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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02일 10시 01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1월 02일 14시 12분 KST

국정교과서의 대안은 검정교과서가 아니다

연합뉴스

<나홀로 사상운동> 9. 국정교과서의 대안은 검정교과서가 아니다

저는 명색이 교육평론가라는 이름으로 활동해 왔지만 정작 논쟁이 벌어질 때 침묵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몇년 전 교권과 학생인권을 놓고 벌어진 논란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당시 제가 당시 공무원 신분이어서(서울시교육청 정책보좌관) 발언을 자제한 것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냉소했기 때문에 침묵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보기엔 대한민국에 교권이라는 게 애시당초 존재하지 않는데, 새삼 교권을 놓고 논쟁하니까 말이죠.

제가 한국 공교육의 구조를 들여다보면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것은 교사가 새 학년에 자신이 담당할 학년·과목을 개학하기 1주일 전에야 알게 된다는 점이었습니다. 즉 향후 1년간의 수업과 생활지도를 전체적으로 기획하고 준비할 기간이 일주일 정도밖에 없는 것이죠. 황금 같은 겨울방학 기간 동안에 아무것도 준비할 수가 없습니다. 담당할 학년과 과목을 모르거든요. 예를 들어 초등학교 1학년과 6학년은 교과내용이나 생활지도나 하늘과 땅 차이인데... 이건 대한민국에 교권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대표적인 증거입니다.

왜 이럴까? 들여다 보니 2월에야 신규 교사가 발령되고, 교원 전보(학교간 이동)가 이뤄지고, 교장 인사가 발표되거든요. 그래서 2월 말이 다 되어서야 학교의 멤버가 정해집니다. 그리고 나서 누구는 몇학년, 누구는 무슨 과목... 이렇게 배정하는 거지요. 그런데 이것은 행정의 논리인가요, 교육의 논리인가요? 행정의 논리지요. 주객이 전도된 겁니다. 대한민국의 학교는 행정기관이지, 교육기관이 아닙니다. 그래서 각종 황당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학교의 학년별 교육과정이 언제 완성되는지 아십니까? 개학하고도 한참 지나서 3월 말에야 완성됩니다. 한 학년 동안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칠지에 대한 계획이 개학하고 한참 지나서야 정해지는 거죠. 학부모들이 이런 사정을 알게 되면 기절할 겁니다.

대학 교수들은 신학년에 담당할 과목을 대략 4개월 전에 알고 준비합니다. 서구 선진국의 초중고 교사들은 대략 2.5개월 전에 알지요. 대부분의 나라들에서는 신학년이 가을에 시작하고 그 전에 2.5개월 가량의 긴 여름방학이 있는데, 여름방학이 시작될 무렵에 자신이 담당할 학년·과목을 알게 되고 그때부터 교재도 골라보고 수업 설계도 하며 준비를 하는 거죠. 물론 그네들 얘기를 들어보면 자기들도 막판에 이런저런 사정으로 담당이 바뀌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예외적이라는 거죠. 그런데 유독 한국의 초중고 교사들의 경우에는 예외적이어야 할 상황이 바로 표준입니다.

제가 왜 한국에 교권이 없다고 이야기했는지 이해가 되시나요? 우리 교육시스템에서 교사에게는 '전문가로서의 권리'가 없습니다. 특히 교사에게 구상의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구상과 실행의 분리'라는 테일러리즘의 원리가 관철되는 겁니다. 교사를 로봇이나 단순노무자로 간주하기 때문에, 겨우 일주일 전에 학년‧과목을 알려주면서 '잘 가르쳐라'고 말할 수 있는 거죠.

그런데 이런 문제에 대하여 다들 별다른 문제의식이 없는 것 같습니다. 교육학자들은 대부분 이런 문제에 대해 최소한의 인식과 관심이 없습니다. 교대·사범대 교수들도 제자들이 어떤 환경에서 일하는지 별로 관심이 없는 듯합니다. 교총은 말할 것도 없지요. 교총이 교권을 옹호한다?... 그냥 웃겠습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진보교육 진영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전교조가 펴낸 정책자료집에 이 문제가 언급된 경우를 본 적이 없습니다. 혁신학교도 저는 불안합니다. 유명한 혁신학교들 중에도 속을 들여다보면 학년부장 중심으로 돌아가는 학교가 많거든요. 겨울방학 동안에 미리 학년부장들만 내정하여 신학년 준비를 하고, 나머지 교사들은 2월말에 학년·과목을 배정받아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겁니다. 혁신학교의 제도적 기반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냉정하게 고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정교과서 논란은 정치적 측면과 교육적 측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치적 측면과 관련해서는 워낙 예리한 비판글과 발언들이 많이 나오고 있어서 제가 굳이 뭔가 보탤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뉴라이트 사상운동의 가치와 영향력을 과소평가해온 분들은 이 기회에 대오각성하시고(나홀로 사상운동 4편 '복지, 486의 알리바이' 참조), 이에 상응하는 진보의 사상운동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교육적 측면에서의 논의는 솔직히 말해서 수준 이하입니다. 적지 않은 분들이 각종 칼럼과 SNS 등을 통해서 국정교과서가 자유민주주의와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창의교육 혹은 창조경제와 상충한다고 지적하는데요, 이건 좀 낯간지러운 이야기입니다. 왜냐구요? 초등학교의 주요 과목은 줄곧 국정교과서였거든요.(현재 3~6학년의 영어·예체능만 검정) 그렇다면 한국 초등학교는 자유민주주의와 상충할 뿐더러 창의력을 저해하는 교과서 체제를 유지해온 셈 아닌가요? 국정화가 워낙 반동적인 시도이다 보니 기존 제도를 지키는 게 가치 있는 일이 되어버린 것일 뿐, 기존 제도가 바람직한 상태였던 것은 결코 아니란 겁니다.

국정교과서의 문제점을 제일 잘 정리해놓은 곳은 헌법재판소입니다. 헌법재판소는 1992년에 이미 '국정교과서가 위헌은 아니지만 바람직하지 않다'는 요지의 결정문을 내놓습니다. 여기서 국정교과서의 문제점으로 다섯 가지를 제시하는데요, 이것은 새누리당 여의도연구소가 2013년 내놓은 국정교과서 관련 정책리포트의 내용과도 일맥상통합니다. 헌법재판소가 정리한 국정교과서의 문제점은 창의력 개발에 역행, 변화에 대한 대응에 한계, 자유민주주의 기본 이념에 맞지 않음, 교사와 학생의 선택권을 제한하여 교과서 발전을 제약, 주입식·암기식 교육을 유도할 우려 등 다섯 가지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헌법재판소가 교육적 가치에 가장 부합하는 교과서 제도로 국정도 검정도 아닌 자유발행제를 지목하고 있다는 겁니다. 한 대목을 인용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국정제도 보다는 검·인정제도를, 검·인정제도 보다는 자유발행제를 채택하는 것이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고 있는 헌법의 이념을 고양하고 아울러 교육의 질을 제고할 수도 있을 것이다."(헌재 사건번호 89헌마88 결정문)

국정제는 정부가 한 종의 교과서만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고, 검정제는 민간에서 출판을 하되 정부가 심의권을 가지고 교과서 내용에 개입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인정제는 교과서로 사용가능한 도서들을 추천 또는 채택(adoption)하는 제도입니다. 학교나 지자체 또는 지역교육행정단위에서 교과서로 사용가능한 도서의 리스트를 제공하고, 이중에서 무엇을 사용할 것인지를 학교나 교사가 선정합니다. 자유발행제는 교과서와 관련하여 별다른 제한을 두지 않는 것입니다. 인정제와 자유발행제는 정부가 교과서의 내용에 직접 개입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공통적이지만, 교과서로 사용가능한 도서 리스트가 공식적으로 제공되는지 여부에 따라 인정제와 자유발행제로 구분됩니다.

'자유'발행제라고 하지만 대체로 완전한 자유방임은 아닙니다. 대개 정부에서 교육과정상의 지침을 줍니다. 예를 들어 두 자릿수 이상의 곱셈은 몇 학년 때 가르치라고 규정합니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자율에 맡기는 겁니다. 교사는 '전문가'이니까요. 교사가 기존의 도서를 교과서로 채택할 수도 있고, 자기가 직접 교재(교과서)를 편집하거나 집필할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별도의 교과서가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일례로 영국의 초등학교에서는 아예 지정된 교과서 없이 프린트물로 수업하는 경우가 많고, 미국의 많은 고등학교에서 '마크 트웨인'이라든가 '스타인벡과 헤밍웨이' 같은 이름의 교과목을 볼 수 있는데 이런 경우 기존의 문학작품을 이용하여 수업을 하기 때문에 별도의 교과서가 없습니다.

자유발행제는 영국, 프랑스, 스웨덴, 핀란드 등에서 시행중이며 미국도 절반 가량의 주에서 시행 중입니다(나머지 절반은 인정제). 한국의 경우 이념적 논란이 우려되는 역사과목에서는 검정제가 당분간 불가피해 보입니다. 그리고 고등학교의 주요 과목들은 대학입시와의 연관성 때문에 검정제가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초등학교나 중학교의 경우 대부분 과목을 자유발행제로 전환해도 별 문제가 없습니다. 여력이 있는 교사들은 직접 편집이나 집필을 하면 됩니다. 요새 IT를 이용한 저작도구들과 소량인쇄 기술이 워낙 발달해있기 때문에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직접 편집이나 집필을 할 여력이 없는 교사들은 기존 도서를 채택하면 됩니다. 이런 교사들을 위해 교과서용 도서를 출판하는 출판사들 사이에 자유경쟁이 벌어질 것입니다.

이런 게 진정한 자유민주주의입니다. 한국 교육에서는 왜 이런 걸 상상하지 않을까요? 교육에서 테일러리즘을 당연시하기 때문입니다. 교사를 전문가로서 인정하지 않고 구상의 기회를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권 없는 교육'에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신학년 일주일 전에야 담당 학년·과목을 알려주는 나라에서, 교사가 자기가 쓸 교과서를 직접 고르거나 편집·집필하는 걸 상상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지요.

한국 학생들은 초중고 세 차례에 걸쳐 국사를 배웁니다. 자연히 임진왜란 같은 중요한 사건은 세 번 배우게 되지요. 그런데 한 번도 난중일기를 들춰보지 않습니다. 며칠 전 모 지역 교장연수에 모인 100명 가량의 교장선생님들 중에 난중일기를 일부라도 읽어본 분 손들어 보시라고 하니 겨우 예닐곱 분이 드시더군요. 작년에 모 지역 1급정교사 자격연수에 모인 초등학교 교사 500명 가운데 손들라고 해보니 십여 명에 불과했습니다.

좀 창피한 일이지만, 따지고 보면 이상한 일도 아닙니다. 한국 교육은 난중일기를 읽고 느끼고 토론하는 교육이 아니라 난‧중‧일‧기 네 글자를 외우는 교육이니까요. 솔직히 말해서 다들 국사를 암기 과목으로 생각하지 않습니까? 난중일기를 읽어보고 느끼고 토론하는 교육을 누가 국사 교육이라고 생각하나요? 그런데 만일 미국의 중고등학교에서 임진왜란을 배운다면 가장 흔히 나오는 숙제가 난중일기 읽어와라, 혹은 읽고 에세이를 써오라는 겁니다. 수업의 상당 부분은 읽고 써온 것 발표하고 토론하는 것이고요.

예를 들어 어떤 교사가 난중일기를 읽고 토론하고, 시험은 토론 과정 및 결과에 관한 논술형 평가로 진행하고 싶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런데 이게 가능할까요? 거의 불가능합니다. 대한민국 교사들에게는 어떻게 가르치고 평가할지를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없거든요. 중·고등학교의 경우 '학년 단위'로 평균과 석차를 매기도록 되어 있습니다. 교육부가 제정한 규칙입니다. 그래서 1반에서 끝반까지 모든 학급의 시험문항이 똑같아야 합니다. 1,2,3반을 담당하는 어떤 교사가 난중일기를 읽고 토론하고 이에 근거하여 평가하려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규정상 모든 학급의 시험문항이 똑같아야 하니 4,5,6반 담당 교사와 7,8,9반 담당 교사에게 이러한 방식의 수업·평가를 제안하고 동의를 구해야 하는 거죠. 그런데 이렇게 제안하면 동의가 돌아올까요? 왕따가 되지 않으면 다행입니다!

결국 수업과 평가는 하향평준화되고 시험에는 어디서 본듯한 문항들이 출제되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문항은 학원에서 '족보'라는 이름으로 확보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내신 반영비율을 높여도 사교육이 줄지 않는 이유는 한편으로는 상대평가여서 경쟁 강도가 높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평가가 획일적이어서 예측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교사는 난중일기를, 다른 교사는 조선왕조실록을, 또 다른 교사는 <칼의 노래>를 수업에 활용하고 각기 개성적인(그리고 각자의 수업과 밀착된) 평가를 한다면 사교육의 도움으로 점수를 올리기는 어려워질 텐데 말이죠.

초등학교에서 학년 단위로 일제식 평가를 하는 것은 규칙이 아니라 관행입니다. 혁신학교 같은 일부 초등학교에서는 좀 다른 평가방식을 취하기도 하지요. 하지만 중·고등학교에서는 학년 단위의 일제식 평가가 아예 교육부 규칙으로 강제되어 있습니다. 교육청이나 학교에서 이를 어겼다간 당장 징계 대상입니다.

한국 교사에게 평가권만 없는 것이 아닙니다. 교과서 선택권도 없습니다. 앞에 언급한 것처럼 초등학교는 아예 국정이고, 중고등학교의 경우 검정이긴 하지만 어차피 교사 개인이 선택권을 가지지 못한다는 점에서 국정과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학년·과목의 교사들이 똑같은 교과서를 사용하도록 되어 있고, 한번 채택한 교과서는 교육과정이 개정되어 새 교과서가 나오기 전에는 여러 해 동안 거의 바꿀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검정기준이 매우 엄격하고 자세해서 검정교과서 내용이 서로 비슷비슷합니다. 심지어 소단원 제목까지 똑같습니다. 그리고 교과서의 분량이 과다합니다. 특히 경력이 오래된 교사들은 이구동성으로 지적하기를, 교과 분량이 야금야금 계속 늘어나서 지금은 진도를 끝내기에 급급하다고 말합니다. 가르치도록 규정된 교과 분량이 너무 많다 보니 주입식 교육도 아닌 '주마간산식 교육'을 하게 되는 거죠. 탐구하고 토론하고 할 시간이 없는 겁니다.

교육당국은 창의교육이니 융합교육이니 역량교육이니 하는 교육지표를 내놓습니다. 그리고는 교육이 국가에서 학생의 머리로 직행하는 것처럼 간주하지요. 그러나 그 중간에는 항상 교사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교사에게 창의적일 기회를 주지 않으면서 창의 교육을 하라는 게 말이 되나요? 교육과정 지침서에는 '교과서는 사례일 뿐이고 이를 재구성하여 가르칠 수 있다'고 안내되어 있습니다만, 면피에 불과합니다. 교사의 자율적 활동을 온갖 규제로 꽁꽁 묶어놓은 데다가 담당할 학년·과목을 일주일 전에야 알려주면서 '재구성을 하라'는 건 말도 안되는 얘기죠. 이런 환경에서 창의적 교육을 하라는 것은, 온갖 갑질과 부당거래가 횡행하는 환경에서 창조경제 하라는 것과 똑같습니다.

한국 교사들의 창의 교육을 방해하는 요인을 정리해 보면 ①교사의 담당 학년·과목을 신학년 직전에야 배정하여 최소한의 기획과 준비를 할 기회가 없다 ②초등에 국정교과서가 잔존하고 있고, 검정교과서라 할지라도 교사가 자신의 교과서를 선택할 권한이 없다 ③교사에게 교과서 편집·집필권을 허용하지 않는다 ④교사 개인 단위로 학생을 평가할 권한이 없다 ⑤교사가 교육하도록 규정해놓은 교육과정이 지나치게 상세하고 분량이 과다하다 등입니다. 교사의 교육활동에 대한 규제가 실로 엄청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위의 ①~⑤를 하나하나 떼어놓고 보면 그리 심각하지 않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부 교사는 신학년을 준비할 기간이 일주일밖에 없어도 훌륭하게 잘 해냅니다. 또 학년 단위로 평가하게 되어있는 제도가 혁신학교에서는 혁신적인 수업·평가를 보편화하는 데 지렛대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다섯 가지가 복합적으로 동시에 작용할 때, 그 영향력은 치명적입니다. 교사의 자율과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는 대한민국 교육시스템은 창의, 융합, 역량 등의 모든 선진적 교육 지표들을 분쇄해 버립니다.

엄밀히 말하면 위 ①~⑤는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해당하는 요인입니다. 고등학교에 가면 엄청난 요인이 하나 더 추가됩니다. 대입시험이 객관식이라는 거죠. 한국 고등학교 교실에서는 객관식 문제집을 열심히 푸는 걸 당연시합니다. 하지만 서구 선진국의 고등학교들 가운데 객관식 문제집을 풀고 있는 나라는 단 한 군데도 없어요.

유럽은 대입시험이 논술형입니다. 한국 논술고사와 달리 과목별 시험입니다. 그런데 문제 유형이 논술형인 겁니다. 주요 과목에서 객관식 문항이 하나도 안 나옵니다. 국어도 논술형이고 수학도 논술형이고 사회나 과학도 논술형입니다. 프랑스는 국가가 주관하고 독일은 주정부가 주관합니다. 영국에는 A-레벨이라는 독특한 입시가 있는데 공인기관과 학교가 공동으로 관리합니다.

유럽은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인문계/실업계를 구분합니다. 그리고 인문계로 진학하면 '너 어차피 대학에 갈 거니까 학교에서 입시준비를 하자'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과 뭐가 다르냐? 입시 문항이 논술형입니다. '네 생각이 뭐냐' '네 의견을 써봐라'는 질문이 수없이 나옵니다. 그래서 고등학교에서 입시교육을 하기는 하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입시교육과 전혀 다릅니다. 책 읽고 토론하고 따져보고 글 쓰는 게 입시교육입니다.

유럽과 대조적으로 미국에서는 고등학교에서 입시교육을 하지 않습니다. 미국의 대입시험은 한국에서 문제유출 사건으로 유명해진 SAT입니다.(요새는 ACT라는 시험을 더 많이 보는 추세입니다만 편의상 SAT로 통칭합니다.) 이 시험은 한국 수능 문제유형의 원형을 제공한 시험이기도 합니다. 5지선다 문항으로 이뤄져 있지요. 그런데 고등학교에서 SAT 문제집을 풀어주지 않습니다. 유럽의 공교육이 입시준비를 해주는 반면, 미국의 공교육은 입시준비를 해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미국의 고등학교에서는 SAT 준비를 안 해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못 해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왜냐 하면 SAT는 1년에 일곱 번이나 시행되거든요. 토익이나 토플 시험 비슷한 겁니다. 필수과목(언어+수학) 외에 선택과목이 20개 있는데, 어떤 과목에 대해 실태조사를 해보면 누구는 작년에 이미 치렀다고 하고 누구는 3개월 뒤에 응시할 거라고 하고 누구는 지난달에 시험봤는데 점수가 안 좋아서 다음달에 또 볼 거라고 하고... 이런 식으로 다들 제각기인 거죠. 그러니 학교에서 문제집을 어떻게 풀어주겠어요? 문제집을 '안' 풀어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못' 풀어주기도 하는 겁니다.

그러면 미국 학생들은 SAT 준비를 어떻게 하느냐? 각자 알아서 합니다. 서점에 가면 문제집도 있고, 인터넷으로 각종 정보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새 이 틈을 타고 한국식 학원이 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수강생이 동양계 학생들 위주였는데 갈수록 백인 수강생도 늘고 있어요. 한국식 학원이 미국에서 늘고 있다고 하니 '한국식 교육이 미국에서 인정받는구나'라며 착각하시는 분들도 있던데요, 사실 이건 한국식 교육의 강점을 보여주는 증거가 아니라 미국 교육시스템의 독특한 틈새로 인한 현상입니다.

한국 공교육은 입시와 관련하여 이중플레이를 합니다.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편성할 때에는 미국식 원칙을 따릅니다. 입시를 고려하지 않고 3년 꼭 차게 배울 분량을 편성하는 거죠. 그런데 교육과정을 운영할 때에는 마치 유럽처럼 입시(수능)준비를 합니다. 적어도 수능 시험 몇달 전에는 진도를 마치고 문제풀이와 약점보완을 해야 합니다. 이렇듯 교육과정 편성은 미국식으로 하고 교육과정 운영은 유럽식으로 하는 '이중플레이'의 결과, 한국의 고등학교에서는 서구 선진국에서 찾아볼 수 없는 두 가지 독특한 현상이 벌어집니다.

첫째로 3년간 배우게끔 설계된 내용을 2년 반(심지어 2년)에 끝내고 문제풀이를 하려 하니 엄청난 '과속 진도'가 벌어집니다. 특히 수학은 선행학습을 하지 않은 학생은 배겨나기 어렵습니다. 우리나라 수학 진도를 선행학습 없이 따라갈 수 있는 학생은 거의 수학 영재 수준의 학생들입니다. 공교육이 선행학습을 조장 내지 강제하는 겁니다. 이런 문제를 근본적으로 바로잡지 않고 선행학습 금지법 같은 걸 제정하는 건 한마디로 코미디지요. 제 첫째아이가 중1인데 아직 수학 선행학습을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내년이면 시작해야 합니다.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이게 헬조선의 교육시스템입니다.

둘째로 고교 수업시간에 객관식 문제를 열심히 푸는 수업을 하게 됩니다. 서구 선진국의 고등학교 교실에서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정말 창피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탐구활동, 토론, 발표, 글쓰기, 이런 것들은 고등학교 교실에서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난중일기를 읽고 토론을 하자고 하면 학생들이 항의하기도 합니다. "수능에 안 나오는 걸 왜 하나요?"

며칠 전에 이런 내용을 한 심포지움에서 발표했습니다. 우리나라는 교사에게 전문가로서의 권리를 주지 않는데다가, 고등학교에서 객관식 대학입시 문제를 풀어주는 특이한 나라다, 이러니 창의니 융합이니 하는 선진적 교육이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요지였습니다. 그랬더니 토론자가 이렇게 코멘트하더군요. 우리나라 교사들의 주류는 '웰빙 교사'인데 교사들에게 너무 큰 기대를 하는 거 아니냐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많은 웰빙 교사, 심지어 적지 않은 부적격 교사들을 보게 됩니다. 저도 이런저런 제도를 고친다고 해서 갑자기 교사들이 다들 미래지향적이고 창의적인 교육을 하게 될 거라고 기대하지 않습니다. 적지 않은 국민들이 교사들의 철밥통을 질시하고 게으름을 질타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교사들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이 자율적 전문가로서의 자존감과 역량을 키워갈 기회가 박탈된 불행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한국에서 교사가 전문가로서 '성장'한다는 것이 극히 어렵습니다. 특히 교사들하고 이야기하다 보면 의미심장한 현상을 발견하게 됩니다. 임용된 지 얼마 안된 젊은 교사들은 '담당 학년·과목을 일주일 전에야 알려준다니 말이 되느냐'며 심지어 분개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5년 이상 된 교사들은 거의 잠잠해요. 적응이 된 거죠. 즉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은 모든 선진적 교육의 싹을 갈아버리는 분쇄기 역할을 한다는 겁니다. 선진적 교육을 위한 이런저런 프로모션도 좋고 인센티브도 좋지만, 이 거대한 분쇄기를 철거하지 않고 뭔가를 바꾸겠다는 것은 앞뒤가 뒤바뀐 겁니다.

한국의 보수세력은 이 분쇄기를 철거할 생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중앙의 지시를 말단에서 수행하도록 하는, 지시적 행정에 매달립니다. 1년에 학교에 내려오는 공문의 수가 무려 5500건입니다.(교총 통계) 많은 수가 행정실로 가지만, 교무실로 가서 교사 개개인의 업무가 되는 것도 적지 않습니다. 이건 교사를 전문가로 보지 않는다는 얘기죠. 의사나 변호사, 심지어 동네의 부동산 중개업자도 전문가답게 자율적으로 여러가지 문제를 해결하며 일합니다. 그런데 5500건의 공문을 보내며 수없이 지시하고 통제하고 간섭하는 것은, 교사를 전문가로 간주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겁니다. 우리나라의 교육행정은 명백한 과잉이고, 교육부와 교육청의 사업과 조직은 비만 그 자체입니다. 교육행정은 입시관리와 재정배분 같은 핵심 기능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나머지는 교사들이 알아서 하게 하면 됩니다. 교사는 전문가이거든요.

자유란 소중한 가치입니다. 자유의 법률적 표현이 '권리'입니다. 권리를 보장하면 다양성이 나타납니다. 다양성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지만, 자유와 권리의 증거입니다. 그리고 자유의 단위는 집단이 아니라 개인입니다. 자유주의자라면 교사 개개인의 자율성을 높여 창의적 시도가 열매를 맺도록 해줘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의 보수세력은 기업활동에 대해서만 '전봇대'(이명박)라느니 '암덩어리'(박근혜)라는 식으로 저주를 퍼부었을 뿐, 교사 개인의 권리 따위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자유주의자가 아닌 것 같습니다.

진보 세력이 만들어낸 혁신학교는 지시적 행정에 역행하는 혁신입니다. 한국 교육의 등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은 갈길이 멉니다. 2014년에야 진보교육감이 당선되어 이제 막 혁신학교를 시작하는 지역도 있고, 보수교육감이 있는 대구·경북·울산·대구의 경우 아직 시작도 못했거든요.

그런데 혁신학교가 제일 먼저 시작된 경기도를 들여다보면 점점 그 한계도 명확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초기에 지정된 혁신학교 중에는 성공 사례가 많습니다. 교사 경력이 쌓여도 문제의식을 놓지 않고 있던 교사들이, 혁신학교로 전보 신청해서 쏠린 거죠. 하지만 나중에 지정된 혁신학교들 중에는 '무늬만 혁신학교'가 적지 않습니다. '운동'을 전파하고 확산시키는 방식의 한계를 보여주는 겁니다. 혁신학교를 보편화하자면 얼마나 오래 걸릴지 아득합니다. '운동을 확산한다'는 관점에 더해 '생태계를 변화시킨다'는 관점이 필요합니다.

혁신학교는 소나기가 내리는데 우산을 씌워놓은 것입니다. 우산을 튼튼하게 하고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나기를 그치게 하는 게 더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교육행정을 쇄신해서 연간 5500건의 공문 소나기를 그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사 개개인의 권한을 강화하여 일반 학교에서 혁신적인 교사들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자생적 혁신가를 키워야 합니다. 교육생태계를 이렇게 변화시키려면 제도 혁신이 필수적입니다. 교육청 차원에서 바꿀 수 있는 건 별로 없으니, 정부에 이를 요구하고 국회에서 입법을 추진해야 합니다. 핵심은 교권을 확장하는 것입니다. 교사 개인의 수업준비권, 교과서선택권, 평가권 등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전교조는 노동자로서의 권리에는 민감한데 전문가로서의 권리에는 둔감합니다. 물론 노동자로서의 권리에도 미진한 면이 있지요. 교사의 정당 가입이 불가능하고 노동3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거든요. 학급당 학생수 등도 OECD 평균에 꽤 뒤처진 편입니다. 하지만 교사의 연간 수업시간은 OECD 평균보다 적고 급여는 1인당GDP 대비 세계 최고수준입니다. 고용안정성도 높습니다. 이제는 전문가로서의 권리에 눈을 돌려야 합니다. 이런 면에서 전교조도 혁신해야 합니다. 전교조가 이런 방향으로 혁신하지 않는 한 젊은 교사들은 전교조에 가입하지 않을 겁니다. 이미 전교조 교사들의 평균 연령이 매우 높아졌습니다. '낡은 진보'보다 두려운건 '늙은 진보'입니다.

정치적 반동은 '좋았던 시절'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킵니다. 국정교과서라는 시대착오적 시도로 인해 김대중-노무현 정부로 돌아가는 게 진보라는 착시현상이 일어납니다. 정치 의제에서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로 돌아가는 게 맞을 수도 있습니다. 일시적으로 민주/반민주 대립 구도가 재연되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경제나 사회 의제에서 현상유지나 복고는 곧 퇴보입니다. 결국 국정교과서 논란은 새삼 범진보세력 전체의 위기를 우회적으로 드러냅니다. 지향과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기존 것을 지키자' 내지 '과거로 돌아가자'고 하는 진보는 더 이상 진보가 아닙니다.

물론 비전을 제시하고 대안을 추진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비정규직 요건을 강화해서 정규직 전환율을 높이자면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도입된 비정규직 관련 법제를 뜯어고쳐야 합니다. 그런데 2006년 비정규직 허용기간 2년제를 도입한 주역들이 새정치민주연합에 그대로 있습니다. 결국 그저 새누리당의 개악에 반대하는 데 그칩니다. 또다른 예로 노동시간을 줄여서 일자리를 나누자면 기존 노동자들의 실질 급여가 줄어드는 것을 감수해야 하므로 양대노총과의 갈등이 불가피합니다. 그런데 이를 감당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니 야권의 문재인·심상정 당대표와 심지어 민주노총까지도 노동시간을 줄이자고 말하지만, 실제로 이를 전혀 추진하지 않습니다. 즉 진보의 비전을 제시하고 추진하려면 당 안의 저항, 당 밖의 저항을 뚫고 나가야 하는데, 야권에는 그럴 사상도 전략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그저 반대를 하는 데 그치고, 결국 진보는 진보가 아니게 됩니다.

국정교과서의 대안은 검정교과서가 아닙니다. 역사과목 및 고교 주요 입시과목을 제외하고는 인정제 내지 자유발행제로 신속하게 전환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과서 선택과 학생 평가의 단위를 애매한 '교사(집단)'나 '학년'이 아니라 '교사 개인'으로 삼아 자생적 혁신이 가능한 여건을 마련해줘야 합니다. 그리고 교사가 일주일 전에야 담당 학년·과목을 배정받는 야만적 제도를 혁파해야 합니다. 그야말로 '교권 선진화'가 필요합니다. 이런 전망과 비전을 제시하고 추진할 때 진보는 진보가 됩니다.

개인의 권리를 중심으로 놓는 주장은 현재 범진보 세력의 주축인 486 세대에게 그리 익숙하지 않습니다. 운동권 특유의 공동체주의나 집단주의 정서가 강하거든요. 물론 이건 운동권에 국한된 게 아니라 한국사회 전반의 문화적 전근대성을 반영하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486 정치인 개개인의 잘못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제는 혁신해야 합니다.

한국의 진보는 보수의 자유주의를 공박하며 자유주의를 싸잡아 매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여선 곤란하지요. 하지만 고전적 자유주의 정신, 즉 개인의 권한과 자율을 존중하는 정신은 한국의 보수에게 뿐만 아니라 진보에게도 결핍되어 있습니다. 현대의 우파와 좌파는 모두 기본적으로는 자유주의자입니다. 다만 다양한 권리들 가운데 소유권과 자치권이 상충할 때 우파는 소유권을 우위에 놓는 경향이 있고 좌파는 자치권을 우위에 놓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소유권이나 자치권이나 궁극적으로 개인의 권리 아닌가요?

이런 의미에서 한국의 시민혁명은 아직 미완입니다. 근대화가 덜 되었습니다. 정치제도 측면에서만 겨우 틀을 갖췄을 뿐입니다. 개인의 권한과 자율을 존중하는 혁신이 사회 곳곳으로 퍼져나가야 합니다. 아직도 한살만 다르면 선배가 후배의 군기를 잡고, 입사원서에 부모 직업을 적으라고 합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진보가 앞장서야 합니다. 자유로운, 혹은 자유로워지길 원하는 개인들의 연대를 조직하고 이들의 자율적 혁신을 법률·제도의 변화를 통해 지원해야 합니다. 지난 1년간 여의도 내부를 관찰하면서 점점 우울해지지만, 결국 희망은 진보가 혁신할 때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나홀로 사상운동>

1. 계파인듯 계파아닌 계파같은 친노

2. 새정치 혁신위, '답정너'를 넘어라!

3. 일베 무시는 청년 무지

4. 복지, 486의 알리바이

5. 청년이 최우선이다, 불쌍해서가 아니다

6. 탈스펙의 정치경제학

7. 응답하라 손학규

8. 안철수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