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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2월 27일 10시 21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04월 29일 14시 12분 KST

돈 안 받고 쓰는 글

지난해, 정신없이 일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하나는, 슬슬 내가 하고 싶은 무엇인가를 해볼까, 였다. 시작으로, 돈이 안 되는 글을 써 볼까, 라는 생각을 했다. 청탁을 받고 쓰는 글, 분명하게 목적을 가지고 쓰는 글만이 아니라 내가 쓰고 싶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유롭게 담아내는 글.

한겨레

처음으로 돈을 받고 글을 쓴 건, 대학교 3학년 때였다. 학교 잔디밭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는데 누군가 다가왔다. 함께 있던, 당시에 절친했던 친구에게 원고 독촉을 했다. 친구는 이미 원고를 써서 넘겼지만 편집 방향과 달라 수정 요구를 했고, 친구는 다시 쓰는 건 불가능하다고 발뺌을 했다. 그러다 문득 나를 돌아보더니, 자기는 원고료를 안 받을 테니, 나에게 대신 쓰라 했다. 총여학생회지에, 남성이 본 여성에 대해 쓴 에세이. 그것이 내가 처음 원고료를 받고 쓴 글이었다. 일기, 편지, 학생회실에 놓여 있는 노트나 학생회지 말고.

그 후 오로지 나만을 위해 쓴 글은 일기와 편지 외에는 거의 없었다. 원고료를 받지 않고 쓴 글은 있었지만 그것 역시 청탁에 의한 것이었다. 재능 기부라기보다는, 돈을 받지 않아도 나에게 뭔가 도움이 되거나 의미가 있는 경우에는 원고를 넘겼다. 그렇게 20년이 훨씬 넘게 살았다. 내가 쓰는 글이 '작품'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어떤 필요에 의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 정보를 능숙하게 기사로, 글로 만들어내는 일.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돈을 벌기 위해서, 생계를 위해서 글을 썼다. 그것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후회한 적 없었다.

시간이 흘렀다. 나이도 들었다. 지난해에는 회사를 만들었다. <미생>의 윤태호 작가와 함께 만화 리뷰 웹진 '에이코믹스'를 만들었다. 돈이 되는 사업은 아니다. 적자만 겨우 면해도 대성공이다. 오래 전, 대학을 졸업하고 잠시 놀다가 비디오가게를 했다. 비디오가게를 하면서 돈을 벌고, 쓰고 싶은 글을 쓰자,는 생각이었다. 착각이었다. 부업과 본업을 헷갈렸다.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돈을 버는 일이 본업이 되어야만 했다. 1년간 비디오가게를 하면서, 아무리 작은 일을 하더라도 헌신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게를 처분하고 일을 했다. 다시는 가게, 사업 같은 것은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글을 써서 먹고 살 수 있는 무엇인가를 시작했다. 그렇게 기자가 되었고, 평론가랍시고 여기저기 글을 쓰고 강의도 하면서 생존할 수 있게 되었다. 다행이다.

지난해, 정신없이 일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하나는, 슬슬 내가 하고 싶은 무엇인가를 해볼까, 였다. 시작으로, 돈이 안 되는 글을 써 볼까, 라는 생각을 했다. 청탁을 받고 쓰는 글, 분명하게 목적을 가지고 쓰는 글만이 아니라 내가 쓰고 싶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유롭게 담아내는 글. 누가 실어주거나 책으로 내주지 않아도, 내 맘대로 쓰는 글. 그런 생각이 문득 문득 들었다. 그리고 허핑턴 포스트 블로그를 하게 되었다. 오래 전 모 블로그를 하다가 방치상태로 내버려 둔 이후로 처음 하는 블로그.

다시 블로그를 해 볼 생각이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을, 하고 싶은 말을 맘대로 늘어놓을 생각이다. 하나는 오래 전부터 생각했던, 유년과 젊은 날에 보았던 영화에 대한 기억들을 당대의 문화적 풍경과 엮어보는 것. 어떤 문화적 체험으로 성장했는지를 개인적으로 되짚어보는 것. 또 하나는 그야말로 자유분방한 글이다. 한국이라는 사회는 지겹다. 이제는 지겹다, 라는 말을 하는 것조차 지겹다. 엄청나게 많은 금기와 권위주의, 집단주의 등등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사회. 그 사회의 터부에 대해서 내 맘대로 불평을 해 보고 싶다. 혹은 다른 방식으로 금기를 깨보는 지식이나 정보를 이야기하고 싶다. 다른 곳의, 다른 이야기들.

아마 그렇게 블로그를 이용할 것 같다. 지금은 실체 없는 계획이지만, 그래도 해볼 생각이다. 그럴 때가 된 것도 같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