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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3월 27일 06시 53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5월 27일 14시 12분 KST

8가지 키워드로 정리해본

결론적으로, <언프리티 랩스타>는 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프로그램이다. 물론 프로그램의 취지는 좋다. '여성' 래퍼에 관심을 기울이고 조명하는 것. 얼마나 좋나. 지금 한국힙합에 꼭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이 그 취지를 밀도 있게 실현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난 그 부분에서 회의적이다.

Mnet

<언프리티 랩스타>가 끝났다. 이 프로그램은 마지막에서 두 번째 방송에 이르러서야 볼 만한 무대를 보여주며 막을 내렸다. 그리고 모두가 알 듯 많은 논란이 있었다. 물론 이런 프로그램의 모든 것을 진지하고 심각하게 볼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냥 쇼야' 하면서 생각없음과 사고하지 않는 것이 표준이자 옳은 태도인 것 마냥 구는 것도 문제다. 결국 중요한 건 균형감각일 것이다. 그래서 써봤다. 힙합을 가장 좋아하는 음악비평가의 입장에서 8가지 키워드로 정리해본 '언프리티 랩스타'. 늘 그렇듯 판단은 읽는 이의 몫이고 철이의 뺨은 서태웅의 몫이다.

1. '예쁘지 않은' 랩스타?

<쇼미더머니>의 외전 쯤 되는 이 프로그램은 '여성' 래퍼 서바이벌이었다. 즉, 경연의 참가자가 모두 여성이다. 이 사실은 프로그램의 제목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든다. <언프리티 랩스타>라. '언프리티'는 말 그대로 '예쁘지 않은'이라는 뜻이다. 랩스타는 굳이 설명하자면 '랩 음악으로 선망의 대상이 된 존재' 정도가 된다. 어쨌든 이 프로그램의 제목은 '예쁘지 않은 랩스타'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왜 제목을 이렇게 지은 걸까.

일단 '예쁘지 않은'이라는 표현을 쓴 건 사전에 '예쁘다'라는 말을 의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예쁜 랩스타'는 싫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더 강렬하고 분명한 의미를 위해 '어글리 랩스타'는 어땠을까. 물론 우문이다. 당연히 안 된다. '예쁘기만 함'을 부정하는 의도이지, 예쁨의 반대를 나타내기 위함은 아니기 때문이다.

즉 <언프리티 랩스타>라는 제목의 의미를 한 문장으로 하면 이렇게 된다. "여자라고 예쁘장하게만 생각하지 마! 호락호락하게 보지 말라구!" 결국 이 것은 '여성 래퍼'라는 존재를 둘러싼 모든 핸디캡이나 편견을 떼고 봐달라는 요청에 가깝다. 참여하는 여성 래퍼들이 예쁘지 않다는 이야기도 아니고, 외모에 신경을 쓰지 않거나 외모를 활용하지 않겠다는 것도 아니지만 그 것을 모두 벗어던지더라도 '음악적'으로 의미있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의지였을 것이다. 또한 이런 맥락은 지난 수 십년 동안 힙합이 남성우월주의가 지배해온 세계였으며, 그런 만큼 여성 래퍼는 늘 소수이자 약자였다는 전제 위에 더욱 특수한 함의를 지닌다.

2. '애정' 없고 '자극' 있다

결론적으로, <언프리티 랩스타>는 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프로그램이다. 물론 프로그램의 취지는 좋다. '여성' 래퍼에 관심을 기울이고 조명하는 것. 얼마나 좋나. 지금 한국힙합에 꼭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이 그 취지를 밀도 있게 실현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난 그 부분에서 회의적이다.

<쇼미더머니> 때도 그랬다. 처음에는 '엠넷 같은 방송국에서 힙합 프로그램을 만들었다는 것' 자체에 힙합 팬으로서 고마운 마음을 가진 적도 있었다. 하지만 많은 문제점과 실망이 있었다. 쇼미더머니가 힙합이 지닌 고유한 멋과 매력을 총체적으로, 또 진실하게 접근해 잘 드러낸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내 생각에 쇼미더머니는 잘 나가는 힙합을 업어가려는 한 방송국의 의도 위에 성공을 꿈꾸는 다양한 주체의 욕망이 뒤섞여 있는 힙합 엔터테인먼트 쇼에 가까웠다.

물론 다큐멘터리를 바랐던 건 아니다. 엔터테인먼트는 엔터테인먼트대로 의미와 가치가 있다.

예능의 재미를 고려해야 하는 제작진 입장도 이해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많은 힙합 팬이 쇼미더머니를 씁쓸하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완벽한 걸 바라는 건 아니었다. 내 마음에 전부 들어야 된다는 건 더더욱 아니었다. 난 결코 그런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쇼미더머니>는 힙합을 잘 모르면서, (결정적으로) 앞으로도 더 알고 싶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그런 사람이 만든 듯한 프로그램이었다.

이런 느낌은 언프리티 랩스타에서 그대로 이어졌다. 힙합에 대한 전문성이나 애정 대신 눈에 들어오는 건 자극적인 연출과 편집이었으니까.

3.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

하지만 제작의 측면보다 더 문제의식을 느끼는 건 참가한 여성 래퍼들의 '역량'이었다. 나는 이 프로그램을 보는 내내 내 자신이 초라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왜 부끄러움은 내 몫인가에 대해 생각했다. 랩에서 라임, 리듬, 박자 등은 기본이다. 랩을 들을 때 우린 이 '기본'에 신경 쓰는 대신 각 래퍼의 고유한 스타일이나 멋, 표현 등을 논하고 있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참가자의 상당수가 기본도 되어있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가사를 까먹거나, 박자를 놓치거나, 아예 무대에서 얼어버리거나.

물론 프로그램의 빡센 일정 탓도 어느 정도는 있을 거라고 추측한다. 그 점을 고려해야할 것이다. 그러나 언프리티 랩스타와 마주했던 우리는 박자를 최소한 절지는 않았다는 이유로, 가사를 이번에는 까먹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타 '당연한' 것이 '당연하게' 행해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안도하고 기뻐했다. 우리도 모르게 초라해져버린 것이다.

더 심하게 말하면 모욕감 비슷한 것도 들었다. 내가 이 걸 보고 있어야 하나. 저런 실력으로 래퍼라고 자처하는 건가. '힙합'을 내세워놓고 이런 프로그램을 만든 건가. 결과적으로 <언프리티 랩스타>는 켄드릭 라마의 컨트롤 정신(?)과는 상반되는 '평가 기준의 하향 평준화'를 불러왔다. 난 멋-나는 여성 래퍼들의 좀-쩌는 랩 대결을 기대했지만 이 프로그램은 본의와 무관하게 강제로 '오디션' 성격을 지니게 됐다.

4. 그렇게 망친~ 내 릴샴 책임져~

사실 제작진의 고충도 이해는 할 수 있다. 여성 래퍼를 찾는 데에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무책임하다는 생각도 든다. 솔직히 말해보자. 방송에서 섭외 제의가 왔는데 "내 실력이 아직 준비가 덜 되었기 때문에 나가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할 래퍼가 몇이나 될까. 내가 릴샴이었어도 이 기회를 놓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방송에서 릴샴은 어땠나. 미안하지만 전형적인 '스튜디오 엠씨(Studio MC)'의 모습이었다. 스튜디오에서 녹음은 곧잘 하지만 라이브 무대에서는 아무 것도 못하는 래퍼 말이다.

가사도 까먹고, 제대로 랩도 못하고, 무대에서 즐길 줄도 모르고, 대신에 원주민 바운스라는 별명을 얻었다. 릴샴은 비록 소수이긴 했지만 힙합 씬에서 실력과 태도가 괜찮은 여성 래퍼로 입소문이 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으로 인해 그게 완전히 박살나버렸다. 물론 대중에겐 무명에 가까우니 이 기회에 이름을 알렸다고 애써 위안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이게 모두 릴샴 만의 책임이고 잘못일까. 제작진에게도 분명 검증의 책임이 있지 않을까. 릴샴 개인에게도 그렇고, 좋은 방송을 만들지 못한 의미에서도 말이다.

5. '멋진', '여성' 래퍼

지코가 처음으로 출연했을 때, 여성 래퍼들은 환호하고 소리 지르며 셀카를 함께 찍었다. 이 자체가 잘못이라고 말하는 건 아니다. 나 역시 사진 찍는 걸 즐기고 인스타그램의 좋아요 수에 집착한다. 인터뷰를 할 때면 인터뷰가 끝난 후 인터뷰이와 기념촬영을 하기도 한다. 삶의 즐겁고 기념할만한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는 건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대부분의 여성 래퍼는 프로듀서가 공개되고 무대로 나올 때마다 매번 이런 반응이었다.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행동. "대박","안구정화"를 외치는가 하면, 릴샴은 임슬옹이 나왔을 때 "몇 살부터 그렇게 잘 생기셨어요?"라고 물었다. 또, 릴샴이 탈락할 때는 서로 울기도 했다. 눈물이 흐를까봐 뒤돌아보지 않으려고 애쓰며. 물론 이런 장면들에서 우리는 인간미를 느낄 수 있다. 나였어도 절대로 울지 않았을지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별 것 아닌 이 장면들이 보기에 따라 중요한 걸 상징할 수도 있다. 저 광경을 모니터로 보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저 여성 래퍼들은 지금 자기가 어디에, 또 어떤 상황에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저 여성 래퍼들은 지금 자기가 어떤 역할로, 무엇을 대표하고 있는지 생각은 해봤을까?"

거창하고 심오한 걸 요구하려는 건 아니다. 마치 힙합에 대한 어떤 오해나 편견처럼, 프로듀서가 들어왔는데 오만하고 공격적인 태도를 보였어야 옳다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단지 내가 보기에 저 여성 래퍼들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못했다. 또 자기가 방청객이자 팬인지 아니면 프로그램의 주인공이자 주체인지 헷갈렸다. 그리고 '여성' 래퍼에 대한 편견, 미심쩍음, 기대가 뒤섞여 이 프로그램을 매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잊은 것처럼 보였다.

만약 지코가 나왔을 때 환호성과 셀카 요청 대신 이랬으면 어땠을까. "평소에 음악을 즐겨들었고 팬이지만 이번에는 이 프로그램의 주인공으로서 멋지게 실력을 증명할게요." 이 편이 아마추어보다는 더 프로페셔널에 가까운 행동이고, 또 보다 '힙합'다운 태도였을 것이다. 왜 스스로 '멋진' '여성' 래퍼를 기대했던 사람들의 "역시나...그럼 그렇지..."라는 반응을 자초한 걸까.

하지만 제작진은 이런 장면을 놓칠 리 없었다. 힙합과 상관없는, 아니 힙합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든 그저 재미있고 자극적인 장면을 내보내면 되니까. 탓할 것도 없다. 그들은 그들의 할 일을 한 것이다. 제작진이 래퍼들에게 외친다. "We Are Not A Team!"

6. '살아온 사람'과 '흉내내는 사람'

치타와의 랩 배틀에서 지민은 치타에게 엿을 먹였다. 하지만 배틀이 끝난 후 지민은 어쩔 줄 몰라 했다. "모자이크해주세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Puss' 솔로 무대에서도 비슷했다. 공연에서 온갖 비속어와 욕을 한 다음 공연이 끝나고는 어색해 했다.

솔직히 나는 지민의 랩 실력이 참가자 중 꼴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대 이상인 면이 있다. 하지만 실력과 별개로 지민의 한계는 분명하다. 지민의 무대에서는 '진심'이 느껴지지 않았다. 지민이 가식적이라는 말도 아니고 지민이 나쁜 사람이라는 말도 아니다. 다만 '연기'를 했다고 느낄 뿐이다.

힙합은 '하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이란 말이 있다. 또 힙합은 음악이자 문화이고 동시에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지민의 모든 무대는, 힙합을 음악을 넘어 문화로서 받아들이고 동시에 삶의 방식으로서 즐겨온 사람의 자연스러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에 마치 메쏘드 연기를 하는 것처럼, 퍼포먼스 동안만 몰입해서 연기를 한 다음 끝나면 어색해하거나 안도를 하곤 했다. 그와 함께 매번 나도 밤샜지, 아니 김샜다. "아, 진심이 아니었구나. 그냥 잘 따라한 거였구나. 잠시 이 프로그램의 룰에 충실히 맞췄던 거구나."

지민의 이런 면모는 제시의 '일관성'과 완벽히 대비된다. 예를 하나만 들어보자. "이건 가면무도회 / 나만 솔직해 전부 다 가식" 제시의 이 가사가 유독 와 닿았던 이유는 뭘까. 물론 공격적인 내용 자체가 주는 쾌감도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포인트는 제시가 무대 위와 아래에서 늘 똑같았다는 점이다. 사실 지민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어쩔 수 없는 한계에 가깝다. '살아온 사람'이 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하는 것은 비슷해보여도 확실히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7. 이 새끼!

치타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발표한 싱글 'My Type'에서 남성을 지속적으로 '새끼'라고 지칭했다. 기분 나쁘단 게 아니다. 솔직히 기분 좋다. 더 듣고 싶다. 하지만 여성 래퍼가 가사에 남성을 '새끼'라고 표현해야 주체적인 여성성이 성립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게 틀렸다고 단언하는 게 아니라, 남성우월주의가 만연한 힙합의 세계에서 남성 래퍼가 여성을 비하하는 표현을 당연하게 써오고 있다고 해서 그것의 성별만 다른 버전을 재현하는 것이 의심의 여지 없는 해답인지는 모르겠다는 말이다. 같이 고민해볼 거리 중 하나다. 물론 특별한 생각없이 쓴 표현이겠지만.

8. 그 많던 고민은 어디로 갔을까

여전히 이 프로그램이 '한국힙합'과 '여성래퍼'의 미래에 어떤 도움이 됐는지는 잘 모르겠다. 물론 출연한 래퍼들의 인지도는 높아졌을 것이고, 공연 티켓 또한 매진되었다고 한다. 엠씨몽도 나왔다. 하지만 '여성'래퍼, 그리고 여성'래퍼'에 대한 고민은 총 8회의 방영분을 통틀어 과연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그 많던 고민은 어디로 갔을까. 아니, 처음부터 없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