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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8월 31일 11시 06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8월 31일 14시 12분 KST

응답하라 손학규

연합뉴스

<나홀로 사상운동> 7. 응답하라 손학규

청년들은 임금피크제를 찬성합니다. 한겨레신문 부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에서 청년 1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임금피크제에 찬성하는 비율이 무려 70%입니다. 그렇다면 임금피크제를 실시하면 청년 고용이 나아질 거라고 기대하느냐? 그건 또 아닙니다. 부정적인 답이 75%에 달합니다. 임금피크제가 고용증대에 별 효과가 없을 거라고 여기면서도 임금피크제를 찬성하는 청년들은, 그렇다면 정신분열증이라도 일으킨 것일까요?

임금피크제에 대하여 반대하는 사람들은 한 가지 중요한 맥락을 놓치거나 무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임금피크제가 2년 전 법제화된 정년연장법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다는 것입니다. 이 법에 의해 내년부터 정년이 60세로 연장됩니다. 그러면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커지고 신규고용이 위축될 우려가 있습니다. 따라서 정년연장 기간의 임금을 낮춤으로써 이러한 우려를 덜어주자는 게 임금피크제입니다.

임금피크제의 모델은 일본입니다. 일본은 급격한 고령화에 대한 대응으로 정년을 1998년에 60세로, 2006년에 65세로 연장했습니다. 그리고 2013년까지 정년연장의 보완책으로 기업에게 세가지 옵션을 줬습니다. 그러자 기업의 80%가 '계속 고용' 모델을 채택했습니다. '계속 고용'이란 얼핏 보면 동일한 조건으로 고용을 유지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일단 퇴사 처리한 다음 이전보다 낮은 임금(대략 50~70%)의 비정규직으로 재고용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 모델의 한국적 변형이 바로 지금 이야기되는 임금피크제입니다.

야당과 진보 언론은 임금피크제를 실시하지 않아도 청년고용이 위축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실제로 이를 뒷받침하는 듯한 여러 연구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연구들은 대부분 시기별 연구입니다. 기업들은 불황기에는 장년고용과 청년고용에 모두 부정적 태도를 보이고, 활황기에는 장년고용과 청년고용에 모두 긍정적 신호를 보냅니다. 이것만 보면 장년고용과 청년고용 사이에 대체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하지만 '정년연장'을 전제조건으로 놓고 후속 영향을 따져보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정년 연장이 내년에 시작되는데,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쪽이 청년고용에 도움이 될까요, 아니면 도입하지 않는 쪽이 청년고용에 도움이 될까요? 많건 적건 도움될 쪽은 전자입니다. 일본에서도 정년 연장이 '의무'화되자 청년 채용을 축소하겠다고 답한 비율이 40%에 달합니다.(일본 경제단체연합회 2011년 조사) 한국에서도 결코 적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청년들이 대부분 임금피크제에 찬성하는 근거입니다.

그렇다면 청년들이 임금피크제를 찬성하면서도 임금피크제에 대하여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요? 정년까지 근무함을 전제로 이런저런 얘기를 한다는 것 자체에 대하여 느끼는 심리적 괴리감 때문입니다. 요즘 청년 세대 가운데 자신이 정규직으로 정년퇴임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한마디로 너무 생경한 이야기인 거죠. 정년까지 정규직으로 근무하여 임금피크제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사람이 어떤 통계에 의하면 전체 노동자의 10%대이고, 심지어 8%에 불과하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그러니 "아버지 봉급 깎아 저를 채용한다구요?"라는 새정치민주연합의 플래카드도 뭔가 정곡을 놓친 이야기입니다. 청년들이 저 플래카드를 보고 집에 가서 아버지에게 '진짜 아버지 임금이 깎이게 되느냐'고 물어보면, 대부분의 아버지는 아마 공허한 웃음을 지을 겁니다. 대부분의 직장에서 정년까지 버틴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청년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정신분열 상태도 아닙니다. 임금피크제가 청년 고용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임금피크제로 인한 청년고용 효과를 뻥튀기하고 있는 정부-여당의 속셈도 간파하고 있습니다. (뻥튀기에 대한 지적은 너무 많아서 제가 여기서 일일이 재론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청년들의 입장에서는 임금피크제에 찬성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기도 합니다. 이를 간과한 야당의 대응은 청년들의 공감을 얻기 어렵고, 정부-여당의 노동개혁 프레임에 그대로 말려들 위험이 있습니다. 정부-여당은 9월 이후 여론조사를 활용하여 '청년들을 위해 싸우는 여당, 청년들과 맞서는 야당' 이미지를 굳히려 들 것입니다. 청년들이 찬성하는 걸 왜 반대하냐고 몰아붙이겠죠. 이렇게 되면 "6백만표를 잃어도 노동개혁을 하겠다"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노림수, 즉 야당의 주요 지지세력인 청년층와 노동운동 사이를 분열시키겠다는 의도가 그대로 실현될 것입니다.

야당이 청년층과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임금피크제만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당대표는 지난 8월11일 경제통일을 차기 집권비전으로 하는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을 발표합니다. 발표된 내용은 충분히 일리가 있으며 논리적으로 맞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경제의 미래 청사진을 북한과의 관계에서 찾는 것은 분명 필요한 일입니다. 목함지뢰 사건 이후 남북간 긴장이 급격히 고조되는 상황에서 뭔가 브레이크를 거는 효과도 기대했을 겁니다.

하지만 청년들이 이를 납득할 수 있었을까요? 이때는 목함지뢰 사건으로 두 청년이 평생 불구의 몸이 된 지 불과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청년들의 입장에서는 그 두 장병이 과거의 자신이었을 수도 있고 혹은 미래의 자신일 수도 있습니다. 나와 비슷한 처지의 젊은이 두 명의 발목이 날아갔는데, 북측의 인정도 사과도 재발방지 약속도 없는 와중에 불과 일주일 뒤에 남북 경제통일 구상을 발표한다? 공감하기 어려운 행보입니다. 특히 청년층 특유의 자생적 반북의식을 고려해볼 때 더더욱 그렇습니다. (나홀로 사상운동 3편 '일베 무시는 청년 무지' 참조)

로스쿨과 사법고시 존치 여부를 놓고 벌어지는 논란도 그렇습니다. 최근 연구를 보면 사법고시 준비가 로스쿨보다 더 싸게 먹히지도 않고, 부모의 배경을 비교해 봐도 사법고시가 로스쿨보다 계층이동에 유리한 통로라고 보기 어렵습니다.(서울대 이재협 교수 등 3인이 6월 발표한 '로스쿨 출신 법률가, 그들은 누구인가?') 하지만 이러한 연구를 근거로 그저 대중을 계몽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 곤란합니다.

요새 사법고시는 고액 사교육으로 장기간 도전해야 합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청년들이 이를 모를 리가 없습니다. 청년층의 정의감을 자극하는 부분은 로스쿨이 공정한 경쟁을 해치는 현대판 음서제로 전락했다는 것, 그리고 로스쿨은 '기회의 평등'조차 보장하지 못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사법고시는 가난해도 어찌되었든 도전해볼 수 있지만 로스쿨은 가난하면 도전조차 힘듭니다. 중요한 차이점이지요. 대입전형으로 비유해 본다면 사법고시는 수능 비슷한 것이고, 로스쿨은 논술이나 입학사정관제에 가까운 거죠. 그렇다면 합리적 대안은 로스쿨에 소득비례 등록금제를 도입하거나 일정소득 이하 계층에 등록금 후불제를 적용하는 것입니다. 두 가지 방안 모두 소요 예산이 연간 3~4백억원 정도입니다. 정부 예산의 0.01%밖에 안 됩니다. 물론 '현대판 음서제'와 관련된 보완책은 이와 별도로 필요합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이런 사람을 만나게 되지요. 나름의 논리 속에서는 말이 되지만, 상대의 처지에서는 공감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늘어놓는 사람. 흔히 '꼰대'라고 합니다. 야당이 집권하려면 꼰대의 정치를 버리고 공감의 정치를 지향해야 합니다. 요새 주목받고 있는 '불효자식 방지법' 같은 게 공감의 정치의 대표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예외를 빼고는 대체로 자신들의 머리로 짜낸 결론에 따라 대중을 가르치려는 꼰대적 태도에 가깝습니다. 이런 식으로는 로스쿨도, 지뢰도, 임금피크제도 모두 악재입니다. 내년 총선에서 청년층을 투표장으로 노도처럼 밀려들게 해도 승리하기 어려운 판에, 청년들의 공감을 얻기 어려운 태도로 뭐가 가능하겠습니까?

얼마전 새정치연합의 이동학 혁신위원이 페이스북에 '문재인 대표님께 드리는 편지 <통큰 민생통합 노선으로>'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글 중에 '노조에 의해 포획당한 정당이라는 오명을 벗고...'라는 표현을 썼다가 나중에 사과하는 해프닝이 있었습니다. '포획'이라는 표현을 보고 저도 조금 당황했습니다. 새정치연합의 노동위원장이 한국노총 위원장 출신이긴 합니다. 하지만 당의 노동위원회가 당내에서 얼마나 홀대받고 있는지를 보면 옆에서 보기 딱할 지경입니다. 게다가 이 분의 당내 평판이 썩 좋은 것 같지도 않습니다.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를 지지한 경력도 있고 한나라당 공천을 신청한 경력도 있거든요. 그러니 당이 포획되어 있다는 것은 분명 과도한 표현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것이 해프닝으로 끝낼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새정치연합이 노조에 '조직적으로' 포획되어 있는 것은 분명 아니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사상적으로' 포획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노조가 반대할 만한 영역으로 정치적 상상력이 확장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관성을 보입니다. 이것은 486 세대의 독특한 사상사, 즉 80년대 사상의 '잔여물'로 버틴다는 것과 연관이 있습니다. (나홀로 사상운동 4편 '복지, 486의 알리바이' 참조) 노조를 옹호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주류 노동운동이 '연대' 정신의 결핍으로 인해 보여주는 한계를 야당이 그대로 반복해서는 곤란합니다.

이 점은 새정치연합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정의당의 조성주씨는 요새 '뜨는' 청년 정치인입니다만, 임금피크제에 대한 입장은 모호합니다. 정의당 당대표 선거에 출마할 때에는 찬성하는 듯했는데 최근에는 결국 '노사 자율에 맡겨야 한다'며 말끝을 흐립니다. 8월 중순 한 토론회장에서 제가 조성주씨에게 공개리에 질의했더니 그는 임금피크제 대신 노사정 3자가 조성하는 일종의 사회연대기금을 제안하더군요.

정의당의 조성주씨가 임금피크제를 거부하고 사회연대기금을 주장하는 것과, 새정치연합의 이동학씨가 임금피크제를 수용하고 노동시간 단축을 주장하는 것을 대조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조성주씨가 주장하는 사회연대기금은 '어음'에 가깝습니다. 얼마나 큰 기금을 마련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실질적인 청년고용 증대로 이어지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반면 이동학씨가 주장하는 노동시간 단축은 '현찰'에 가깝습니다. 노동시간을 단축하면 고용증대 효과가 바로 나타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당면한 노동-고용 현안에 있어서는 조성주씨보다 이동학씨가 더 패기 있는 청년 정치인으로 보입니다.

노동시간 단축이 새삼스러운 이야기는 아닙니다. 사실 정의당의 심상정 당대표도 최근에 노동시간 단축을 언급했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에서도 정부-여당의 노동개혁 공세에 대한 대응책의 일환으로 거론합니다. 민병두 의원(민주정책연구원 원장)과 윤호중 의원은 기고와 인터뷰를 통해 좀 더 구체적으로 발언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양대 노총에서도 노동시간 단축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하지만 이러한 발언들은 공염불에 그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들이 주장하는 노동시간 단축은 실질임금의 유지를 전제한 것입니다. 시간은 단축하고 급여는 그대로 받자는 것입니다. 상당히 비현실적인 이야기지요. 반면 이동학씨의 노동시간 단축은 실질임금 감소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습니다. 양대 노총에서 강력하게 반대할 내용입니다.

대한민국 야권에서 누가 감히 양대 노총의 반대를 무릅쓰고 임금 감소를 수반하는 노동시간 단축을 주장할 수 있을까요? 이런 점에서 한국의 야권이 노조에 사상적으로 '포획'되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나마 '노동 진보'에 가까운 정의당보다는 상대적으로 미국식 '리버럴 진보'에 가까운 새정치연합에서 이동학씨와 같은 주장이 나오는 겁니다. 아주 미약하게나마.

정부-여당은 해고요건을 완화해서 고용유연성을 높이자고 주장합니다. 새정치연합은 이에 맞서 경제민주화 및 재벌개혁을 들고 나왔습니다. 재벌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긴 합니다. 일단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공약을 위반한 대표적인 사례이니 정치적 공격 효과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한국의 어지간한 경제 문제는 재벌과 대기업의 힘이 너무 세진 것과 연관이 있거든요.

이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거시지표가 노동분배율과 가계소득비중입니다. 노동분배율은 낮아진다는 결과도 있고 의외로 높아진다는 결과도 있습니다. 한국은 유난히 자영업자 비율이 높은데 이들의 소득을 통계적으로 어떻게 처리할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가계소득비중은 뚜렷한 방향성을 보여줍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가계소득비중은 계속 낮아져서 OECD 평균보다 상당히 낮아진 상태이고, 기업소득비중은 계속 높아지고 있습니다. 노무현정부 시기 약간 주춤한 기간을 제외하고는 지속적으로 이러했습니다.

하지만 고용 문제와 연관하여 경제민주화·재벌개혁을 들고나오는 것이 과연 얼마나 공감을 불러일으킬지는 의문입니다. 재벌중심 공룡형 기업생태계에서 경제민주화·재벌개혁이 이뤄져서 이른바 '상생형' 혹은 '동반성장형' 기업생태계로 전환하면 일자리, 혹은 꼭 집어서 '좋은 일자리'가 늘어날까요? 그럴 겁니다. 누구나 직관적으로 그럴 거라고 답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변화하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고, 또 일자리가 과연 얼마나 늘어날까요?... 대답하기 곤란합니다.

즉 고용 문제와 관련해서 경제민주화·재벌개혁은 '현찰'이라기보다 '어음'에 가깝습니다. 이 어음은 부도가 나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얼마의 이익으로 돌아올지는 알기 어렵습니다. 즉 재벌개혁의 결과가 구체적으로 얼마의 고용증대로 이어질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얘기입니다. 제가 관련 연구를 찾지 못하여 올해 초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진보적 경제학자들에게 직접 문의했습니다. 경제개혁연대를 이끌어온 A와 B, 과거 민주당 경제민주화특위 위원장을 지낸 C, 노무현대통령의 경제비서였던 D, 동반성장론의 전도사인 E, 소득주도성장론을 뒷받침해온 F 등에게 직접 문의했습니다. 그런데 돌아온 답은 모두 '고용증대가 이뤄질 것이다, 그러나 얼마나 증대될지를 예측한 이론적·실증적 연구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진보가 보수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중요한 이유는 바로 문제해결능력, 즉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더 유리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특히 가장 심각한 위기인 고용문제 및 이로 말미암은 저출산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①경제민주화·재벌개혁을 통한 동반성장형 기업생태계로의 진화 ②복지재정 확충을 통한 사회서비스 일자리 증가 ③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④남북 경제교류 ⑤해외 진출 등의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이중에서 ⑤해외진출을 제외한 ①~④는 진보가 보수보다 유리한 부분입니다. 심지어 ⑤도 진보가 반드시 불리하다고 보기는 어렵지요.

그런데 이러한 고용문제의 대안들은 대부분 '어음'입니다. 고용증대 효과가 나타날 겁니다. 하지만 그 효과가 언제, 얼마나 나타날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정년단축으로 인한 청년고용 위축이라는 구체적 이슈 앞에서, 이런 어음이 얼마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요?

그런데 이 가운데 유일한 '현찰'이 하나 있으니 바로 ③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입니다. 이것은 분명 계산이 나오는 현찰입니다. 정부연구기관인 한국노동연구원이 2011년 내놓은 <장시간 노동과 노동시간 단축>에 의하면 현재 OECD 2위인 한국의 노동시간을 OECD 평균치로 낮추면 신규 일자리가 170만개 창출됩니다. 민간연구기관인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2012년 내놓은 <실 노동시간 단축방안>에 의하면 주당 12시간 이상의 초과노동만 막아도 신규 일자리가 69만개 창출됩니다. 다만 노동시간 단축으로 인한 임금감소를 얼마나 감수할지에 따라 신규고용 여력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임금감소가 고용증대효과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조차 미리 예측하고 계산해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대한민국 범 진보 정치인들은 이를 전면에서, 무게감 있게 추진할 힘이 없습니다. 노조에 '사상적으로' 포획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대부분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지역구에 출마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실질임금 감소가 이슈가 되는 순간 양대 노총으로부터 집중포화를 받을 가능성이 큰데, 총선 시기에 이런 악재를 자초하고 싶지 않은 것이지요.

여기서 제가 떠올려본 분이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입니다. 작년 7.30 재보선에서 낙선한 뒤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은둔생활 중입니다. 저는 손학규 전 대표가 201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저녁 있는 삶'으로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것을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2012년 당 경선에서 제기된 가장 공감가는 의제였습니다. 당시 '저녁 있는 삶'은 주로 삶의 질을 높이는 맥락에서 거론되었습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덜 강조되었을 뿐, '저녁 있는 삶'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고용증대와도 직결됩니다.

마침 그저께인 8월 29일 박영선 의원이 손학규 전 대표가 복귀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네요. 제가 한 번도 뵌 적은 없지만, 저도 손학규 대표가 복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냥저냥 야권의 구원투수로 돌아오진 마십시오. 정말 '간지 안나는' 방법입니다. 돌아오려면 청년들과 양대노총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진 야당을 단숨에 건져올려야 합니다. 임금피크제를 수용하여 대립전선을 '해고를 쉽게 하자는 여권' 대 '일자리를 나누자는 야권'으로 명확하게 정리해야 합니다. 연대정신을 외면해온 주류 노동운동계에 일침을 가하는 한편 청년들에게 우리나라 정치를 통해 희망이 남아있다는 걸 보여줘야 합니다.


<나홀로 사상운동>

1. 계파인듯 계파아닌 계파같은 친노

2. 새정치 혁신위, '답정너'를 넘어라!

3. 일베 무시는 청년 무지

4. 복지, 486의 알리바이

5. 청년이 최우선이다, 불쌍해서가 아니다

6. 탈스펙의 정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