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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9월 12일 05시 41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9월 12일 14시 12분 KST

어떻게 '뜨겁게' 할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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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참고도서 | <연애소설 읽는 노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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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는 말은 아는데, 사랑한다는 게 뭔지 몰라."

이제까지 연애를 안 해본 것도 아닌 사람이, 그것도 대인관계도 매우 좋고 성격도 활발한 이가 이렇게 말했다. 그 고백이 순간 스산했지만, 뒤돌아 매우 반가웠다. 사랑이 그리 알기 쉬운 것이라면 이토록 힘들 리도 귀할 리도 없다.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에서 감우성이 했던 대사가 이랬던가. 너나 나나 13살 때부터 끊임없이 누군가를 사랑해왔어. 그런 우리가 한 사람만 사랑할 수 있을까. 그 대사는 바로 이런 뜻이었다. '나는 모른다, 사랑을.' 그 말을 듣고 <연애소설 읽는 노인>이라는 소설을 떠올렸다. 그 소설에도 비슷한 대목이 있다.

"노인은 그 부분을 큰 소리로 반복해서 읽었다. 그런데 키스를 할 때 어떻게 하면 '뜨겁게' 할 수 있지? 세상에! 도대체 어떻게 했기에 그렇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이 대목만 읽으면 매우 낭만적인 책 같으나 아니다. 이 책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떠올리게 하는 인간과 동물의 싸움을 그리며, 그를 통해 현대사회의 문명과 야만이라는 잘못된 구도를 뒤집는다. 칠레의 작가 루이스 세풀베다는 이 소설을 살해당한 환경운동가에게 바쳤다. 그러나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된 데에는 파괴되는 자연에 대한 경계심이라는 주제보다는 제목의 힘이 컸으리라. 소설 속 주인공 노인은 만 열세 살에 동갑내기와 결혼했다. 어린 부부는 정부의 아마존 개발 정책에 따라 개간지로 들어왔다. 그러나 자연의 힘에 폭삭 망했다. 아내는 두 해를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그는 정부 대신 자신들을 보살펴준 수아르족을 따라 사냥하며 밀림에서 산다. 세월이 흐르면서 거의 사라진 그의 욕망을 깨운 것은 바로 책이다. 우연히 접한 책을 통해 그는 자신이 '읽을 줄 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자신이 고독하다는 사실도. 그리하여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등에의 날카로운 침과 같은 '사랑'에 대한 책을 읽기로 한다. 바로 연애소설이다.

온갖 쾌락의 기술로 가득한 문명의 눈으로 볼 때 노인은 제대로 된 연애도 사랑도 해본 적 없는 존재다. 그런데 '뜨겁게 하는 키스'도 해본 적 없는 그가 연애소설을 이렇게 정의한다. 연인들이 사랑으로 인해 고통을 겪지만 결국은 해피엔딩인 소설, 그것은 인간의 언어로 되어 있으나 인간의 야만성을 잊게 해주는 아름다운 것이라고.

노인의 정의에서 우리는 사랑에 대해 또 하나를 배운다. 사랑이 어렵고 무엇인지 모르겠다면, 그것이 아름다운지 행복한지를 생각해보라. 그런 것이라면 되었다. 타인의 눈에 볼 때,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그것이 어색하고 서툴다 해도 괜찮다. 그것들은 문명의 손길이라고는 닿지 않는 원시림에서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참고로 소설 속에서 아마존의 처녀성을 대표하는, 노인이 사는 '엘 이딜리오'라는 지명은 '낭만적이고 매우 강렬한 애정 관계'를 뜻한다.

* 이 글은 <한겨레21>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