이 새 기술과 도구가 생겨나 유혹한다. 기술의 영향이 크고 근본적일수록 그 파장과 변화에 대한 다각적인 논의와 성찰이 동반되어야 도구로 제대로 쓸모를 발휘할 수 있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