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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8월 23일 07시 15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8월 23일 14시 12분 KST

연애 잘하는 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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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참고도서 | 도사님의 '연애론'과 <나의 점집 문화 답사기>

"사람들이 결국 물어보는 건 딱 두 가지야." "뭔데요?" "돈, 가족." 뭔가 재미없는 대답이다. 딴지를 걸어본다. "미혼인 이도 있을 거고, 남편 때문에 애먹는 아내도 있을 텐데, 남녀 관계를 물어보는 사람이 많지 않나요?"

그러자 도사님이 피식 웃는다. 아직 인생을 덜 살아본 하수를 보는 표정이다. "물론 있지. 왜 나는 연애를 못하냐, 이 사람하고 결혼해도 되냐. 이런 걸 묻지. 그런데 그런 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야. 사실 사람들은 나한테 물어보기 전에 판단을 이미 내린 상태거든. '이 사람하고 헤어져야 하나요?'라고 묻는 건, 헤어지고 싶다는 거지. '이 사람하고 사귀어도 될까요?'라고 묻는 건, 뭔가 사귀기에 꺼림칙한 거지. 그렇게 자기 힘으로 해결 가능한 문제는 인생에서 중요한 게 아냐." 헐, 도사님이 독신이라서 그런 거 아니심? 이 말을 꿀꺽 삼키고 다시 물어본다. "운명의 짝 같은 건 없나요? 이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 진짜 운명이면 어떻게 하죠?" 이 질문에 도사님은 뭐라 답했을까?

한때 점 같은 건 '미신'이라고 말하던 시절에도 사람들은 숱하게 점을 보러 다녔지만, 이토록 오래 성업할 줄은 몰랐다. 미래가 궁금해서 그런 걸 텐데, 궁금하기로 따지면 연애만 한 게 있을까. 그런데 전문 용어로 '신점'을 보시는 이분, 용하기로 대한민국 몇 손가락 안에 든다는 이 도사님은 정작 연애는 별게 아니란다. 짝을 찾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데 이러는가.

"남자나 여자를 만날 '때'가 왔는가는 보이지. 그때가 언제인지는 말해줄 수 있어. 하지만 그때가 와도 자기가 노력하지 않으면 연애가 안 돼. 무엇보다 '사이가 좋을 때'는 절대 물으러 오지 않아. 사실상 나쁜 운명이었다 해도, 좋으면 그냥 넘어가고 있다는 거지. 그게 뭘 뜻하겠어? 운명의 짝 같은 건 없다는 거야. 남녀 관계 같은 거 물어보지 마. 자기한테 해가 되는 사람은 그냥 헤어지면 돼."

영혼과 결혼하셨다는 이 도사님이 속세의 사랑에 대해 어쩜 이리 명쾌하실까. 그 명쾌함에 탄복하면서도 또 딴지를 걸어본다. "그러면 도사님의 역할은 필요 없잖아요." 그 말에 씩 웃는다. 여전히 너는 하수라는 듯이. "사람들은 내가 말하면 믿어도, 자기들 마음은 못 믿거든." 아, 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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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같이 피어나는 궁금함이 있다. 정말 이 사람이 내 짝일까? 온갖 심리 테스트를 해보고, 점의 힘까지 빌릴 욕심이 생긴다. 하지만 도사님 말처럼, 정작 사랑에 필요한 것은 '운명을 탐지하는 능력'이 아니라 약간은 거만한 당당함이다. 내가 내 운명을 제일 잘 안다는 태도. 그런 자신감이 오히려 내 앞에 놓인 연애의 웅덩이를 잘 피해갈 수 있는 부적이다. 그러니 복채는 아껴서 데이트 자금으로 쓰시라. 그래도 점의 힘을 빌리고 싶은 욕망이 남아 있다면 한동원 작가의 본격 점집 르포르타주 <나의 점집 문화 답사기>를 권한다. 그 시니컬한 명쾌함이 이 도사님 못지않은 책이니.

* 이 글은 <한겨레21>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