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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5월 03일 07시 33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5월 03일 14시 12분 KST

사랑을 잃고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있을까

소니픽쳐스

[사랑의 참고도서]<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눈을 감고 내면을 들여다보세요. 당신은 단지 살아가기 위해 남과 경쟁해왔습니다. 원치 않는 모습으로 살아왔습니다." 어떤 결론일지 이미 예상되지만, 진심으로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려는 강사 앞에 삐딱할 필요는 없겠지.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자리 잡은 힐링 센터에서 하는 명상 시간이다. 자세를 바로 하고 그 말에 따른다. 그러자 금방 눈가가 뜨겁고 울먹하는 기운이 올라온다. 그래, 이 기회에 진정한 나를 찾아보는 것도 좋겠지.

그런데 다음 말에 울먹하던 마음이 욱하는 마음으로 바뀐다. "자신에게 말해줍니다. 이렇게 살게 해서 미안해. 외롭게 살게 해서 미안해." 저기요? 제가 사는 게 룰루랄라인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미안하다고 말하면 이제까지 살아온 인생이 뭐가 됩니까? 그리고 아무리 누구나 마음속에 '울고 있는 아이'가 살고 있다지만, 미안하다니요. 차라리 앞으로 '똑바로 살겠다고 다짐하자' 이건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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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 2일 힐링센터 체험을 하고 오니, TV에서 때마침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는 영화를 틀어준다. 성공 가도를 달렸으나 어느 날 내면의 황폐함을 깨닫고 이탈리아, 인도, 발리를 여행한 한 미국인 여성의 자아찾기를 그린 영화로 동명의 베스트셀러가 원작이다. 이 영화를 틀어주는 건 신의 뜻인가. 잔말 말고 순한 양으로 회개하라는? 비아냥이 아니라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왜 '진정한 자신'을 찾는 일은 과거의 내가 미숙했다거나 진정한 내가 아니었다는 그런 전제에서 출발하는 걸까.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서도 그와 같은 장면이 여주인공이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줄리아 로버츠가 역할을 맡은 여주인공은 이런 말을 듣는다. "예전에는 전남편과 비슷해 보이더니, 이제는 새 남자친구와 비슷해 보이네요." 그녀는 자신다움이 없는 삶을 살고 있었음에 충격을 받는다.  

우리는 사랑하던 사람과 헤어지면 이와 비슷한 생각에 사로잡힌다. '그래, 내가 원하던 관계가 아니었어', '그래, 그 사람에게 너무 휘둘려서 나다움을 잃고 있었어'. 맞는 말이다. 건강하게 사랑하고 사랑받으려면 자신을 먼저 챙겨야 하니까. 아무리 상대를 사랑해도 나를 버리면 안 된다.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우리가 겪는 상처와 실연에 대한 치유가 '진정한 나는 따로 있었는데 그걸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는 깨달음으로 가능할까? 그리하여 과거의 나를 미숙한 사람으로 대하는 것이 과연 다음 사랑을 시작할 때 도움이 될까? 그리고 누군가를 닮아가는 게 나를 잃어버리는 거라면, 그럼 '진정한 나'는 원래 어떤 모습일까? 진정한 나라는 게 과연 정해져 있는 걸까? 

나는 의문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선택할 수 없는 인생'을 살 확률이 더 높고, 또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그의 영향력 아래 또다시 제 발로 걸어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내 삶을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착각이다. 내가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태어났듯이, 인생을 좌우지하는 많은 조건들은 이미 정해져 있으니까. 다만 우리는 이미 정해진 것들이라도 최선을 다하고 책임을 지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그게 중요하다. 원하지 않았던 삶이라도, 선택하지 못한 삶이라 하더라도, 그 삶이 '내 삶'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다움'이라는 걸 좀 더 엄밀하게 말할 필요가 있다. 나다움이라는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 '내가 책임을 지고 있는 것'에 더 가깝지 않을까.  

물론 최선을 다해도 우리의 인생은 때때로 실패한다. 그럴 때 우리는 변할 필요를 느낀다. 하지만 그것이 A가 아닌 B의 모습을 찾는 것이라면, 우리는 계속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과거를 실패가 아니라 과정으로 만들 수밖에 없다. 나쁜 연애였을지 몰라도, 그 과정에서 내가 했던 최선을 기억하면 다음 연애를 잘할 힘이 생긴다. 그 사람이 강요한 스타일이었다 하더라도, 이제는 내가 더 그 스타일에 능통할 수도 있다. 만약 그 스타일이 나한테 안 어울린다면 안 어울린다는 것을 확인한 셈이니 기회비용이라 생각하면 될 일이다.  

어느 자리에선가 세상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다 "내가 만든 세상은 아니지만, 각자 살아온 나이만큼은 이 세상에 책임을 지기로 하죠"라는 말이 나왔다. 그런 말이 훨씬 더 강한 나를 만든다. 몇 년째 힐링의 시대라는데, 왜 사람들은 계속 자아찾기가 어려울까. 과거의 나를 미숙하게 바라보고, 부정적으로 바라보면서 찾은 새로운 나는 오래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는 아마도 3개국 여행으로는 안 되겠다고 10개국 여행을 떠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 이 글은 <한겨레21>에 게재된 글을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