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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2월 19일 12시 42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2월 19일 14시 12분 KST

중국 외교부장의 비외교적 언사 | 항장무검, 의재패공

ASSOCIATED PRESS

1. 중국 최고위직 외교관의 전혀 외교적이지 않은 언사

북한이 수소 폭탄 실험 성공 주장에 이어, 탄도미사일을 시험 발사하는 무력 도발을 하였다. 이에 맞서서, 우리 정부는 미국과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협의를 개시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이러한 우리 정부와 미국의 사드 협의와 관련하여,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은,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 옛말 중에 '항장이 칼춤을 추는 진짜 의도는 유방을 죽이려는 것'이란 말이 있습니다. 도대체 미국의 의도는 무엇입니까."라고 말하여 물의를 빚고 있다.

왕이 부장이 인용한 말은, '항장무검 의재패공(項莊舞劒 意在沛公)'으로, 고대 중국의 역사가 사마천이 쓴 역사책 [사기(史記)] 중 "항우 본기"에서, 중국 초한쟁패기의 유명한 사건인 홍문지연(鴻門之宴)을 다루는 부분에 나오는 문장이다. 왕이 부장은 현재의 중국을 이 홍문지연에 나오는, 한(漢) 고조 유방(패공)에, 미국을 서초(西楚) 패왕(覇王) 항우에 비유한 셈이고, 나아가 항우의 사촌으로 유방을 죽이려 칼춤을 춘 항장을 남한에, 그리고 인용구에는 안 나오지만 이에 맞서 유방을 지키려 대응 칼춤을 춘 항우의 삼촌 항백과 유방의 호위 무사격인 유방의 측근 번쾌를 아마 북한에 비유한 것이 아닌가 싶다.

역시나 중국인들의 상상력은 고전적인 데가 있으나(웃음) 이천년 간 중화문명의 세례를 받아 온 반도의 자칭 역덕으로서 왕이 부장의 홍문지연 비유에 약간(?)의 이의가 있어서 오늘은 이에 관련된 썰을 한 번 풀어 보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홍문지연에 빗대어 작금의 동북아 정세를 논하다니, 이는 중국의 최고위직 외교관답지 않은 언사로, 한반도를 중국의 앞마당 정도로 여기는 패권주의적 속내가 고스란히 드러난 것 같아 몹시 불쾌하다. 아울러 왕이 부장의 견강부회와는 달리 홍문지연의 고사에 의하더라도 우리 정부가 사드 배치를 미국과 협의한 것은 지극히 타당한 조치였음이 드러나지 않을까 싶다^^ 서두는 이 정도로 하고 다음 문단부터 홍문지연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2. 중국이 너그러운 유방이고, 미국은 포악하기 그지 없는 항우라고?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秦)제국의 시황제가 죽자, 그의 철권 법가 통치에 신음하던, 진이 멸망시킨, 전국7웅(七雄) 중 진을 제외한 여섯 나라의 망국민들은 각지에서 반란을 일으킨다. 이들 중 제일 중심 세력이던 초나라의 회왕(훗날의 의제)은 진의 본토인 관중(지금의 중국 섬서성)땅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관중왕으로 삼겠다고 선포한다. 이 관중왕 되기 경쟁에 참여한 이가 바로 항우와 패공 유방. 항우는 초의 명문가 출신 맹장이고, 유방은 사상이라는 마을의 정장(지금으로 치면 통장 정도 아닐까 싶다) 출신의 비루한 반란군 장수로 패라는 곳에서 기병하여 패공이라 불렸다. 지금의 중국 동남부의 초나라에서 같이 출발한 항우의 군대와 유방의 군대는 항우가 대강 북서쪽 길을 잡아 관중에 접근한 반면 유방은 서남쪽 길로 관중으로 진격한다.

항우가 만나는 진나라의 군대들을 보는 족족 쳐부수고 심지어 항복한 진의 몇십만 대군을 문자 그대로 땅에 파묻어 버리는 가공할 잔혹함까지 보여주며 진격한 것에 반하여, 유방은 상대를 말로 구슬리고 항복을 권유하며 전진한다. (여기까지만 보아도 일단 왕이 중국 외교부장의, "미국=항우, 중국=유방" 비유가 크게 부당해 보인다. 요새 남중국해에서도 대만, 필리핀, 베트남, 일본 등 온갖 나라들과 마찰을 일으키고 있는 중국의 모습이야말로 오히려 항우의 막무가내 진격의 모습에 가깝고, 과거의 적국 베트남과 일본마저 도와 주고 있는 미국이야말로 유방의 모습과 가깝지 않은가?)

어쨌거나 이렇게 온갖 시비를 걸며 쌈박질만을 하는 무모한 항우에 비해 가치의 동맹(응?)을 추구한 유방이 관중에 먼저 도착한 것은 당연지사. 유방은 진의 수도 함양(지금의 서안, 西安)을 지키는 관문인 함곡관을 함락시키고도, 항복한 진의 마지막 왕 자영도 살려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유방은 진의 가혹한 법령 대신에 약법 삼장이라는,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에 처하고, 도둑과 남을 다치게 한 사람만 처벌한다는 법을 만들어 민심을 얻었다. 그뿐만 아니라 평소 탐욕스럽고 여색을 밝히던(쿨럭;) 유방은 진나라의 금은보화를 봉인해 두고 휘하 병사들의 약탈을 엄금하고, 궁정의 후궁들에게 손끝하나 대지 않았으니, 이는 다 장량(장자방)이나 소하 같은 유방의 참모들의 권유를 유방이 받아들인 결과이다.

유방이 이렇게 관중의 민심을 얻어 가고 있는 중에 피바람만 불러오던 항우가 드디어 함곡관에 도착한다. 항우는 험한 싸움을 예상하며 공격을 준비하다가 이미 유방이 함양에 먼저 도착한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한다. 그래도 초나라 회왕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항우의 무력이 압도적이기에 유방은 항우에게 고스란히 자신이 얻은 것들을 양보한다. (나중에 항우는 유방이 살려줬던 진의 마지막 왕 자영을 살해하는가 하면 진시황의 여산릉을 도굴하고 아방궁을 불태우는 등 포악성을 여실히 드러낸다.)

중국의 최고 외교관인 왕이 부장이 이렇게 포악한 처사로 민심을 잃어 가는 항우에 미국을 빗대고 현재의 중국을 너그러운 유방에 비유했다니 실소하게 될 따름이다. 마치 영국과의 싸움을 고대 로마와 카르타고 간의 포에니 전쟁에 비유하고 해군 중심의 카르타고가 육군 중심의 로마공화정에 깨졌듯이 프랑스 대육군이 해양세력 영국을 이길 것이라 망상했다는 프랑스대혁명/나폴레옹 전쟁기의 "프랑스인들의 고전적 상상력"(에릭 홉스봄)이 생각 나 그저 소이부답(笑而不答)일 따름이다.

3. 사드를 배치하겠다는 한국을 그렇다면 왕이 부장은 미국의 앞잡이로나 보는 것인가?

하여간 다시 초한지 얘기로 돌아가면, 항우의 모사인 범증은 유방에게서 금은보화를 강탈했으나 유방이 관중의 민심을 얻었음에 위기의식을 느끼고 유방을 연회에 초대해서 죽이자는 계책을 내니 그래서 항우의 진영이 있던 홍문에서 열린 연회가 바로 홍문지연이다. 이 사건의 주요 배역인 셈인 항백은, 항우의 삼촌으로, 예전에 사람을 죽이고 도망자 신세로 살다가, 나중에 유방의 일급 참모가 되는 장량에게 스스로를 의탁한 일이 있었다. (왕이 외교부장의 비유를 계속 밀고 나가면 이 항백이 바로 북한 정권이 되겠다, 풉) 그러기에 항백은 장량에게 은혜를 갚기 위하여 유방의 진영에 몰래 찾아와 이런 범증의 음모를 알리고, 장량에게 당신이라도 유방을 버리고 도망가라고 한다. 그러나 나름 복안이 있던 장량은 항백의 도망가라는 간청을 거절하고, 항백과 함께 주군 유방에게도 이런 범증의 음모를 알리고 예정대로 홍문지연에 참석한다.

홍문지연에서 항우의 모사 범증은 유방을 죽이기 위해 항우의 사촌 항장(왕이 중국 외교부장의 비유에 의하면 박근혜 대통령이 되겠다, 쿨럭;)에게 연회의 흥을 돋운다는 명목으로 칼춤(싸드)을 추다가 유방(시진핑)을 도모^^하라고 한다. 항장은 범증의 계책에 따라서 연회의 흥이 올랐을 때 살기등등한 칼춤을 추어댄다. 누구나 항장이 유방(패공)을 노린다는 것이 분명해졌을 무렵 이번엔 항우 측의 배신자 항백이 나서서 칼춤에 상대가 없어서야 되겠냐며 항장의 칼 끝이 패공을 향하는 것을 막는다.

왕이 부장의 비유에 의하면, 항우를 위해 칼을 휘두르며 미쳐 날뛰는 항장이 사드 배치를 미국과 협의 중인 남한이니, 고사에서 항장을 막아내는 정의로운 무력을 행사한 항백은, 북한(의 핵개발)에 해당한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비유가 아닐 수 없다. 도대체 남한이 항장처럼 가만히 있는 패공을 도모하려 했는가? 북한이 먼저 수소폭탄 실험까지 했다고 주장하고 탄도 미사일까지 거듭 쏘아대는데도 중국이 "좋은 게 좋다"는 양비론만 계속 꺼내며 노골적으로 북한편만 드니까 참다참다 못해 사드 배치를 미국과 협의하자는 말이 나오는 것 아닌가?

그리고, 남한이 항장이라면서 항우 아니 미국의 꼬붕이라는, 이렇게 조금만 고사를 들추어 보아도 알 수 있는 막말을 함부로 내뱉으면 한때는 소중화(小中華)라는 자부심에 쩔어 있던 이 반도에서 아무도 알아들을 사람 없을 줄 알았는가? 그리고 항장이랑 항백 싸움 붙여 놓고, 중국이랑 미국은 서로 유방과 항우처럼 칼싸움 구경하듯 대리전을 시키고 있다는 것인가? 혹시 왕이 이 양반 "항장이랑 항백이랑 같은 항씨로 남조선, 북조선이랑 딱 맞는 비유네!"하며 낄낄 웃은 것은 아닌가하는 의심마저 든다. 그리고 북한은 너님들 중국이랑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이고 나중에 항백이 유방 진영에 넘어와서 유방의 유씨 성까지 하사받은 거랑 잘 어울린다 뭐 그렇게 생각한 것인가? 생각할수록 왕이 중국 외교부장의 비외교적 언사는 고약하기 이를데가 없다.

4. 홍문지연의 고사에 따르더라도 왕이 부장의 조언(?)은 틀렸다!

흥분을 조금 가라 앉히고, 홍문지연 당시로 다시 돌아가 보면, 항장과 항백이 칼춤을 계속 추고 있는 것을 조마조마하게 바라보던 유방의 모사 장량은, 연회장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던 유방의 호위무사격인 번쾌에게 바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인용한, "항장무검 의재패공(項莊舞劒 意在沛公)" 즉 "항장의 칼춤은 실은 당신의 보스 패공 유방을 죽이려고 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한다. 그러자 번쾌는 장막을 걷어 제치고, 연회장으로 난입한다.

여기서 약간 번쾌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있어 보이는데, 번쾌는 일단 전직(前職)이 개백정, 즉 식용개를 때려잡는 일을 하던 자였다. 유방의 측근이 된 후에는 사람을 때려잡는 일에 그렇게 나섰는데, 사마천은 그의 역사책 [사기]의 번쾌 열전에서 번쾌가 요새로 치면 마피아의 hit man마냥 유방이 치라는 적들을 살해하고 성을 빼앗는 문장들을 스타카토처럼 건조하게 계속 기술함으로써 번쾌가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유방의 사냥개격으로 행동했음을 보여주었다.

이런 번쾌가 갑자기 나타나니 힘은 산을 뽑을 정도이고 기운은 세상을 덮을 정도(力拔山氣蓋世, 역발산기개세)라는 천하의 영웅 항우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항우는 번쾌가 누구인지를 확인하고, 유방의 부하라고 하니 술을 주었고, 안주로 고기까지 주었는데, 번쾌는 이를 검으로 잘라 방패 위에 두고 먹었다니, 이런 위세 과시를 보고 나서야 항장은 위험스런 칼춤을 멈추었고, 유방은 취한 척하고 자리를 피하여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이렇게 다름 아닌 장량이 번쾌에게 한, "항장무검 의재패공(項莊舞劒 意在沛公)"이란 말을 왕이 부장이 인용한 것도 참으로 고약하기 그지 없다. 스스로 항우는 미국에 빗댄 것이라고 하였고, 항장을 사드를 받아 들이기로 결정한 우리나라에 비유하였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으니, 이렇게 사드가 들어 오는 것을 그냥 두고 보고만 있을 것인가 하고 장량에 빙의한(쿨럭;) 왕이 부장의 부름에 호응하여야 하는 번쾌에 해당하는 중국의 사냥개는 도대체 누구라는 것인가? 중국이 이렇게 미국의 사드로 위태로우니 지난 수십년 간 중국의 문턱을 지킨 북한 정권더러 이걸 과연 그대로 좌시하고 있을 것이냐고 선동하는 것인가?

또 다시 홍문지연의 고사로 돌아가면(너무 돌아가느라 헷갈리실 것 같아 죄송) 유방은 이렇게 목숨을 건져 달아났으나 이 일을 꾸몄던 항우의 모사인 범증은 유방을 잡을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쳤다며, 유방의 모사인 장량이 뇌물격으로 바친 물건을 던져 깨트리며 애석해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범증의 이런 불길한 예감처럼 종국적으로는 초한쟁패에서는 유방이 항우를 꺾고 승리한다.

이 역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의 홍문지연 비유가 지극히 얼토당토 않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예가 아닐까? 즉 홍문지연에서 항장의 칼춤이 실패하였기 때문에 항우가 패망하게 되는 하나의 원인을 제공하게 된 것이다. 어찌보면 항우측 입장에서는 상대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칼춤이든 뭐든 방법을 써서 유방의 기세가 더 오르기 전에 꺾어 두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상대(미국)더러 네가 지금 항장(한국)을 시켜 패공을 노리는 셈(사드)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어찌보면 오히려 어떻게든 지금 단계에서 우리를 막지 않으면 결국은 너희를 패망시키고 말 것이라고 협박하는 셈 아닌가! 그리고 그렇게까지 답(응?)을 알려 주면 사실 더 열심히 칼춤을 추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웃음)

5. 지금의 중국과 한 고조 유방이 비슷한 점(?)이 없지는 않다.

그리고, 하기는 지금의 중국이 이 [초한지]의 유방과 비슷한 점이 어느 트친님 말씀대로 있기는 하다. 유방은 이런 홍문지연 같은 고비를 여럿 넘기며 천신만고 끝에 항우를 꺾고 자신이 천하를 통일하는데 크게 도움을 준 한신이나 경포 같은 장수들을 처단함으로써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兎死狗烹)이라는 고사성어를 남긴 점에서는 중국의 처사가 유방과 닮지 않았는가! 즉 박근혜 대통령이 미국 같은 혈맹의 권유도 무시하고 작년 중국의 소위 전승절기념 행사 때 세계의 독재자들과 천안문 망루까지 올라 가셨는데도 중국 시진핑 주석이 북핵 실험 후 전화도 안받고 나중엔 자정에 통화하자고까지 모욕을 준 점에서 말이다.

끝으로, 이렇게 한 고조 유방의 행적에 밝으신 왕이 부장이시니 유방의 이 고사도 잘 아시리라 생각한다. 이렇게 주변 나라들에게 비외교적 언사를 내뱉어 외교관으로서의 기본 소양마저 의심스럽게 한 왕이 부장처럼, 원래 잠저에서 근본 없이 커서, 변방 오랑캐를 업신여기던, 한 고조 유방도 재위 중 나중에는 오랑캐 중의 오랑캐인 흉노한테 포위당해 죽을뻔하다가 싹싹 빌고 항복까지 했다는 것을. 그 후로 유방과 그의 후손인 한나라 황제들은 자신들이 업신여겼던 변방 오랑캐인 흉노에게 공주를 계속해서 바쳐야 하는 굴욕을 당했다. 마침 입춘(入春)도 지났는데도 며칠 매서운 추위 속에 이웃 대국 외교관의 이런 협박을 듣고 있자니, 이웃의 오랑캐를 업신여긴 황제 탓에 오랑캐 땅에 끌려가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春來不似春, 춘래불사춘)며 중국 여인 왕소군을 기린 당나라 시인 동백규의 시가 떠오른다.