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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7월 23일 12시 44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09월 22일 14시 12분 KST

Vinyl로 음악을 듣는다는 것

중요한 것은 음원과 스트리밍의 전성시대, 그 한복판에서 음악이라는 예술이 주는 궁극적인 감흥이란 폴더 안에 가득한 파일이나 음악 앱의 클릭 버튼이 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체감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어떤 음악에 매혹되는 첫 순간으로부터 시작해 물성을 지닌 음반을 구매하고 싶다는 욕구, 매장에 찾아가 직접 음반을 고르고 비교하는 행위, 음반을 손에 쥐고 집에 돌아와 비닐을 벗기고 부클릿을 읽으며 음악을 듣는, 이 모든 경험과 과정의 종합이야말로 음악과 진정으로 마주하는 짜릿한 '의식'임을 사람들이 알게 된 것은 아닐까. 누군가에게는 새롭고, 누군가에게는 다시 찾은, 그 감흥 말이다.

Getty Images/Vet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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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코드 스토어 데이'라는 행사가 있다. 2008년부터 매년 4월 셋째주 토요일에 열리고 있는 이 행사는 미국의 몇몇 독립 음반 매장으로부터 소소하게 시작됐지만 지금은 전세계적인 음악 축제가 되었다. 이 행사를 위해 오지 오스본과 잭 화이트가 홍보대사를 담당하고, 롤링스톤스와 레이디가가의 특별한정반이 발매되며, 음악을 즐기는 이들이 모여 바이닐과 시디와 카세트테이프를 구입하거나 공연을 즐긴다. 이 행사의 영향을 받아 '카세트 스토어 데이'도 생겼다. 물성을 지닌 음악 저장 매체 중에서도 특별히 카세트테이프를 기념하는 이 행사는 2013년 9월에 첫 발을 디뎠고 플레이밍 립스 등의 음반이 카세트테이프로 발매되었다.

이러한 '아날로그의 역습'은 통계로도 뚜렷하게 포착된다. 사운드스캔의 2014년 상반기 발표에 따르면 미국의 바이닐 판매는 전년 대비 40% 이상 증가했다. 당연히(!) 음원 판매량에 비하면 숫자는 비할 바가 못 되지만 자체 증가 추세는 놀라운 수준이다. 그런가하면 유니버설 레코드에서는 제이지, 노토리어스 비아이지 등이 남긴 역사적인 힙합 음반들을 카세트테이프로 재발매하겠다고 선언했다. 물론 힙합은 태생적으로 턴테이블을 기반으로 한 '디제잉'을 장르의 필수 요소로 포함하고 있기에 다른 어떤 장르보다 바이닐을 꾸준히 발매해 왔지만 이제는 카세트테이프도 함께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국내도 예외는 아니다. 우선 '레코드 페어'가 있다. 2011년에 시작해 올해 6월에 4번째 행사를 마친 레코드 페어는 어쩌면 레코드 스토어 데이의 한국 버전이다. 올해는 언니네이발관, 디제이 소울스케이프 등 국내 음악가의 음반을 바이닐로 재발매하기도 했다. 또 브라운아이드소울이 새 음반을 카세트테이프로 발매해 화제를 모았고, 아이유와 버스커버스커 등은 바이닐을 제작해 단시간에 많은 판매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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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걸까. 가장 쉽고 안일한(?) 접근은 '향수'라는 단어를 꺼내는 것이다. 틀렸다는 말은 아니다. 바이닐과 카세트테이프의 재등장은 분명 '재발매'와 관련이 있다. 또 많은 이들이 어릴 적(혹은 젊을 적)의 '엘피 판'과 카세트테이프를 추억하며 기꺼이 지갑을 연다.

그러나 동시에 이것은 부분적인 설명일 뿐이다. 단적으로 향수만으로는 젊은 층의 바이닐 및 카세트테이프 구매를 설명할 수 없다. 물론 젊은 층의 소비를 들여다보면 음반이 '머천다이즈'가 되어버린 이 시대에 높은 수집욕을 지닌 일부 젊은이들의 구매라는 측면이 있기는 하다. 턴테이블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도 바이닐을 구매하는 이들이 분명 존재할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음원과 스트리밍의 전성시대, 그 한복판에서 음악이라는 예술이 주는 궁극적인 감흥이란 폴더 안에 가득한 파일이나 음악 앱의 클릭 버튼이 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체감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어떤 음악에 매혹되는 첫 순간으로부터 시작해 물성을 지닌 음반을 구매하고 싶다는 욕구, 매장에 찾아가 직접 음반을 고르고 비교하는 행위, 음반을 손에 쥐고 집에 돌아와 비닐을 벗기고 부클릿을 읽으며 음악을 듣는, 이 모든 경험과 과정의 종합이야말로 음악과 진정으로 마주하는 짜릿한 '의식'임을 사람들이 알게 된 것은 아닐까. 누군가에게는 새롭고, 누군가에게는 다시 찾은, 그 감흥 말이다.

디지털 파일이 주는 극단의 편리함이 누적된 끝에 결국 물성을 동반한 불편함이 다시 각광받는 이 현상은 작용과 반작용, 혹은 시대는 돌고 돈다 따위의 말을 떠올리게 하다가 결국은 '음악을 듣는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겨보게 한다. 스마트폰에 저장된 수만 개의 음원으로도 채워지지 않던 나의 음악적 허기는 이제 디지털인지 아날로그인지 모호한 시디 따위로도 채워지지 않는 대신, 그보다 훨씬 크고 구식인 바이닐을 턴테이블에 눕히고 애써 바늘을 올려 빨리 감거나 스킵을 할 수 없는 불편한 상황을 스스로 만든 다음에야 비로소 채워진다. 하지만, 나는 그래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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