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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4월 23일 12시 46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06월 23일 14시 12분 KST

'대학살'을 보다

지금 나는 또 하나의 '대학살'을 보고 있다. 세월호. 이건 분명 학살이다. 분명한 가해자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의 살의가 분명하게 드러난 것은 아니지만, 이건 학살이다. 선장이, 언론이, 정부가 엉망진창으로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배에 갇힌 이들의 구조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미 죽은 자를 다시 죽이는 언론과 게시판의 글 그리고 책임 있는 자들의 망언이 있었다. 이건 우리가, 한국이라는 국가가 저지른 대학살이었다.

연합뉴스

'massacre'라는 단어를 처음 본 건, 중학교 때 본 토비 후퍼의 <텍사스 전기톱 대학살>(The Texas Chainsaw Massacre)에서였다. 남부지방으로 여행을 떠난 대학생들이 '살인마' 가족의 공격을 받아 끔찍하게 살해당한다. 이유도 없이, 그저 그들의 눈에 들어왔기 때문에. 그들의 비명이, 끈적거리며 등에 달라붙는 기분이었다.

그 영화를 다시 고등학교 때 만화가게에서 봤다. 고3이었다. 일요일에 학교에 나갔다가 책이 눈에 안 들어오고 지루해져서, 비디오를 틀어주는 학교 앞 만화가게로 갔다. <텍사스 전기톱 대학살>을 했다. 이미 본 영화였지만 다시 봤다. 어둡고 눅눅한 만화가게에서 천장 바로 아래에 달린 브라운관 TV로 '대학살'을 봤다. 뭔가 피부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기분이었다. 가게를 나오니 비가 오고 있었다. 천천히 걸어서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실제 있었던 사건에서 영감을 받은 영화라고 했다. 도시에 사는 대학생들은 마약도 하고, 프리섹스도 하고, 데모도 하면서 인생을 누리는데, 깡촌에 틀어박혀 살아가는 자신이 밉고 대학생들은 더 미웠다고 한다. 그래서 캠핑 온 젊은 남녀들을 죽였다고. <이지 라이더>의 마지막 장면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젊은이들은 총에 맞아 도로에 나뒹군다. 시골의 농부가, 아무런 이유 없이 그들을 쐈다. 시끄럽게 하는,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이 싫어서.

나에게 '학살'이란, 고 3 때 본 광주항쟁 자료집이었다. 사진들이 있었다. 곤봉으로 머리를 내려치는, 피투성이가 된 채 묶여 있는, 피를 철철 흘리는....사진들. 아득했다. 그 사진들을 보고, 자료를 읽으면서 생각했던 것은, 인간은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가, 였다. 국민을 지켜야 하는 군인이 총을 들이대고 학살을 저지른 사건. 그 학살에는 분명하게 책임을 질 사람들이 있었다. 군인들이 아니라 그들에게 명령을 내린 이들. 나는 세상을 더 알고 싶었고, 그 때까지 갈 생각이 없었던 대학에 일단 가자고 생각했다. 광주항쟁 자료집을 보고, 다시 <텍사스 전기톱 대학살>을 봤을 때, 나는 그 살육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섬뜩하다기보다는, 인간의 어두운 심연을 본 기분이었다.

지금 나는 또 하나의 '대학살'을 보고 있다. 세월호. 이건 분명 학살이다. 분명한 가해자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의 살의가 분명하게 드러난 것은 아니지만, 이건 학살이다. 그날 낮에 '전원 구조'라는 기사를 보고 창비어린이 세미나에 갔다가 저녁 늦게 일이 끝나고 난 후에 뉴스를 보니 세상이 뒤집혀 있었다. 실종자가 2백 명이 넘었다. 선장이, 언론이, 정부가 엉망진창으로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배에 갇힌 이들의 구조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미 죽은 자를 다시 죽이는 언론과 게시판의 글 그리고 책임 있는 자들의 망언이 있었다. 이건 우리가, 한국이라는 국가가 저지른 대학살이었다.

광주에서의 학살을 알았을 때는, 세상을 알고 싶었다. 알아야만 뭔가 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지금 이 학살 앞에서는 아직 모르겠다. 시간이 흐르면 나 하나 버틸 힘은 충분히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너무나도 억울하고 원통하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